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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대 장편소설]힘내라 돼지(27)...작별인사

발행일시 : 2018-09-11 00:00
[심상대 장편소설]힘내라 돼지(27)...작별인사

27. 작별인사
 
빵잡이들은 감옥은 나가는 맛으로 들어온다고 한다. 징역살이를 취미로 하는 사람이 있을 리 없으니 들어가기는 당연히 고통스러운 일이고 출소할 날을 하루하루 손꼽아 기다리는 세월 또한 참담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만치 그 끝을 장식하고 있는 석방은 그만큼 감격스러운 일이다.
 
이번이 세 번째 징역살이로 상습사기범인 조 사장은 2년 형을 마치고 만기출소를 나흘 앞두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자신을 정리하려는 본인을 위해서도 그렇고, 그러한 동료를 곁에 두고 보기 힘든 다른 수용자를 위해서도 이런 만기출소자는 출소 사나흘 전에 만기방으로 개별 수용한다. 내일 아침 만기방으로 옮기는 조 사장을 위해 10방 수용자들이 작별식을 마련한 시간은 저녁 설거지가 끝난 뒤였다.
 
“조 사장, 이번에 아주 고생 많았어. 나가서 사업 잘 하시고 건강해요.”
 
익숙하게 인사를 마친 방장 망치가 나머지 다섯을 둘러보며 인사를 권했다.
 
“한마디씩 해요. 저기부터.”
 
조 사장의 손을 잡고 건강하라고 당부하는 탁 사장과, 간단하게 잘 가시라는 말만 하는 종수와, 나도 곧 따라갈 테니 자리 잘 잡아놓고 기다리라는 최 사장의 인사가 끝나자 스님 차례였다.
 
“조 사장,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이오. 우리 몇 달 됐나? 대여섯 달 됐지?”
 
조 사장은 봉제에 있다가 일이 힘들다고 제1위탁으로 옮겨 10방에서 지낸 지 세 달이 지나지 않았다. 워낙 말수가 적다 보니 언제부터 같이 살았는지 스님 기억으로는 그보다 오래라 여긴 모양이었다. 망치가 세 달밖에 지나지 않았다고 지적하자 스님이 그 말을 받았다.
 
“그것밖에 안 됐어? 난 더 오랜 줄 알았는데…… 여하튼 그동안 내가 쭉 지켜보니 조 사장은 매사 꼼꼼하고 철두철미해 나무랄 데가 없어. 그러니 이번이 마지막이라 여기고 다시는 여기 들어오지 않도록 해. 애도 벌써 고등학생이잖아. 애 엄마도 그동안 얼마나 맘고생 심했겠어. 이제는 호강 좀 시켜드려야지. 자아…… 조 사장, 인연이 있으면 세상 어디서고 다시 한 번 보기로 하고…… 잘 가시오.”
 
미련해 보이고 머리 나빠 보이지만 조 사장은 경륜 있는 사기꾼이었다. 웬만한 사람은 아무리 지적도(地籍圖) 뒤지고 도시계획을 캐 봐도 실상을 알아내기 힘든 애매한 토지로 사기를 치는 전문가의 일원으로, 그중에서도 봉을 낚아 배를 째는 선수 중의 선수였다. 어떤 놈이든 일단 통장으로 입금하기만 하면 그때부터는 돌부처처럼 버티며 상대의 진을 뺐다. 이런 전형적 사기꾼에게 걸려들면 그 누구라도 돈을 돌려받을 방법이 없다. 왠가 하면 선수들은 이미 자기 형량을 계산하고 징역살이 들어갈 준비를 할뿐더러 징역살이 자체를 사업상의 과정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스님의 평가대로 싹싹하고 눈치 빠르고 말수 적은 조 사장이 바로 그런 프로선순데, 물론 그에게도 부처님의 품성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 마지막으로 빈대코가 작별인사를 했다.
 
“고맙습니다.”
 
이혼법정 다녀온 이후 힘들어하는 빈대코를 대신해 빈대코 차례의 설거지를 도맡아 한 동료가 조 사장이었다. 그러니 빈대코의 인사는 실존에서 우러나온 진정한 감사의 인사였다. 그때까지 무릎에 얹은 팔을 늘어뜨려 초코 비스킷과 말랑 쿠키 두 개를 손으로 뒤적이던 조 사장에게 망치가 지시했다.
 
“조 사장도 한마디 해야지.”
 
좋아서 그러는지 나쁜데도 그러는지 조 사장은 늘 하던 대로 실실 웃고 있었다. 그런 사람 좋은 얼굴을 들어 과자와 종이컵이 놓인 신문지 둘레에 러닝셔츠 바람으로 앉아 있는 혼거수 여섯을 향해 딱 한마디로 작별인사를 끝냈다.
 
“잘 살다 갑니다.”
 
사기 3범다운 내공으로 그렇게 작별인사를 마친 조 사장은 잠자리에 들어서도 더 이상 말이 없었다. 다음 날 아침밥을 먹자마자 데리러온 교도관과 사동봉사원을 앞세운 조 사장은 칫솔과 치약만 챙겨든 채 머리만 꾸벅하는 인사를 끝으로 10방에서 떠나갔다. 조 사장의 처신이야말로 입신의 경지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4년을 살면서 수없이 많은 출소자를 겪어봤지만 조 사장이 뽄때다, 뽄때!”
 
스님의 칭송에 종수도 층을 지어 떡을 쌓았다.
 
“나도 저렇게 표표히 떠나야겠어요.”
 
그러나 무기수 망치는 히죽이 웃고 징역살이에 이골이 난 탁 사장은 종수를 향해 악의 없는 욕을 했다.
 
“도둑놈 새끼, 표표히 떠나라 표표히 떠나…….”
 
여하튼 조 사장은 다른 싱거운 놈들처럼 제가 가진 물품으로 방을 난장판으로 만들지 않았다. 초범 단기수나 속 좁은 놈들은 출소 직전 자신이 가지고 있는 내의와 양말, 시계와 전동면도기, 먹다 남은 영양보조제와 우표와 편지지 따위 물품을 이놈저놈한테 나누어주느라 야단법석을 떨었다. 조 사장은 그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사물함에 남겨둔 채 이번 사업의 성공적 마무리와 징역살이의 미학을 여실히 증명해 보이며 만기방으로 떠나갔다.
 
그런데 그날 점심시간에는 예기치 않은 작별이 하나 더 있었다. 주인공은 의료보험법 위반으로 8개월 형을 살고 있는 박보장기의 고수 이 사장으로, 영문도 모르고 불려간 사무실에서 포기하고 있던 가석방 결정을 뒤늦게 통보받았다. 얼뜬 표정으로 사무실에서 나온 이 사장은 우선 쇼군 앞으로 달려갔다.
 
“조장님, 가석방이라네요.”
 
매월 십일을 전후해 교도소 전체에서 일고여덟 명이 지방교정청 가석방 심사를 받고 그 대부분이 교정본부 심사를 통해 월말이면 가석방으로 출소한다. 그러자면 중순경 통보를 받고 이틀 동안 만기출소자와 함께 출소교육을 받는데 이 사장은 그 과정을 건너뛰었다. 이번 가석방 대상자가 적어 교정본부에서 급히 한두 명씩 더 심사신청 하라고 지방교정청으로 하달한 결과였다.
 
“낼 당장 나가시겠네요?”
 
그동안 늘 반말로 대하던 쇼군이 이제는 세상으로 나가게 된 이 사장에게 존댓말로 인사를 했다.
 
“네에, 그런답니다.”
 
과묵하기만 하던 이 사장은 감격에 겨운 눈빛으로 자신이 결코 과묵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했다.
 
“낼 오전에 여기서 그냥 나간다네요.”
 
곁에 서 있던 총무가 잽싸게 날짜 계산을 했다.
 
“그러니 한 달하고 며칠을 먹었네요?”
 
“한 달 이틀이지.”
 
“그게 어디예요. 생각지도 않은 걸 날로 먹었는데.”
 
털보와 빈대코는 인성교육 받으러 떠나고 오후 작업이 시작되자 쇼군은 이 사장을 작업에서 제외했다. 쇼핑봉투 만드는 일이 내일 집에 가는 사람까지 동원해야 할 만한 국가 대사도 아닐뿐더러 벌렁벌렁 흥분한 사람을 기계 앞에 앉혔다가 무슨 사고라도 날까 염려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사장은 쇼군과 함께 기계조 식탁에 앉아 두 달 남짓 생활한 공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커피를 권하면서 쇼군이 이 사장에게 덕담을 했다.
 
“어딜 보나 이 사장님은 여기 오고 싶어도 올 이유가 없는 사람인데 말이오. 이번에는 재수 없어 어쩌다 들어왔다 치고, 앞으론 절대 여기 다시 올 일 없도록 해요.”
 
“네네, 저야 뭐.”
 
그러면서 둘은 다정하게 커피를 마셨다. 총무와 레옹이 두 대의 타공기 앞에 앉았고 탁 사장은 작업 전 쇼핑봉투와 작업 후 쇼핑봉투를 이리저리 정리하고 있었다. 회한에 찬 눈빛으로 한참 동안 그 풍경을 바라보던 이 사장이 간곡한 작별인사를 했다.
 
“조장님, 몇 달 지내보니 징역살이 이거 진짜 사람이 할 짓이 아닙니다. 조장님도 얼른 나가셔야 하는데…….”
 
“저는 앞으로 한 10년 내다봅니다. 옛날에는 무짜들도 20년쯤 잘 살면 내보내줬는데 요즘에는 그렇지 않아요. 25년짜리 30년짜리가 있으니 아무리 잘 살아도 무짜를 그놈들보다 적게 살릴 순 없지 않겠소. 나는 10년 더 있으면 25년이 되는데 그때쯤엔 뭔 소리가 있겠지.”
 
‘무짜’는 무기수를 가리키는 빵잡이들의 은어다. 그렇게 자신의 신세를 말하는 너그러운 쇼군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이 사장은 그동안 가슴속에 담아두고 있던 얄궂은 이야기 한 토막을 털어놓았다.
 
“이전에 텔레비전을 보니 감옥 갔다 나온 전(前) 대통령이 집 앞 골목에 서서 그러더라고요. 국민 여러분은 절대 감옥 가지 마시오. 거기 사람 갈 데가 아닙니다. 그러기에 그때는 저 양반이 무슨 저런 소릴 하시나 했는데, 내가 들어와 살아보니 그 분 말이 맞아요. 여기 정말 사람 살 데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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