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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대 장편소설] 힘내라 돼지(5)

발행일시 : 2018-08-10 00:00
[심상대 장편소설] 힘내라 돼지(5)

5. 커피타임

배식준비 구령이 떨어지자 어느 반대보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반대가 기계조였다. 왠가 하면 기계조가 기계를 늘어놓고 작업하는 마룻바닥의 용도 때문이었다. 아침저녁 일과 시작 직전과 퇴근 직전 그곳에서는 공장 수용자 100여 명의 인원점검이 있고, 운동 시간 전후에도 역시 그곳에서 앉은 번호로 진행되는 인원점검이 벌어지는데, 그보다 더 중요한 그 마룻바닥의 용도는 점심배식 시간 그곳에서 배식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기계조는 총무와 이 사장과 탁 사장이 타공기를 밀고 당기며 옮기고, 쇼군까지 나서서 작업 이전의 쇼핑봉투가 든 이삿짐 포장용 플라스틱 박스를 한쪽으로 쌓고 있었다. 비누와 샴푸 통과 고무신과 수건이 담긴 플라스틱 바가지를 든 털보는 비척비척 그 분주한 마룻바닥을 에둘러 어리바리 멀뚱멀뚱 엉거주춤 서 있는 빈대코 곁으로 다가갔다. 쇼군의 명령으로 빈대코는 기계조가 식탁으로 사용하는 작은 탁상 둘레에 마룻바닥에서 걷어온 철제의자를 늘어놓은 뒤 이제 막 허리를 펴는 참이었다.

“잘 깎았다. 면도도 했네.”

빈대코가 털보의 용모를 칭찬했다. 칼과 가위를 사용할 수 없는 이곳에서 이발은 건전지로 작동하는 전동 삭발기와 플라스틱 빗만 가지고 조발과 면도를 멋들어지게 해치웠다. 샤워를 마친 뒤 옷을 꿰고 고무신을 운동화로 갈아 신으면서 털보는 옷걸이 곁에 붙는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시원했다. 자신이 보기에도 솜씨 좋은 이발일뿐더러, 미결방이나 미징역방 화장실의 좁은 거울 속에 존재하던 자신하고는 전혀 다른 얼굴이 그곳에 있었다.

털보는 기분이 좋았다. 오늘 드디어 징역수가 됐고, 그것도 제1위탁공장 기계조로 배치돼 이렇게 이발을 하고 시원한 물로 샤워까지 하고 나니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난 듯, 털보는 지난날의 회한을 후련하게 날려 보내는 평화로운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런 터에 징역동기 빈대코의 칭찬까지 듣고 나니 자신의 기분이 허황된 감정이 아니라는 사실이 더욱 명백해졌다. 더군다나 그렇게 말끔한 얼굴에 시원하게 식은 몸으로 점심식사를 하게 된 것이다. 털보는 차가운 손으로 곁에 선 빈대코의 손을 움켜잡았다. 시원한 기운은 빈대코의 손바닥에서 팔을 타고 정수리까지 치솟았다.

“야, 우리 앞으로 잘 살자!”

털보의 눈을 쳐다보면서 빈대코가 당황스러우나 가슴 저린 말을 했다.

“우리는 돼지띠 동갑이다! 죽어도 돼지고 살아도 돼지고 우리 앞으로는 잘 살아보자!”

그러면서 빈대코는 털보의 차갑고 매끈매끈한 손을 으스러져라 움켜쥐었다. 둘이 그러고 있을 때 배식을 알리는 작업반장의 구령이 떨어졌다.

“배시익…….”

오늘 아침 털보와 빈대코가 들어선 그 철문을 통해 각각 쌀밥과 오이냉국이 든 스테인리스 통 두 개가 들어오고, 열무김치와 튀긴 생선토막이 담긴 사각형 스테인리스 식기 세 개가 따라오고, 방울토마토와 양념김 포장팩이 든 종이박스가 뒤를 이었다. 기계조 마룻바닥에 당도한 이들 음식물을 향해 갖가지 배식용기를 든 수용자들이 네 가닥으로 줄지어 섰다. 한 줄은 밥을 타고, 한 줄은 국을 타고, 한 줄은 양 손에 든 용기에 반찬을 타고, 다른 한 줄은 방울토마토와 양념김 포장팩을 배식받기 위해서였다.

총무가 건네주는 대로 좀 전 비누와 고무신을 담아 화장실에 다녀온 그런 종류의 플라스틱 용기를 받아든 털보는 반찬 받는 줄에 섰다. 그나마 털보가 손에 든 빨간색과 노란색이 어룽어룽 마블링 무늬를 이루는 플라스틱 바가지는 색깔은 야릇했으나 표면은 말짱했다.

그와는 달리 빈대코가 양 손에 들고 선 플라스틱 바가지는 그 자신이 과수원에서 똥개를 키울 때 밥그릇으로 사용하던 진청색 플라스틱 제품이었는데, 생김새는 대중탕 물바가지 같고 색깔은 똥바가지 색깔이었으며, 게다가 하도 오래 수세미질 한 탓에 용기 안쪽 면은 비닐종이처럼 부푼 플라스틱 보풀로 가득했다. 이 줄 저 줄 따로 줄지어 선 두 사람은 엄청 놀랐다는 표정으로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런 얄궂은 배식용기는 기계조만의 경우가 아니었다. 다른 반대는 더 심했다. 소지반대를 포함해 아홉 개 반대가 저마다 들고 나온 배식용기는 그야말로 아노미 현상을 불러일으킬 만했고, 처음 당하는 사람은 감히 입을 열 수 없는 참담함의 극치였다. 야야야……, 이거 참 우간다 난민촌보다 더하구나, 하고 털보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싫다는 뜻이 아니었다. 놀랐을 뿐이다. 좀 전 공용 화장실에서 받았던 충격만큼이나 이 공장 수용자들이 사용하는 배식식기의 꼬락서니에 조금 놀랐을 뿐이다. 자신이 들고 있는 알록달록한 플라스틱 바가지와 다른 이들이 들고 선 둥글고, 네모나고, 투명하고, 검고 빨갛고 파랗고 연두색과 노란색을 띤 그 모든 배식용기를 곁눈질하면서 털보는 실실 웃었다. 싫다는 뜻이 절대 아니었다. 단지 지금 여기가 과연 21세기 대한민국이 맞는가 하는 의문에 빠졌을 뿐이다. 절대 나쁘다는 뜻이 아니었다. 깜짝 놀랐을 뿐이다.

그러나 그러한 용기에 담아온 밥도 국도 반찬도 맛있기만 했다. 털보도 빈대코도 제 몫의 밥을 다 먹고 탁 사장이 스테인리스 밥통에 달려들어 박박 긁어온 밥을 한 덩이씩 더 덜어먹었다. 똥바가지든 개밥그릇이든 깨끗이 설거지하고 청결하게 보관하는 데야 그 위생 상태를 따져야지 아노미 현상에 기죽을 이유가 없었다. 그러니만치 밥맛은 실로 최고였다.

그렇게 점심이 끝난 뒤 교도소 취사장에서 개인정량으로 배식한 방울토마토를 먹으며 기계조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티타임을 가졌다. 일인분 막대포장 블랙커피 여러 개로 아이스커피를 만든 사람은 총무였다. 그러나 인사는 쇼군이 했다.

“어때요, 사장님들? 씨언하죠?”

온수에 희석한 블랙커피 분말을 얼음물로 냉각하고, 2리터짜리 페트병으로 깡깡 얼린 얼음을 조각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제조한 사람은 총무가 틀림없으나, 그 레시피를 설명하고 제조를 지시한 사람은 쇼군이었다. 그러니만치 쇼균이 기계조 조원들 앞에서 늘어놓는 자신의 공치사는 타당한 일이었다.

“씨언하네요. 씨언해요.”

그러한 대답으로 털보와 빈대코는 쇼군에 대한 복종심을 증명했다. 그만큼 점심 뒤 티타임의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굿이었다. 기계조가 그렇게 신선놀음을 하고 있을 때 공장 천장 귀퉁이에 매달린 스피커에선 아침에 들었던 「백만 송이 장미」가 또다시 울려 퍼지고, 그리고 작업반장은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운동 준비이…… 운동 준비이…….”

맛난 점심에 씨언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도 분에 겨운데 한 시간 동안 대운동장에서 운동을 하라는 구령이 떨어졌다. 참으로 신선놀음이 따로 없고 별천지 유토피아가 여기든가 저기든가, 털보는 한껏 간이 퍼들어졌다. 그런 그의 귀에 아침나절 자신을 그렇게나 감동에 젖게 했던 그 감미롭고도 감동적인 노랫소리가 다시 들려오고 있었다.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 없이…… 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 때…… 수백만 송이 백만 송이…… 백만 송이 꽃은 피고…… 그립고 아름다운…… 내 별나라로 갈 수 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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