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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대 장편소설] 힘내라 돼지(4)

발행일시 : 2018-08-09 00:00
[심상대 장편소설] 힘내라 돼지(4)

4. 망치

다시 작업시간이 시작됐으나 털보와 빈대코는 예외였다. 쇼군은 자신의 영향력을 발휘해 두 사람이 이발할 수 있도록 조처했다. 평소엔 1반대에서 쇼핑봉투를 접지만 틈틈이 이 공장 수용수의 이발을 도맡아 하기 때문에 ‘이발’이라 불리는 수용수가 있었다. 운동장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창가에 자리한 그에게로 다가간 총무가 털보의 이발을 부탁했다.

그러는 동안 빈대코는 같은 혼거방에서 지내게 된 탁 사장의 인도로 10방 방장을 찾아갔다. 10방 방장 역시 운동장이 내려다보이는 창가에 집무공간을 마련하고 있었다. 그는 10방 방장인 동시에 공장에선 2반대 반대장이었고, 그가 앉아 있는 작업대 끄트머리는 그가 관장하는 2반대 작업 상황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상석이었다. 그의 별명은 ‘망치’였는데, 그 역시 그가 생각하기에는 죽어도 싼 놈 두 명을 망치로 때려죽인 무기수였다. 올해 수형생활 18년째인 그는 독실한 천주교인으로 늘 성모님과 함께하는 1963년생 토끼띠였다. 방장으로서 신입 수용자를 맞은 망치는 가타부타 말 없이 빈대코에게 지시했다.

“윗도리 벗어봐요.”

그러더니 세탁물 걸고 내리는 장대를 들어 자신의 자리 위 천장 높이 드리운 철선에서 하절기 2급수 수용자복 한 벌을 벗겨 내렸다. 그곳에는 그런 수용자복이 여러 벌 가지런히 매달려 있었다.

“이거 입어봐요.”

이를테면 이러한 친절은 조장과 방장이 자신의 조직원에게 내리는 일종의 환영인사며 하사품 증정식이었다. 미징역방에서 지급받아 춘추복과 갈아입은 그대로 줄곧 입고 있던 후줄근한 반소매 상의를 벗고 방장이 하사하는 반듯하게 다림질한 새 옷으로 갈아입은 빈대코의 신수가 훤해졌다. 방장인 망치도 만족했고 무엇보다 빈대코 자신의 기분이 좋았다.

국민학교만 간신히 마친 그가 병무청 지청에서 병역판정 심사를 받을 때, 아버지는 없고 어머니는 연로했으며 신체장애인 여동생이 하나 있었다. 저학력자에 노모와 장애인을 돌보며 혼자 농사짓는 그는 현역은 물론 보충역도 면제대상이라 군대라곤 가고 싶어도 갈 수 없었다. 그러니 교복이든 군복이든 평생 유니폼이라곤 입어본 적 없었는데,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참으로 오늘은 빈대코 곗날이다. 남들과 같이 자신도 유니폼을 입은 터에, 더군다나 하늘 같은 방장님이 내려주신 반듯한 수용자복을 턱 걸쳤으니 이 얼마나 기가 막힌 일인가? 빈대코는 너무 기뻐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빈대코의 상의를 해결한 망치는 이번엔 바지를 고르기 위해 세탁물 장대를 여러 번 들었다 놨다 애를 썼다. 똥배가 볼록 나오고 다리가 짧은 빈대코에게 입힐 만한 바지가 없었고, 그래서 망치는 빈대코 바지는 치수 큰 바지를 자신이 손수 뜯고 재단하고 바느질해 내일 저녁까지 완성하리라는 계획을 세웠다.

“낼 저녁이나 돼야겠소. 사장님 몸매가 하도 특별해서 말이야.”

그렇게 말하는 망치의 체형 또한 빈대코와 쌍을 지을 만했다. 망치의 코는 오뚝하고 반듯한데 반해 빈대코의 코는 떡메에 맞은 꼴을 하고 있다는 점이 다를 뿐, 대머리에 키가 작고 똥배 볼록 나왔다는 사실은 대동소이해 둘은 꼭 못난이 쌍둥이 고무 인형 같았다. 여하튼 망치는 빈대코더러 사장님이 10방에 온 건 행운 중에도 곱빼기행운이라 축하하고, 주변에 둘러앉은 반대원들에게 그렇지 않느냐는 눈짓을 했다. 망치가 앉은 자리에서 왼쪽으로 작업대 끄트머리에 앉은 호호백발 수용수가 분주하게 움직이던 두 손을 작업 중이던 쇼핑봉투 원지 위에 올린 채 말했다.

“맞지 맞아! 사장님은 정말 지난밤 돼지꿈을 꿨수. ……근데 올해 연세는 어떻게 됐수?”

호호백발을 상고머리로 반듯하게 깎았고 온 얼굴이 주름투성인 그는 망치 반대장과 같이 10방에 있는 수용수로, 그러니까 오늘 저녁부터 빈대코와 한방에서 살아갈 사람이었다. 빈대코가 대답했다.

“기해생 돼지띱니다. 아직은 생일이 지나지 않아 만으로는 쉰일곱이요.”

호호백발 수용수가 어어, 하는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며 웃었다.

“나보단 한 살 위로구만. 여하튼 잘됐소. 이따 저녁에 방에서 봐요.”

그래서 빈대코는 방장인 망치에게 간단한 신입인사를 마쳤고, 내일 저녁 무렵 한꺼번에 상하복을 갈아입히겠다는 망치의 계획에 따라 입었던 상의를 이전 후줄근한 옷으로 갈아입은 뒤 기계조로 돌아왔다.

이발을 마친 털보는 총무가 챙겨주는 목욕도구를 들고 공용 화장실로 갔다. 공장으로 들어오는 복도 한쪽에 자리한 공용 화장실이라는 곳은 말이 화장실이지 여러 가지 볼일을 다 해결하는 잡탕의 다용도 공간이었다. 가로로 기다랗게 생겨먹은 그곳은 비릿비릿하고 슴슴한 야릇하기 그지없는 냄새로 가득 차 있었다. 우선 홀라당 옷을 벗은 뒤 그 옷을 입구 벽에 붙은 옷걸이에 매달고, 운동화를 고무신으로 갈아 신은 털보는 공용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곳은 우선 화장실이었다. 왼쪽 맞은편에는 나무 칸막이로 칸을 나눈 대변소 네 칸이 줄지어 있는데, 똥을 싸기 위해 앉으면 머리꼭지가 보이고 그래서 똥 싸는 사람끼리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정도였다. 그 대변소 맞은편 시멘트 벽면에는 소변기 세 개가 매달려 있다. 그러니 이곳이 화장실임엔 틀림없다.

그러나 그쪽과 달리 오른쪽에는 시멘트로 만든 설거지용 싱크대가 있다. 그러니 이곳은 화장실이며 설거지하는 곳이고 또 한편으론 수용자들이 수시로 빨래를 하는 빨래터였으며 여름에는 수용자들이 비누칠 목욕을 즐기는 샤워장 노릇도 겸했다. 그래서 지금 그 안에는 이쪽저쪽 끝에 아름드리 재생고무 독이 두 개씩 서 있다. 설거지를 위해서나 빨래를 위해서나 목욕을 위해서나 물을 받아둘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 아름드리 고무 독 주변에는 배추밭에서 사용하는 누글누글한 검정 재생고무 물바가지 여러 개가 흩어져 있다. 이러니 이곳은 그야말로 똥도 싸고 오줌도 싸고, 설거지도 하고 때론 과일도 씻고, 그리고 빨래도 하고 목욕도 하는 그런 잡탕용도의 공간이었다.

총무의 조언대로 털보는 서둘러 목욕을 마쳤다. 무더운 날씨였으므로 생각 같아서는 한참 더 물을 끼얹고 싶었으나 곧 배식시간이니 얼른 머리만 감고 나오라는 총무의 당부가 있었기 때문이다. 서둘러 알몸을 여기저기 대충 닦은 뒤 복도로 나서서 팬티를 꿰고 있는 털보의 귀에 작업반장의 날카롭고 긴 호령이 들려왔다.

“배시익…… 준비이…….”

아직 배식은 아니고 곧 배식이 시작되니 하던 일을 정돈하고 작업대를 비우라는 명령이었다. 그러한 구령이 떨어지자 공장은 왁자지껄 소란스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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