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물안개”낀 앙가라강 건너 이르쿠츠크역
아침 물안개”낀 앙가라강 건너 이르쿠츠크역

시베리아횡단열차는 모스크바와 블라디보스톡간 9288km길이를 달린다. 우리는 이르쿠츠크에서 블라디보스톡까지 4106km 3박4일을 탔다. 2017년 7월 008호 일등석 2인실 소프트베드를 이용했다. 이르츠쿠츠에서 마지막 묵은 호텔이 기대이상으로 좋다. 3층에 대한민국 총영사관이 있다. 리버뷰룸은 새로 리모델링을 마쳐서 욕조와 세면대가 새 거다. 새벽출발하는 손님을 위해서 도시락도 알차게 챙겨준다. 기차시간표에 표시된 시간은 모스크바기준시간이다. 이르쿠츠크와 시차가 5시간이 나서 02시47분 기차는 07시47분까지 승차를 해야한다. 미리 알아보니 기차는 정확하게 29분전에 도착해서 승차 수속을 시작한단다. 한시간 전에 택시를 타고 기차역으로 갔다.

이르쿠츠크역 전광판
이르쿠츠크역 전광판

전광판에 아직 도착플랫폼이 표시되지 않아서 기다렸다. 매점에 가서 커피를 달라고 하니 플라스틱컵에 일회용커피를 타서 준다. 컵이 비닐 여러 장 모은 듯 얇아서 커피의 온도가 손에 그대로 전해져 온다. 뜨겁다.

드디어 플랫폼번호가 떠서 3번 플랫폼으로 갔다. 알혼섬에서 투어할 때 만났던 한국여학생이 있다. 서둘러 나오느라 아침을 못 먹었단다. 호텔에서 싸준 도시락을 나눠주었다. 기차에 타서 기차 안 사정을 알고나서 많이 주지 않은 것이 계속 후회스러웠다. 기차 안에서 사 먹을 것이 많지않다. 승무원이 여권과 대조해서 기차에 태워준다. 29분동안 정차하는 이유를 알듯 하다. 남편은 여권 검사를 마치고도 아쉬운 듯 기차에 바로 타지 못한다. 담배와 잠시 헤어짐을 어찌나 서러워하는지 못봐주겠다. 우리 방은 3호실이다.

2인실
2인실

008호에서 2인실은 10호차 한량이다. 객실은 8개이고 총 16자리다. 기차에 타니 승무원이 우리 방을 새로 세팅하는중이라 복도에서 5분정도 기다렸다. 침대시트와 베개카바 등을 새로 갈아준다. 두평정도의 방에 의자 겸 침대 2개와 가운데 테이블이 있다. 수건도 새로 준비해주고 읽을 수도 없는 오늘의 신문과 슬리퍼 세트를 준다.

객실 안 전기콘센트
객실 안 전기콘센트

전기콘센트가 높이 매달려 있어서 난감하다. 이번 기차여행을 위해서 특별히 전기쿠커를 준비했는데 줄이 짧다. 익스텐션코드를 챙길걸 그랬다. 할수없이 캐리어를 받침으로 놓고 사용했다. 우리가 탄 008기차는 신형과 구형 중간 정도에 해당하는 기차다. 시설들이 대략 깔끔한 정도다.

화장실
화장실

화장실은 일반 기차화장실하고 비슷한 구조인데 수도꼭지를 누르는 동안만 물이 나와서 세수하기도 힘든데 머리감는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샤워실
샤워실

기차 안에는 따로 샤워실이 있어서 돈을 내면 샤워도 가능하다.

기차 내 레스토랑
기차 내 레스토랑

식당칸도 별도로 있다.

레스토랑에서 식사
레스토랑에서 식사

제법 괜찮은 레스토랑분위기다. 2015년산 칠레와인 180ml 쪼매난 병이 한화로 15000원정도다. 플라스틱 잔으로 딱 한잔 나온다. 러시아맥주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편이다

기차 안에 따로 매점은 없고 식당칸 승무원이 빵이나 음식을 들고다니며 판다. 물이나 간단한 스낵류는 기차칸 해당승무원에게 말하면 승무원실찬장에서 꺼내주거나 승무원실앞에 간이로 진열해서 팔기도 한다. 기차칸마다 2명의 승무원이 배치되어 있다. 교대로 일하다가 바쁜 시간에는 같이 일하기도 한다. 우리 칸에서는 캡슐커피까지 판다.

청소기 미는 승무원
청소기 미는 승무원

시간 맞춰 청소기로 청소를 해준다. 승무원 둘이서 수시로 오가며 복도와 객실을 챙긴다. 화장실관리도 잘해줘서 볼일 보는데 불편함이 없다. 4인실과 6인실도 2인실하고 큰 차이없이 깨끗해 보인다. 한국여학생을 찾느라 7호칸으로 갔는데 못 찾았다. 정확한 좌석번호를 모르면 찾기가 어렵다. 방문이 닫혀 있으니 일일이 열어 볼 수가 없어 찾기를 포기했다. 뭐라도 더 먹이고 싶었는데 맘에 걸린다. 좌석번호를 정확히 적어둘걸 그랬다.

복도에서 노는 아기천사들
복도에서 노는 아기천사들

우리 칸에 예쁜 애기 천사가 4명이나 있다. 3명은 복도를 뛰어다니고 한명은 엄마가 안고 다닌다. 뛰어다니는 천사한테 ''ƒ—바스자붓''이라 물었더니 엄마가 타샤라고 대답해준다. 천사 3명하고 노는 것이 재미있었는데 얼마 가지않아 내렸다. 아이들 소리가 들리지 않으니 허전 해진다.

우리 옆방에는 독일 하노바에서 온 부부가 탔다. 기차 안에서 유일하게 영어로 대화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서로 말문이 터져서 오래 대화를 나누었다. 블라디보스톡에서 비행기 타고 일본으로 가서 렌트카로 2주동안 다닐거라 한다. 일본여행이 처음이라는데 용감하다. 일정을 수정해주고 싶은데 전체 일정 숙소 예약을 다해 놓아서 수정하기가 어렵다. 일본자동차 네비사용 팁과 운전에 대해서 알려주고 기타 주의사항들을 알려주었다. 우리가 캄차카갈거라고 했더니 독일주소와 이메일주소등을 적어주면서 나중에 자세한 후기를 보내달라고 한다. 스치는 인연하고는 다음을 기약하지않는 나인데 캄차카정보를 간절하게 원해서 전화번호와 이메일주소를 알려주었다. 독일에도 놀러오라고 한다. 2년동안 살았고 여행으로도 몇 번을 갔었지만 또 가겠다고 했다. 독일에도 아직 못 가본 곳이 많긴 하다. 40대후반인데 여행 취향이 우리하고 비슷해서 기차 안에 머무는 동안 수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기차 벽에 기차시간표가 붙어있다. 모든 시간들은 모스크바시간이다. 정차 역과 정차 시간이 적혀있어서 남편에게 중요한 정보가 된다. 큰 도시에서는 20분이상 정차하는데 남편은 내려서 담배를 핀다. 두대를 연속 피고 올라오는 얼굴에는 애인 만나고 온 듯 희열에 차있다. 기차표를 구입할 때 2인실은 식사 포함이라고 되어있어서 하루3끼를 다 주는 줄 알았는데 아니다. 타자마자 물 2병하고 러시아 콜라 2병하고 간식을 준다. 전체 일정 중 한끼를 서비스로 준다. 남편은 소고기요리를 시키고 나는 생선요리를 시켰는데 먹을만하다. 나머지 끼니는 돈 내고 사먹어야 한다. 기차에 적응하고 나니 더 행복해졌다. 말 통하는 이웃도 있고 창밖에는 내가 꿈꾸던 경치들이 이어진다.

기차에서 본 바이칼호수
기차에서 본 바이칼호수

바다같은 바이칼호수를 지나고 끝없이 펼쳐지는 초원도 지난다. 강을 따라 가기도 하고 강을 건너기도 한다. 멀리 산이 보이기도 한다.

야생화가 만발한 들판도 지난다. 동화처럼 예쁜 동네도 지난다.

하루 종일 비가 창문을 두드리며 낭만을 보태준다. 7월 시베리아의 자연은 같은 듯 다르다. 누군가에게는 지루한 녹색의 연속일지 몰라도 자연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매시간 변하는 모습으로 보인다.

아무리 바라봐도 지겹지가 않다. 일어나서 아침 먹고 샤워하고 캡슐커피를 사와서 음악 들으며 창 밖 경치를 바라보고 있으면 세상 모든 잡념이 사라진다. 졸리면 자고 배고프면 먹고 무념무상에 빠진다.

멍때리기
멍때리기

나처럼 멍 때리기 좋아하는 취향의 여행자에게 적합한 여행이다. 머리 식히고 마음 비우고 가슴채우기에는 최고의 여행이다.

시베리아횡단열차에 대해서는 여행자들의 호불호가 분명하다. 여행 전에 많은 후기를 읽었는데 블라디보스톡에서 이르쿠츠크까지 기차를 타고 왔다가 모스크바까지는 기차표를 취소하고 비행기를 타고갔다는 후기를 많이 읽었다. 어느정도 공감이 간다. 후기에서 가장 불편했던 점이 씻지못해서 괴롭다는 글이었는데 기차 안에 샤워실이 있는 것을 몰랐던 모양이다. 나도 이틀 동안 씻지 못하다가 샤워실을 찾아내서 샤워를 하고 나니 기분이 완전히 달라졌다. 샤워 전과 샤워 후 바깥 경치를 보는 느낌 자체가 다르다. 바이칼에서 만났던 한국사람들도 시베리아횡단열차에 대한 의견들이 각각 달랐다.

덜컹거리고 불편한 여행을 나이들어서 왜 하냐는 말도 있고 6인실 침대에 누워서 밤하늘의 별을 보고 가슴뭉클했다는 감성의 여대생도 있었다. 시베리아횡단열차는 여행자라면 누구나 한번은 꿈꾸는 여행이다. 악몽의 여행이 될지 평생 가슴에 간직할 추억의 여행이 될지는 각자의 몫이다. 세속의 편리함에 젖은 습관은 버리고 타는 것이 시베리아횡단열차를 즐기는 방법이 될 것이다.

허미경 여행전문기자(mgheo@nextdaily.co.kr)는 대한민국의 아줌마이자 글로벌한 생활여행자다. 어쩌다 맘먹고 떠나는 게 아니라, 밥 먹듯이 짐을 싼다. 여행이 삶이다 보니, 기사나 컬럼은 취미로 가끔만 쓴다. 생활여행자답게 그날그날 일기 쓰는 걸 좋아한다. 그녀는 솔직하게, 꾸밈없이, 자신을 보여준다. 공주병도 숨기지 않는다. 세계 각국을 누비며 툭툭 던지듯 쏟아내는 그녀의 진솔한 여행기는 이미 포털과 SNS에서도 두터운 팬층을 확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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