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장편소설 ‘무정’이 출간된 지 100주년이 되는 해다. 일진회 유학생으로 선발된 춘원은 을사늑약이 있던 해 여름부터 경술국치가 있던 해 봄까지 5년 동안 메이지 시대의 일본에서 신문물을 학습하고 돌아와 매일신보에 그 소설을 연재했다. 1917년 스물다섯의 춘원이 민족적 열등감을 바탕으로 우리 문학사의 중요한 이정표가 된 계몽소설을 쓴 것이다. 이듬해, 중국의 루쉰은 문학혁명을 계기로 ‘광인일기’라는 최초의 근대소설을 발표했는데, 그 역시도 국비 장학생으로 7년 동안 일본 유학을 다녀온 공통점이 있었다.

1905년, 춘원이 일본에 처음 도착했을 때, 이미 존재했던 장르처럼 자연스럽게 발표된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는 일본 최초의 근대소설이다. 런던 유학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서른여덟 살의 나쓰메 소세키는 도쿄 유학 3년차인 스물네 살 루쉰과 고작 열세 살인 조선의 촌뜨기 춘원에게 하늘같은 존재였다. 일본 자본주의가 시작되던 1867년에 태어난 나쓰메 소세키는 밥벌이로 영어교사를 하면서도 문학에 전념하고 싶은 꿈을 버리지 않았고, 문부성 제1회 국비 유학생으로 선발되어 30대 중반을 영국 런던에서 보낸 엘리트 중에 엘리트였다.

“이렇게 더워서야 아무리 고양이라도 견딜 재간이 없다. 영국에 시드니 스미스라는 사람이 껍질을 벗기고 살을 벗겨내고 뼈만으로 시원한 바람을 쐬고 싶다며 괴로워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설사 뼈만 남기지 않아도 좋으니 적어도 이 옅은 회색의 얼룩 털옷만이라도 잠시 벗어 빨아 말리든 아니면 당분간 전당포에라도 맡기고 싶은 심정이다. (중략) 가끔은 목욕이라도 한번 하고 싶지 않은 것도 아니지만, 어쨌든 이 털옷을 입은 채 목욕을 한 날에는 말리는 게 쉽지 않으니 땀 냄새를 참으며 이날이 될 때까지 목욕탕 문턱을 넘은 적이 없다. 때로는 부채라도 사용하고 싶은 마음이 일지 않은 건 아니나 쥘 수가 없으니 하여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 나쓰메 소세키 소설전집 제1권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275쪽, 송태욱 역

서울의 열대야 폭염 속에서 113년 전 도쿄의 더위를 푸념하는 고양이 한 마리의 독백을 읽는 기분은 유쾌했다. 찰스 디킨스의 나라에서 많은 것을 보고 느끼며 보다 넓은 세계관으로 일생의 저술계획을 세우고 돌아온 나쓰메 소세키의 훌륭한 데뷔작에 감탄했다. 우연히 집에 들어와 살게 된 어린 고양이를 귀여워하는 아내와 딸들을 지켜보며 상상력이 발동한 작품이다. 스스로 충분히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고양이가 인간들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며 뱉어내는 고백들이 즐겁다. 만성 위장병과 극도의 신경쇠약에 시달리는 자신의 모습을 등장시킨 풍자미가 있다.

역사성을 배제한 문학성만으로도 21세기에 충분히 경쟁력을 갖는 것도 놀랍다. 이 작품에 영향을 받은 초창기 동양의 근대소설들이 이제는 거의 읽히지 않는 것과도 비교된다. 독자들의 성원에 힘입어 속편을 쓰다 보니 총 3권 11부의 장편소설로 완성되었다. 상권이 35판을 찍어 생전에 가장 많이 팔린 책으로 기록되었고, 중권과 하권은 덜 팔렸다. 35판이라지만 초판이 2,000부, 이후로는 보통 1,000부를 찍었는데 부를 축적할 만큼은 아녔다. 베스트셀러 작가였으나 아내와 함께 여섯 자녀를 키우기에는 비좁고 허름한 셋집에서 결코 넉넉하지 못한 삶을 살았다.

작가 사후 100주년을 기념해 출간한 현암사의 <나쓰메 소세키 소설전집>은 생의 마지막 10년 동안 발표한 장편소설 열네 권을 시대 순으로 담았다. 나쓰메 소세키를 잘 모르는 사람에게 단 한 권만 추천해야 한다면 망설임 없이 ‘② 도련님’을 선택할 것이다. 부담 없이 얇고 즐거운 작품이다.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앞뒤 가리지 않는 성격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나는 손해만 봐왔다.’는 고백의 문장은 억울한 해학의 서막이다. 가족으로부터 사랑받지 못한 말썽꾸러기 소년이 슬픔에 순응하면서도, 세상에 맞서 정직하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성장소설이다.

몰락한 집안의 외톨이 청년을 향한 늙은 하녀 기요의 무한한 추종과 신뢰는 자존감의 원천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밥벌이를 위해 머나 먼 시골중학교로 떠나는 무일푼 청년은 과연 어떻게 살아갈까? 충청도 사투리로 번역한 말투가 정겨운 시코쿠는 작가가 스물여덟에 정식 교사로 처음 부임했던 곳이다. 고교 동창이자 요절한 하이쿠 시인 ‘마사오카 시키’의 고향도, 자신을 소설가로 이끈 ‘다카하마 교시’를 처음 만난 곳도 바로 그곳이다. 시골인심이라고 마냥 따뜻하지도 않다. 부당함에 맞설수록 궁지에 몰리는 초보 교사의 일상이 시트콤처럼 즐거운 소설이다.

“산길을 오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이지(理智)만을 따지면 타인과 충돌한다. 타인에게만 마음을 쓰면 자신의 발목이 잡힌다. 자신의 의지만 주장하면 옹색해진다. 여하튼 인간 세상은 살기 힘들다. 살기 힘든 것이 심해지면 살기 편한 곳으로 옮겨 가고 싶어진다. 어디로 옮겨 가도 살기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시가 태어나고 그림이 생겨난다. 인간 세상을 만든 것은 신도 아니고 귀신도 아니다. 역시 가까운 이웃들과 오가는 보통 사람들이다. 보통 사람들이 만든 인간 세상이 살기 힘들다고 해서 옮겨 갈 나라는 없을 것이다. 있다면 사람도 아닌 사람의 나라일 뿐이다. 사람도 아닌 사람의 나라는 인간 세상보다 더욱 살기 힘들 것이다. 옮겨 갈 수도 없는 세상이 살기 힘들 다면, 살기 힘든 곳을 어느 정도 편하게 만들어 짧은 순간만이라도 짧은 목숨이 살기 좋게 해야 한다. 이에 시인이라는 천직이 생기고, 화가라는 사명이 주어지는 것이다. 예술을 하는 모든 이는 인간 세상을 느긋하게 하고 사람의 마음을 풍요롭게 하는 까닭에 소중하다.”
- 나쓰메 소세키 소설전집 제3권 <풀베개> 도입부, 송태욱 역

스물아홉에 결혼한 나쓰메 소세키는 구마모토에서 고등학교 교사로 활동했다. 그해 여름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임신한 아내는 남편의 부임지와 도쿄를 오가는 장거리 여행의 스트레스로 유산했다. 안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구마모토의 아름다운 풍광과 온천 여행의 경험은 10년 뒤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색다른 장르의 하이쿠적 장편소설 ‘③ 풀베개’를 창조하는 바탕이 되었다. 인간정신의 3대 요소인 ‘지정의(知情意)를 언급한 첫머리부터 독자를 사로잡는 아름답고 동양미 넘치는 소세키 문학의 전환기적 작품이다.

전집의 열두 권은 송태욱 선생이 번역을 했는데, ‘④ 태풍’은 2011년 지병으로 타계한 노재명 선생이 번역했다. 도야, šœ타이, 슈사쿠의 삶이 교차하는 이야기로 방황하는 세 젊은이의 관점을 바꿔가며 읽다보면 묘한 차이를 만들어내는 명작이다. 노재명 선생이 번역한 다른 한 권은 ‘⑧ 그 후’로 불륜과 관능의 살얼음판을 걷는 파국 같은 희망의 역작이다. 역자가 사라진 충격은 고스란히 편집자의 몫이고, 유능한 편집자는 이러한 문제를 드러나지 않게 해결한다. 일관성 있는 시리즈에 감탄하며 누군지 알 수 없는 편집자에게 특별히 감사하는 마음으로 읽었다.

다이스케가 자신이 무슨 목적으로 이 세상에 태어났는지 심각하게 생각해 보는 것은 바로 그런 순간이었다. (중략) 그의 방은 평범한 일본식이었다. 이렇다 할 대단한 장식도 없었다. 그의 말을 빌리면 액자조차 마음에 드는 것은 걸지 않았다. 눈에 띄게 아름다운 색체가 있다면 책꽂이에 꽂혀 있는 서양 책 정도에 불과했다. 그는 지금 그 서양 책 사이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잠시 후 멍한 자신의 의식에 힘을 불어 넣으려면 주위 사물들에서 어떻게든 변화를 끌어내야겠다고 생각하며 방 안을 이곳저곳 둘러보았다. 그러고는 다시 멍하니 벽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마침내 이런 초라한 생활로부터 자신을 구해낼 방법은 오직 하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 다음 입속으로 중얼거렸다. “역시 미치요를 만나야겠군.”
- 나쓰메 소세키 소설전집 제8권 <그 후> 176쪽, 노재명 역

하이쿠 잡지 ‘호토토기스’ 등을 통해 활동해 오던 불혹의 나쓰메 소세키는 안정적인 대학 교수직도 사양하고, 요미우리신문사의 스카웃 제의도 거절한 뒤, 아사히신문사의 전속 작가로 모험을 시작한다. ‘한 사람의 일생에는 백 가지 세계가 존재한다. 소설은 자연을 조탁한다. 자연 자체는 소설이 되지 않는다.’는 신경쇠약과 위장병으로 고생하던 작가의 기록이 복잡한 잔상으로 남은 ‘⑤ 우미인초’는 최초의 신문연재 소설이다. 연재하는 동안 백화점에서 작품과 관련된 다양한 기념품이 판매될 만큼 인기가 대단했다. 월급쟁이 작가로 변화에 성공한 것이다.

사연 많은 양다리 청년의 가출과 방황을 담은 ‘⑥ 갱부’를 읽다가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반세기 뒤에 발표한 소설의 주인공을 상상했다. 비단 그 작품이 아니라도 서양의 모방을 통해 시작된 그의 작품 활동이 동양적인 소재와 문장력의 힘을 발휘하면서 어쩌면 서양의 문학에도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당연한 상상력이다. 신여성 미네코를 숭배하고 짝사랑하던 시골청년의 이야기를 담은 ‘⑦ 산시로’에서 실패한 사랑이 청춘의 희망으로 업그레이드되는 순간은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 떠오르기도 했다.

“소스케는 오륙일 전 이토 히로부미가 암살당했다는 호외를 봤을 때 오요네가 일하고 있는 부엌으로 가서 “이봐, 큰일 났어. 이토씨가 암살을 당했어”하고 말하고는 손에든 호외를 오요네의 앞치마 위에 올려놓고 곧바로 서재로 들어갔는데, 말투는 오히려 차분했다. (중략) ”아무튼 만주든 하얼빈이든 뒤숭숭한 곳이네요. 전 어쩐지 아주 위험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 나쓰메 소세키 소설전집 제9권 <문> 35~37쪽, 송태욱 역

메이지 42년, 42세의 나쓰메 소세키가 42일 동안 조선과 만주 여행을 다녀온 직후에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했다. ‘⑨ 문(門)’에 그 사건에 대한 언급이 인상적이다. 세상사로부터 따로 떨어져 조용히 금실 좋게 살고 있는 소스케 부부의 소소한 일상에서 행복의 문을 상상했으나 예기치 못한 만남으로 괴로움에 빨려 드는 지옥문 같은 이야기다. 등장하는 하녀 이름 ‘기요’ 때문에 ‘② 도련님’에서 규슈로 떠나 연락이 두절된 형의 뒷얘기라 상상하며 읽었는데, 평론가들은 ‘⑦ 산시로’, ‘⑧ 그 후’와 하나로 묶어 ‘전기3부작’이라 평가했다.

‘내 머리는 내 가슴을 억제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문장이 인상적인 ‘⑩ 춘분이 지나고까지’와 형수의 정숙함을 확인하기 위해 그녀를 유혹해 달라는 친형의 부탁이 충격적인 ‘⑪ 행인’, 우연히 해변에서 만나 선생님으로 모시게 된 한 인격자와 함께한 시간 속에서 죄의식의 원형을 파고드는 ‘⑫ 마음’을 통해 자신에게 엄격하고 타인에게 너그러운 대인의 풍모가 경이롭게 다가왔다. 일본의 셰익스피어라는 찬사에 걸맞게 막장드라마 같은 소재와 인격의 절정을 넘나드는 서술의 교차 속에서 긴장을 늦출 수 없는 불신과 불안과 번뇌의 심리묘사가 예술이다.

“생가의 아버지에게 겐조는 조그마한 방해물에 지나지 않았다. 이 못난 자식이 뭐 하러 난데없이 나타난 건가, 하는 표정으로 아버지는 그를 거의 자식으로 대우하지 않았다. 그때까지와는 완전히 달라진 아버지의 태도에 생부에 대한 겐조의 애정은 뿌리째 말라버렸다. 그는 양부모 앞에서 자신에게 내내 싱글벙글 웃던 아버지와 애물단지를 떠맡게 되자마자 무뚝뚝하게 변한 아버지를 비교하고 일단은 크게 놀랐다. 다음에는 정나미가 떨어졌다.”
- 나쓰메 소세키 소설전집 제13권 <한눈팔기> 255쪽, 송태욱 역

몇 가지 다른 제목으로 번역될 수도 있는 ‘⑬ 한눈팔기’는 태어나자마자 양자로 보내졌다가 파양되고, 이듬해 다른 부부에게 또다시 입양되어 4년 뒤에야 호적에 오르지만 7살에 양부모의 불화로, 9살에는 양부의 실직으로 친가로 쫓겨 와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다가 두 형이 연달아 폐결핵으로 사망한 뒤에야 복적된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다. 그 대가로 양아버지에게 각서를 받고 돈 100엔을 지불했던 우울한 기억은 이 소설을 관통하는 핵심 소재다. 가족들에게 시달리고, 아내와 갈등하며 그려지는 허탈한 웃음 속에 낙관적 천재의 일생이 그려진다.

1916년 마흔아홉 살의 나쓰메 소세키는 오전에는 글을 쓰고, 오후에는 한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며 보냈다. 늦가을에 지병인 위궤양으로 쓰러져 입원했다가 내출혈로 혼수상태에 빠진 뒤 일주일 만에 사망했다. 5월부터 아사히신문에 연재했던 ‘⑭ 명암’은 188회로 중단된 미완성 유작으로 남았다. 초겨울에는 ‘⑫ 마음’에서 선생님의 친구 K가 묻힌 장소와 동일한 조시가야 묘원에 안장되었다. 나쓰메 소세키의 초상화가 1984년부터 20년간 1,000엔 권 지폐에 사용된 것만으로도 그의 국가적인 위상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그에게는 처음부터 세 갈래 길이 있었다. 그리고 세 갈래 외에는 길이 없었다. 첫 번째는 언제까지고 미적지근한 태도 대신에 지금의 자유를 잃지 않는 것, 두 번째는 바보가 되어도 상관없다며 나아가는 것, 세 번째 곧 그가 목표로 하는 바는 바보가 되지 않고 자신이 만족할 수 있는 해결책을 얻는 것이다. 이 세 갈래 길 중에서 그는 단지 세 번째만을 목적으로 도쿄를 떠났다. 그런데 기차에 흔들리고 마차에 흔들리고, 차가운 산 공기를 마시고, 김이 나는 욕조에 몸을 담그고, 드디어 목적으로 삼은 사람이 눈앞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래서 내일부터라도 주된 목적의 실행에 착수할 수 있게 되었는데, 그 직전에야 갑자기 첫 번째가 얼굴을 내밀었다. 그러자 두 번째도 어느새 미소를 지으며 그 옆에 섰다. 그것들의 도착은 갑작스러웠다. 하지만 소란스럽지 않았다. 시야를 가로막는 안개가 바람 소리도 내지 않고 휙 걷힌 사이로 그는 자신의 시계(視界)를 착실히 볼 수 있었다.”
- 나쓰메 소세키 소설전집 제14권 <명암> 533쪽, 송태욱 역

가독성 높은 편집과 글맛 좋은 번역, 소장 가치 높은 디자인 모두가 정성스럽게 느껴지는 소설전집을 통해 100여 년 전 열도에 존재했던 천재의 고독을 읽었다. 매 권마다 수록된 서화와 오래된 사진들, 적절한 작품 해설도 풍요로운 책이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들을 통해 평범한 일상 속에서 병약했던 작가의 일상이 엿보인다. 점심 이후 한 시간쯤 낮잠을 자고 가끔 산책을 즐기며 편안한 시간에 글을 썼다는 애연가를 상상한다. 붓과 철심, 연필로 글을 썼고, 마지막 몇 년 동안 만년필을 사랑했던 모습도 선명하게 다가온다.

잊혀진 춘원과 존경받는 루쉰의 시대를 견인했지만 그는 결코 완벽한 인물이 아니었다. 서양의 제국주의를 비판했던 반전평화주의자로 포장되었지만, 정작 일본의 침략전쟁에 관대한 이중성을 ‘만한기행문(満韓ところどころ)’에 남기고 말았다. 식민지 조선과 만주인을 향한 경멸과 조작된 불결함에 관한 동조의 민족차별적 언급으로 스스로 전범국가의 일원임을 증명했다. 죽은 저자는 대답이 없더라도 깨어 있는 독자라면 끊임없이 질문해야 한다. 사려 깊지 못한 푸념은 아쉽지만 넓고 깊은 그의 문학적 큰 걸음 앞에 감히 고개 숙인다. “月が綺麗ですね。”

출판기획자로 ‘더불어민주당’+‘the민주’ 당명을 만들고 제안했다. 컴퓨터그래픽 및 프로그래밍 분야 11권의 저서와 더불어 IT칼럼니스트로 왕성하게 활동했던 엔지니어 출신이며, 한 권의 책에서 텍스트, 필자, 독자 자신을 읽어내는 서삼독의 실천가이다.

온라인뉴스팀 (news@next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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