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 제일 좋아. 더 이상 일하지 않아도 되고, 아침 일찍 일어나 밥 하지 않아도 되고. 모두 떠나고 혼자 남았으니 잔소리 들을 일도 없고. 그런데 말이야 행복한데, 매일 외로워."

행복과 외로움, 썩 어울리지 않는 이 조합에 갸우뚱해졌다. 혼자만의 오롯한 자유를 만끽하며 행복하다던 이의 느닷없는 '외롭다’는 고백, 곧바로 이어진 너털웃음, 또 그 뒤에 나타난 알쏭달쏭한 표정까지 인생 황혼기에 접어든 한 노인의 이 짧은 넋두리가 새삼스럽다.

그녀는 매일 점심을 나가서 먹는다. 이른바 런치 노마드(Lunch Nomad) 족이다. 오로지 식사를 위해 클럽 여러 곳에 회원 가입을 했다. 소문을 듣고 맛집을 찾아다닌다. 매일 달라지는 점심 메뉴와 친구들과의 즐거운 수다는 덤으로 넉넉하게 채워지는, 언뜻 그럴듯한 일상이 반복되고 있다. 그런데 그 이면에 '외로움’이라는 거북한 상대를 항상 마주 대하고 있었다.

분명, 그녀의 런치 노마드 일상은 디지털로 대표되는 노마드족의 한 분류는 아니다. 하지만 자의든 타의든 그녀는 21세기형 노마드가 되었다. 행복한 '일탈’을 매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어쩌다 '외로움’과 끊임없이 싸우고 있는가?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Gilles Deleuze)의 저서 '차이와 반복(Difference and Repetition)'에 '노마디즘(nomadism)'이 등장했다. 21세기 노마드는 이 시대 전반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낸다. 휴대폰, 노트북 등의 디지털 기기, 네트워크만 있으면 여행을 하면서도 일을 할 수 있는 디지털 노마드와 사무실 출근의 틀을 깬 원격 근무(remote work) 노마드는 이제 평범하다 못해 식상하다.

성지 순례자나 장기 백패커 등 삶의 의미를 찾아 세상 곳곳을 누비는 영적인(Spiritual) 노마드, 1년을 반으로 쪼개 일하고 여행하는 하프 앤 하프(Half and Half), 오페어(au-pair) 등의 제도를 이용해 현지의 가정에서 숙식을 해결하면서 문화를 배우고 여행하는 하우스 싯팅(House sitting), 온라인 핫딜만 찾아다니는 핫딜(Hot deal), 세상은 넓고 노마드의 세계도 다양하다.

노마드의 원래 뜻에서 변형된 것으로 고요하거나 성스러운 곳을 찾아다니는 대신 한 장소에 꾸준히 머물면서 명상하는 삶을 사는 홈(Home) 노마드, 자연을 찾아 여행을 하는 대신 집안에 꽃과 식물 등을 키우면서 자연과 가까운 삶을 사는 그린(Green) 노마드 등 인간이 무언가를 추구하면 할수록 그에 따른 새로운 노마드족들이 자연히 생겨난다.

특정한 카테고리로 굳이 엮지 않더라도 우리 모두는 노마드다. 인류가 유목 생활을 끝내고 농사를 지으면서 정착했지만, 마음 움직임에 따라 떠나고 돌아오고를 무한 루프처럼 지금도 반복하고 있다. 아무리 기술이 발전하고 세련된 문화를 향유해도 그 외형상의 변화만으로는 세포 곳곳에 남아 있는 마음이 동요하거나 움직이는 현상을 차단할 수 없다. 유형이든, 무형이든, 안이든 밖이든, 시공간에 제한을 두지 않고 마음을 좇아 이리 저리 떠도는 노마드의 생활을 멈추기 힘든 것이다.

결국 어떤 유형의 노마드라도 지극히 '마음’에 의존하고 있다. 기술을 앞세운 노마드도 있지만, 인간의 모든 행동에는 마음이 함께 하므로 예외라는 것이 없다. 집으로 돌아오자 마자 점심 식사 시간의 행복한 기분은 사라졌을 것이다. 아무도 반기지 않는 텅 빈 집에 문을 여는 순간. 아무도 없고, 오직 나뿐이라는 그 생각이 외로움을 느끼게 했을 것이다. 누구도 터치하지 않는 빈 공간에서 오직 자기만이 덩그러니 있으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당황스럽고, 어색했을 것이다.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순간의 기쁨이라는 감정도, 그 행복한 기분도 줄곧 이어지지 않는다는 사실 말이다. 유통 기한이 생각보다 굉장히 짧다. 나는 노마드인가? 왜, 어째서, 무엇 때문에 노마드인가? 묻다 보면 마음의 무엇이 나를 노마드로 살게 하는지 답을 찾을 수 있을까?

장윤정 eyjangnz@gmail.com 컴퓨터 전문지, 인터넷 신문, 인터넷 방송 분야에서 기자로, 기획자로 10여년 간 일했다. 틈틈이 출판 기획 및 교정을 하면서 글을 쓰고 있다.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살면서 본 애보리진과 마오리족의 예술, 건강한 사회와 행복한 개인을 위한 명상과 실수행에 관심이 많다.

(*이 칼럼은 Nextdaily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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