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 용기면 '삼양컵라면' 광고. 1972년 3월 31일자 매일경제신문. 사진=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캡처
국내 최초 용기면 '삼양컵라면' 광고. 1972년 3월 31일자 매일경제신문. 사진=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캡처

-1972년 3월(국내 최초 용기면인 삼양 컵라면 출시)

-1981년 10월(용기면의 대명사가 된 농심 사발면 출시)

-100원, 300원(삼양 컵라면과 농심 육개장 사발면의 최초 1개당 가격)

-1조5000억원(농심 육개장 사발면의 1982년 11월 이후 2017년 말까지 누적 매출)

-43억개(농심 육개장 사발면 누적 생산량, 지구를 15바퀴 돌 수 있는 양)

삼양식품이 컵라면 자동판매기 5대를 도입해 국내 최초로 무인판매를 시작했다는 1976년 8월 25일자 매일경제(재구성). 사진=사진=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캡처
삼양식품이 컵라면 자동판매기 5대를 도입해 국내 최초로 무인판매를 시작했다는 1976년 8월 25일자 매일경제(재구성). 사진=사진=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캡처

국내 라면 역사는 1963년 9월 15일 삼양식품공업(현 삼양식품)이 삼양라면을 출시했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54년 7개월 전이다. (2018년 1월 23일자 24면 참조)

라면은 1965년 정부가 혼·분식 장려 정책 시행으로 주목받았고, 여러 업체가 제품 생산에 박차를 가하면서 춘추전국시대를 열었다. 이후 지금까지 전성기를 이어가고 있다.

세계인스턴트라면협회(WINA) 집계 결과 2016년 기준 우리나라 1인당 라면 소비량은 76.1개에 달한다. 1인당 연간 52.6개를 소비하는 베트남을 크게 앞지르면서 세계 1위다. 이처럼 사랑을 받으며 '분식의 절대 지존' 자리를 지키고 있는 라면류 중에서도 '용기면' 성장이 가파르다.

최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발간한 '2017 가공식품 세분시장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6년 말 기준 국내 라면 소매 시장 규모는 2조1613억원이다. 이는 2012년 1조9608억원에 비해 10.2% 증가한 것이다. 이 기간 점유율은 봉지라면이 66.5%, 용기면이 33.5%이다. 점유율은 봉지라면이 월등하게 높지만 성장세는 최근 들어 용기면이 판정승을 거두고 있다.

2012년 5982억원에 불과하던 용기면 시장 규모는 2016년 7249억원을 기록했다. 지난 4년 동안 시장규모는 21.2% 커졌다. 반면에 봉지라면은 같은 기간 성장률이 5.4%로 전체 라면 평균 성장률(10.3%)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용기면의 4분의 1 수준이다.

용기면 점유율은 2012년 30.5%에서 지난해 3분기 36.2%까지 치솟았다. 같은 기간 70%에 육박하던 봉지라면 점유율은 63.8%로 감소했다. 이런 현상은 1인 가구 증가와 편의점 업체를 중심으로 한 PB라면의 잇따른 출시 때문이다.

◇국내 용기면은 언제부터 판매됐을까?

국내 최초 용기면은 국내 1호 봉지라면을 생산했던 삼양식품공업이 스타트를 끊었다. 삼양라면 출시 9년 후인 1972년 3월 7일, 지금도 판매되고 있는 '컵라면'을 내놨다. 지금부터 46년 전이다. 출시 당시 '컵라면'은 현재 방식과 유사한 원형 용기 내부에 면이 들어 있는 형태로 선보였다.

하지만 용기 제조원가가 비싸 봉지면(당시 22원)에 비해 4배 이상 가격(100원)을 책정할 수밖에 없었다. 끓인 물만 부어 3분 후에 바로 먹을 수 있는 획기적인 제품이었지만 당시 경제사정 탓에 판매부진을 겪어야만 했다. 때를 기다리던 삼양은 경제여건이 나아지면서 컵라면을 찾는 이들이 차츰 증가하고 식사 대용으로 주목받자 1976년 8월 국내 최초로 컵라면 자동판매기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농심이 사발면을 판매하기로 했다는1981년 10월 5일자 매일경제신문 기사. 사진=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캡처
농심이 사발면을 판매하기로 했다는1981년 10월 5일자 매일경제신문 기사. 사진=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캡처

농심사발면 출시 광고. 1982년 2월 2일자 동아일보. 사진=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캡처
농심사발면 출시 광고. 1982년 2월 2일자 동아일보. 사진=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캡처

삼양 컵라면에 이어 등장한 것이 1981년 10월부터 유통되기 시작한 농심 '사발면'이다. 당시 롯데공업(농심의 전신)은 삼양에 이어 1965년 '롯데 라면'을 내놓고 라면 경쟁에 뛰어 들었다. 이 제품은 라면 본고장 일본의 용기면 성장사와 주기를 같이 한다.

일본 닛신사가 1971년 세계 최초 용기면 판매를 시작했지만 용기면 시장이 성장한 때는 1인당 국민소득 1600달러 수준에 이른 1980년대였다고 한다.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이 1700달러에 근접한 시기가 1980년대 초반이다. 이에 농심은 한국에서도 용기면에 대한 수요가 커질 것으로 판단해 조용히 용기면 제품 개발을 시작했다.

인스턴트라면이 잇다라 출시되고 있다는 1982년 12월 4일자 매일경제 기사. 사진=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캡처
인스턴트라면이 잇다라 출시되고 있다는 1982년 12월 4일자 매일경제 기사. 사진=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캡처

시제품격인 사발면을 개발해 1년여 동안 고객반응을 살핀 농심은 이듬해인 1982년 11월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소고기 육개장 맛을 기본으로 한 '육개장 사발면'을 전격 선보이고 마케팅에 들어갔다.

육개장사발면. 사진=농심 제공
육개장사발면. 사진=농심 제공

전작인 사발면이 사실상 큰 성과를 보지 못했는데도 농심이 '사발'이라는 이름을 고수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세계적으로 용기면 명칭은 주로 '~컵'으로 돼 있다. 용기 형태가 종이컵처럼 세로로 길쭉하게 생겨 자연스럽게 '컵'이라는 단어가 붙었다.

농심은 첫 용기면 형태를 세계시장에서 통용되는 컵 형태가 아닌 한국인에게 친숙한 '국사발' 모양을 그대로 본 떠 '사발면'이라는 이름을 사용해 거부감을 없앴다. 손에 들고 먹는 음식이 아니라 상 위에 놓고 먹을 수 있는 '사발'에 주안점을 둔 것이다. 그 결과로 얻어낸 한국적인 요소가 시장 정착의 비결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농심이 88서울올림픽을 맞아 게재한 1988년 6월 29일자 동아일보 광고. 사진=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캡처
농심이 88서울올림픽을 맞아 게재한 1988년 6월 29일자 동아일보 광고. 사진=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캡처

육개장 사발면은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 공식라면으로 지정되면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경기장에서 육개장 사발면을 먹는 외국인 모습이 TV를 통해 비춰지면서 이 제품이 한국을 대표하는 식품으로 각인됐다. 서울올림픽 당시 미국 NBC 관계자가 육개장 사발면을 자국 햄버거에 견줄 제품이라고 소개하는 등 홍보에 힘입어 국내 용기면 시장의 효자상품으로 자리매김했다.

육개장 사발면 인기 포인트는 역시 가성비다. 시중 컵면과 비슷한 가격대이면서 양은 더 많다. 여기에 면이 얇아 조리시간도 짧고 면에 국물이 잘 배어 조화가 좋다는 것도 인기 비결이라고 농심 측은 분석했다.

2015년 육개장사발면 힐링메시지 이벤트. 사진=농심 제공
2015년 육개장사발면 힐링메시지 이벤트. 사진=농심 제공

농심은 육개장 사발면 인기를 업고 중량을 기존 86g에서 110g으로 늘린 육개장 큰사발을 1995년 선보였다. 현재 이 회사 대표 제품인 신라면이 1986년 출시된 이후 1997년 '신라면 컵'이 나와 제품 형태에 변화가 예상되기도 했다.

하지만 농심 측은 사발면에 대한 애착을 버리지 않고 새우탕 큰사발면, 우육탕 큰사발면(이상 1989년), 튀김우동 큰사발면(1990년) 등을 순차적으로 선보였다.

육개장 사발면은 1982년 11월부터 2017년 말까지 총 1조5000억원 누적 매출을 기록했다. 지난 36년 동안 43억개가 판매됐다. 인구수 세계 1위인 중국인 전체(14억1000만명)가 1인당 3개씩 먹고도 남는 양이다. 이를 일렬로 나열하면 지구를 15바퀴 돌 수 있는 길이와 같다.

신라면 블랙 광고. 사진=농심 제공
신라면 블랙 광고. 사진=농심 제공

농심은 지난해 11월 용기면의 새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끓여먹는 용기면'인 '신라면블랙사발'을 내놨다. 이 제품은 전자레인지로 조리 시 용기가 녹지 않는 특수 종이재질이 사용됐다. 끓는 물 온도인 100℃ 전후로 오랜 시간 가열해도 용기 재질에 변화가 없어 안전성 우려가 없도록 했다. 전자레인지가 없는 경우, 끓는 물을 부어서 먹는 일반적인 조리도 가능하다.

정영일기자 wjddud@nextdaily.co.kr

저작권자 © 넥스트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