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초에 ‘외국어 전파담’을 출간하고 한국을 방문하면서 많은 사람과 외국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국어를 어떻게 배웠는지, 외국어를 어떻게 배울 것인지, 앞으로 AI(인공지능)는 외국어 교육을 어떻게 변화시킬 지 등 흥미로운 대화를 많이 나눴다.

봄에 서울을 떠났는데 어느새 말복이 다가 왔다. 일부러 만들지 않아도 자연스레 흐르는 시간 속에 외국어에 대한 새로운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언어 학자는 외국어를 좋아해서 여러 언어들을 즐겁게 배운다. 여러 언어를 가볍게 배울 때도 있고 한가지 언어를 원어민에 가까운 수준으로 깊게 배우기도 한다. 비슷한 언어를 몇 개 배울 때도 있고 완전 다른 언어를 배울 때도 있다. 배우는 이유도 다양하다. 언어 학자 가운데 소리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문법을 좋아하는 사람은 있고 일부로 소리나 문법이 독특한 언어를 배우는 사람도 있다.

다른 학문과 마찬가지로 언어학 분야에서도 통용되는 몇 가지 사고가 있다. 우선 모든 언어가 평등한 것이다. 즉, 하나의 언어가 특별히 어렵거나 혹은 단어가 더욱 풍부하거나 더 우수하다는 주장을 펼칠 수 없다. 더욱이 하나의 언어가 다른 언어보다 우수하다는 발상은 20세기에 많은 전쟁의 원인이 되었던 파시즘적 민족주의와 깊은 관련이 있어 더 경계해야 할 사고이다.

물론 언어간에는 객관적인 차이가 있다. 언어학자는 이 차이를 인정하고 오히려 흥미로운 연구 대상으로 삼는다. 그리고 언어 학자도 생물 학자나 식물 학자처럼 다양성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모든 언어가 평등하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 언어마다 가진 고유한 가치로 인해 인류의 언어가 풍부하고 흥미롭게 다가선다.

그런데 20세기 후반에 많은 언어가 소멸하기 시작해 언어 학자들은 ‘언어적 다양성’에 대해 고민이 된다. 언어 소멸의 기본 조건은 원어민수와 문자이다. 원어민수가 적고 문자가 없는 언어는 빠른 속도로 소멸하고 있다. 학교 교육과 도시화로 인해 젊은 세대들은 사용자가 많은 공통어를 배우게 된다. 원어민들은 점점 고령화하면서 그 언어가 소멸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얼마 전 ‘뉴욕 타임즈’는 페루 선주민 언어의 마지막 원어민에 대한 기사가 실렸는데 언어 소멸에 대한 매우 드믄 현장 보도였다. 스페인어를 잘 못하는 할아버지가 대화할 수 있는 상대가 없어서 자연과 소통하면서 외롭게 살고 있다는 보도였다. 언어학자 입장에서는 안타깝고 감동적인 이야기다.

20세기 말에 언어의 다양성은 언어학계에서 한 때 화제가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영어가 빠른 속도로 모든 분야에 세계적 공통어로 등장하면서 영어 패권에 대한 논쟁이 활발해졌다. 이 논쟁은 영국과 미국과 같이 대외적으로 제국주의 정책을 펼친 프랑스와 일본에서 특히 강했다. 영어 패권에 대한 문제의식 높아지면서 언어 소멸에 대한 관심도 높았다. 언어 소멸의 활발한 논의에서 구체적 대안은 나오지 않아 관심이 점차 약해졌다. 동시에 21세기에 들어오면서 영어의 힘이 가속화되면서 프랑스와 일본에서도 영어 패권에 대한 논쟁이 약해졌다.

21세기로 들어선 오늘날 결국 언어 소멸과 영어 패권에 대한 고민이 사라지고 어쩔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여 지고 있다. 영어는 언어적으로 세계를 연결하는 슈퍼 공통어가 되었다. 원어민 인구가 어느 정도 되는 국가와 지역은 교육과 출판을 통해 자국어를 유지하고 있지만 그럴만한 언어는 많지 않다.

여름이 한창인 이 시절에 필자는 언어에 관련된 걱정이 하나 늘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AI이다. 최근 몇 년간 AI를 활용한 언어 처리 능력이 급격히 좋아졌다. 앞으로 기술이 발달하면서 AI의 능력은 상상을 초월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똑똑한 AI 언어 처리 능력으로 외국어를 배울 필요가 없어질지도 모른다. 기계가 번역과 통역을 잘 해주면 외국어 교육의 명분도 약해질 것이다.

겉으로 보면 영어 패권에 저항할 수 있지만 좁아진 세계는 슈퍼 공통어가 필요하고 AI로 인해서 그 언어가 더욱 깊게 뿌리를 내릴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영어 이외 다른 언어를 배울 필요가 없어질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인류의 언어적 다양성을 존중하는 언어 학자 한 사람으로서 안타까운 일이다.

쉬운 대안이 있었으면 벌써 나왔을 것이지만 외국어 교육의 명분을 바꾸면 살 길이 보인다. 그러려면 우선 외국어를 ‘갖추어야 할 필수 능력’이라는 사고를 바꿔야 한다. 외국어를 사회에서 발생하는 여러 갈등을 완화할 수 있는 미래 시민이 가져야 교양으로 인식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영어 이외의 외국어를 배울 수 있는 명분이 생긴다.

예를 들면 한국과 일본처럼 오랫동안 갈등 관계에 있는 이웃 나라는 서로 언어를 배우는 과정 속에서 서로의 문화와 사고의 차이를 이해하면서 갈등을 완화할 수 있다. 한 국가 안에 이민자가 많이 사는 지역에서는 그들의 언어를 배우면서 지역 안에 이해와 배려를 심화할 수 있다. 역사를 보면 교육은 사회 변화에 반드시 대응하게 되어 지금은 외국어 교육이 대응할 차례이다.

로버트 파우저 robertjfouser@gmail.com 전 서울대 국어교육과 교수. 미시간대에서 일어일문학 학사 및 응용언어학 석사, 아일랜드 트리니티 칼리지 더블린에서 응용언어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고려대와 일본 교토대에서 영어와 영어교육을 가르쳤고, 일본 가고시마대에서 교양 한국어 과정을 개설해 가르쳤다. 한국 사회를 고찰하면서 한국어로 2016년에 ‘미래 시민의 조건’과 ‘서촌 홀릭’, 2018년에는 ‘외국어 전파담’을 출간했다. 취미는 한옥과 오래된 동네 답사, 사진촬영으로 2012년 종로구 체부동에 ‘어락당(語樂堂, 말을 즐기는 집)’이라는 한옥을 짓기도 했으며, 2016년 교토에서 열린 ‘KG+’ 국제 사진전시회에 사진을 출품했다. 현재 미국에서 독립 학자로서 활동을 하며 참여형 새로운 외국어 교육법을 개발 중이다.

(*이 칼럼은 Nextdaily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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