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여행자들이 명심 해야할 수칙이 있다. 이르쿠츠크시내에서 한국인 중년남성 2분을 만났었다. 알혼섬을 다녀왔다길래 여쭤보니 실망했다고 기대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분들은 그럴만도 하다. 알혼섬에 들어와보니 그분들이 묵은 숙소는 경치도 별로인데다 동네에서 멀리 있어서 걸어다니기 힘든 곳이다. 거기다 건조한 날씨에 먼지 풀풀 날리고 산불후유증으로 뿌연 하늘과 먼지나는 북부투어를 했을테니 그럴만도 하다. 물은 하늘을 닮아서 하늘이 아름다워야 호수도 아름다운 법이다.

자유여행자들이 여행정보를 얻을 때 다른 사람의 경험을 많이 읽고 참고한다. 경험담을 읽고 일정을 짤 때는 글 쓴 사람이 언제 여행했는지 어떤 상황인지를 잘 파악해서 일정을 짜야한다. 우리나라 동해만 해도 백명의 후기가 모두 다른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백 사람의 인생이 백 가지 색을 가지듯이 여행 또한 백 가지의 사연을 가진다. 아침 먹는 식당에서 장기투숙 한국인 부부를 만났다. 이제 친해져서 별별 이야기를 다해주신다. 여름에는 바이칼근처에 와서 지내고 겨울에는 물가싼 동남아로 가신단다.

요즘 부쩍 그런 생활패턴의 은퇴생활자를 많이 만난다. 내가 동남아 실버빌리지를 포기한 이유도 그래서이다. 한달에 3천불정도면 편안하게 지낼 곳이 세상에 많다. 굳이 한곳에 정착할 필요가 없다. 아직은 남편이 돈을 벌고 모아놓은 돈도 있으니 하고싶은 것 다하고 잘자고 잘 먹고 다닌다. 일 안하고 돈도 궁해지고 체력도 떨어지면 물가싸고, 경치좋고, 인심좋은 곳에 가서 우리도 장기투숙자로 지내며 살까싶다. 많이 돌아다닌 덕분에 머리 속에는 살고 싶은 곳이 많다. 대출받아서 현재를 누리고 살거나 미래를 위해 재산을 움켜쥐고 살수도 있다. 하지만 재산이라는 것은 모래 같아서 쌓아 올리거나 움켜쥐는 것이 부질없다. 몸 건강하고 즐길 수 있을 때 다양한 체험을 하고 경험하는 것이 나와 남편은 큰 재산이라 생각한다.

체크아웃하면서 매니저에게 물었다. 우리 방이 제일 좋은 방 인줄 알았는데 우리 윗층이 발코니도 좋아보이고 전망도 더 좋아보이는데 얼마냐고 물었다. 그 방은 외교관이나 정부 관련 관계자만 묵을 수 있단다. 완성된 지 2주된 방인데 나중에 일반에게 공개할 수도 있을거라 한다. 같은 전망의 유럽풍 방에 묵은 걸로 만족하기로 했다.

이르쿠츠크로 나가는 것은 차를 대절했다. 시간을 절약하고 편하게 가고싶어서다.
기사는 짧은 영어 한두 마디 하는 정도다. 알렉산더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애칭은 샤샤라고 한단다. 차는 낡아 보이는데 잘 달린다. 알혼섬 관광포인트마다 서면서 이름을 말해준다. 샤샤가 말해주는 지명은 오른쪽 귀로 들어와서 흔적도 안 남기고 왼쪽 귀로 빠져나간다. 이 망할 기억력이다.

선착장에서 바지선 탑승
선착장에서 바지선 탑승

선착장에 도착하니 러시안짚차 2대가 오더니 한국사람들이 잔뜩 내린다. 한국 유명 여행사 단체관광객들이다. 러시안짚차는 사람들을 내려주고 다시 섬 안으로 돌아간다. 한국관광객 대부분 내 나이보다 더 들어보인다. 알혼섬투어가 힘들었다고 하소연하신다. 우리는 비 온후 아름다운 바이칼을 봤으니 행운이라고 달래 드렸다. 러시안짚차 타고 비포장을 달린 것이 힘드셨던 모양이다.

바지선에 차를 싣고 우리도 탔다.

육지도착
육지도착

바지선은 2킬로정도 달려서 우리를 육지에 내려준다. 한국단체관광객들은 준비된 버스로 갈아탄다.

이르쿠츠크로 가는 길
이르쿠츠크로 가는 길

우리는 샤샤의 차에 올라타고 이르쿠츠크를 향해 달렸다. 알혼섬 들어갈 때는 7시간넘게 걸렸던 길을 5시간만에 돌아왔다. 4배나 비싼 대가를 치렀지만 편하고 시간을 아끼니 돈 쓴 보람이 있다. 말도 안 통하는 샤샤가 날 안아주며 작별인사를 한다.

호텔 도착
호텔 도착

체크인을 하려했더니 방 청소가 아직 안되었단다. 점심시간을 훌쩍 넘겨서 배가 고프다. 호텔 레스토랑으로 갔다. 오물(Omul)요리 되냐고 물으니 안된단다. 오물은 바이칼호에서 잡히는 생선 중의 하나다. 이르쿠츠크에서는 중앙시장에서 생물이나 훈제나 반 건조를 사는 수밖에는 없단다.

리스트비얀카에 가야하는데 바이칼을 실컷 보고 차를 5시간이나 타고 왔더니 의욕이 없다. 왕복 3시간이나 차를 타고 오물을 먹으러 가고 싶지는 않다.

호텔레스토랑에서 대충 이것저것 시켜 먹었다. 맛은 그냥저냥이다. 러시아음식이란것이 점점 개성도 없고 국적 불명이 되어가는 느낌이다. 예전에는 기름져서 괴로웠는데 관광지라 퓨전식이 되어 그런지 먹을만하다. 점심 먹고 리셉션으로 가니 방 열쇠를 준다.

앙가라강이 보이는 호텔방 전망
앙가라강이 보이는 호텔방 전망

앙가라강이 잘보이는 리버뷰룸으로 예약한 보람이 있다. 탁 트인 전망과 넓직한 방이 맘에 딱 든다. 오래된 국영호텔이지만 리모델링을 했는지 깔끔하다.

앙가라강 건너 기차역
앙가라강 건너 기차역

앙가라강 너머로 기차역이 보인다.

강변공원
강변공원

짐을 풀고 산책 삼아 강변을 따라 걸었다.

손 흔드는 신부
손 흔드는 신부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가 아름답다. 지나가는 차들이 축하한다고 경적을 울려주고 신부가 화답한다. 보는 우리까지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중앙시장 가는 길
중앙시장 가는 길

며칠 전 비 맞으며 걷던 길을 걸어서 중앙시장으로 갔다.

오물
오물

오물을 한번은 먹어봐야 할 것 같아서 일단 샀는데 우리 취향은 아닌 듯싶다. 과일말린것도 사고 과일도 샀다. 내일 기차 탈 준비를 마쳤다.

이르쿠츠크 1위 맛집
이르쿠츠크 1위 맛집

저녁을 먹으러 이르쿠츠크 1위 맛집으로 갔다. 1위 맛집이 일식집이다. 스시와 우동을 시켰다. 와인도 시켰다. 옆 테이블에 어제 알혼섬 북부투어를 같이했던 여학생 둘이 앉아있다. 너무 반갑다. 어제 짜장떡볶이파티에 못 불러서 미안했는데 잘 만났다. 저녁 값을 내가 냈다. 한사코 사양하는데 내 딸 같아서 그냥 헤어질 수가 없다. 고마워하면서 마카다미아를 선물로 준다. 큰돈도 아닌데 너무 고마워하니 오히려 민망하다. 헤어지면서 서로 건강과 무사하기를 빌어주었다. 호텔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경쾌하다.

공원
공원

이르쿠츠크시내에는 크고 작은 공원들이 많다.

목조가옥
목조가옥

창문이 예쁜 목조 가옥도 많다.

가로수 길
가로수 길

키 큰 가로수들이 늘어선 모습이 아름답다. 도시를 걷는 것이 힐링산책이 된다.

호텔입구에서 결혼식이 진행중이다. 호텔 레스토랑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모양이다.

방으로 와서 씻고 쉬는데 앙가라강너머로 해가 진다. 기차역에서는 기차가 떠나간다. 해가 넘어가고 하늘이 점점 붉게 물들다. 이르쿠츠크의 마지막 밤이 깊어진다.

허미경 여행전문기자(mgheo@nextdaily.co.kr)는 대한민국의 아줌마이자 글로벌한 생활여행자다. 어쩌다 맘먹고 떠나는 게 아니라, 밥 먹듯이 짐을 싼다. 여행이 삶이다 보니, 기사나 컬럼은 취미로 가끔만 쓴다. 생활여행자답게 그날그날 일기 쓰는 걸 좋아한다. 그녀는 솔직하게, 꾸밈없이, 자신을 보여준다. 공주병도 숨기지 않는다. 세계 각국을 누비며 툭툭 던지듯 쏟아내는 그녀의 진솔한 여행기는 이미 포털과 SNS에서도 두터운 팬층을 확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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