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시가 되기 전에 눈 비비고 대충 옷 입고 식당으로 내려갔다. 단체손님들이 아침을 먹는지 자리가 다 차있다. 근데 분위기가 묘하다. 20명 넘어보이는데 조용하다. 카메라든 사람 둘이서 분주하게 움직이면서 사진을 찍는다. 어쩌다 들리는 말소리를 들어보니 태국단체손님들이다. 다들 검은 옷을 입고있다. 누구라도 눈을 마주치면 웃어줄 준비를 하고 있는데 아무도 눈길을 주지않는다. 조용히 식사하고 다들 기품이 넘친다. 전속 사진기사만 열심히 다니면서 사진을 찍어댄다. 검은 옷으로 입었지만 다들 부티가 철철 난다.

태국왕가 일행이 떠나는중
태국왕가 일행이 떠나는중

태국왕가 사람들이다. 단체가 움직이는데 누구에게도 거슬리지않고 조용하고 기품있다. 식당을 가득 메운 사람들이 음식 먹는 소리조차 내지않는다. 예절교육을 제대로 배운 티가 팍팍 난다. 처음부터 눈치챘더라면 좀더 자세히 보고 배울 걸 그랬다. 내게 부족한 품위와 기품을 배울 기회를 가까이서 놓쳤다. 떠난 다음에 호텔직원에게 물어보니 내 생각이 맞았다. 아직도 국왕서거를 애도하며 검은 옷을 입고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달랏최고의 역사를 가진 호텔답게 벽에는 각국의 유명인사들이 다녀간 사진들이 쫘악 걸려있다.

호텔복도
호텔복도

복도에 아무렇게나 놓인 화병조차 골동품이다. 오후가 되면 직원이 방마다 돌며 타올이나 생수가 더 필요하지 않은지 다시 체크하고 부족함이 없도록 한다. 오후 비행기라 느긋하게 아침 먹고 방에서 여유를 즐겼다. 12시쯤 체크아웃을 하고 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매니저가 오더니 부족한 것은 없었는지 조언할 건 없는지 물어본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달랏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갑자기 폭우가 쏟아진다. 매니저말이 달랏은 베트남의 코에 해당하는 곳이라 베트남이 지치고 피곤할때 재채기를 한단다. 그래서 한번씩 폭우가 퍼붓는단다. 폭우는 베트남의 콧물이다. 매니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폭우를 뚫고 후이가 왔다. 공항까지 가는 차를 불러주고 환송해준다. 순진하고 건실한 청년이다. 매니저와 후이의 환송을 받으며 공항으로 갔다. 다행히 비는 그치고 하늘이 갠다. 달랏을 출발한 비행기가 구름을 통과할 즈음 놀라운 광경을 봤다.

무지개사이로 비행기그림자 브로켄
무지개사이로 비행기그림자 브로켄

구름 사이로 동그란 무지개가 보이고 무지개사이로 비행기그림자가 나타난다. 비행기를 많이 타봤지만 처음 보는 현상이다.

하노이 국내선 공항
하노이 국내선 공항

하노이에 도착했다. 우버를 이용해서 택시를 불렀다. 잠시 후 몇 번 기둥에 있냐고 메시지가 왔다. 3번이라고 답했다. 택시들이 줄을 서있는데 기사가 안온다. 전화하니 인터내셔널에 있단다. 국제선에서 국내선까지 오는데 7분이 걸린다. 기다리는 동안 택시탈걸 후회를 백번은 했다. 힘들게 만나서 시내 호텔로 갔다.

올트쿼터 도착
올트쿼터 도착

하노이호텔은 올드쿼터에서 이용자후기가 1위인 호텔로 예약했다. 맥주거리에서 밤을 보내고 싶어서 맥주거리근처를 검색하니 4성급 스위트룸이 가격도 괜찮고 후기 점수가 최고라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방으로 안내 받고 벨 매니저를 한대 칠 뻔했다.

스위트룸이라 주장하는 쪼매난 방
스위트룸이라 주장하는 쪼매난 방

좁은 방에는 달랑 침대 하나 있고 발코니라곤 쭈그리고 앉는 의자하나 있어서 겨우 담배필 정도다. 이게 무슨 스위트룸이냐고 항의하니 이 동네에는 큰방이 있을수가 없단다. 기가 차는 변명이다. 올드쿼터 건물사정은 나도 안다. 그러면 스탠다드룸이나 딜럭스룸 또는 럭셔리룸정도로 사기를 쳐야지 스위트라 이름을 붙이는 법은 없다.
기막혀하니 매니저가 와서 방값을 할인해준다. 더 기분이 나쁘다. 큰방은 이미 사람이 들어 있어서 안된다니 더 황당하다. 내가 분명히 호텔에서 제일 크고 비싼 방으로 예약했는데 내방을 다른 사람에게 준 것이다. 돈 깎으려고 억지 부린 꼴이 될까봐 더 말하기도 싫다.

하노이에서 시간이 많지 않은데 더이상 시간낭비하고 싶지않아서 포기했다. 뭐라고해봐야 손님이 들어가있는 방을 되찾을수는 없다. 헤드매니저까지 나서서 사과를 하니 민망할 지경이다. 다음에 이메일로 예약하면 제일 좋은 방을 보장해주겠단다. 믿을수가 없다. 시클로타고 오바마분짜집에 가려고 나서는데 매니저가 말린다. 시클로기사가 바가지를 씌울거란다. 택시를 불러줄거니 타고가란다. 이제 자포자기다. 말이 어찌나 매끄러운지 그냥 듣게된다. 친절하기는 한데 뭔가 2% 부족한 느낌이다. 마음이 빠졌다. 순수의 도시에서 10일간 지내고 왔더니 의례적인 친절에 체할 것 같다.

오바마분짜집
오바마분짜집

택시를 타고 오바마분짜집에 갔다. 하노이는 4번째인데 오바마가 방문한 분짜집은 최근명소라 처음이다. 정말 맛있다. 집은 초라한데 맛은 최고다.

6천원으로 두 사람 저녁을 해결하다니 믿을수가 없다. 걸어서 호엔끼암호수로 갔다.

예전에 초라하던 쇼핑플라자가 대형명품쇼핑몰로 바뀌었다. 이쁜이들이 화보를 찍고있다.

호숫가에도 화보찍는 젊은 연인들이 많다. 하노이는 올때마다 발전하고 깨끗해진다. 올드시티의 낭만분위기도 달라졌다.

예전에 캄캄하던 호수 주변이 놀랍게도 화려해졌다. 발전한 모습이 다시 놀랍다. 주택가 속 기찻길로 갔다. 낮에 가면 가게들이 문을 열었을텐데 호텔방때문에 실랑이하다 시간이 늦어졌다.

밤의 주택가 기찻길은 나름 독특하다. 실제로 기차가 다니는지 차단기도 작동하고 있다. 맥주 거리로 가다가 길을 놓쳐서 생과일쥬스가게로 갔다. 이래저래 지친 몸과 마음에 비타민을 선물했다. 쥬스를 마시니 힘이 난다.

맥주거리
맥주거리

맥주거리로 가자고하니 남편이 그냥 호텔로 가잔다. 맥주거리때문에 이 호텔을 잡은건데 그럴수는 없다. 대신 구경만 하기로 했다. 북적거리는 맥주거리는 남편에겐 괴로운 길이다. 하노이의 맥주거리는 명불허전이다. 유명해질만하다. 좁은 골목길은 다양한 컨셉의 맥주가게들이 늘어져 있고 간이의자에 앉아서 맥주를 마시며 즐기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다. 우리는 맥주거리를 왕복하고 호텔로 돌아왔다.

기대했던 베트남여행의 마지막 밤인데 생각대로 풀리지가 않아 흥이 안난다. 우리 인생도 계획한대로 안될 때가 많다. 아무리 철저하게 준비하고 대비해도 내맘대로 되지않을때가 많다. 맘을 비우고 나를 위해 잊어야한다. 기억하고 속상하면 나만 손해다.

허미경 여행전문기자(mgheo@nextdaily.co.kr)는 대한민국의 아줌마이자 글로벌한 생활여행자다. 어쩌다 맘먹고 떠나는 게 아니라, 밥 먹듯이 짐을 싼다. 여행이 삶이다 보니, 기사나 컬럼은 취미로 가끔만 쓴다. 생활여행자답게 그날그날 일기 쓰는 걸 좋아한다. 그녀는 솔직하게, 꾸밈없이, 자신을 보여준다. 공주병도 숨기지 않는다. 세계 각국을 누비며 툭툭 던지듯 쏟아내는 그녀의 진솔한 여행기는 이미 포털과 SNS에서도 두터운 팬층을 확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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