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작곡가이자 바이올린 연주자였던 니콜로 파가니니가 작곡한 바이올린 협주곡 2번 b단조 3악장 작품번호 7번. 화려한 멜로디와 풍부한 화성이 놀라운 명곡이다. 이번엔 많은 기악곡을 피아노 곡으로 편곡했던 헝가리의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였던 프란츠 리스트. 파가니니의 공연을 직접 본 그는 피아노의 파가니니가 될 것을 결심하고 파워와 기교가 넘치는 곡을 작곡하고 연주했다. ‘파가니니에 의한 초절기교 연습곡’의 3번째 곡, g#단조 작품번호 141-3은 위의 곡을 피아노로 편곡한 최고난이도의 곡이다. ‘라 캄파넬라 La Campanella –종’이라는 이름이 붙어있다. 타건악기인 피아노 소리를 잘 들어보면 맑은 종을 울릴 때 나는 소리가 나는데, 그의 피아노에 대한 놀라운 해석과 테크닉으로 원곡보다 더 많이 연주되어 별명까지 붙은 곡을 만들었다. 피아노 고음부에서 맑은 종이 연달아 울려 쇠구슬이 굴러가는 듯한 화려한 느낌이 들고 그 대가로 연주자에게 엄청난 힘과 속도를 뒷받침한 연주기술을 요구한다. 정상급 피아니스트의 연주를 들으면 섹시하기까지 하다. 피아노를 발명한 이탈리아의 메디치 가문 조상들이 이 곡을 들었다면, 자기네가 피아노를 만들어낸 사실을 두고두고 자랑스러워 했으리라 본다.

리스트는 자기의 해석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으로 파가니니를 재해석했다. <맑은 소리의 종>이 모티프였고, 종이 울리는 소리를 역동적으로 해석했다. 바이올린 현과 말총으로 만든 활이 비벼서 내는 소리 대신, 현을 때려 내는 소리를 자기의 관점으로 해석하고 발전시킨 것이다. 때리는 소리는 아주 약하고 연한 소리에서 폭풍우와 같은 큰 소리까지 모두 표현할 수 있으므로, 파가니니가 바이올린에서 구사하지 못했던 더 깊은 폭의 소리 (딥 사운드)를 리스트는 표현할 수 있었다.

재구성 능력이 중요하다. ‘좋아. 맑은 종소리, 또로록 쇠구슬 소리를 한번 내는걸 따라 해보자.’라는 피아니스트는 음대입시에 성공할 수는 있어도 정상급의 피아니스트가 될 수 없다. 파가니니를 리스트가 그의 세계로 재구성했듯이, 정상급의 피아니스트는 그 리스트를 한번 더 자기만의 세계로 재구성해야 한다. 15년간 우승자 없던 쇼팽 콩쿨에서 1등을 한 윤디 리, 구름 떼와 같은 청중이 항상 고대하는 에브게니 키신, 2008년 북경올림픽 개막식에서 피아노를 친 랑랑의 연주를 각각 들어보면 각자의 세계로 자기만의 언어로 리스트를 재해석함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윤디 리에게는 대리석 바닥에 얼음을 뿌려 튕기는 듯한 입자의 유동을, 키신한테는 위스키에 불을 붙인 듯한 파란색 뜨거움을, 랑랑에게선 피아노가 노래를 부르는 듯한 꿈틀거림을 느낄 수 있다.

필자가 라 캄파넬라를 재구성한다면 이탈리아 베니스의 섬, 뮤라노에서 장인들이 불어 만드는 맑은 유리공예품의 영롱한 색채를 담을 것이다. 더 강한 형상화를 원한다면, 유리수공예 작업장에 가서 벌겋게 달궈진 유리반죽을 파이프로 불어볼 수도 있다. 아름다운 공예 유리꽃병을 사와서 꽃을 꼽고 변화하는 햇살이 어떤 인상을 주는지 죽치고 앉아 계속 관찰할 수도 있다. 그 재구성의 마음 속 형상이 강하면 강할수록 프레이징 엔빌롭의 상승(elevation)이나 하강(decay) 속도, 페달링의 깊이와 뾰족함, 타건의 깊이, 강도, 힘을 주었다 빼는 타이밍을 정할 수 있다. 만일 윤디 리의 연주가 정답이라 해도, 내가 100% 똑같이 연주한다 해도 모방연주를 정상의 예술이라 하는 평론가는 없다. 죽을 고생을 다해서 똑같은 연주를 만들어 내는데 성공을 해도 결코 좋은 대접은 없다.

머릿속 형상의 크기가 100이라면, 손발로 표현 가능한 동작(즉 형상화)의 크기는 1~2에 불과하다. 또한 듣는 청중은 1~2크기의 형상화된 소리가 들어오면 0.01~0.02의 크기인 자기 머리 속 형상을 만든다. 즉 ‘아! 이 소리 좋은 소리인 걸’이라고 분간할 만큼 좋게 다른 소리는 실제로는 엄청나게 좋은 소리이다. 즉 위대한 피아니스트, 작곡가 혹은 영화감독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형상은 엄청나게 강력하고 큰 존재라야 그 아주 일부분이 표현되고, 그 표현을 전달받은 관객은 그 표현의 아주 일부분만 겨우 알아챌 수 있는 것이다. 귀로 들어서 약간 좋은 소리는 실제로 100x100=10,000배 이상의 강력한 예술적 형상이 필요한 셈이다! 바로 이것이 그 많은 피아니스트, 화가, 소설가, 영화배우가 있어도 정상급의 예술가가 적은 이유이다. 강력해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귀가 훌륭해봐야 100배쯤 잘 들을 수 있다면, 만드는 사람은 그것의 100배가 큰 항공모함이 머리 속에 들어있어야 한다. 예술의 도시 맨하튼에 창작가의 동상은 2,000개가 넘지만, 평론가의 동상은 하나도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실리콘밸리 출장에서 만난 멋진 유리 와인잔, 와인, 투명한 바다, 파란 하늘. 몬테레이 캐너리 로 통조림공장 개조 와인바
실리콘밸리 출장에서 만난 멋진 유리 와인잔, 와인, 투명한 바다, 파란 하늘. 몬테레이 캐너리 로 통조림공장 개조 와인바

4차산업혁명에서 필요한 인간은 ‘10,000배 이상의 강력한 형상’이 머리 속에 들어있는, 세상을 그 형상에 의해 재구성할 수 있는 ‘강력한 인간’이다. 반복적이고 기능적인 뻔한 일을 선량한 관리자의 의무로 수행하는 일은 이제 컴퓨터나 스마트폰 아니면 로봇의 몫이게 된지 오래다. 현재 인공지능의 개발에 몰려드는 인재, 열정, 돈뭉치를 생각하면 점점 더 빨리 더 많이 더 자주 선량한 관리자들을 갈아치울 테세다. ‘노라인’으로 대별되는 무인자동주문, 자동계산의 무인점포-아마존 고-는 경쟁업체의 점포가 300평에 100명의 직원이 필요한 반면, 6명이면 운영된다. 타점포의 기대영업수익은 1~3%, 아마존 고의 목표는 20%이다. 만일 아마존의 기대대로 노라인 점포가 잘 동작한다면, 다른 점포들이 안 망하고 버티는게 이상할 정도라 예상한다. 최소 30명의 직원으로 분주히 돌아가던 은행점포가 거의 1/10의 직원이 앉아있는 그 길 대로 유통업도 따라가는 것이다. 이제 사람은 다른 일을 찾아야 하는 때가 왔다.

점포 점원의 우울한 미래예측과 정 반대로, 항공모함 크기의 형상을 지니고 있는 강력한 인간에 대해서는 더 낙관적인 미래를 예언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침을 꿀꺽 삼키며 큰 기대를 걸고 있는 자율주행차를 예로 들겠다.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은 생활의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필자는 자율주행차를 살아있는 콘텐츠라고 재구성해보겠다. 차가 살아서 자기 혼자 움직이게 되면, 돈을 쓰는 기계가 아니라 돈을 벌어다 주는 기계로 변모하게 된다. 차의 90%는 세워져 있으므로, 내가 타고 다니지 않는 시간에 혼자 우버 기사노릇도 하고 음식 배달도 하고 관광가이드도 가능하다. 정비소에 가서 엔진오일도 교환하고, 기름통 물빼기 작업도 시키고, 펑크난 타이어에 고무 지렁이도 끼워넣으라 지시할 수 있다. 물론 알아서 비교견적도 내고 단골 정비소를 정해서 가격 네고도 할 것이다. 부품이 비싸거나 귀한 수입차라면, 인터넷으로 자기가 알아서 미국으로 (자동차 부품이 저렴하므로) 부품을 주문하고 받아서 정비소에서 일을 시킬 것이다. 필요하면 알터네이터를 푸르기 위해 손을 어디서 넣어야하는지 정비사에게 가르쳐줄 수도 있다. 알바비로 수금한 돈으로 기름도 넣고 정비도 하고, 그래도 돈이 남으면 주인에게 갖다 줄 것이다.

여기까지는 살아있는 기계로서의 역할이다. 좀 더 나아가서 이 차를 살아있는 콘텐츠로 재구성한다면, 인천공항에 도착하는 중국인 관광객을 모시고 서울 구경 시켜주는 관광가이드 역할을 할 텐데, 이미 자율주행차는 예약 중국인 관광객의 SNS, 블로그를 다 뒤져서 그가 가장 좋아할 만한 메뉴를 제안한다. ‘감성돔’. 감성돔을 좋은 식당에 손님을 모시고 가서 먹게 하는 일은 콘텐츠라 할 수 없다. ‘살아있는 콘텐츠’를 만드는 이 자동차는 추자도에서 낚시배를 항행하는 선장들에게 전화를 걸어 미리 알아본 감성돔의 시세에 20%를 더 얹어 줄테니 최상급품으로 언제까지 서울로 올려 보내라는 주문을 미리 해놨다. 관광객의 식탁에 오른 감성돔 회에 곁들일 한라산 소주도 미리 준비해두었다. 바로 싱싱한 감성돔이 콘텐츠요, 소주 맛이 콘텐츠요, 하이퍼 퍼스널리제이션이란 말처럼 두 번 다시 경험하지 못할 극진한 컨시어지 서비스인 셈이다. 콘텐츠가 살아서 서비스를 하고, 또 반대로 서비스가 살아서 콘텐츠를 만들어 내는 정말 희한한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이 ‘살아있는 콘텐츠-차’라는 필자의 주장을 흥미롭게 생각한다면, 필자의 재구성이 잘된 셈이다. 이 재구성에는 지난날의 많은 경험이 녹아있다. 자동차를 뜯어보고 엔진도 분해해 보고, 오른발로 브레이크와 엑셀러레에터 페달을 한꺼번에 밟는 힐앤토(heel-and-toe) 연습, 내연기관의 원리탐구, 모터쇼 급의 광택을 내기위한 수직-수평-사선방향 3번의 왁스칠. 또한 감성돔 낚시질, 멀티레이어 퍼셉트론이나 SVM을 이용해서 사진 자동분류해보기, 자동차 사보기, 자동차 팔아보기, 자동차에서 낮잠자기, 남의 회사에 가서 물건 팔아오기, 돈 빌리러 다녀보기, 특허출원문서 집필해보기, 길거리에서 물건 전단 나눠주기 같은 지금까지 했던 차,서비스,콘텐츠를 중심으로 벌여왔던 수많은 경험을 연결하여 머리 속의 형상이 탄생하였으며, 그 노드는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새로운 경험을 할 때마다 앞으로 더 커질 것이다. 거대한 형상과 형상화가 필요한 이유가 바로 인공지능이 만들어낼 세상은 사물이 생명을 얻어 살아있게 된 살아있는 지능적 공간이므로, 마치 영화감독이 살아있는 관객에게 자신의 재구성 세계를 형상화하여 보여주듯이 기능적 선량한 관리자들을 대체할 살아있는 기계와 의사소통하면서 부려먹기위해서이다. 사람 대하듯이 해야한다는 점이다. 기계를 부리는 매니저가 되어야한다는 것이다. 무엇을 시켜서 어떠한 결과를 만들어내게 할지를 결정해야한다. 누구나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인 셈이다.

이수화 westwins@mtcom.co.kr 서울대학교 서양사학 전공, 서울대 인지과학협동과정에서 석사•박사과정 수료. ㈜LGCNS 시스템 엔지니어,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두뇌 인지활동의 기능적 MRI 연구, 벤처기업에서 논리학습을 위한 기능성 게임, 인공지능 비즈니스모델링 •영어교육 인공지능 소프트웨어의 개발을 해왔다. 각종 벤처창업학교에서 퍼실리테이터•강사•멘토 역할을 맡아 활동 중이다. 현재 (주)엠티콤에서 인공지능 연구개발 프로젝트를 수행 중이며, 한국인지과학산업협회 인문계와 이공계의 융복합적 전공 경험뿐 아니라 수행했던 다양한 직업 경험, 그리고 인간지능에 대한 깊은 이해•관심을 바탕으로, ‘지능산업’의 발전과 육성을 위한 노력을 해나가고 있다.

(*이 칼럼은 Nextdaily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넥스트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