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서정화의 문화의 향기] 자연의 談 너머에는 ; 자연의 색을 닮고, 사람의 생각을 담고

발행일시 : 2017-10-18 00:00
[서정화의 문화의 향기] 자연의 談 너머에는 ; 자연의 색을 닮고, 사람의 생각을 담고

여름내 준비하던 자연의 색들이 쏟아져 내린다. 눈을 감아도 선명하다. 자연의 색은 눈부시거나 피곤하지 않다. 이유가 무엇일까? 인공적으로 만든 색감과 달리 대부분 낮은 채도로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가을을 담은 자연의 색 <가을을 담은 자연의 색>

인류는 오래전부터 자연이 만든 다양한 색의 비밀을 찾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 왔다. 작은 티 하나 용납되지 않는 흰색과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 검은색, 태양을 닮은 노란색과 강렬한 핏빛의 붉은 색을 구하기 위해 광물과 흙, 동식물은 물론 배설물까지 재료로 하여 다양하고 위험한 실험에 도전했다.

색은 문화권마다 다양한 역사와 전설, 상징과 이미지를 갖고 있다. 인도 산스크리트 문헌에는 흰색의 구분을 다음과 같이 한다. “빛나는 흰색, 치아의 흰색, 백단의 흰색, 가을 달과 구름의 흰색, 은의 흰색, 우유의 흰색, 진주의 흰색, 광선의 흰색, 조개껍데기의 흰색, 별의 흰색 등.” 색에 대한 연구는 인간의 삶과 밀접한 관계를 이루며 변화되어 왔고 고대에는 종교와 신체치료에 활용되기도 했다. 색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가 시작된 것은 18세기 무렵이다. 예술세계를 포함하여, 의류와 실내장식 등에서 색채에 대한 연구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는 색에 대한 이해가 그와는 확연히 달라졌고 미술치료를 비롯하여 분야도 다양해 졌다. 즉 색은 그 자체로서 존재의 의미를 가지며 인간의 무의식 속에서 광범위하게 영향을 주고 있다.

나는 종종 색을 설명 할 때, 색에서 느낀 이미지나 느낌을 예로 들어 이야기 한다. 맑고 푸른색을 ‘즐거운 가을하늘’이라고 한다든가, 여린 분홍색을 ‘봄에 날리는 벚꽃 같은 느낌’이라고 표현한다. 때론 나의 설명 방식이 상대방을 당황시킬 때도 있지만, 색의 이미지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어 작업에 도움이 될 때도 있다. 자연이 정한 색에 대한 공감대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디자인(Design)이 모든 면에서 화두(話頭)가 되고 있다. 실용성은 기본이며 어떠한 방식으로 디자인하느냐에 따라 상품의 가치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에 담긴 ‘색(Colour)’의 정서적 측면은 빠질 수 없는 요소이다. 개인적인 성향을 부각시키고 특별함을 추구하는 현대인들은 색에 더욱 민감하다. 색은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 되며, 스스로를 격려, 치유할 수 있는 동기(Motivation)를 부여해 주기 때문이다. 요즘처럼 브랜드의 명성보다 가격과 실용성을 따지는 똑똑한 소비를 하는 ‘가치의 시대’에는 개인취향에 맞는 색은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색에 대한 철학과 이미지는 공간에서도 매우 중요하게 표현된다. 공간의 정체성을 시각적으로 전달하고 어떠한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한다. 근래에는 색과 빛의 융합으로 기존의 색감에 대한 상식을 파괴하여 더욱 환상적이고 다채로운 색을 표현할 수 있다.

앨리스 전, 앨리스가 흘린 눈물의 방 <앨리스 전, 앨리스가 흘린 눈물의 방>

얼마 전, 노랑머리의 앨리스에 대한 추억을 잊지 못했던 나는 앨리스를 미디어아트로 전시한다는 소식을 접하게 됐다. 단걸음에 찾아갔다.

대체로 박물관과 미술관은 사회·문화·교육적 기능의 전통적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가끔은 실험적인 기획전으로 예술적 도전들이 해갈되기도 하지만 유물을 연구하거나 작가의 작품을 기본으로 하는데 국·공립 박물관, 미술관은 공익적인 측면이 크다. 반면 수익을 목적으로 하는 전시는 관람객의 대상이 명확하여 과감한 기획이나 연출이 가능하고 새로운 전시기법을 시도할 수 있어 흥미롭다.

전시의 기본은 작품 또는 유물 등의 오브제(Object) 선택이 전시 방향에 큰 부분을 차지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관람객과의 소통(Communication) 방법이다. 예산과 공간, 일정, 인력, 주제선정, 기획서, 홍보 등의 행정적인 부분은 관람객과 소통하기 위해 ‘상상력을 동원한 창의의 과정’에 비하면 미미(微微)하다. 다른 시각과 관점으로 전시물을 해석하고 질문을 던지다보면 예상치 못한 경계의 끝에서 멋진 대안을 찾게 된다. 물론 전시물에 대한 의미와 가치가 왜곡되어서는 절대 안 되지만 때론 미묘(美妙)한 차이가 관람객의 관심 대상이 되어 의외의 홍보가 된다. 더욱이 인증샷을 선호하는 요즘에는 내용보다 사진 찍기 좋은 곳이 훌륭한 전시공간으로 관람객들에게 평가되기도 한다. 그런데 사진 찍기 좋은 전시가 좋은 전시는 아니며 감동의 결과와는 다르다.

95% 이상이 여학생이거나 여자 친구를 따라온 남학생 5%가 가득한 앨리스 전(展)에는 앨리스가 상상하고 꿈꿨던 경험들을 색과 미디어아트로 연출하여 재구성하였다. 체험용 전시물도 다양하고 기념품도 구색을 잘 갖춘 편이었다. 그런데 필자의 나이가 너무 들어버렸나 보다. 산만한 앨리스의 머릿속처럼 산재된 색들에 피곤함을 느꼈다.

공간은 약 10개의 방으로 꾸며졌다. 그중 3m의 거인이 된 앨리스가 서러워하며 흘렸던 눈물이 방안 가득 찬 장면을 기획한 ‘눈물의 방’이 기억에 남는다. 푸른 물결영상을 빛으로 투영하고 투명한 가구들을 공중에 매달아 물속에 떠 있거나 잠겨있는 상황을 연출하였다. 벽과 바닥의 위치를 바꾸어 놓은 단순한 아이디어와 구성이었지만 푸른색의 출렁임을 미디어로 표현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작아진 앨리스가 작은 쥐를 따라 이 방을 헤엄쳐 나갔겠지?’

1970년대 유행했던 노란색의 스마일마크는 불안한 경제위기로 우울한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었다. 마치 주술사(呪術師)처럼. 이상한 꿈에서 깬 앨리스의 행복했던 여름날을 기억하며 오늘을 극복할 나의 색을 준비해 본다. 참고로, 세계적인 색채 전문 기업 팬톤(Pantone)에서는 올가을 유행할 색을 깊은 포도주 색의 버건디와 우유 함유 농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다양한 농도의 초콜릿 브라운을 제안했다. 거기에 잘빠진 단풍잎처럼 타오르는 빨강(팬톤 컬러 ‘Flame Scarlet’과 ‘Grenadine’)과 지적인 색감을 연출할 수 있는 네이비블루(팬톤 컬러 ‘Navy Peony’)를 선정하였다.

서정화 fine0419@nextdaily.co.kr, fine0419@hanmail.net | 칼럼니스트, KBS방송국, 국립민속박물관, 국립생물자원관,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에서 근무하면서 미디어와 박물관·미술관, 환경, 공예·디자인 관련 경험을 하였다. 현재는 한양대학교 문화재연구소 전문위원이며 동화작가이다. 박물관교육학박사로 다양한 기획과 글쓰기, 강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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