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신세계 (Brave New World)'라는 소설이 있다. 다 알다시피 이 소설은 영국의 올더스 헉슬리라는 작가의 공상과학 소설이다. 1932년에 출간되었는데, 당시 영국은 물론 전 유럽에 공포에 가까운 큰 반향이 있었다고 한다.

소설의 배경은 서기로 치면 2496년. 컨베이어 시스템 생산의 대명사 헨리포드가 태어난 해를 원년으로 하여 연호를 쓰는 세계정부의 지배를 받고 있는 미래의 세상이다. 이 상징적인 연호가 뜻하듯, 이곳은 기술과 효율이 핵심 가치이고, 이의 보존과 발전이 지상 과제이다.

소설 속 세계의 사람들은 인도의 카스트 제도처럼 알파, 베타, 델타, 감마, 입실론 5개 계급으로 철저히 나뉜다. 사람들은 가정이 아니라 공장에서 최적의 배양 상태로부터 태어난다. 그리고 그때부터 계급에 맞춰 유전자를 확대할 목적으로 생산된 일란성 쌍둥이들은 반복되는 수면과 학습의 사이클에 따라 자신의 계급에 의심 없는 세뇌가 시작된다. 고도 기계 문명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계급제도가 채택된 것이다.

이 '놀라운 신세계'에서는 기술이 곧 권력이다. 권력을 공고히 유지하기 위해서는 기술의 유지와 발전이 필수적이다. 그래서 권력은 사회의 핵심 가치와 지향점도 기술이라 규정한다. 그래서 기술의 유지와 발전이 그 사회의 목표가 돼 버린다. 사람이란 구조와 기술을 유지하는 수단에 불과하다. 인간의 존엄과 자아를 맞바꿔 제도와 기술을 유지하는 것이 당연한 사회가 되는 것이다.

사람이 목적이 아닌 사회라니, 다른 무언가를 위해 획일적인 권력과 엄격한 통제를 허용하는 사회라니, 거기에 의해 사람들이 지배되는 사회라니 아, 암울하다. 그러나 그것은 관찰자인 독자의 시각일 뿐 책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그 암울함을 느끼지 못한다.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자부심과 소속한 계급을 위한 충성된 마음뿐이다.

만일 누군가가 정 우울할 때는 soma라는 약을 투여한다. 이로 인해 모두는 심지어 행복하고 자유롭다 느끼기까지 한다. 사람의 행복감이 행위의 결과가 아니라 화학작용의 결과인 사회에서는 누가 뭘 하든 사실 관심도 없을 것 같다. soma만 존재한다면. 결과가 과정을 모두 퉁쳐서 합리화 해버리는 유혹적인 세상이다. 어쩐지 두렵고도 부럽지 않은가. 암울하든 말든 멋진 신세계인 것이다.

이 소설은 동 시대에만 영향을 준 것이 아니다. 컴퓨터도 인공지능도 등장하지 않는 그 때의 공상과학 소설 구조가 지금의 헐리웃의 미래 SF 시나리오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앞으로의 드라마 소재로도 계속 활용될 것 같다. 올더스 헉슬리경은 소설 '멋진 신세계'를 통해 현실세계는 둘째치고, 적어도 후대의 기술관련 스토리텔링에 '멋진 인사이트(insight)'는 보여준 셈이다.

작가가 풍자하고 있는 인사이트의 본질은 기술이 야기하는 두 가지 차원의 반응과 관련되어 있다. 바로 기술의 '공포'와 기술의 '유혹'이다.

어느 시대든 과학과 기술은 새로운 현상과 함께 세상을 보는 시각에 변화를 가져왔다. 필연적으로 사람과 사회는 기술이 만든 새로운 기준에 따라 변한다. 기준의 변화란 사회를 움직이는 주체들의 힘의 변화를 수반한다. 여기서 기술의 공포와 유혹은 시작된다.

기술의 공포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하나는 '내가 모르는 것에 의한 변화'이다. 누군가 그 내용을 아는 사람이 변화를 주도하는데 나는 따라갈 수 밖에 없다는 점이 핵심이다. 너무나도 전문적인 내용에 의한 변화이다 보니 도대체 무엇이 어떤 방향으로 가는지를 알 수가 없다. 현재의 구조 안에서 스스로 강한 영향력을 확보하고 있거나 그러한 자기 모습에 자부심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느낄 것이다.

지금까지 모든 사회의 움직임에 대해 영향력의 주체로서 자리잡고 있었는데, 새로운 요인은 스스로 통제할 수 없다니 매우 불안해진다. 즉 기술이 권력의 재배치를 가져오는 것이다. 그래서 보수적 시각을 가진 기득권층은 대개 통제할 수 있는 발전 혹은 기존 권위를 강화해주는 발전까지만을 원하게 된다.

공포의 또 다른 한 축은 '나도 모르는 상태로의 변화'이다. 기술이 추구하는 방향대로 되지 않고 예측하지 못한 부작용이 더 부각되지 않을까 하는 공포인 것이다. 여기에는 누군가의 모럴 해저드로 인해 예상했던 방향과 기대했던 결과가 달라져 혹시라도 어마어마한 비극적 형태로 귀결되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다.

기술이 발전한 미래 사회에 대한 막연한 공포는 이러한 두 가지 기제가 자리잡고 있다. 기술로 야기될 사회구조의 변화 속에서 새로운 권력은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나를 둘러싼 관계의 변화는 내게 유리할 것인가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좀더 직설적으로 말하면 이 변화가 내 밥그릇을, 내 지위를 깎아 내리지 않을까 혹은 나만 머물고 있는데 다른 사람은 올라가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다. 나는 그대로 있는데 사회가 변하니 내가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하는 공포다. 이 불안감은 기술 채택에 대한 신중함으로 표출되기도 하지만 변화 자체에 대한 억압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한편, 기술의 유혹적인 측면은 두말할 나위 없이 경제성과 편리함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효율을 바탕으로 비용과 시간을 줄여주는 것, 일을 적게 해도 더 많은 성과를 낼 수 있는 상태를 기대한다. 나아가 이를 활용하면 좀더 나은 스스로의 위치를 강화해 줄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공포의 원인을 유혹의 결과로 상쇄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주는 것이다. 이 기대감은 간혹 조급함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즉각적으로 느껴지는 편리함이 즉각적인 행복을 가져다 주지는 못한다. 항상 기술의 유혹 뒤의 갈등은 편리함과 행복함의 온도차에서 비롯된다. 편리함이 구현되어도 이로 인한 혜택은 광범위하기 때문에 이를 특정한 대상의 강화된 포지셔닝으로 활용하는 것은 매우 소수이다.
또한 예를 들어 멋진 신세계에서 등장하는 행복감을 가져다 주는 약물인 soma는 생화학 기술의 개가인가 사람을 파멸시키는 향정신 물질인가를 질문한다면 쉽게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개념에 대한 사회적인 뜻이란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가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 가치란 눈에 보이는 사실을 의미를 가진 진실로 승격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기술의 효율이 목적이 아니라 사람의 행복을 위한 수단이 되도록 하는 가치란, 자유의지를 가진 사람들의 서로의 신뢰를 모아 만들어진다. 기술과 약물에 의존하는 객체들이 계급과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사회는 가치를 만들어 내지 못한다.

소설을 처음 읽기 시작할 때 왜 제목의 brave 즉 '용기 있는' 신세계를 멋지다고 번역했을까 약간의 의문을 가지고 읽기 시작했었다. 다 읽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이 멋진 신세계에서 풍자하는, 구성원 누구도 비극인줄 모르는 비극적 상태를 벗어나, 기술이 사람을 지향하는 도구로 쓰이기 위해서 진정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그래서 작가가 제목에서 암시하고자 했던 의미를.

공포로부터 벗어나고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상태, 그것을 우리는 용기라고 부른다. 신세계는 용기 있는 선택을 통해 멋진 곳이 될 수 있다. 다가오는 디지털 혁명의 시대는 용기가 필요하다.

노수린 suerynnroh@gmail.com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 동 대학 언론홍보 석사, MBN 기자, KTF 해외마케팅과 플랫폼 기획팀장을 거쳐, IoT스타트업 운영과 컨설팅 및 교육 강의를 해왔다. 현재 한림대 사회학과 겸임 교수로 재직 중이다. IT는 사람의 행복과 가치추구를 위해 서비스와 콘텐츠로 관계를 연결하는 장치라 생각하며, 민주주의의 가치를 수용한 오픈 IT를 기반으로 사용자UX가 주권처럼 존중받는 사회를 꿈꾸며 많은 이들과 소통을 시도하고 있다.

(*이 칼럼은 Nextdaily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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