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제일제당 '햇반' 출시 초기 이미지. 사진=CJ제일제당
CJ제일제당 '햇반' 출시 초기 이미지. 사진=CJ제일제당

-1993년 12월 15일, 1996년 12월 12일 (국내 최초 유통 즉석밥인 천일식품 '냉동밥'과 CJ제일제당 '햇반'의 출시일)

-3억3000만개(햇반 연간 판매량 2017년 기준)

-20억개(햇반 출시 후 총 누적 판매 개수)

-270만 가마니(80㎏ 기준, 햇반 출시 후 사용한 쌀의 양)

-27개국(햇반 컵반 수출국가 수)

-6.3개(국민 1인당 연간 햇반 구입 개수)

“밥보다 더 많이 먹는 밥이 있다.” 즉석밥을 두고 하는 소리다.

'인스턴트밥(라이스)' 또는 '냉동밥' 등으로 불리는 즉석밥은 집밥과는 다른 개념으로 '상품밥'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런 즉석밥은 전자레인지나 끓는 물 등을 이용, 제품에 열(熱)을 가해 간편하게 먹을 수 있어 애용자가 늘고 있다.

국내에는 다양한 즉석밥 제품이 여러 회사를 통해 출시되고 있으며 1인 가구 급증으로 편의점 도시락 등과 함께 폭발적인 매출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최초 인스턴트 라이스(즉석밥)에 대한 기사. 1961년 6월 1일자 동아일보. 사진=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캡처
최초 인스턴트 라이스(즉석밥)에 대한 기사. 1961년 6월 1일자 동아일보. 사진=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캡처

즉석밥은 '비상식량'으로 처음 개발됐다. 대표적인 게 군용식이다. 군인이 작전 중 야외에서 손쉽게 먹을 수 있도록 통조림과 함께 선보였다. 그러다 쌀 생산량이 늘고 식생활과 함께 여가활동이 증가하면서 대중적인 즉석밥에 대한 요구가 늘면서 상품화됐다.

실제로 1961년 6월 1일자 동아일보에는 “일상사(日商事) 주식회사에서 뜨거운 물로 10분 만에 밥이 되는 인스턴트 라이스를 대량 생산하기 시작했다”는 기사가 게재됐다. 이 기사에서는 해당 제품에 대해 “이미 군대 등에서 소규모로 이용한 일이 있는 알파미(米)를 개량한 것으로 한 끼(7그램)에 일본 돈 4~5원이면 비타민과 조미료가 든 것은 물론 따로김과 도미도 들어 있고 반년이나 저장이 가능하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영양즉석 건조반' 방법이 발명됐다는 1966년 12월 15일자 매일경제 기사. 사진=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캡처
'영양즉석 건조반' 방법이 발명됐다는 1966년 12월 15일자 매일경제 기사. 사진=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캡처

당시 제품이 일본 생산기술을 바탕으로 했다면 우리나라에서는 1966년 11월 28일 김종호 경희대 교수가 '영양즉석건조반의 제조법'에 대해 발명특허를 받았다고 매일경제(1966년 12월 15일자)는 소개하고 있다. 끓는 물에 넣어 2~3분이면 국탕밥이 된다는 자세한 제조 과정도 설명했다.

삼양식품 연구진이 즉석밥 제조방법을 개발했다는 1976년 11월 18일자 매일경제. 사진=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캡처
삼양식품 연구진이 즉석밥 제조방법을 개발했다는 1976년 11월 18일자 매일경제. 사진=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캡처

삼양식품의 즉석밥 짓기방법 개발방법이 우수발명품으로 경향신문 1976년 11월 17일자 경향신문 기사. 사진=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캡처
삼양식품의 즉석밥 짓기방법 개발방법이 우수발명품으로 경향신문 1976년 11월 17일자 경향신문 기사. 사진=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캡처

이후 삼양식품 연구진이 비상 시 식생활을 크게 개선할 수 있는 밥의 급조리용 가공식량 제조방법에 대해 특허를 등록했다고 소개됐다(1976년 11월 18일자 매일경제). 이 특허 방법은 1976년 11월 '금주의 우수발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1976년 11월 17일자 경향신문). 하지만 실제 상품화로 이어졌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태원식품이 즉석 인스턴트밥 제품을 판매하기로 했다는 1992년 11월 2일자 경향신문. 사진=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캡처
태원식품이 즉석 인스턴트밥 제품을 판매하기로 했다는 1992년 11월 2일자 경향신문. 사진=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캡처

롯데햄우유가 천일식품과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으로 냉동밥을 생산해 시판키로 했다는 1993년 12월 15일자 매일경제 기사. 사진=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캡처
롯데햄우유가 천일식품과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으로 냉동밥을 생산해 시판키로 했다는 1993년 12월 15일자 매일경제 기사. 사진=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캡처

즉석밥이 인기라는 1994년 1월 20일자 경향신문 기사. 사진=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캡처
즉석밥이 인기라는 1994년 1월 20일자 경향신문 기사. 사진=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캡처

1992년 11월 2일에는 태원식품이 지금 즉섭밥 형태인 냉동 인스턴트 밥 제품을 같은 해 12월부터 판매하기로 했다는 기사(1992년 11월 2일자 경향신문)와 롯데햄우유가 천일식품과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으로 냉동밥을 생산해 시판키로 했다는 기사(1993년 12월 15일자 매일경제)가 각각 게재됐다. 1995년에는 비락과 빙그레에서 레트로트 공법을 적용한 즉석밥을 팔기 시작했다.

CJ제일제당의 '햇반' 출시를 소개한 1996년 12월 16일자 경향신문. 사진=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캡처
CJ제일제당의 '햇반' 출시를 소개한 1996년 12월 16일자 경향신문. 사진=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캡처

현재 국내 즉석밥의 대명사가 된 CJ제일제당 '햇반'은 이로부터 3년 뒤인 1996년 12월 12일 출시됐다.

CJ제일제당이 햇반을 개발하는 과정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1989년 CJ제일제당은 정백미로 밥을 지은 후 상압 또는 감압 상태에서 급속 탈수해 수분율 5% 이하로 건조한 쌀인 알파미로 상품밥 시장 진출을 검토했다. 알파미는 뜨거운 물만 부으면 밥이 되기 때문에 주로 군용 전투 식량 등으로 비상 시에 먹을 수 있게 개발된 쌀이다. 편의성 측면에서는 더할 나위 없는 장점을 갖고 있지만 '생존'을 위한 식량 성격이 강하다 보니 허기진 배를 채워 줄 뿐 맛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알파미로 실패를 경험한 CJ제일제당은 동결건조미를 활용해 재도전했다. 동결건조미는 밥을 지은 후 동결한 다음 얼음을 승화시켜 수분을 제거한 쌀이다. 제품 복원력은 우수하지만 동결을 거치면서 조직구조가 나빠져 쉽게 부스러지는 문제를 안고 있었다.

두 차례 도전 끝에 CJ제일제당은 일본 상품밥의 무균 포장 방식에 눈을 돌렸다. 무균 포장이란 반도체 공정 수준의 클린룸에서 살균한 포장재를 이용해 밥을 포장하는 기술이다. 균이 전혀 없기 때문에 보존료 없이도 상온 보관이 가능한 방식으로 집에서 지은 밥맛을 구현하지 못해 골머리를 앓던 CJ제일제당에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획기적 방법으로 떠올랐다.

CJ제일제당 '햇반'의 생산공정 모습. 사진=CJ제일제당 제공
CJ제일제당 '햇반'의 생산공정 모습. 사진=CJ제일제당 제공

편리성과 보존성이 탁월한 무균포장기술은 즉석밥 시장에 진입할 가능성이 있는 해법이긴 했지만 '사먹는 밥'이라는 신개념 제품에 막대한 투자를 결정하기란 쉽지 않았다. 초기 설비 투자비만 최소 100억원 이상이 필요했고 설비를 이용한 제품 확장 가능성 또한 낮았기 때문이다. 당시 다른 업체가 레토르트밥을 시장에 선보이자 무균 포장 대신 레토르트 방식 제품개발을 추진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많았다.

그러나 경영진은 보존료를 전혀 첨가하지 않고 장기간 신선한 밥맛을 낼 수 있는 무균포장밥을 출시하기로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 품질에 타협이 있어서는 지난 실패를 반복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일반 가정 '집밥' 맛을 지켜내면서도 집밥처럼 보존료는 물론 일체의 첨가물이 들어가지 않고, 국내 최초로 무균화 공정에서 만들어 지는 상온 즉석밥, '햇반'의 탄생이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CJ제일제당 '햇반' 제품 소개 기사. 1997년 6월 24일자 매일경제. 사진=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캡처
CJ제일제당 '햇반' 제품 소개 기사. 1997년 6월 24일자 매일경제. 사진=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캡처

이후 CJ제일제당 햇반 전담 연구원과 생산기술팀원은 시장 안착을 위해 전국 미곡처리장 1만여 곳을 다녔고 좋은 쌀을 찾아 하루에 4번 이상 밥을 지으며 최상의 맛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전국 미곡처리장에서 20~30개의 쌀을 가져와 300여명으로 구성된 평가단의 소비자 조사를 수차례 반복해서 실시했다. 소비자 테스트 결과를 바탕으로 햇반에 사용될 최초 쌀은 경기도 이천쌀로 결정했고 1996년 12월 12일 국내 최초 상온즉석밥 햇반이 선보이게 됐다. 햇반 상품명은 '방금 만든 맛있는 밥'이라는 느낌과 의미를 부각시키기 위해 선택됐다.

CJ제일제당은 2006년 '3일 내 도정한 쌀'로 국내 상품밥 시장 수준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데 이어, 2010년에는 국내 최초 당일 도정한 쌀로 햇반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2000년대 CJ제일제당 '햇반' 제품 포장. 사진=CJ제일제당 제공
2000년대 CJ제일제당 '햇반' 제품 포장. 사진=CJ제일제당 제공

현재 CJ제일제당 '햇반' 제품 이미지. 사진=CJ제일제당 제공
현재 CJ제일제당 '햇반' 제품 이미지. 사진=CJ제일제당 제공

햇반의 성공으로 2000년대 농심을 비롯해 오뚜기와 동원 등 경쟁사가 즉석밥 시장에 뛰어들면서 경쟁이 치열해졌다. 경쟁업체 진입으로 80%대 압도적 시장 점유율을 보이던 햇반은 2005년도에 67%대까지 낮아졌고, 2010년에는 역사상 최저 수준인 59%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이에 CJ제일제당은 경쟁사 제품과 차별화를 위해 쌀이 외부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는 도정 이후 밥을 짓기까지 과정에 걸리는 시간과 물류과정을 최소화하는 '자체도정 시설'을 도입했다.

또 1~2인 가구 증가세가 본격화된 2011년께부터 '햇반의 일상식화'를 위한 공격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 '밥보다 더 맛있는 밥'을 슬로건으로 내세워 햇반이 더 이상 비상식이 아닌 일상식임을 직접적으로 강조하기 시작했다. 광고 역시 '밥보다 더 맛있는 밥' '나를 키운 것은 8할이 햇반이다' '넌 내 밥이야' 등의 카피를 내세웠고 햇반에 대한 인식 변화에 초점을 맞춘 결과 점유율 반등에 성공하게 된다.

'햇반'이 미국에 수출된다는 1998년 1월 21일자 매일경제 기사. 사진=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캡처
'햇반'이 미국에 수출된다는 1998년 1월 21일자 매일경제 기사. 사진=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캡처

햇반의 진화는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 2014년 100% 현미밥, 발아현미밥, 흑미밥, 오곡밥 등 다양한 잡곡밥과 함께 서울대학교와 공동 연구개발한 '큰눈영양쌀'을 사용한 '햇반 큰눈영양쌀밥'도 선보였다. 이 제품은 출시 3개월 만에 누적매출 20억원을 돌파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대중적인 즉석밥 브랜드로 자리잡은 햇반은 잇따라 건강밥 분야 제품을 선보였고, 2015년에는 급증하고 있는 1~2인 가구 소비자에게 맞는 차세대 HMR(간편대용식) 제품 '햇반 컵반'도 내놨다.

이 제품은 '한국형 HMR'로 해외 시장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햇반 컵반은 출시 이후 미국·러시아·베트남 등 27개국에 수출되고 있다.

현재 햇반은 컵반 14종과 흰쌀밥 등 총 29종의 제품이 판매되고 있는데 이중 잡곡밥 제품은 9종으로 구성돼 있다.

햇반은 제품 최초 출시 이후 2017년 말까지 기준으로 총 누적 판매량은 20억개에 달한다. 누적 매출은 1조4000억원을 넘어섰다.

지금까지 판매된 햇반(개당 200g으로 환산)을 모두 모으면 40만톤이며, 이는 국내 최고층 건물인 롯데월드타워 총 무게(75만톤)의 절반을 넘어선다. 연간 판매량은 지난해 3억개를 돌파했으며 이는 우리나라 전 국민(5200만명으로 환산)이 1인당 1년에 5.8개를 구매하는 것과 같은 양이다.

정영일 넥스트데일리 기자 wjddud@next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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