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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대 장편소설]힘내라 돼지(28)...비

발행일시 : 2018-09-12 00:20
[심상대 장편소설]힘내라 돼지(28)...비

28. 비
 
인성교육을 마치고 공장으로 돌아가려고 복도로 나섰을 때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한 달 동안의 폭염을 뚫고 쏟아지는 거칠고 굵은 장대비는 미처 여미지 못한 창을 통해 복도로 들이쳐 털보와 빈대코의 얼굴에 튀었다. 그리고 그들이 도착한 공장에서는 맑고 경쾌한 여가수의 노래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내 맘의 설움이 알알이 맺힐 때…… 아침 동산에 올라 작은 미소를 배운다…….”
 
오랜만의 비는 수용자들을 숙연하게 했다. 더위에 시달리면서 그렇게 기다렸건만 막상 비가 쏟아지자 누구도 함부로 입을 열지 않았다. 그만큼 기다리던 비였고 그만큼 거친 비였고 그래서 모두 서러운 기분에 빠져들었다.
 
“깔은?”
 
총무가 탁 사장에게 물었다. ‘깔’은 교도소에서 통용되는 ‘칼’의 은어다. 어떤 경우든 칼이나 송곳과 같이 흉기가 될 수 있는 도구의 소지를 금지하건만 칼이 없는 방은 없었다. 건전지로 작동하는 전동면도기를 분해하면 수염 올이 들어갈 만큼 좁은 구멍이 촘촘히 뚫린 스테인리스 강철판 부속물이 나온다. 이 강철판을 납작하게 편 뒤 한쪽 면을 시멘트 바닥에 갈아 날을 만들고, 그 반대편은 화장지로 감싼 뒤 접착테이프로 감아 손잡이를 만들면 ‘깔’이 된다. 교도관과 CRPT 요원이 수시로 점검하지만 어떤 수단을 쓰더라도 감추어 보관하는 이유는 칼이 그만큼 요긴한 도구기 때문이다.
 
“여기!”
 
탁 사장은 천장에 매달린 수복 하의 밑단에 테이프로 붙여둔 칼을 꺼내 총무한테 건네줬다. 어제까지는 식기보관함 맨 뒤에 놓인 빈 플라스틱 고추장 통 밑바닥에 붙어 있었으나, 식중독을 염려한 교도소에서 배식 이외 수용자가 따로 보관하는 반찬을 일시 점검하는 바람에 오늘 오전 그리로 옮겨둔 것이다.
 
일과를 끝내고 퇴근 시간을 기다리는 널널한 시간에 총무는 반소매 티셔츠를 민소매 티셔츠로 만들기로 했다. 쇼군이 만들어 입은 민소매 티셔츠처럼 티셔츠 소매를 뜯어내기 위해 자신의 반소매 티셔츠 본체와 소매를 봉합한 어깨솔기를 칼로 자르기 시작했다. 그 곁에 앉은 레옹은 에밀 졸라의 『제르미날』을 읽고 쇼군은 2리터짜리 생수 여섯 개들이 두 팩을 아령처럼 양 손에 나누어 들고 조용조용 삼각근을 단련하는 중이었다.
 
“너의 침묵에 메마른 나의 입술 …… 차가운 네 눈길에 얼어붙은 내 발자국…….”
 
높은 천장 구석에 매달린 스피커에서 울려 퍼지는 노래는 같은 여가수의 다른 노래였다. 그 노랫소리가 무색하게 유리창을 두들기는 빗소리는 요란하고 엄숙했다. 공장 건물 벽면과 대운동장 바닥을 후려치는 장대비 소리는 서로 화음을 이루며 화급하고 짓궂은 저만의 음향으로 공장 안을 휘저었다. 퇴근을 기다리며 각자 작업대 앞에 망연히 앉아 쉬고 있는 수용수들은 그러나 이상할 만치 조용했다.
 
조 사장이 만기방으로 옮기고 하루가 지나도록 10방에는 새로운 전방수가 없었다. 내일이 주말이라 월요일까지는 여섯이 지내나 했으나 그렇지 않았다. 퇴근해보니 전방 온 수용수가 홀로 창가에 서서 창밖에서 벌어지는 폭우의 난동을 감상하고 있었다. 그 늙은 신입 수용수는 향정신성의약품 관리법 위반사범, 즉 마약사범을 특징하는 파란색 명찰을 달고 있었다.
 
저녁배식과 설거지가 끝나고 마련된 입방식을 통해 신입 수용수 오 사장은 버섯재배 직업훈련을 갔다가 징역이 깨지는 바람에 본소(本所)인 이곳으로 돌아왔다고 자신의 근황을 말했다. 얼굴 가득 주름살투성이에 거미원숭이 같은 그는 일흔한 살 먹도록 감옥을 들락거린 마약중독자였다. 교도소가 아니라면 어디서고 적응하기 어렵겠다는 느낌이 10방 혼거수 여섯이 받은 그에 대한 첫인상이었다. 오 사장은 검은 피부에 왜소한 체구였는데 왼쪽 어깻죽지부터 팔뚝까지 이어진 흑장미 넝쿨 문신은 묘한 매력을 풍겼다.
 
‘징역 깨진다’는 말 또한 수용자들 간의 은어로 좋지 못한 사건으로 인해 정상적으로 진행되던 수감생활이 궤도를 이탈했다는 뜻이다. 가석방 대상자라면 가석방이 취소되고 수감태도와 교도소 배정을 결정하는 급수 또한 강등되게 마련이지만, 이 늙은 마약사범은 죄명으로 보나 누범경력으로 보나 가석방하곤 인연이 멀었고 사건이 경미했던지 급수 강등도 없었다. 미징역방에 두 달 앉아 있다 하도 더워 공장으로 나왔다고 자신이 출력 나온 이유를 말했다.
 
“비가 오니 일찍 침구 폅시다.”
 
망치의 명령으로 서둘러 잠자리를 정하고 일찍 누웠다. 화장실 쪽 맨 구석 자리는 망치, 다음이 스님, 만기방으로 간 조 사장이 자던 그다음 자리에 신입 오 사장이 눕고, 그다음이 빈대코 그리고 출입문 쪽 벽면까지 종수와 탁 사장과 최 사장의 잠자리가 이어졌다. 빗소리가 심하니 텔레비전 감상하기도 여의치 않아 모두 잠자리에 누워 창밖에서 야단을 떠는 빗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 간장병은 뭐요?”
 
좀 전 저녁밥을 먹으며 자기 혼자 밥을 비벼 먹고선 자신의 사물함에 넣어두던 오 사장의 간장병에 대해 스님이 물었고 곧 오 사장이 대답했다.
 
“신앙촌 간장이오.”
 
“그걸 왜?”
 
빈대코는 왼쪽 곁에 누운 오 사장과 스님의 대화를 엿듣고 있었다. 잠시 말이 없던 오 사장이 이윽고 더듬더듬 하는 말을 들으니 자신은 다른 사람과 다른 똥을 싸기 위해 늘 그 간장으로 밥을 먹는다고 했다. 어깨를 마주하고 누운 스님과 오 사장의 목소리는 빗소리와 텔레비전 소리에 섞여 바싹 귀를 기울여야 할 정도였다.
 
“왜? 사장님은 자기 똥냄새가 싫소?”
 
“내 똥은 내 똥냄새가 나야죠.”
 
“그게 무슨 소리요?”
 
“똥을 싸고 내 똥냄새가 다른 사람 똥냄새하고 같으면 기분이 나빠…… 서럽고 슬픈 기분이 듭니다.”
 
“그래요?”
 
스님은 이상한 똥냄새 얘기의 핵심인 오 사장의 결벽증을 이해하기 어려워했다.
 
“오 사장님이나 그렇지 여기 징역살이하면서 모두 같은 밥 먹고 같은 반찬 먹으니 똥냄새도 다 같은데 그 냄새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나는 내 똥냄새 나는 똥을 싸고 싶어 그러니 그만 그런 줄 아시오.”
 
또 잠깐 있다가 스님이 다시 물었다.
 
“언제부터 그랬소? 언제부터 저 간장을 드셨어요?”
 
“들어올 때마다 그러는데 역사는 아주 오래됐어요. 첨부터 그랬어요. 내가 열여덟 살 때부터.”
 
“오 사장님은 어디 오 씨요?”
 
“고아원이 고향이니 어디 오 씨고 뭐고 알 수가 없소.”
 
“죽 거기서 컸어요?”
 
“네.”
 
또 잠깐 멈췄다가 텔레비전 소리가 잦아들었을 때 스님이 다시 물었다.
 
“그 간장은 어디서 구해요? 요즘 여기서 구매하는 간장이 아닌데.”
 
“구매 들어오는 사람한테 부탁하면 구하는 수가 있어요.”
 
스님은 이번에는 혼잣말을 했다.
 
“대단하시오, 대단해…….”
 
그러더니 다시 물었다.
 
“이 어깨에 이 문신은 언제 했소?”
 
“한 사십 년 됐어요.”
 
잠깐 있더니 자랑이라기보다는 감회에 젖은 목소리로 오 사장이 말했다.
 
“같은 방에 있던 젊은 사람이 해줬는데 대학에서 그림을 공부했다고 하면서 아주 공들여 해줬어요. 그런데 빨간 물감을 구하지 못해 이파리는 파랗게 하고 꽃은 까만색으로 했어요. 오래됐죠.”
 
“보기 좋습니다. 아주 실력 좋은 솜씨요.”
 
“네, 다들 그럽디다.”
 
“빨간 장미보다는 흑장미가 좋아요. 분위기가 있어요.”
 
빈대코는 망치가 아주 가지라고 준 피죤 베개를 베고 있었다. 시원하고 말랑말랑한 피죤 베개의 촉감에 기분이 좋았고, 세상을 너덜너덜하게 적시며 쏟아지는 장대비소리만이 아니라 스님과 오 사장의 두런거리는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니 어쩐지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온몸을 사로잡고 있는 맥을 다 풀어놓으며 스르르 잠속으로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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