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비가 추적추적 온다. 길 떠날 나그네에게는 우울한 상황이다. 오늘은 5시간이상 버스를 타야 한다. 걸아다닐때 비맞는것보다는 낫다.

아침 먹으러 식당으로 갔다. 4성급호텔 무난한 아침이다. 프룬절임이 있어서 반가운 마음에 왕창 먹었다. 여행중 자주 만나는 변비 친구를 피해야한다. 아침을 먹고있는데 한국인이 말을 걸어온다. 출장 왔다가 일이 딜레이되는 바람에 동유럽여행하자고 비엔나로 왔단다. 출장온거라 동유럽정보가 1도 없단다. 잘난척여사가 신나게 떠들었다. 정보가 필요한 사람에게 가진 지식을 나누는 것은 큰 즐거움이다. 열심히 들어주니 떠드는 내가 더 신난다. 그분은 한국말로 이야기하는 것이 일주일만이란다. 그 심정이 충분히 이해된다. 서로의 무사안녕을 빌어줬다.

비엔나 버스터미널
비엔나 버스터미널

체크아웃을 하고 버스터미널로 갔다. 버스타기전 화장실에 갔다가 졸지에 캐리어 하고 이산가족이 되었다. 0.5유로를 내고 가방을 앞세웠다가 나는 통과를 못했다. 다시 돈을 내고 겨우 들어갔다.

캐리어와 생이별
캐리어와 생이별

일없는 내 캐리어가 화장실에 들어가느라 돈을 냈다.

버스에 타려고 하니 사무실 가서 체크인을 하고오란다. 다른 국경을 넘을 때는 아무 수속도 안했는데 비엔나 국제터미널은 여권확인하고 그린카드를 받은 다음에 버스에 탈수있단다. 서둘러 사무실로 가서 체크인하고 그린카드를 받아왔다. 나처럼 뒤늦게 그린카드 받는 사람들이 많다. 아직도 아는 것보다 배울 것이 더 많다. 버스는 산길을 올라가는지 한참 가다보니 귀가 멍하다. 비가 눈으로 변하기도 하고 해가 쨍하기도 한다.

류블라냐 가는 도중 알프스 풍경
류블라냐 가는 도중 알프스 풍경

펼쳐지는 광경들을 보니 알프스에 들어온 것이 실감난다. 첩첩산중이 이어진다. 버스는 구름을 뚫고 달리기도 한다.

버스에서 내림
버스에서 내림

5시간정도를 달려서 류블라냐에 도착했다. 여전히 비가 내린다. 택시를 탈까 하는데 택시가 안 온다. 지도를 보니 호텔이 1.5킬로정도 떨어져있다. 걸을 만하다.

호텔까지 걸어가는 길
호텔까지 걸어가는 길

캐리어를 질질 끌고 우산 들고 걸었다. 걷는 짬짬이 사진도 찍었다. 내가 생각해도 참 가관이다. 배도 고프다. 버스 타고 5시간을 오는 동안 제대로 먹지도 못했다.

3중교를 지나 구도심에 들어서니 강을 따라 그림같은 마을이 펼쳐진다. 기대이상으로 예쁜 곳이다. 레스토랑들을 보니 회가 동한다. 기필코 맛있는 것을 먹으리라 다짐했다.

우동과 회전스시
우동과 회전스시

나도 모르게 회전스시집에 앉아있다. 비가 오니 따끈한 우동이나 라멘국물이 땡긴다. 우동과 새우스시와 장어스시를 해치웠다. 우동에 미역이 듬뿍 들어있다. 스시와 우동국물이 어우러져 속을 편하게 해준다. 드디어 호텔에 도착했다. 구도심 안에 있는 호텔이라 옛날 건물 그대로다. 건물부터 구석구석 앤틱스럽다.

쌍둥이 보름달 변기와 비데
쌍둥이 보름달 변기와 비데

욕실의 변기와 비데가 쌍둥이처럼 동그란 모양으로 앉아있다. 이 동네 사람들은 엉덩이가 큰 모양이다. 내가 그리던 분위기다. 침대에는 실크덮개가 고풍스럽게 깔려있다. 실크를 걷고 하얀 시트위에 쓰러졌다. 6시가 되니 성당 종소리가 마을 전체에 울려퍼진다.

대성당 내부
대성당 내부

일어나서 옷을 챙겨 입고 루블라냐대성당으로 갔다. 들어가는 입구를 찾아 성당을 한바퀴 돌았다. 기도할 사람만 들어오라고 표시되어 있다. 미사에 참여할 작정이라 들어 갔다.

대성당인데 사람이 많지 않다. 촛불을 밝히려고 보니 0.5유로다. 잔돈이 없어서 10유로를 냈다. 0개를 밝힐까하다가 참았다. 구부친을 위해 밝히는건데 그분의 덕이다. 촛불을 밝히고 영면을 빌었다. 옆에 앉으신 중년여인이 성령충만한 얼굴로 웃어주셔서 기분이 좋다.

수도원 내부
수도원 내부

대성당을 나와서 3중교를 건너는데 사람들이 수도원안으로 들어간다. 무심코 들어갔다가 깜짝 놀랐다. 모든 자리가 다 차있고 서있는 사람들도 많다. 나도 뒤에 기대서 섰다. 50명정도의 청소년성가대가 합창을 한다. 비디오촬영도 대규모로 하고있다. 신부님 6분이 미사를 주도하신다. 기도와 합창이 이어진다. 1시간동안 공연을 보는듯 싶다. 비엔나 오페라하우스의 공연보다 감동이 크다. 기도 내내 친구부친의 명복을 빌었다. 친구부친께서 복이 많은 분인 듯 싶다.

미사를 마치고 옆에 선 사람들과 악수하며 축복해줄 때 행복하다. 오늘따라 젊은이들이 유난히 많다. 말은 통하지않아도 감동은 국적없이 통한다. 미사를 끝내고 수도원밖으로 나오니 빗줄기가 굵어지고 기온이 뚝 떨어졌다. 돌아댕길 생각이 없어져서 강을 따라 호텔로 갔다.

북적이는 노천카페
북적이는 노천카페

추운데도 노천카페에 앉은 사람들이 많다. 사람들이 유난히 많이 앉아있는 카페로 가서 핫와인을 달라고 했다.

핫와인 마시고
핫와인 마시고

직원이 한국말로 ‘감사합니다’라고 한다. 직원들이 밝고 쾌활하다. 손님이 많은 이유를 알겠다. 개구쟁이같은 직원이 북한이 더 좋다며 장난을 친다. 어딜 가도 분단조국은 화제거리다.

핫와인 한잔에 몸과 마음이 다 녹는다. 비 내리는 거리를 뚫고 후다닥 호텔로 왔다. 씻고 침대에 누워서 오늘 하루를 기억했다. 아침에 프룬 4개를 먹었고 저녁에 미역도 듬뿍 먹었다. 내일아침에는 기다리는 쾌변 친구를 만나고 싶다.

허미경 여행전문기자(mgheo@nextdaily.co.kr)는 대한민국의 아줌마이자 글로벌한 생활여행자다. 어쩌다 맘먹고 떠나는 게 아니라, 밥 먹듯이 짐을 싼다. 여행이 삶이다 보니, 기사나 컬럼은 취미로 가끔만 쓴다. 생활여행자답게 그날그날 일기 쓰는 걸 좋아한다. 그녀는 솔직하게, 꾸밈없이, 자신을 보여준다. 공주병도 숨기지 않는다. 세계 각국을 누비며 툭툭 던지듯 쏟아내는 그녀의 진솔한 여행기는 이미 포털과 SNS에서도 두터운 팬층을 확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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