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 경영 활동을 하면서 수많은 예측과 계획 수립을 해야 한다. 판매 예측부터 환율, 금리, 유가 등 각종 거시 경제 변수에 이르기까지 여러 방면에서 예측을 하고 이를 바탕으로 일간, 주간, 월간, 연간 계획, 3-5년 중장기 사업계획을 수립한다. 자재 구매, 제품 생산, 판매, 자금 운영, 인력 운용 등의 원활한 경영 활동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예측이 필요하다.
오래 전에 필자가 몸담고 있던 기업에서 겪은 일이다. 당시에 새로운 CEO가 부임하여 새로운 패러다임을 강조하셨다. 모든 계획의 오차가 +-5%를 벗어나면 그 계획은 잘못 수립되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기업과 마찬가지로, 계획 대비 실적 달성율이 높으면 높을수록 잘했다고 칭찬받고 인정받는 것에 익숙해 있던 조직 구성원들은 새로운 정책에 매우 혼란스러워 했다. 어느 기업이나 그렇지만 특히 제조업체의 경우 판매 계획이 차질을 빚으면 부품 구매, 생산 인력 운영, 자금 수지 등 여러 부문에 큰 영향을 초래한다. 계획이 조금만 틀어져도 upstream 부문에서는 그 변동에 대응하기 위해 정신없이 뛰어 다녀야만 한다. 이른바 Bullwhip effect이다. 과거의 관행을 벗어나서 일을 하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새로운 패러다임을 부정하기 어려웠으므로, 조직 전체가 계획의 적확도를 높이기 위해 전력을 다하였다. 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현실에서는 불확실성이 너무 커서 실적은 번번히 계획에서 크게 벗어나곤 했다. 결국 논리가 선명했던 새로운 패러다임은 폐기되는 것으로 끝이 났으나 소득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무작정 계획(목표)를 보수적으로 낮게 수립하여 달성율을 높이려고 하던 안일한 업무 성향에 대해서는 조직 전체의 각성을 가져와서, 성과를 평가할 때 목표의 도전성과 실적 달성율, 신장율을 고르게 반영하는 것으로 평가시스템이 변경되었다.
이전에 기업의 경영 환경이 안정적일 때는 1-2년의 단기 미래 예측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나 최근의 기업 환경 변수들은 변동성이 너무 커서 사실상 미래를 예측하고 적확도가 높은 계획을 수립하는 것은 마음만큼 쉽지는 않은 일이다. 다행히 시장의 지배적인 플레이어일 경우라면 주간 판매, 월간 판메와 같은 단기 예측을 할 때는 형편이 좀 낫겠지만 그것도 연간 예측처럼 기간이 길어지면 잘 들어 맞지 않는다. 그나마 제품 전체를 놓고 예측을 할 때는 나은 편이다. 모델별로 보면 적확률은 더욱 엉망이 된다. 만약 안정적인 판매 예측이 가능하다면 그 기업은 성장하지 못하고 현상유지만 하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렇다면 기업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기업 환경의 변동성이 크다는 사실을 주어진 것으로 받아들이고 변화에 대한 반응 속도를 높이는 쪽으로 기업 체질을 바꾸어 나가야 한다. 예측의 정확도를 높이는 노력도 계속 해야 하겠으나 그 한계를 인식하여, 계획 대비 차질의 조짐을 신속하게 감지하고 대응할 수 있도록 업무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 빨리 감지하려면 그만큼 정보에 민감하여야 하고, 반응을 빨리 하기 위해서는 평소에 대안을 마련해 두었다가 상황이 발생했을 때 즉시 실행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이번 평창 올림픽 쇼트트랙 3000미터 계주 준결승에서 한국 여자팀은 선수 한 명이 경기 초반 빙판 위에 넘어지고도 대역전극을 펼쳐 올림픽 신기록을 기록하며 1위로 결승에 진출하는 기적 같은 장면을 보여 주었다. 눈으로 보고도 잘 믿겨지지 않는 감격적인 드라마였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한국 대표팀은 이런 변수까지 고려해서 훈련을 거듭했고 실제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차분하게 훈련한대로 경기를 펼친 결과라고 한다. 경영에서 얘기하는 시나리오 플랜을 수립하고 실제 상황에서 적용할 수 있도록 훈련을 통해 체화한 결과인 것이다.
예측을 잘하기도 쉽지 않은 일이고 변화를 감지하고 반응을 빨리 하는 것도 실행하기에 어려운 일이다. 누군가 내게 둘 중 한 가지만 고르라고 하면 나는 반응 속도를 높이는 쪽을 택할 것이다. 방대한 데이터와 정밀한 분석을 바탕으로 아무리 계획을 면밀하게 수립하여도 실제 상황은 수많은 변수가 어우러져서 상호 작용하는 동태적 변화가 이루어지게 되며 돌발 변수가 있게 마련이다. 결국 성공하는 기업은 불가피하게 겪을 수 밖에 없는 시행착오를 인정하고 최소화하면서, 신속히 방향을 전환하고 난관을 극복하는 과정을 통해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가는 체질을 가진 조직이다.

황경석 kyongshwang@gmail.com LG전자와 LG 디스플레이에서 경영자로 재직하였으며 국내외 다양한 분야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속도경영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었다, 경영전략 및 마케팅 분야의 컨설팅을 주로 하며 IT와 경영을 결합한 여러 저술 활동도 추진하고 있다. 연세대학원의 경제학과와 서울대 최고경영자과정을 수료하였고 현재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중소기업 및 창업기업에 대한 경영자문 활동을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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