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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대 장편소설]힘내라 돼지(29)...발톱

발행일시 : 2018-09-13 00:20
[심상대 장편소설]힘내라 돼지(29)...발톱

 
29. 발톱
 
비는 새벽에 그쳤다. 어제 아침보다 더 쨍쨍한 해가 떠올랐다. 말복이 지나고 일주일이 넘었으나 여전히 무더운 8월 세 번째 금요일이었다. 그리고 그날은 빈대코에게 겹치기 불행이 몰아친 날이었다. 여기저기 몸을 다쳤다. 우선은 오른팔 어깨 인대였다. 점심시간이었다.
 
“얼른 가자.”
 
점심을 먹자마자 빈대코는 털보를 끌고 공용화장실로 달려갔다. 먼저 간 빈대코가 옷을 벗어 걸 때 비누와 수건을 챙겨든 털보가 뒤따라왔다. 곧 설거지를 시작하기 때문에 그 전에 목욕을 마쳐야 했으나 작정하고 달려온 덕분에 털보와 빈대코뿐이었다.
 
“먼저 비누칠을 하자.”
 
빈대코는 바가지를 집으려 물이 가득 찬 재생고무 물독 뒤로 다가갔다. 그러다가 사고가 났다. 우울한 기분으로 동작이 굼뜨고 고무신 뒤꿈치를 꺾어 신은 채 서두르다 보니 물독 뒤편에서 고꾸라지고 말았다. 알몸인 데다 넘어지는 자세도 엉성했다. 물독 뒤 물때 낀 바닥에 손을 짚고 넘어지면서 무릎이 까졌고, 그만 그러고 있었으면 좋았으련만 농부의 고집으로 오른손을 뻗어 대변소 문짝을 붙잡았다. 알몸으로 버둥거리며 용을 쓰고 일어서느라 다시 미끄러졌고 그때 오른쪽 어깨를 저미는 시큰한 통증을 느꼈다. 그러나 장소가 장소일뿐더러 서둘러 목욕을 마쳐야 하는 처지라 기어이 바가지를 집어 들고 털보 곁으로 돌아왔다.
 
“괜찮다. 무릎이 좀 까졌네.”
 
그러면서 털보의 등에 물을 끼얹고 그가 머리를 감을 수 있도록 세숫대야에 물을 퍼 담았다.
 
“여기 수건에 비누칠해뒀다.”
 
털보가 머리를 감는 동안 빈대코는 수건 두 장에 비누칠을 했고 자신의 몸에 물을 끼얹었다. 피가 비치며 욱신거리는 무르팍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머리를 감고 일어선 털보가 물었다.
 
“야, 친구야. 어때? 많이 다치지 않았나?”
 
괜찮다는 손짓을 하면서 빈대코는 비누칠한 대머리를 세숫대야를 향해 숙였다. 그런 빈대코 등에 비누칠을 시작한 털보는 등만이 아니라 허리와 엉덩이를 거쳐 허벅지와 종아리까지 비누칠을 해줬다. 그런 뒤 물을 끼얹어주는 털보를 빈대코가 말렸다.
 
“됐다, 됐다.”
 
이제는 자신의 몸에 물을 끼얹으며 털보가 말했다.
 
“오늘은 사람이 없다.”
 
“어제 비가 와서 그래.”
 
“천천히 해도 되겠다.”
 
“아니야, 금방 소지반대 애들이 들어온다. 그놈들 설거지할 땐 오줌도 못 누게 하잖아. 얼른 끝내자.”
 
“다 됐다.”
 
인성교육장 수강 이후 공장으로 돌아왔다가 퇴근한 뒤에도 별 이상이 없었다. 까진 무릎에는 후시딘 연고를 바르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나 빈대코는 목을 타고 정수리까지 치뻗는 오른쪽 어깨의 통증으로 한밤에 깨어났다. 불불거리는 선풍기 소리 아래 잠든 10방 수용수들의 형태를 희미한 보안등 불빛이 드러내 보여주고 있었다.
 
오른쪽 어깨를 감싸 안은 빈대코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물을 마시고 오줌을 눌 생각이었다. 그러나 한 걸음 내딛는 순간 이불귀를 밟은 발이 미끄러지며 스테인리스 철제 싱크대 모서리에 입술을 박았다. 눈에서 번쩍 불이 일었으나 기어이 참고 몸을 바로 세웠다. 물을 마시려던 생각은 잊어버렸다.
 
얼얼한 입술을 매만지며 살금살금 화장실 문을 열었다. 그러나 그 순간 빈대코는 세숫대야에 담아둔 오렌지주스 페트병을 밟았다. 두 손으로 변기 물통을 잡아 몸은 겨우 지탱했지만 화장실 바닥 타일 틈서리에 낀 오른발 엄지발톱은 어찌할 수 없었다. 인대를 다친 오른쪽 어깨와 찰과상 입은 오른쪽 무릎 탓이기도 했지만 페트병을 밟고 미끄러진 왼발 때문에 오른발의 동작이 정상적이지 못했다.
 
신음도 내지 못했다. 한밤에 화장실을 이용할 때 지켜야 하는 혼거실 규칙에 따라 오줌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빈대코는 바지를 내리고 변기에 올라앉았다. 오줌이 마렵지도 않았고 오줌이 나올 리도 없는 그 절박한 순간 빈대코의 머릿속으로 갑자기 이상한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자신의 인생이 도저히 헤어 나올 수 없는 깊디깊은 수렁으로 빠른 속도로 빨려들고 있다는 생각이었다. 손끝으로 더듬어보았으나 입술은 멀쩡했다. 하지만 눈알이 빠질 듯한 치통이 몰려왔고 흔들어보지 않았지만 싱크대 모서리와 박치기한 윗니의 상태는 짐작할 만했다. 이어진 통증은 발가락 끝에서 명치를 타고 치밀어 오르는 가혹한 그 어떤 느낌이었다.
 
사동을 훑고 지나가는 서치라이트 불빛 속으로 오른발을 들어 올렸다. 뒤집어진 엄지발톱은 발가락 끝에 직각으로 매달려 있었다. 그 아래 속살이 희게 드러나 보이고 그 속살 주변으로 피가 번지고 있었다. 덜렁 들린 엄지발톱을 내려다보면서 빈대코는 자신의 고향 산속에 산다는 식냉이를 생각했다. 산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던 나그네가 물을 찾으면 물 흐르는 소리로 유혹하고, 나물 뜯는 아낙네는 아기 울음소리로 유인해 목숨을 앗아간다는 산귀(山鬼)의 이름이 식냉이였다. 전신을 째고 쥐어짜는 통증을 참느라 천천히 눈물을 흘리며 빈대코는 이제는 이혼한 아내의 얼굴을 떠올렸다.
 
예쁘고 부지런하고 암팡지고 싹싹한 여자였다. 그러나 어느 날부턴가 눈빛이 변하더니 슬슬 거짓말을 하고 그때그때 적당히 둘러대면서 변덕과 투정을 일삼았다. 자신이 불리하면 나는 모른다고 딱 잡아떼거나 터무니없이 화를 내고, 당신 없이도 잘 살아왔다며 이죽거리고, 한나절이고 두 나절이고 입을 봉한 채 궁리한 끝에 줄줄이 늘어놓으며 조목조목 변명을 하고, 그러고도 말이 달리면 돈 탓으로 돌리고, 이러다가 굶어 죽겠다는 엄포를 연발하고, 그러다가 또 어느 날엔 나는 당신뿐이라며 울며 매달리는 귀신 짓을 되풀이했다. 지금 생각해도 그 이유와 진실은 알 수 없었다.
 
물을 마시고 오줌을 누러 일어났지만 갈증도 요의(尿意)도 없었다. 어깨 통증도 없었다. 그러나 치통과 발가락 통증은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뼈를 갈고 신경을 찢어발기는 듯 부단했다. 빈대코는 빙그레 웃고 있었다. 왠가 하면 그때 빈대코 머리에는 이웃사람이며 여러 살 아래 동생이고 베트남 여자가 달아난 뒤 아들과 둘이 살고 있는 정영범의 얼굴이 눈앞에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가 겨우 자신의 과수원과 자신의 아내를 탐내 이런 짓을 저질렀다는 말인가 하는 상상 때문에 빈대코는 불쾌했다. 그러나 불쾌할 뿐이었다. 그 이상의 악감정은 없었다. 그보다 중요한 일은 빈대코 자신의 인생이었다. 아내나 정영범이나 치통이나 발가락 통증이 아니라, 자신의 보잘것없는 인생에 대한 그 어떤 기분 때문에, 빈대코는 양변기에 올라앉은 채 천천히 눈물을 흘렸다. 그 누군지, 사람인지 귀신인지, 한 놈인지 두 놈인지도 모르지만, 여하는 자신의 인생을 나락으로 잡아끄는 그 식냉이 같은 놈을 향해, 흘러내리는 눈물과 흘러내리는 콧물을 번갈아 빨아먹으며 빈대코는 욕을 했다.
 
“야, 이 개쌍놈의 자식아! 세상천지 어디에 뜯어먹을 데가 없어 나한테 붙어 이 지랄을 하나?”
 
통증을 참느라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변기에 걸터앉은 채 빈대코는 욕을 멈추지 않았다.
 
“야, 이 벼룩의 간을 빼 먹을 놈아!”
 
그런 야비하고 인색한 놈에 대한 욕이 적지 않았다.
 
“야, 이 애들 보지에 붙은 밥풀을 떼먹을 놈아!”
 
이혼한 아내도 아니고 정영범도 아니고 식냉이도 아니고, 어쩌면 자신의 인생에 빨대를 꼽은 이 세상에 대한 처절한 욕이라고 빈대코는 생각했다.
 
“야, 이 비렁뱅이 똥구멍에 박힌 콩나물도 뽑아먹을 놈아! 야, 이 문둥이 콧구멍에 박힌 마늘까지 빼먹을 놈아!”
 
욕을 마친 빈대코는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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