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9년 12월 어느 날, 상트페테르부르크 광장에 얼굴에 두건을 쓰고 세워져 총살형을 기다리는 스물여덟 청년이 있었다. 병사들이 심장을 겨누고 있는 순간 ‘만약 여기서 살아나갈 수 있다면 남은 인생의 단 한 순간도 허비하지 않겠다.’는 회한에 젖어 있었다. 그때 급하게 광장으로 들어서는 마차가 있었으니, 사형을 중지하고 시베리아 유형에 처하라는 황제 니콜라이1세의 전갈이었다. 옴스크감옥에서 새 삶을 시작한 청년은 팔다리에 무려 5kg에 육박하는 쇠고랑을 차고 성경 강독과 창작 활동으로 혹한을 견딜 수 있었다.

스물다섯에 발표한 처녀작 <가난한 사람들>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풍요롭지 못한 청년이었다. 동시대에 활동한 톨스토이나 투르게네프가 귀족 출신으로 유복했던 것과 달리 불우한 환경에서 출발한 존재였다. 자유와 혁명을 갈망했던 좌익 청년은 8년의 유형생활을 통해 극우보수주의자로 변신했다. 짝사랑했던 미망인을 아내로 맞았으나 7년 만의 사별로 다시 한 번 절망에 빠졌다. 허영심과 열등감 속에 방황하며 도박까지 손을 댄 그는 돈을 벌기 위해 세속적인 글쓰기에 집중했고 돈 문제로 결국 악덕 출판업자에 쫓기는 신세가 된다.

글빚을 갚기 위해 스물다섯 살이나 어린 속기사를 고용해서 대작 <죄와 벌>을 완성시킬 수 있었다. 많은 나이차에도 불구하고 호흡이 잘 맞았던 그녀를 두 번째 아내로 맞아 헌신적인 내조를 받으며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면서 작가로서의 안정이 찾아왔다. 하지만 여전히 도박과 지병인 간질에 시달렸고, 예민하고 신경질적인 삶은 죽을 때까지 지속되었다. 마지막 작품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전체 4부 12편의 대작으로 구성 자체에 종교적 의미가 부여된 치밀한 완성품이었으나 더 하고 싶은 말을 잇지 못한 미완의 걸작이다.

"이반, 하느님은 있는 거냐, 없는 거냐?"
“없습니다. 하느님은 없습니다.”
“알료쉬카, 하느님은 있느냐?”
“하느님은 계십니다.”

“이반, 그럼 불멸은 있는 게냐?”
“불멸도 없습니다.”
“알료쉬카, 불멸이 있니?”
“있습니다. 하느님 속에 불멸도 있습니다.”

“그럼 대체 누가 인간을 우롱하는 거냐, 이반?”
“악마겠지요. 아마도.”
“이반, 그럼 악마는 있느냐?”
“아뇨, 악마도 없습니다.” 1권 274쪽, 제1부 3편 8장 ‘코냑을 마시며’ 3부자의 대화 요약 인용

이것은 19세기 중반 러시아의 한 콩가루 집안에서 벌어진 일이다. 이 도시 수도원의 존경받는 조시마 장로가 카라마조프가의 네 남자를 자신의 암자로 초대하며 화해를 도모하는 이야기다. 아버지 ‘표도르 파블로비치 카라마조프’는 아주 무책임한 쉰다섯의 영감탱이고, 장남 ‘드미트리’는 누가 봐도 막자란 스물여덟 잡놈이었다. 두 번째 부인 소생의 차남 ‘이반’은 상대적으로 공부 좀 하고 똑똑한 스물네 살 청년이고, 막내 ‘알료샤’는 어머니 산소를 찾아 고향으로 돌아온 뒤 출가한 스무 살의 수도사였다. 만남은 관계를 더욱 악화시켰다.

장남은 어머니 덕분에 상속재산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네 살 때 자신을 쫓아낸 아버지로부터 교묘한 방식으로 찔끔찔끔 용돈을 받다가 그 모든 돈을 탈탈 털리고 오히려 빚쟁이 신세로 전락한 상태였다. 게다가 장남은 아버지의 애인 ‘그루셴카’에 푹 빠져들었는데, 이복동생 이반이 자신의 약혼녀 ‘카체리나’에게 침을 흘리기 시작하면서 묘한 사랑의 먹이사슬이 형성되었다. 더구나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출생의 비밀을 간직한 요리사 스메르자코프가 합류하면서 개차반의 불꽃 튀는 막장 드라마가 활활 타오르기 시작한다.

장남은 약혼녀의 돈을 아버지의 정부와 함께 모조리 탕진한 뒤, 아버지 침실에 숨겨진 3,000루블을 훔쳐서 해결하려고 계획한다. 그냥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는 평범한 표현들도 나중에 중요한 단서가 될 만큼 허투루 쓰인 단어가 없는 치밀함이 경이롭다. 아버지는 자신이 유일하게 신뢰하는 침묵의 요리사 스메르쟈코프를 ‘발라암의 당나귀’라 부르며 동갑내기 이반 덕분에 갑자기 말문이 트인 것을 기뻐하는데, 성경에서 비롯된 불행을 연상시키는 복선이다. 장남에게 흠씬 두들겨 맞고 발로 짓밟혀 드러누운 아버지가 막내아들에게 한 고백도 의미심장하다.

“이반이 뭐라고 그러던? 알료샤, 얘야, 나한테 아들이라곤 너뿐이다. 난 이반이 무섭구나, 그놈봐 이반이 더 무서워, 무섭지 않은 건 너 하나뿐이야……” - 제1권 288쪽

알료샤는 큰형의 심부름으로 카체리나를 찾아갔다가 덤으로 그루셴카까지 만나게 된다. 그루셴카는 공금을 횡령한 중령의 비밀을 악용하여 그의 딸을 돈으로 유혹한 ‘드미트리’의 본심에 대해 늘어놓고, 아버지를 위해 그와 약혼하게 된 카체리나의 수치심을 자극한다. 편안하고 사이좋게 대화를 시작한 두 여자가 거칠게 언쟁하는 반전 또한 훗날 재판 과정에서 중요한 단서가 된다. ‘알료샤’는 수도원으로 돌아가던 길에 큰형을 만나 목격한 사실을 모두 털어놓는데, ‘드미트리’는 주체할 수 없는 부끄러움을 느낀다.

드미트리는 그냥 생각나는 대로 지껄이고 행동하며 온갖 의심으로 그루셴카의 옛 애인까지 들쑤시다가 불필요하게 농락당하는 단순하고 거친 인물이다. 옳고 그름을 판단할 능력조차 상실한 다혈질의 장남은 아버지가 그루셴카와 함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품고 질투심에 눈이 멀어 놋쇠공이를 집어 들고 아버지 집으로 쳐들어 가면서 사건은 겉잡을 수 없게 흐른다. 여태 아버지 집에서 함께 지내던 이반은 스메르쟈코프와 모종의 대화를 나눈 뒤 모스크바로 떠난 뒤였고, 스메르쟈코프는 지병인 간질발작으로 쓰러져 있었다.

그날 밤, 영화라면 그 순간에 갑자기 화면이 몇 번 깜빡이다가 전혀 다른 장면으로 전환된 순간이 지나갔다.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어리둥절한 독자는 앞뒤로 몇 장을 넘겨보며 잔뜩 긴장하는 그런 장면이 아닐까 생각된다. 늙고 충직한 하인 그리고리가 달아나는 자신을 추적해오자 들고 있던 놋쇠공이로 내려쳤다. 노인이 피를 흘리며 쓰러지자 당황한 드미트리(미챠)는 놋쇠공이를 아무렇게나 내던지고 그루셴카의 집으로 달아난다. 심야의 난동자는 스스로가 무슨 짓을 했는지 조차 모르고 허둥지둥 날뛰었다.

“미챠, 저기서 여기 우리 쪽을 보고 있는 게 누구지? 그녀가 갑자기 속삭였다. 미챠가 몸을 돌려서 보니, 정말 누군가가 커튼 자락을 헤치고 그들을 엿보고 있는 것 같았다. 게다가 한 사람이 아닌 듯했다. 그는 벌떡 일어나서 급히 그쪽으로 걸어갔다. (중략) 경찰 서장이 소리쳤다. “저놈을 보시오. 오밤중에 술에 취해서는 저 썩은 계집년하고, 제 아비의 피 웅덩이 속에서…… 제 정신이 아니야! 섬망이지!” (중략) 키 작은 예심판사는 이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미챠를 향해 커다란 목소리로 단호하고 위엄 있게 말했다. “퇴역 중위 카라마조프 씨, 당신은 간밤에 일어난 당신 아버지 표도르 파블로비치 카라마조프 살해 사건의 피의자로 지목되고 있음을 본관의 의무에 따라 알려드리는 바입니다……” - 제2권 333쪽

간밤에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단 말인가? 우와좌왕 어리둥절한 모습을 보이던 그는 모크로예로 달려가 그루셴카의 사랑고백을 받게 되지만 곧바로 친부 살해범으로 체포된다. 아버지를 죽이고 싶었고, 그동안 늘 사람들에게 아버지를 죽여 버리겠노라 떠들었던 수많은 정황들은 불리했다. 약혼녀 카체리나는 페테르부르크에서 유능한 변호사 페츄코비치를 데려오고, 드미트리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에 맞선 이 지방의 검사 이폴리트 키릴로비치의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법정 싸움은 이 소설의 백미다.

발라암의 당나귀는 이반에게 모든 것을 실토한 다음 자살하고, 이반은 광분하여 자신이 스메르쟈코프를 교사한 진정한 범인이었노라고 울부짖는다. 이반을 사랑하게 된 카체리나는 그의 증언을 듣고 나서 지금까지 일관되게 드미트리를 옹호하던 입장을 바꾼다. 이반은 그저 섬망증을 앓고 있는 환자일 뿐이라며, 드미트리가 아버지를 죽인 진범이라며 재판장에 돈 문제의 결정적인 증거가 되는 종이 조각까지 제출한다. 그녀의 수학적인 증거와 광분한 행동은 약혼자를 불리하게 몰아 부친 끝에 결국 그에게 유죄 판결을 내려지도록 한다.

대혼란의 재판이 끝난 이틀 뒤, 고결한 소년 일류셰치카가 숨을 거뒀다. 퇴역한 이등 대위 스네기료프의 아들인 소년을 둘러싼 사연은 카라마조프적인 것과 대립되는 구조의 희망과 사랑의 메시지다. 소년의 아버지는 어느 날 드미트리에 의해 광장에서 수염이 잡힌 채 끌려 다니는 수모를 당한 일이 있었고, 그 일로 소년은 큰 상처를 받았고, 학교에서도 왕따를 당한 것에 대한 이야기다. 우연히 큰형의 만행을 알고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했던 알료샤는 사정상 조금 늦게 장례식장에 찾아갔는데, 죽은 소년의 친구 열두 명으로부터 환대를 받는다.

알료샤가 열 두 소년들과 함께 새로운 인간의 탄생을 예고하는 것은 감옥으로 떠날 큰형의 변화로부터 시작된 희망이다. 소년들은 알료샤에게 드미트리의 안부를 물으며 재판 결과와 상관없는 실체적 진실을 궁금해 한다. 죽은 일류셰치카의 속 깊은 친구들은 드미트리의 파멸이 진리를 위해 죄 없는 희생양이 된 것이라며 알료샤를 위로한다. 알료샤는 깜짝 놀라 이해할 수 없다면 되묻지만 치욕을 당하더라도 진리를 위해 자신을 희생할 수 있었던 드미트리는 존경받아 마땅하다는 소년들의 연쇄적 외침으로 고무된다.

“여러분, 우리는 곧 헤어지게 됩니다. 나는 아직 얼마동안은 두 형님과 함께, 한 분은 유형을 떠나게 되고 다른 한 분은 병으로 위독한 두 형님과 함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곧 이 도시를 떠날 것이고, 어쩌면 아주 오랫동안 돌아오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헤어지게 됩니다. 여러분 여기 일류샤의 바윗돌 옆에서 우리 함께 약속합시다. - 첫째는 일류셰치카를, 둘째는 우리 서로서로를 결코 잊지 말기로 말입니다.” - 3권 519쪽

저마다의 이유로 아버지를 증오했던 카라마조프가의 삼형제는 아버지의 소멸과 아버지를 소멸시킨 자의 소멸 뒤에도 여전히 자유로운 괴로움 속에서 허덕인다. 신의 의지와 인간의 자유가 대립하는 구도에서 몽롱한 독서로 이어졌다면 그것은 독자의 잘못이 아니다. 희망이 읽어진다면 독자가 긍정적이기 때문이고 절망이 느껴진다면 독자가 부정적인 상황에 처해있기 때문일 것이다. 등장인물 중에서 나와 가장 비슷한 사람은 누구일까 고민했다. 십여 년 전에 이 작품을 읽었을 때는 알료샤였는데, 이번에는 이반으로 향한 감정이입을 느꼈다.

이반은 총명하고 논리적인 인물로 신이 만든 세계에 대한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세상을 지극히 추상적으로 바라보며, 타인에 대한 사랑도 자신을 넘어서지 못하는 허무주의자였다. 자신이 나서면 막을 수 있는 일도 철저하게 방관하는 행동하지 않는 양심의 소유자였다. 아버지에 대해서도 냉소적인 이 심오한 인간은 신과 세계에 대한 자신의 철학을 대서사시 ‘대심문관’으로 표출하며 로마 가톨릭에 대한 작가의 비판 정신을 털어냈다. 그렇다고 열렬한 기독교 신자인 작가가 신에 대한 이반의 공격을 수수방관할 리도 없었지만 말이다.

1880년에 완성된 1867년을 배경으로 한 오래된 이야기이지만 현대적인 감각으로 살아 숨 쉬는 인간의 목소리가 놀랍다. 희망은 있지만 확신이 없는 시대를 넘어 인간이 추구하는 보편적인 가치를 생각한다. 열아홉 살에 느닷없이 수도사가 된 청년 알료샤의 기품 있는 외모를 회상하면 그 사려 깊고 침착한 성격의 리얼리스트가 혁명가로 다시 태어나지 못한 미완의 자유가 아쉽다. 연작 소설을 예고했으나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도스토옙스키는 독자들에게 너무나 많은 숙제를 남겨둔 것이다. 과연,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을까?

출판기획자로 ‘더불어민주당’+‘the민주’ 당명을 만들고 제안했다. 컴퓨터그래픽 및 프로그래밍 분야 11권의 저서와 더불어 IT칼럼니스트로 왕성하게 활동했던 엔지니어 출신이며, 한 권의 책에서 텍스트, 필자, 독자 자신을 읽어내는 서삼독의 실천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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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뉴스팀 (news@next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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