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타릿가 감들은 떫은 물이 들었고 맨드라미 접시꽃은 붉은 물이 들었다만 나는 이 가을날 무슨 물이 들었는고···’ 나직이 읊조리는 그 소리에 이끌려 그녀를 찾아갈 수 있었다. 인생의 반려를 만나도록 용기를 불어 넣어준 그것은 무엇일까? 월드컵 열기를 불태웠던 정열의 공간에서 타락한 위정자를 응징하는 촛불의 시민광장으로 끊임없이 변화하는 역동성으로 세계를 놀라게 한 하루 유동인구 110만의 광화문 거리를 생각한다. 대산 신용호 선생은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는 명언과 함께 <광화문 글판>을 남겼다.

한강을 넘나들 때 빠른 길을 찾아 곧장 가지 않고 돌고 돌아 풍경과 인파 속에 더 오래 머무는 재미를 찾았다. 직선이 아닌 곡선의 흐름은 여유롭고 즐거웠다. 송파 차고지에서 출발하는 간선 402번은 꽤나 매력적인 시내버스다. 강남 한복판을 통과하는 동안에는 대수롭지 않은 노선에 불과하지만 교보타워 사거리에서 세종문화회관을 오가는 동안은 압도적인 운치가 있다. 한때 제3한강교라 불리던 한남대교와 남산 소월길로 굽이굽이 순환할 때 내려다보이는 한강도 멋지지만, 두 개의 다정하고 거대한 글판 앞으로 데려다 주기 때문이다.

대추가 저절로 붉어 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천둥 몇 개, 벼락 몇 개
- 118쪽, 장석주 시인의 ‘대추 한 알’ 앞부분 조합, 2009년 가을

지금이야 전국 지자체와 공기업, 교회, 은행들도 저마다의 외벽에 아름다운 계절갈이 글씨들로 세상을 훈훈하게 하지만 그 은은한 공감의 뿌리는 50평 크기의 <광화문 글판>이다. 계절마다 문안선정위원회의 주도하고, 때때로 독자들이 함께 골라 압축한 25자 내외 문장의 역사가 있다. 그렇게 결정된 글귀를 몇 가지 안으로 디자인한 다음 최종 결정된 것을 대형 플랙스 천에 출력해 광화문에 걸고, 강남 교보타워, 부산, 대전, 광주, 제주 교보생명 빌딩 외벽과 천안 연수원에도 동시다발적으로 장식하는 전통이 된 것이다.

월출산 동쪽 산골 가장 번화한 곳에 ‘만물상회’가 있었다. 온갖 잡다한 것을 다 파는 그곳은 내 고향의 유일한 서점이기도 했다. 돈도 없는 주제에 자주 그곳을 찾았고 때때로 귀를 붙잡힌 채 쫓겨나는 서러움 속에서 어른이 되면 책방 주인이 되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심어 주었다. 처음 상경한 겨울에 구로공단 노동자였던 독산동 친척집에 머물렀는데, 무심코 탄 103번 버스가 금빛 찬란한 종로1번지 광화문 빌딩 앞으로 안내했다. ‘근하신년’으로 시작하는 상업적 문구가 걸려 있던 바로 그 자리가 이 후 내 삶을 지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홍보판은 계몽판으로 바뀌었다. 1991년부터 상업적인 문구가 떨어져나간 그 자리에 비상업적인 문구를 내걸기 시작했다. 일정한 주기 없이 이런 저런 교훈적인 명언을 내걸다가 경제 성장이 발목 잡힌 그해 여름 개미와 베짱이의 교훈이 있었다. ‘개미처럼 모아라 여름은 길지 않다’라니... IMF 환란위기 속에 많은 기업이 문을 닫았고 실업자가 양산되며 사람들이 크게 상심했을 때 따뜻한 감성이 필요했고, 그들은 즉각적인 응답으로 빛났다. 홍보를 버리고, 계몽성을 경유하여 따뜻한 감성으로 시민들 가슴 속으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 56쪽, 나태주 시인의 ‘풀꽃’ 전문, 2012년 봄

나태주 시인의 연작시 ‘풀꽃’이 전국민의 애송시가 된 것도 광화문의 힘이었다. 이름을 알고 나면 이웃이 되고, 색깔을 알고 나면 친구가 되고, 모양을 알고 나면 연인이 되는 비밀스런 기쁨이 들려왔다. 해당 시집은 순식간에 베스트셀러가 되어 시민들의 잠든 감성을 흔들었다. 그렇다고 모든 선택된 글이 상업적으로 성공한 것도 아니다. 예를 들어 폴 엘뤼아르의 시가 아름답게 걸려 있던 2016년 겨울에는 해당 시집이 교보문고에 재고조차 없었고, 출판사는 자사의 시리즈중 여섯 번째 시집에서 발췌한 사실마저도 몰랐다. 불경기를 탓할 자격도 없는 출판사다.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도 한 권의 시집이라 할 수 있는데, 역대 글판의 명문들은 물론 시민들의 다양한 수필도 함께 실려 있다. 2011년 겨울 정호승 시인의 ‘고래를 위하여’가 걸려 있는 광화문 광장에 감명을 받아 한 아버지가 군대 간 아들에게 절절한 편지와 함께 그 시집을 소포로 보낸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2년 뒤 여름, 제대한 아들은 당시의 아버지를 생각하며 찾은 광장에서 ‘나였던 그 아이는 어디 있을까 아직 내 속에 있을까 아니면 사라졌을까’라는 파블로 네루다의 발견으로 뭉클한 감동을 받았다는 에세이를 남긴다.

실연의 아픔을 극복하지 못한 딸에게 도시락과 함께 편지를 써준 엄마의 사랑은 이진명의 시 ‘젠장, 이런식으로 꽃을 사나’의 영향으로 꽃을 들고 귀가하는 따뜻한 장면을 낳는다. 동네에서 종종 마주치는 폐지 줍는 노인을 바라보며 응원하던 한 젊은이는 시바타 도요의 ‘약해지지 마’를 통해 만남의 소중함을 자신의 방식으로 실천하는 모습으로 훈훈하다. 결혼을 앞 둔 딸이 예비 신랑을 대하는 아빠의 모습에서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생각하며 눈물 흘리시던 옛 모습을 떠올릴 때는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이 있었다. 최고의 사랑을 받은 작품이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 150쪽,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 앞부분 조합, 2011년 여름

어머니 장례식이 끝나고 보슬비 내리던 날 광화문을 서성였다. 멀리서 바라 본 그곳에는 박남준 시인의 ‘깨끗한 빗자루’가 걸려 있었다. ‘환하다 봄비 너 지상의 맑고 깨끗한 빗자루 하나’, 우연히 라디오를 켰을 때 흘러나오는 노래가 마음을 대변하는 것처럼 따뜻한 위안의 명구였다. 세상의 묵은 때들 적시며 씻겨주려고 초롱초롱 내리는 봄비를 빗자루로 표현한 스무 글자도 안 되는 짧은 글이 큰 위로가 되었다. 세월호 참사의 고통이 시작된 열흘쯤 뒤의 일이다. 소리 없이 광화문을 지키던 글판도 새롭게 씻겨야할 무렵이었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온 나라가 병들어 가고 있었다. 상처받은 사람들이 억울함을 호소하고, 비바람만 겨우 견디는 작은 천막이 세워지고, 힘없는 사람들끼리 모여 앉아 서로를 위로하고, 끊임없이 눈물이 흐르고, 노란 리본들로 광장이 채워지고, 누군가는 단식을 하고, 말릴 수 없는 사람들이 함께 아파하고 있을 때, 그것을 이념 전쟁으로 몰아가며 조롱하는 지난한 갈등이 반복되었다. 그때는 정말 상상도 못했다. 1,000일이 넘도록 희생자가 탄압을 받으리라고는... 그 여름에 유가족들 바로 눈앞에 걸린 정호승의 ‘풍경 달다’ 후반부는 그래서 더욱 고마웠다.

운주사 와불님을 뵙고
돌아오는 길에
그대 가슴의 처마 끝에
풍경을 달고 돌아왔다
먼데서 바람 불어와
풍경 소리 들리면
보고 싶은 내 마음이
찾아간 줄 알아라
- 123쪽, 정호승 시인의 ‘풍경달다’ 전문

교황이 찾아오고, 아주 잠깐의 위로가 있은 뒤 소박한 소망으로 북악산을 바라봤지만 부질없는 꿈이었나. 사태가 수습이 안 되는 동안에도 다시 한 번 계절이 바뀌고 황인숙의 시가 걸렸다. ‘어느 날 나무는 말이 없고, 생각에 잠기기 시작한다. 하나, 둘 이파리를 떨군다.’ 교보생명 홍보실에서는 대학생 디자인 공모전 대상 수상작으로 붉은 가을을 표현한 작품을 걸었을 뿐이라고 말했지만 묵언의 힘이 느껴졌다. 다시 계절이 바뀌자 ‘눈이 오는가 북쪽엔, 함박눈 쏟아져 내리는가, 너를 남기고 온 작은 마을에도’ 이용악의 시를 통한 조용한 외침이 함께 했다.

“광화문 사거리 앞을 지나며 글판을 볼 때마다 글판이 가진 무궁무진한 역할에 놀라곤 합니다. 한국의 대표적인 가락이자 문자인 시를 정성껏 선별해 실었다는 느낌을 받아요. 가끔은 한국의 시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제시한다는 생각도 하는데, 그만큼 좋은 시가 많았다는 거겠죠?” 한국시인협회 회장 문정희 시인이 말했다. 한 시민은 그녀의 시가 대한민국의 가장 큰길을 장식하고 있을 때, 사랑하는 선배로부터 그토록 고대하던 프러포즈를 받았노라며 눈송이와 같은 마음으로 행복에 들뜬 추억을 고백했다.

눈송이처럼 너에게 가고 싶다
머뭇거리지 말고
서성대지 말고
- 187쪽, 문정희 시인의 ‘겨울사랑’ 앞부분, 2009년 겨울

가장 인상적인 디자인은 2010년 여름에 걸린 힙합가수 키비의 1집 앨범에서 발췌한 ‘자취일기’의 가사였다. ‘너와 난 각자의 화분에서 살아가지만 햇빛을 함께 맞는다는 것!’ 광화문의 진보성 앞에 시가 전부는 아녔고, 한국의 시인이 전부도 아녔다. 3·1절에 과감하게 걸린 고바야시 잇사의 하이쿠나, ‘봄에 밭을 갈지 않으면 가을에 거둘 것이 없다’는 춘추의 공자님 말씀도 있었다. ‘지금 네 곁에 있는 사람, 네가 자주 가는 곳, 네가 읽는 책들이 너를 말해준다’는 괴테의 명언도 역사가 되었다.

100년 전 여름, 월출산 서쪽에서 나고 자란 대산은 보기 드문 호남출신 자본가다. 초등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으나 ‘배우면서 일하고 일하면서 배운다’, ‘만나는 사람 모두가 스승이고, 보고 듣는 모든 것이 배움의 대상이다’라는 철학으로 스스로의 삶을 개척했다. 해방 후, 전쟁과 가난의 세월을 관통하는 이 땅에 대한교육보험 주식회사를 설립하여 교육과 경제 발전에 큰 족적을 남겼다. 이제, 제일생명사거리라는 옛 지명은 교보타워사거리로 바뀌었으며 그곳에 마치 추모시처럼 천상병의 시가 걸렸을 때, 대산은 하늘로 돌아갔다.

바람에게도 길은 있다
나는 비로소 나의 길을 가느니
길은 언제나 어디에나 있다
- 154쪽, 천상병 ‘바람에게도 길은 있다’ 부분 재편집, 2003년 가을

자동차로 빠르게 지나가는 사람에게 한 폭의 코스모스 길은 한 개의 점에 불과하지만, 천천히 걸어가는 사람에게는 이 가을을 남김없이 담을 수 있는 아름다운 꽃길이 된다고 했다. 엄청난 소음처럼 마음을 어지럽히는 현란한 광고판들의 도시에 보기 드문 선물을 남기고 간 대산의 14주기를 추모한다. 5만년 묵은 카우리 소나무 테이블에 앉아 대산의 자서전을 읽던 나는 402번 버스를 타기 위해 다시 광장을 가로질렀다. 8월의 마지막 날, 광화문 글판에는 아직 소월의 ‘가는 길’이 걸려 있다. 뚝딱뚝딱 새로운 가을 시가 걸릴 내일 아침이 기대된다.

안중찬 ahn0312@gmail.com 주)교보피앤비 기획실장 / 장거리 출퇴근의 고단함을 전철과 버스 안에서 책 읽기로 극복하는 낙관적이고 사교적인 생활인이다. 컴퓨터그래픽과 프로그래밍 분야 11권의 저서와 더불어 IT칼럼니스트로 왕성하게 활동했던 엔지니어 출신으로 한 권의 책에서 텍스트, 필자, 독자 자신을 읽어내는 서삼독의 실천가이다.

(*이 칼럼은 Nextdaily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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