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동혁 감독의 ‘남한산성’을 보면서 10년간 60만 부 팔렸다는 책을 불과 열흘 만에 350만 관객으로 압도한 영화의 힘에 전율했다.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고 하소연하는 출판인이나 관련기관에서는 얼마나 노력하고 있을까? 책의 미래는 알 수 없지만 우리 문학 작품을 많이 접할수록 노벨문학상 수상은 번역의 장벽만이 문제일 뿐이라 생각된다. 이렇다 할 애송시 하나 없는 시인이 해마다 노벨상 후보 자리를 독차지 하는 꼴이 우스워 보다 다양한 우리 문학이 당당하게 세상과 교류할 수 있도록 하루빨리 국가 번역청이 설립되기를 희망한다.

추석 극장을 오가는 동안 가즈오 이시구로(石黒一雄)가 2017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이름만 듣고 일본의 세 번째 수상으로 착각할 뻔했지만, 그는 런던에 살면서 영어로 글을 쓰는 영국작가였다. 해양연구원인 아버지를 따라 여섯 살에 영국으로 이주했고 스물여덟 살에 시민권을 획득하면서 전업 작가가 되었는데, 데뷔작 ‘창백한 언덕 풍경’에서 고향 나가사키를 그렸지만 두 번째 장편소설 ‘부유하는 세상의 화가’를 마지막으로 혈통의 범주를 벗어났다. 일본말 못하는 서른다섯 일본계 영국인에게 부커상을 안겨준 작품 ‘남아 있는 나날’은 그 전성기의 서막이었다.

“진정한 의미의 집사가 존재하는 곳은 영국밖에 없으며 그 외의 나라들에는, 실제로 사용되는 칭호가 무엇이든, 오직 하인들만이 있을 뿐이라는 말을 이따금 듣게 된다. 나는 이 이야기가 진실이라고 믿는 편이다. 대륙 사람들은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는 혈통들이기 때문에 집사가 될 수 없다. 오직 영국 민족만이 할 수 있다. 대륙 사람들, 여러분도 물론 동의하겠지만 켈트족도 대체로 마찬가지인데, 그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격한 순간에 자기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며 따라서 최소한의 도전적 상황 외에는 전문가다운 품행을 유지하지 못한다.” - 58쪽

품위 있는 집사의 아들로 태어나 대를 이어 품위 있는 집사로 살아온 스티븐스는 최고의 전문가다. 그가 정의하는 ‘품위’는 자신이 몸담은 전문가적 실존을 위해 개인의 욕망을 포기하는 직업의식을 기반으로 한다. 늘 흐트러지지 않는 모습으로 모든 일들을 완벽하게 처리하며 달링턴 경의 총애를 받았고, 한 순간도 긴장을 풀지 않은 대가로 ‘헤이스 소사이어티’의 명예로운 회원이 되었다. 그는 어떤 일이든지 완벽하게 해치웠던 자신의 성공 사례를 늘어놓지만 그것이 결코 자기 자랑이 아님을 강조하고 회고하는 겸손으로 품위를 지킨다.

200년 넘게 달링턴 가문이 소유해 왔던 옥스퍼드셔의 대저택 달링턴 홀을 미국인 패러데이가 구입한다. 달링턴 경이 죽을 때까지 35년 동안 충직하게 그 집의 집사로 인생을 바친 자부심 넘치는 스티븐스는 사실 일괄거래 된 하나의 상품처럼 그곳에 남은 전성기가 지난 노인이다. 이 재미없고 충성스런 집사를 존중하면서도 가끔씩 안타깝게 바라보는 새 주인은 자신이 잠시 미국에 다녀올 동안 머리 좀 식히고 오라며 휴가를 권장한다. 괜찮다는 집사에게 사람이 자기 나라도 한번 둘러볼 수 없다는 건 뭔가 잘못된 것이라며 연료비와 함께 고급 포드 승용차까지 빌려준다.

새 주인을 더 잘 모시는 방법에 대해 고심하던 스티븐스는 오래 전 달링턴 홀을 떠난 총무 켄턴 양이 최근에 보내온 편지를 읽고 또 읽으며 그녀가 살고 있는 서부에 대한 호기심을 키운다. 편지 속에 담긴 그녀의 의중을 파악하다가 어쩌면 그녀의 결혼이 파경에 이르렀으며 이곳으로 다시 돌아오고 싶어 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른다. 마침 집안의 일손도 부족하니 새 주인을 함께 모셨으면 좋겠다며 그녀를 찾아가기로 결심한다. 여행마저도 업무의 연장인 출장으로 만들어 그리운 옛 사랑을 향한 사심을 숨기고 품위 있게 그녀를 찾아가는 것이다.

“지금, 세상이 깨어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이 고요한 시간, 어느새 머릿속으로 켄턴 양의 편지 구절들을 다시 읽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말이 나온 김에 하는 이야기지만, 내가 ‘켄턴 양’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에 대해 진작에 해명했어야 했다. 사실 ‘켄턴 양’의 정확한 호칭은 ‘벤 부인’이며 벌써 20년째 그 이름으로 살아왔다. 그러나 내가 달링턴 홀이라는 좁은 공간에서 알고 지냈던 그녀는 처녀 시절의 그녀일 뿐, ‘벤 부인’이 되기 위해 서부 지방으로 떠난 후로는 한 번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적절하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녀를 예전처럼, 그리고 오랜 세월 한결같이 내 마음에서 불러온 대로 부르는 나를 너그럽게 봐주기를 바란다.” - 62쪽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생애 첫 여행을 떠나는 그가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생각하고 정리하는 일상은 그 위대한 달링턴 홀의 집사로 누리고 명성을 얻은 인생에 대한 긍지와 신념으로 가득하다. 1956년 7월 영국 옥스퍼드셔를 출발하여 솔즈베리, 도셋, 서머싯, 데번, 콘월, 웨이머스를 돌아오는 6일 동안의 여정의 소설이다. 한반도로 치면 대구-진주-순천-광주-목포-여수로 이어지는 일정인데, 비싼 포드의 조수석에 앉아 스티븐스의 인생관과 삶의 철학을 들어주는 마음으로 글을 읽다보면 그의 품위에 어렵지 않게 설득당할 수 있다.

‘위대한 집사’에 대한 확신에 찬 정의와 태도들은 이 시대 최고의 호텔 지배인이 의당 가져야 할 태도에 대한 것이자, 최고 수준의 보좌관이 정치인을 모실 때 갖춰야할 덕목과 같은 교훈적인 것들로 가득하다. 제 아무리 놀랍고 무섭고 성가신 외부 사건들 앞에서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 세심한 일처리가 놀랍다. 자부심이 대단한 그는 집사 중에 집사로 감정에 휩쓸리거나 주인 앞에 자신의 의견을 드러내지 않는 최고의 전문가다. 탁월함을 인정받은 위대한 집사답게 주인에 대한 존경심과 충성심, 맹목적으로 신뢰하는 태도가 너무도 완벽해 불편할 지경이다.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역량이 없는 것도 아닌데,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는 것이 결코 집사의 품위에 적절하지 않다는 확신에 차있다.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는 것보다 소중한 일들로 가득한 달링턴 홀의 일벌레였다. 옳지 못한 판단을 내리는 주인에게 한 마디 반박도 하지 않으며 변함없이 성실하게 섬기는 일상의 반복으로 불행 속으로 함께 빨려 들어간다. 어리석은 달링턴과 스티븐스를 지켜보는 켄턴 양은 그래도 소신 있고 현명한, 얼핏 까칠한 총무였다. 업무적으로 사사건건 부딪치는 두 사람의 갈등은 돌이켜 생각하니 안타까운 사랑의 밀당처럼 아련하다.

“당신은 허구한 날 제 ‘경험 부족’을 말씀하시면서도 제가 하는 일에서 결함을 지적하기는 좀 힘드신 모양이군요. 스티븐스 씨, 그게 아니라면 벌써 오래전에 장황하게 지적하셨을 테니까 말이에요. 어쨌거나 지금 저는 할 일이 너무 많은 사람이니까 이런 식으로 졸졸 따라다니면서 방해하지 말아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정 그렇게 한가하시다면 맑은 공기나 쐬면서 시간을 보내는 게 훨씬 유익하리라 생각됩니다.” - 103쪽

스티븐스가 최고의 경력을 쌓아가던 시기는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베르사유 조약을 통해 독일을 가혹하게 응징하던 시절이었다. 신사 중에 신사였던 달링턴 경은 패전국을 너무 가혹하게 다룬다는 심란한 마음으로, 전통과 완전히 단절된 비신사적 영국의 현실을 비판했다. 달링턴 경의 친구 카를하인츠 브레만이 시간이 흐를수록 초라한 모습을 보이다가 종국에는 베를린의 열차 안에서 권총 자살한 소식은 스티븐스에게도 아픈 기억이 되었다. 달링턴의 관대함이 절정에 이르자, 나치는 그 틈을 교묘하게 파고들어 철저히 공략하기 시작한다.

달링턴 홀이 독일 파시스트 조직원들의 은밀한 활동본부가 되면서 ‘블랙셔츠 단’ 회원이던 바넷 부인의 입장에 휘둘려 유대인 하녀 두 명을 해고한 사건은 상징적이다. 달링턴 경의 지시가 부당하고 비합리적인 것을 잘 알면서도 한 마디의 언급 없이 충직하게 결행하는 스티븐스의 무념무상이 놀랍다. 강렬하게 저항하지만 결국 그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었던 무력한 켄턴의 고통스런 모습이 심란하게 대비된다. 우유부단한 주인이 그 결정이 잘못되었음을 시인하며 해고한 두 유대인 하녀를 다시 데려오라고 한 것은 1년 뒤의 일이지만 이미 늦었다.

주인의 번복된 결정을 희소식이랍시고 전달하는 스티븐스의 어이없는 모습은 독자를 짜증나게 한다. 용기 없는 스스로를 자책하며 고통스러워하던 켄턴의 양심과 대체 인력으로 고용되었으나 일도 제대로 못하고 야반도주하는 리사의 모습도 낯설지 않다. 주인의 번복 과정을 관대함으로 받아들이는 기뻐하는 집사의 모습이 황당하다. 결국 신사다움을 이용당한 위대한 주인은 더 나쁜 세상을 만드는데 크게 기여한 채로 아름답지 못한 최후를 맞는다. 상실감에 빠진 늙은 집사는 끝까지 옛 주인에 대한 존경심을 잃지 않고 옹호하며 집사의 품위를 지킨다.

“우리가 히틀러와 맞서 싸운 이유도 결국에는 그겁니다. 만약 모든 게 히틀러의 뜻대로 되었다면 우리는 지금쯤 노예 신세밖에 더 되었겠습니까? 소수의 지배자와 수억 수십만의 노예들만 존재하는 세상이 되었을 겁니다. 제가 이 자리에서 굳이 지적할 필요도 없겠지만, 노예 상태에서는 결코 품위를 갖출 수 없습니다. 우리가 싸운 이유도 그거고 우리가 마침내 얻은 것도 바로 그겁니다. 우리는 자유 시민으로 살 권리를 쟁취했습니다. (중략) 외람된 말씀이지만 선생님, 그게 바로 진정한 품위입니다.” - 230쪽

여행 중간 모스콤의 시골 사람들에게 환대 받는 스티븐스는 본의 아니게 거짓된 모습을 보여준다. 그가 타고 온 고급 포드 승용차와 비싼 옷감으로 만든 양복을 통해 그를 과대평가한 마을 사람들은 위대한 인물을 만난 반가움과 영광스러움에 젖었고, 스티븐스는 애써 부정하지 않으며 진실 뒤에 숨어 극진한 대접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결국 마을 의사인 칼라일 박사가 집사의 진짜 신분을 알아채지만 그 모든 상황은 나치에 협조한 주인의 그저 충직한 부하다운 위선일 뿐이다. 부역자로서 누리는 책임감 없는 허영심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부끄러운 장면이다.

스티븐스는 역사적 판단 없이 과거의 반성 없이 맹목적인 노예근성에 젖어 세상을 바라본다. 시골 사람 해리 스미스의 정치적인 소신에 대해 보통 사람이 국사에 대해 논하는 것이 품위 없고 어리석다며 비판하는 모습은 안타깝다. 오래 전 달링턴이 민주주의를 낡은 시대의 이념이라 비판할 때 아무 생각 없는 자신의 모습을 자랑스럽게 추억하는 장면도 답답할 지경이다. 심지어 독일과 이탈리아의 강력한 지도력을 숭배하는 발언을 했을 때에도 연신 “맞습니다. 나리”로 응수하던 자신의 처신을 집사로서 행할 수 있는 최고의 품격으로 착각하는 오류를 범한다.

달링턴 경 스스로도 독일에 관대했던 인생을 후회했는데, 그것마저도 큰 그릇다운 대범함이었노라 찬사를 아끼지 않는 집사의 충직함은 품위 없는 품위의 절정이다. 맹목적으로 주인의 지혜를 믿었고, 뭔가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믿음이 지나쳤다. 부끄러움을 느끼는 주인과 달리 아무런 입장 표명조차 못하는 스스로의 삶에 대해 별다른 깨달음이 없다. 그 어리석은 회한의 여행이 절정에 이르자 꿈에 그리던 켄턴을 20년 만난 것도 삶의 전환점이 되지 못한다.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지도 못하고 그녀를 채워주지도 못하고 돌아설 것을 무엇 때문에 찾아 갔을까?

"즐기며 살아야 합니다. 저녁은 하루 중에 가장 좋은 때요. 당신은 하루의 일을 끝냈어요. 이제는 다리를 쭉 뻗고 즐길 수 있어요. 내 생각은 그래요. 아니, 누구를 잡고 물어봐도 그렇게 말할 거요. 하루 중 가장 좋은 때는 저녁이라고.“ - 300쪽

영화 속에서 켄턴 역을 맡은 엠마 톰슨이 “저렇게 불이 켜지면 사람들은 생기에 넘치죠. 하루 중 저녁이 가장 좋은 시간이래요. 가장 기다리는 시간이래요. 당신이 기다리는 건 뭔가요?”라고 말하는 장면은 원작 소설에서 해변의 벤치에서 만난 낯선 노인이 대신 들려준다. 황혼의 스티븐스가 젊은 날 놓쳐 버린 진정으로 소중한 것을 이해하는 명장면이지만 그것은 찰나의 깨달음에 지나지 않는다. 어서 여행을 끝내고 돌아가 패러데이 어르신을 흐뭇하고 기쁘게 해드릴 방도만을 고민하는 독백 그 이후가 걱정되는 애잔하고 허탈한 이야기다.

해변의 저녁 불빛을 바라보며 과거에 휘둘리지 말고 남아 있는 날들을 보다 가치 있게 살아보겠다는 결심은 무의미했다. 새로운 주인을 위해 더욱 더 헌신하겠다는 각오를 다지는 부조리함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늙은 노동자들의 슬픈 노예근성이 느껴졌다. 돌이키기에 너무 늦었다고 판단한 것일까? 스티븐스의 품위 있는 삶은 마냥 성실한 국가 공무원들이 악의 넘치는 위정자들에 부역한 대한민국의 현실을 생각하게 한다. 나치 전범 아이히만을 통해 한나 아렌트가 발견한 ‘악의 평범성’이 평생을 예스맨으로 살았던 늙은 집사의 품위 속에 그대로 녹아 있다.

안중찬 ahn0312@gmail.com 주)교보피앤비 기획실장 / 장거리 출퇴근의 고단함을 전철과 버스 안에서 책 읽기로 극복하는 낙관적이고 사교적인 생활인이다. 컴퓨터그래픽과 프로그래밍 분야 11권의 저서와 더불어 IT칼럼니스트로 왕성하게 활동했던 엔지니어 출신으로 한 권의 책에서 텍스트, 필자, 독자 자신을 읽어내는 서삼독의 실천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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