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로버트 파우저의 공감만감(共感萬感)] 사라져가는 서점의 생존법

발행일시 : 2018-04-02 08:53
[로버트 파우저의 공감만감(共感萬感)] 사라져가는 서점의 생존법

2010년대 초에 미국에서 서점이 사라질 위기에 빠졌다. 필자의 고향인 앤아버에서 개업한 버더스(Borders Books)이라는 큰 서점 체인이 폐업하면서 작은 동네 책방도 하나 둘 문을 닫았다. 그런데 2015년쯤부터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동네 책방이 이벤트를 통해서 지역과 긴밀한 관계를 맺으면서 지역의 사랑을 받게 되었다. 동시에 서점과 카페, 서점과 바 등 새로운 형태의 작은 책방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제 뜨는 동네는 ‘힙’한 작은 책방이 꼭 있어야 할 만큼 서점이 다시 관심을 끌고 있다.

필자가 사는 프로비던스는 좀 늦은 감이 있지만 ‘리프라프(Riffraff)’라는 새로운 동네 책방이 얼마 전에 문을 열었다. 인문학 신간을 파는 작은 매장에 칵테일 바를 운영하고 있다. 바에서 커피도 팔지만, 유행하는 수제 맥주집에서 구하기 어려운 칵테일은 사업의 중심이다. 디자이너를 고용해서 꾸며진 공간이라 색다른 것을 찾는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공간이다.

이 책방 바의 웹사이트를 보면 주인은 2년 전에 이 지역에 책방을 열기 위해 뉴욕에서 이사 온 부부이다. 이 부부의 소개를 보면 남편은 뉴욕에 유명한 책방에서 일하고 출판사 편집일도 했다. 부인은 파리에서 문학 석사 학위를 받고 프랑스어 문학을 영어로 번역하고 있다. 넓은 미국 지역 중에 왜 프로비던스를 선택했는 지 자세한 설명은 없지만, 부인이 대학 시절을 프로비던스에서 보냈다.

리프라프 웹사이트에 게시된 책 매장 전경 <리프라프 웹사이트에 게시된 책 매장 전경>

웹사이트를 보면서 책방으로서는 그다지 관심을 끌만한 것 같지는 않다. 몇 년 전만 해도 그렇지 않았을 것이고 창업의 도전을 축하할 일이지만, 왜 관심도가 떨어졌을까?

여기에는 두 가지 측면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우선 시대의 변화이다. 지금은 2018년이다. 미국은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 영향권에 있다. 겉으로 보면 서점이 활성화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서점은 더 이상 서점이 아니다. 이벤트 중심으로 고객 사랑의 받는 서점은 이벤트 기획자나 지역 활동가의 성격을 갖게 되었고 카페나 술집을 운영하면서 책을 파는 서점은 음식점의 성격이 강하다. 이런 이유는 책만으로는 사업이 잘 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책방바의 매출은 거의 술과 커피가 차지할 것이다.

리프라프 카페 공간 <리프라프 카페 공간>

그렇게 보면 책만으로 매출이 올리는 서점은 오히려 계속 줄어 들고 있다. 인터넷 판매의 확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현상이고 앞으로 그럴 것이다. 책이 브랜드 창출을 위한 장식물에 불과하게 된 씁쓸한 현실이다.

여러 책에서 한 장을 뽑아서 화장실 벽지를 장식했다. <여러 책에서 한 장을 뽑아서 화장실 벽지를 장식했다.>

예전에 큰 서점은 브랜드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주로 선택의 범위와 고객 서비스에서 차별성을 만들어 소비자 사이에 브랜드를 형성했다. 예를 들면 오랫동안 종각 근처에 자리를 지켰던 종로서적은 크기와 위치 면에서 매력적이었지만, 더 큰 교보문고가 문을 열자 규모 면에서 경쟁력이 약화되면서 점차 쇠퇴하기 시작했다.

브랜드의 핵심은 특정한 소비 계층의 주머니를 여는 것이므로 요새 뜨는 동네 서점은 소비자가 좋아하는 것을 중심으로 분위기를 만든다. 소비자가 흥미를 끌만한 것들이 없다면 책을 잘 선정해서 팔아야 한다. 이것은 미술계에서 하는 ‘큐레이팅’이라고 볼 수 있다. 즉, 미술관이 소장품을 큐레이팅하듯이 책방은 판매하는 책을 큐레이팅해야 한다.

시대 변화에 따라 책방을 큐레이팅해야 하는 것은 바로 두번째 측면이다. 리프라프를 검색하다 보면 이 책방바에 대한 평이 대개 두 개로 갈려져 있음을 볼 수 있다. 완전 ‘힙’하고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무조건 5점으로 평가하지만 매장이 작고 선택 범위가 좁은 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3점정도를 준다. 그런데 평가 내용을 보면 3점을 준 사람은 주인 큐레이팅이 ‘해 주겠다’는 태도에 대한 거부감과 불편함을 느낀다.

직접 가봤더니 필자도 그렇다. 보통 서점에 가면 관심이 있는 책을 자유롭게 보고 싶지, 남의 큐레이팅으로 관리를 받고 싶지 않다. 페이스북의 알고리즘은 올라오는 포스팅을 큐레이팅해 주고 구글은 검색 결과도 큐레이팅해 준다. 매일 뭘 하든 간에 큐레이팅과 부딪치기 때문에 서점에 가면 다양한 책을 볼 수 있는 자유를 원하고 호기심을 갖고 지식을 스스로 큐레이팅하고 싶다.

사람들은 큐레이팅의 지배가 심해질 수록 그것을 거부하는 자유를 더 찾게 될 것이다. 있어 보이지 않아도 되는 공간, 남의 정신적 구속을 받지 않은 공간은 앞으로 더욱 귀할 것이다. 서점이 그러한 자유를 제공하는 공간이 될 때 다시 살아 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 ‘힙’한 책방바는 그냥 칵테일 라운지로 장사하면 된다.


로버트 파우저 robertjfouser@gmail.com 전 서울대 국어교육과 교수. 미시간대에서 일어일문학 학사 및 응용언어학 석사, 아일랜드 트리니티 칼리지 더블린에서 응용언어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고려대와 일본 교토대에서 영어와 영어교육을 가르쳤고, 일본 가고시마대에서 교양 한국어 과정을 개설해 가르쳤다. 한국 사회를 고찰하면서 한국어로 ‘미래 시민의 조건’, ‘서촌 홀릭’을 출간했다. 취미는 한옥과 오래된 동네 답사, 사진촬영으로 2012년 종로구 체부동에 ‘어락당(語樂堂, 말을 즐기는 집)’이라는 한옥을 짓기도 했으며, 2016년 교토에서 열린 ‘KG+’ 국제 사진전시회에 사진을 출품했다. 현재 미국에서 독립 학자로서 활동을 하고 있으며 한국어로 ‘외국어 문화사’를 집필 중이며 참여형 새로운 외국어 교육법을 개발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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