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힘없이 쭉쭉 달리는 도로 한가운데에서 호주 셰어하우스 주인장이 툭 던지듯 한마디 한다. "너는 내 말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니? 가끔 서로 딴소리 하잖아?"

"영어는 모국어가 아니다’라는 까닭도 통하지 않는다. 제법 오랫동안 우려 먹었다. 급기야 더 낮은 자세로 "나는 영어를 잘 못한다"고 고백을 했다. 갑자기 억울한 마음이 솟아 올라 "한국말 할 수 있어요?"라고 뾰족하게 찔러본다. "한 마디도 못하지. 그런데, 그건 내 질문의 의도가 아니잖아? 넌 지금도 딴소리를 하고 있어."

시간차 공격마저 허무하게 무너졌으니 생각을 가다듬어 답변을 내놓아야 할 때다. 주인장이 독서가라 은근히 다양한 주제를 놓고 대화하는 경우가 잦다. 어려운 용어가 등장하면, 설명을 해주므로 이해하는 데 있어 큰 난관은 없다. 모르거나 부정확하게 이해한 경우, 솔직히 물어보면 된다. 모른다고 해서 부끄럽지 않다. 많이 듣고 배울수록 내게 이롭다.

당황스러운 때는 순간적으로 치고 빠지는 농담이나 유머다. 나는 일단 농담이나 유머와는 거리가 너무 멀다. 우리 사고 방식과 호주 사고 방식이 달라 내가 당황하거나 웃지 않을 때 서로 머쓱해진다. 그들의 농담 코드, 유머 코드의 '다름’을 번번이 확인한다. 물론 이해와 오해 혹은 곡해의 틈에서 '코드’가 다른 이 부분은 중요한 범위를 차지 하지 않는다. 웃어 넘기거나 재미는 없지만, '왜’인지 물어보는 것으로 푼다.

심각한 얘기를 할 때는 우리가 바다가 아닌 산으로 무거운 배를 들고 오르고 있지 않나 착각이 들 정도로 답답한 마음이 든다. 뒤죽박죽 얽힌 그 지점을 찾느라 상황을 되돌리는 동시에 질문을 머릿속에서 되살려야 한다. 여기서 끝나면 좋은데, 다시 옆길로 새지 않기 위해 적절한 단어를 골라, 논리를 재정립해야 한다. 영어라서 배우는 재미를 넘어 참 어렵다. 우리 국어라면 쉬울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상대의 말을 '잘 알아듣는다’는 '언어’만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우리가 주고 받는 말 속에 상대의 의중을 정확히 파악한 정도를 가늠해보면, 이해와 오해 혹은 곡해 사이에 무수한 지점이 있을 수 있다. 이해에 좀더 가까운지, 오해에 보다 더 가까운지, 곡해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알쏭한 순간들이 많다. 내 마음 나도 모르는데, 남의 복심까지 어떻게 헤아릴까?

타인과만 대화와 소통하는 것이 아니다.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만 이해와 오해, 혹은 곡해가 일어나는 것도 아니다. 나는 심심치 않게 타인처럼 내 자신과 이해와 오해 혹은 곡해라는 양 끝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본다. 무언가를 판단하기 전에 전후 상황에 대해 쉽게 '지레 짐작’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헛발질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알아차리는 순간이 오면 재빨리 고삐를 당겨본다. 말이 멋대로 움직인다면, 그건 기수의 잘못이니까 일단 멈추고 보는 것이다. 자신을 타인 대하듯 해본다. 타인과의 관계에 열을 내는 것처럼 자신과의 관계도 '열’을 내보는 것이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나는 나를 이해한다고 착각하면서, 오해하고, 곡해하고 있었다.

사실 관계를 파악해보니 호주 셰어하우스 주인장과 하루에 서너 차례 정도 오해와 곡해를 하고 있었다. 나는 충분히 모를 때는 모른다고, 그리고 모르는 부분을 질문한다고 생각했는데, 지레 짐작 넘어가는 경우가 이따금 있었다. 어려운 주제를 놓고 영어로 대화하는 불편을 줄이고자 일부러 주제를 바꾸기도 했다. 사실 관계를 중시하는 그녀에게 별로 통하지 않는 방법이지만, 잘 모르면서 "Yes", "You are right", "I know"하기도 했다. 그러니 당연히 내가 이해하는지 못하는지 궁금했을 것이다.

'영어’를 잘하면 하루 한 두 차례 정도는 오해와 곡해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영어 능력’은 타박하기 쉬운데, 내 자신을 이해하는 과정 중에 불거지는 수많은 오해와 곡해에 대해 무엇을 '타박’하는 것이 좋을까? '타박’은 대안이 아닌듯 싶다. 혼낸다고 되는 해결되는 문제는 더더욱 아니니까. 결론은 나 자신과의 관계에 대해 앞으로 열심히 '열’을 내보겠다는 것이다.

장윤정 eyjangnz@gmail.com 컴퓨터 전문지, 인터넷 신문, 인터넷 방송 분야에서 기자로, 기획자로 10여년 간 일했다. 출판 기획 및 교정을 틈틈히 하면서 글을 쓰고 있다.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살면서 본 애보리진과 마오리족의 예술, 건강한 사회와 행복한 개인을 위한 명상과 실수행에 관심이 많다.

(*이 칼럼은 Nextdaily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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