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여덟 번째 생일을 다섯 달 남겨놓은 데이브 골드버그는 행복했다. 서베이몽키는 자신이 최고경영자가 된 이후 6년 동안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었고, 페이스북의 최고운영책임자(COO)인 아내는 일과 가정 모두에 충실한 최고의 여자였다. 19년 전, 로스앤젤레스로 막 이사 온 그녀를 만났을 때 첫눈에 반했지만 껄떡거리는 놈팡이들이 많아 무려 7년이나 머뭇거리다 겨우 프러포즈 할 수 있었다. 일 년의 열애 끝에 시작된 결혼 생활은 더 이상 완벽할 수가 없었다.

장밋빛 오월이 시작되는 금요일, 데이브는 아내와 함께 멕시코에 있었다. 친구 필 도이치의 생일 파티에 초대되어 겸사겸사 그곳에서 주말을 보내기로 했기 때문이다. 열 살 아들과 일곱 살 딸은 장인 장모가 돌봐주셔서 모처럼 둘만의 오붓한 데이트를 즐길 수 있었다. 첫날은 풀장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냈다. 아이패드로 ‘카탄의 개척자’ 게임을 함께 즐기던 아내는 졸립다고 했다. 나른한 오후, 낮잠에 빠진 그녀를 두고 조용히 헬스장으로 향했다. 평소 건강관리에 소홀한 것 같아 열심히 운동에 집중했는데 도중에 호흡이 곤란해졌다.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

셰릴 샌드버그는 낮잠에서 깨어나 샤워를 하려고 방으로 들어갔다. 저녁식사를 위해 옷을 갈아입은 뒤 이메일을 확인하고, 자녀들과 전화로 한참 수다를 떨다가 어딘가에 있을 남편을 찾아 나섰다. 봤다는 사람이 없어서 슬슬 걱정이 되던 차에 친구들 무리에서 시동생 롭과 레슬리 부부를 만나 함께 헬스장으로 들어섰다. 구석에 쓰러진 남편은 이미 의식을 잃은 뒤라 구급차에 실려 갔다. 병원 대기실에 앉아 망연자실한 그녀에게 믿을 수 없는 소식이 전해졌다. 사람들이 차례로 다가가 애도를 표했다. 그녀는 움직이지 않는 데이브를 끌어안고 오열했다.

“옵션 A가 없으니 까짓것 발로 차버리고 옵션 B를 선택하면 돼요” - 23쪽

슬픔에 젖은 그녀는 사람들이 다가와 건네는 반복적이고 똑같은 위로들에 염증을 느꼈다. 그저 아침이면 꾸역꾸역 눈을 떴고 충격과 슬픔을 견디며 살아남은 사람이 짊어져야 하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자신의 생일파티에서 친구를 잃어 침울했을 필은 몇 주가 흘러도 적응하지 못하는 셰릴을 감싸 안으며 옵션 B를 선택하자고 위로했다. 돌이켜 보면 우리 모두는 이미 옵션B의 삶을 살고 있다. 인생이 뜻대로 된 사람은 없다. 원하는 학교에 들어가지 못하거나, 원하는 직장에 들어가지 못하거나, 원하는 무엇인가를 얻지 못할 때 우리는 다른 선택을 해야만 한다.

더 이상 옵션 A에 집착하지 말아야 했다. 인생은 어떤 식으로든 옵션 B를 맞닥뜨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하는가다. 심리학자 애덤 그랜트는 그녀의 모든 하소연을 꾸준히 들어줬고 전화로 조언하며 치유 과정을 함께했다. 특히, 데이브에게 심장마비가 왔을 때 아이들을 태우고 운전 중인 상황이라면 어땠을까 상상해보라는 한 마디는 엄청난 감사와 기쁨의 선물이었다. 항상 걱정거리를 안고 잠들었던 그녀는 그때부터 삶의 기쁨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으로 변해갈 수 있게 되었다.

매일 잠들기 전에 기쁨을 느꼈던 순간 세 가지를 메모하는 습관을 꾸준히 유지했다. 커피 한 잔의 여유, 재미있는 농담, 아들이 먼저 안아줬을 때 등 주변의 소소한 것들을 챙기면서 더욱 아끼고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슬픔이 사라졌다는 의미는 아니다. 팀 로렌스의 말처럼 고통이라는 코끼리는 자기 존재를 인정받을 때까지 사라지지 않는다. 고통에 대해 인정하고 나아가기 시작한 것은 유익하고 적절한 행동이었다. 작은 기쁨들을 느끼기 시작했을 뿐인데 회복탄력성이 생겨 조금씩 견딜 수 있는 상태로 변해가기 시작한 것이다.

“분노는 정신과 의사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가 정의해서 유명해진 ‘슬픔의 5단계’ 중 하나에 속한다. 상실에 직면한 사람은 현실을 부정하고 분노하다가 현실과 타협하고 우울해하는 네 단계를 거치고 나서야 비로소 현실을 수용한다. 하지만 요즈음 전문가들은 그러한 과정이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다섯 가지 단계가 아니라, 정도가 오르내리는 ‘다섯 가지 상태’라고 본다. 슬픔과 분노는 물을 끼얹은 불길처럼 꺼지지 않고 순간적으로 깜빡이다가 다시 활활 살아난다. 나는 속에서 분노가 끓어올라 괴로웠다. 친구가 말을 잘못하면 지나치게 완강하게 반응하기도 하고,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아”라고 받아치며 친구를 맹렬하게 몰아세우기도 하고, 눈물을 펑펑 쏟아내기도 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냉정을 찾고 즉시 사과하기도 했다.“ - 78쪽

자신이 대우받고 싶은 대로 타인을 대우하라고 배웠던 셰릴은 달리 생각하게 되었다. 사람과 시기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고통을 받고 있을 때는 그러한 황금률이 부질없었다. 오히려 상대방이 대우받고 싶어 하는 대로 대우해주는 ‘백금률’이 낫다는 것을 깨달았다. 동료들이 안부를 물어올 때 ‘어떻게 지내요?’란 인사보다 ‘오늘 기분은 어때요?’라고 물어주는 것이 훨씬 좋았다. 안부 하나에서도 비탄에 빠진 사람이 보내는 신호를 감지해주는 배려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자신처럼 슬픔에 빠진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고 싶어 글을 정리하기에 이르렀다.

데이브가 떠나고 일 년쯤 흘렀을 때, 아직도 슬퍼해서야 되겠느냐며 용기를 북돋아 주는 어떤 친구에게 그녀가 느낀 감정은 불편했다. 비통한 마음을 정리하고 있는 사람에게 어서 훌훌 털어버리라는 것만큼 나쁜 조언은 없다는 것을 그렇게 경험했다. 이제는 고통을 끝낼 때가 되지 않았느냐는 한 마디는 정말 최악이었다. 힘들 때 연락하라는 위안도 선의에서 비롯되었겠으나 영혼 없는 인사말로 치부되었다. 필요한 것이 있다면 뭐든지 도와주겠다는 말을 나쁘게 해석할 것까지는 없지만 슬픔에 빠진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말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절망에 빠진 사람에게 흔히 하는 잘못된 위로 중에 하나가 “힘내라!”가 아닐까 싶다. 더 나아가 암에 걸린 사람에게 “괜찮아, 다 잘 될 거야!”라고 하거나 그저 마음이 아프다는 말도 마찬가지다. 도대체 무슨 힘을 내라는 건지, 뭐가 괜찮다는 건지, 당사자 보다 마음이 더 아플 것도 아닐 텐데 왜 그렇게 말할까? 괜찮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고 공감해주며 구체적으로 필요한 무엇인가를 찾아 챙겨줘야 하는 것이다. 햄버거 하나를 주문하면서도 뭘 빼줄까 하는 어떤 친구의 배려가 고마웠다. 엄마로서 아이들도 챙겨야했다. 그녀는 뭐든 구체적으로 실행하기 시작했다.

“울적한 최초들을 많이 겪어야 했으므로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최초를 경험하게 해주고 싶어서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스페이스엑스 본사에 데려갔다. 스페이스엑스는 로켓을 해상에 착륙시키는 데 네 차례 실패한 뒤 다시 시도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스페이스엑스를 방문한 것은 CEO인 일론 머스크의 초청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데이브가 죽고 나서 우연히 마주쳤을 때 일론은 애도의 말을 건네면서 ”얼마나 견디기 힘든지 압니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2002년 생후 두 달 반 된 첫 아이가 갑자기 사망하는 아픔을 겪었다. 우리는 더 이상 많은 말을 하지 않고 슬픔으로 하나 되어 그냥 함께 앉아 있었다.” - 196쪽

기쁨은 훈련이다. 기쁨을 찾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데이브가 떠난 100일쯤 후에 그녀는 친구의 도움으로 춤을 추게 되었다. 한참 춤을 추다가 기쁨을 느꼈는데, 동시에 죄책감이 들었다고 한다. 남편이 죽었는데 감히 행복할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춤을 춘단 말인가? 그것은 직장에서 해고의 칼바람을 비켜간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다. 짤리지 않은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하며 감사하다가도 동료가 일자리를 잃었는데 기뻐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이내 수치심이 밀려온다. 춤을 추던 찰라의 기쁨에서 죄책감을 느낀 셰릴을 구원한 것은 시동생이었다.

롭은 자신의 형이 지향한 삶이 셰릴의 행복이었음을 강조했다. “형은 지금 이 순간에도 형수가 행복하기를 바랄 겁니다. 형의 바람을 저버리지 마세요.” 그녀는 마치 허락이 필요했던 것처럼 감사하며 기쁨의 훈련에 돌입했다. 행복을 커다란 성공에서 성취하는 것이라 믿었던 그녀는 일상의 작은 것들을 통해 행복해질 수 있는 것들을 더 늦기 전에 깨닫게 되었다. 데이브가 죽기 전에 하던 보드게임을 아이들과 다시 하게 되었고, 데이브와 함께 보던 TV 시리즈물 ‘왕좌의 게임’도 계속 보게 되었다. 아픔을 인정하고 스스로 회복의 길을 찾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는 부정적인 사건을 처리하는 방식에 회복탄력성의 씨를 심는다. 사람들이 역경에 대처하는 방식을 수십 년 동안 연구한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먼은 세 가지 P가 회복을 방해한다고 말했다. 이 책에서 반복적으로 언급되는 그 3P는 ‘Personalization(개인화)’, ‘Pervasiveness(침투성)’, ‘Permanence(영속성)’으로 모든 것을 자신의 잘못으로 돌리거나, 삶의 모든 영역에 그 사건이 영향을 미칠 것이라 믿음, 그 여파가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는 부정적인 생각을 말한다. 처음에 3P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셰릴은 그것을 이겨냈다.

자신이 낮잠을 자지 않았더라면, 쓰러진 남편을 좀 더 일찍 발견했더라면, 평소 남편의 건강관리에 좀 더 신경썼더라면 어땠을까를 반복적으로 후회하고 자책하며 보냈던 시절을 훌훌 털어냈다. 자책이 자신은 물론 아이들의 회복 속도도 늦춘다며 “미안해요”라는 표현부터 당장 금지하라던 애덤의 충고를 받아들였다. 자책하는 일이 줄면서 모든 일이 끔찍하지 않다는 것도 깨달았다. 3P 중에서 가장 극복하기 힘든 것은 영속성이었다. 아빠 없는 아이들과 남편 없는 자신의 미래를 상상하며 온몸이 마비되는 극단적 고통이 무한정 투사되는 것을 경험했었다.

영속성을 극복하기 위해 셰릴은 ‘결코’, ‘언제나’ 같은 단어를 사용하는 대신 ‘때로’와 ‘최근에’로 대체하려고 노력했다. 회복탄력성이 타고난 성격 특성이 아니라 평생에 걸쳐 구축해야 하는 자질이라는 것을 아이들에게도 가르쳤다. 첫째, 자신의 삶에 대해 통제감을 갖는다. 둘째, 실패에서 배울 수 있다. 셋째, 자신은 인간 존재로서 중요하다. 넷째, 자신에게는 의존하고 공유할 수 있는 진정한 강점이 있다. 아이들에게 주어지는 기회와 부모·양육자·교사·친구와 맺는 관계의 기반이라는 이론에 따라 위 네 가지 핵심 신념을 개발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왔다.

“이 책을 쓰고 삶의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하지만 내 슬픔은 사라지지 않았다. 때로 슬픔은 파도처럼 밀려와 아무것도 느낄 수 없을 때까지 내 의식을 산산이 부숴놓는다. 결혼기념일처럼 예측할 수 있는 큰 행사가 나를 강타하고, 데이브가 수신인인 우편물이 집으로 배달되는 것처럼 사소한 순간에 나를 덮친다. 이따금씩 식탁에서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가 순간적으로 데이브가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올 거라는 생각이 들면 심장이 멈추는 것 같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슬픔은 파도처럼 덮쳐 우리를 산산이 부수는 것만큼이나 썰물처럼 밀려 나가기도 한다. 현실에 남겨진 우리는 그저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면에서는 더욱 강해진다. 옵션 B는 여전히 우리에게 여러 옵션을 제시한다. 우리는 여전히 사랑할 수 있다.” - 239쪽

“나대라!” 4년 전 붉은 스커트를 입고 연세대 강단에 오른 그녀가 또렷한 한국어로 말했다. 전 세계 여성들에게 용기를 심어주는 자신감 넘치는 그녀의 ‘Lean In’은 그런 것이다. 포브스가 선정한 IT업계 여성 리더 1위 자리는 올해로 6년째 그녀의 독주다. 빛나는 그 기록의 절정에서 남편을 잃었는데도 말이다. 돌이켜 보면 젊은 날의 이혼에서부터 그녀의 인생은 늘 옵션 A를 비껴가는 그늘에서 보란 듯이 부활하는 옵션 B의 나날이었다. 오늘도 그녀의 페이스북 배경 이미지는 데이브와 함께했던 옵션 A의 날에 멈춰있지만 쾌활한 옵션 B의 일상이 날마다 펼쳐진다.

신영복 선생님께서는 큰 슬픔을 견디기 위해서 반드시 그만한 크기의 기쁨이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참담한 슬픔을 극복해 가는 셰릴을 통해 우리가 작은 기쁨에 인색해서는 안 되고, 큰 슬픔에 절망해서도 안 된다는 지혜의 증거를 찾는다. 우리네 하루는 작은 기쁨과 우연한 만남으로 가득 차 있다. 밤과 아침 사이, 아픔과 기쁨 사이, 절망과 희망 사이, 억압과 해방 사이, 증오와 애정 사이, 우리가 서 있는 곳, 끊임없이 새벽이 동터오는 그곳에 어제와 다른 오늘의 선택이 있다. 미지의 옵션 B가 기다리고 있다. Lean In!

안중찬 ahn0312@gmail.com 주)교보피앤비 기획실장 / 장거리 출퇴근의 고단함을 전철과 버스 안에서 책 읽기로 극복하는 낙관적이고 사교적인 생활인이다. 컴퓨터그래픽과 프로그래밍 분야 11권의 저서와 더불어 IT칼럼니스트로 왕성하게 활동했던 엔지니어 출신으로 한 권의 책에서 텍스트, 필자, 독자 자신을 읽어내는 서삼독의 실천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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