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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대 장편소설]힘내라 돼지(30)...폭력배들

발행일시 : 2018-09-14 00:20
[심상대 장편소설]힘내라 돼지(30)...폭력배들

30. 폭력배들
 
토요일 아침 기상시간이 돼서야 빈대코는 퉁퉁 부어오른 입술과 발톱이 뒤집어진 엄지발가락의 상태를 확인했다. 팔을 들 수 없을 정도로 통증 심한 오른쪽 어깨는 의무실에서도 신경 쓰지 않았다. 입술과 발가락에 반창고를 붙이고 돌아오는 길에 6방 창가를 지나던 빈대코는 이쪽을 바라보는 털보와 눈을 마주치긴 했으나 싱긋이 웃으며 지나쳤다. 방으로 돌아오자 망치가 위로의 말을 했다.
 
“우리 동네에선 이럴 때 지실 든다고 해요. 자잘한 사고가 겹치기로 일어나 사람이 쪼그라든다는 말이오. ……사장님 힘내요! 다 살라는 세상이지 죽으란 법이야 있겠소!”
 
아침 설거지가 끝나자 사동은 운동 나갈 준비로 수런거렸다. 공장은 주 5일 근무고 출력수들은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방에서 쉬었다. 그중에서 토요일은 30분 동안 운동이 있지만 일요일은 텔레비전이나 보며 금고형을 치를 수밖에 없다. 오늘은 토요일이고 운동시간은 오전이었다.
 
“날 따라와요, 사장님. 사장님은 12방에 가 있어요.”
 
자살예방차원에서 교도소는 어떤 경우든 수용자를 혼자 두는 법이 없다. 운동장으로 나갈 수 없는 빈대코를 위해 웬만하면 한두 사람 남아주면 좋으련만 오늘은 고액권 우표가 현금 대신 오가는 족구경기 중에서도 가장 큰 판이 벌어지는 날이었다. 그런 데다 내일 종일 방에 처박혀 있어야 하는지라 모두 운동장으로 몰려나갔다. 망치는 빈대코를 운동장에 나가지 않는 수용자들을 모아두는 12방에 데려다 놓았다.
 
12방에 남은 수용자는 다섯이었다. 환자는 빈대코와 똥가다 둘이지만 조직폭력배 중고참인 똥가다를 위해 졸개 둘이 곁에 붙었고, 나머지 한 명은 징역살이고 세상살이고 다 싫다는 표정으로 혼자 두면 언제 목을 맬지 모를 중늙은이였다. 그 중늙은이는 방에 들어오자 구석자리에 자리를 잡고 누웠다. 하지만 대낮에 방에 누워본 적 없는 빈대코는 사물함 미닫이문에 등을 붙이고 앉았다. 살집 뒤룩뒤룩한 똥가다는 며칠 전 달리기 시합에서 넘어져 팔과 다리를 깠다. 상처에 바른 연고가 진물과 함께 흘러내렸고 졸개 둘이 그 옆에 부동자세로 서서 시중을 들고 있었다.
 
“야, 저 앤 요즘 누구하고 산다냐?”
 
윗도리를 벗어 문신투성이 상체를 드러낸 채 방 한가운데 앉은 똥가다가 물었고 졸개 중에 조폭 조직원이 아니라 조폭 조직원인 체하는 ‘30년’이 대답했다.
 
“재미교포라고 합니다, 형님!”
 
살인죄라지만 전례 없이 30년형을 받아 30년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스물네 살짜리 수용수가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재미교포 3센데 얼굴도 잘생기고 아버지가 돈도 많답니다, 형님! 지금 대학에 다닌다는데요, 형님!”
 
똥가다가 근황을 물은 여가수는 미모와 가창력이 뛰어나고 데뷔하면서부터 염문을 몰고 다니는 신인이었다. 지금 텔레비전 화면에서 노래하고 있는 그녀를 바라보며 똥가다가 또 물었다.
 
“쟤도 대학 나왔냐? 쟤는 고향에서 고등학교만 나왔다던데?”
 
이번에는 조직 직계후배인 다른 졸개가 지방에 있는 한 고등학교를 거명하며 대답했다.
 
“그 고등학교 졸업하고 서울 올라와 재수학원 다니다가 떡볶이 집에서 스카우트 됐답니다, 형님! 그런데 데뷔하고 뜨더니 작년에 대학 갔습니다, 형님! 그리고 형님…….”
 
그는 좀 전 30년이 아뢴 그녀의 근황에서 잘못된 점을 바로잡았다.
 
“지금 교제하는 남자가 대학생이 아니고 대학원생인가 대학원 졸업했든가, 하여튼 대학생은 아닙니다, 형님! 돈 많은 재미교포 3세는 맞습니다, 형님!”
 
그러더니 한마디 더 덧붙이며 차렷 자세로 상체를 숙였다.
 
“그 남자가 아주 잘해준답니다, 형님!”
 
똥가다는 양쪽에 붙어 서서 지나치게 아부하는 졸개 둘을 물리쳤다.
 
“야야, 까마귀 뜨면 뭐라고 시끄럽게 군다. 니들 거기 가만히 앉아 있어라.”
 
‘까마귀’는 CRPT 요원을 가리키는 수용자들의 은어다. ‘교정청 신속대응팀’으로 번역할 수 있는 CRPT는 교도관과 함께 수용수의 생활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기관인데, 그 요원의 제복이 까만색이고 그들이 쓴 팔각모 또한 까만색이라 ‘까마귀’라는 별명을 얻은 것이다.
 
“그 재미교포가 진짜 애인인지 알 수 없다는 말도 있습니다, 형님!”
 
똥가다의 명령에 한 걸음 떨어진 자리에 주저앉으며 30년이 말했고 똥가다가 대꾸했다.
 
“그럼? 다른 애인이 또 있대?”
 
“전에 사귀던 탤런트가 있잖습니까, 형님!”
 
“야, 인마! 걘 벌써 다른 애하고 사귄다고 신문에 났던데 뭘 그래!”
 
똥가다가 짜증을 내자 30년은 머리를 방바닥으로 깊숙이 숙이며 용서를 구했다.
 
“그렇습니까, 형님! 저는 거기까진 몰랐습니다, 형님!”
 
그런 시시껄렁한 수작을 지켜보면서 빈대코는 시큰거리는 어깨를 주무르고 있었다. 텔레비전에서는 떼를 지어 달려 나온 사내자식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난리를 치며 손짓을 해댔다. 그들에 대해 똥가다와 두 졸개는 또 연예계 뒷얘기를 주고받으면서 능력 있는 여자는 열 명이든 백 명이든 여러 남자를 거느려도 상관없는 세상을 저주했다. 그래서 별 볼일 없는 자신들은 이렇게 감방에 찌그러져 있다는 한탄이 그들이 내린 결론이었다. 똥가다가 직계후배한테 물었다.
 
“야, 닌 노래 좀 하냐? 쟤들 정도는 아니더라도 좀 해?”
 
“형님, 제가 메들리 들어가면 도우미 애들 다 죽습니다, 형님!”
 
이번에는 왼쪽에 앉은 30년에게 물었다.
 
“니는?”
 
“네, 형님! 저도 좀 하긴 합니다.”
 
“이 새끼…… 니는 제대로 할 것 같지 않다. 니는 뭐 하나 여자를 끌어댕길 재주가 없어 보인다. 그래서 니 같은 새끼들이 칼 들고 여자화장실 가는 거야, 인마! ……니 같은 놈들 때문에 여자들이 남자를 무서워하는 거라고. 돈이 없으면 노래라도 하든가, 아니면 춤이라도 저렇게 좀 추든가, 이 새끼야!”
 
그러자 30년이 정색을 하고 말했다.
 
“형님, 저가 그 새끼하고 같이 운동했습니다, 형님! 묻지마 살인 했다고 신문에 난 그 새끼 말입니다, 형님!”
 
“어디서?”
 
“재판 받을 때 미결방 같은 사동에 있었습니다, 형님!”
 
“그런데 왜? 그 새끼가 뭐래?”
 
“형님! 자기는 묻지마가 아니랍니다, 형님!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답니다, 형님!”
 
“야, 이 새끼야! 징역 온 새끼 말을 어떻게 믿냐? 그리고 그 새끼 말이 맞더라도 사람이 죽었는데 그게 말이 되냐? ……응? ……사람이 죽었는데?”
 
유명 여자 영화배우 이름을 대면서 30년이 다시 말했다.
 
“나이트클럽에서 그 여자 핸드폰 주워 그 안에 든 누드사진으로 협박하다 잡힌 새끼도 그때 같이 있었습니다, 형님! 그 새끼도 억울하다고 그럽니다, 형님!”
 
성난 사무라이 얼굴이 문신으로 박힌 왼쪽 어깨를 치켜든 똥가다가 30년의 머리통을 쥐어박았다.
 
“야, 그런 잡범들 얘기는 하지도 마라. 재수 없다, 이 새끼야!”
 
똥가다의 자부심을 증명하듯이 노란색 명찰이 좌우에 붙은 그의 수복이 벽에 걸려 있었다. 일반 수용수 명찰은 흰색이지만 특별한 색깔의 명찰이 세 가지 더 있는데, 사형수는 빨간색이고 마약사범은 파란색이고 조직폭력배는 노란색이었다. 아가리질을 그친 졸개들은 또 뭔가 아부할 거리를 찾더니 곧 커피타임을 벌였다.
 
“사장님은 얼마나 남았어요?”
 
커피를 마시던 똥가다가 빈대코에게 물었다. 초범으로 가석방이 있어 이제 대여섯 달 남았다는 대답에 그가 말했다.
 
“가석방 거부하는 사장님도 있어요, 사장님. 우리 공장에 쓰레기 관리하는 그 어르신 알죠? 그 어르신 가석방 8개월 먹었는데도 싫다고 그냥 살잖아요. 나가봤자 갈 데도 없고 보호관찰 받기도 귀찮다고 여기서 다 때우고 나가겠대요. 그래서 지금 그냥 살잖아요.”
 
그의 조직 직계후배가 아는 체하며 나섰다.
 
“그러면 다음 들어와 그 가석방 찾아먹을 수 있어요.”
 
그러더니 빈대코에게 한 가지 정보를 건네줬다.
 
“사장님은 초범이니까 형기 80퍼센트 지나고 징벌 없으면 1급 달아줘요. 1년 6개월 형이면 15개월째 1급 달아요.”
 
빈대코 대신 똥가다가 따져 물었다.
 
“이 사장님이 1급 달아서 뭐하게? 그때면 가석방 나간다는데 1급이고 2급이고 뭘 달고 말고 하냐, 이 새끼야!”
 
“형님! 1급 달면 다음 들어올 때 가산점 있어요.”
 
“이 새끼 이거 정말 돌이구나. 야, 인마! 이 사장님이 뭐 하러 여기 또 들어오겠냐? 이 사장님이 조직이냐 향이냐?”
 
‘조직’은 조직폭력단체 조직원의 준말이며 ‘향’은 마약사범을 가리키는 은어로 ‘향정신성의약품관리법 위반사범’의 준말이랄 수 있다. 그들이 그러나 마나 빈대코는 똥가다의 몸통을 바라보며 요란한 문신을 감상하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어머니가 곱게 낳아준 몸뚱아리를 저렇게 만화책으로 만들어놓은 정신머리가 한심하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렇게 해서라도 남을 제압해 밥 먹고 살고자 하는 노력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빈대코 자신은 조금도 겁나지 않았다. 그의 어깨에서 배꼽을 향해 기어 내려오는 뱀은 대가리 생김새로 보건대 물뱀이나 꽃뱀이랄 순 있어도 독사는 분명히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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