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사꽃이 피었다고 일러라. 살구꽃도 피었다고 일러라. 너이 오오래 정드리고 살다 간 집, 함부로 함부로 짓밟힌 울타리에, 앵도꽃도 오얏꽃도 피었다고 일러라. 낮이면 벌떼와 나비가 날고 밤이면 소쩍새가 울더라고 일러라.

다섯 뭍과, 여섯 바다와, 철이야, 아득한 구름 밖 아득한 하늘가에 나는 어디로 향을 해야 너와 마주 서는 게냐.

달 밝으면 으레 뜰에 앉아 부는 내 피리의 서른 가락도 너는 못 듣고, 골을 헤치며 산에 올라 아침마다, 푸른 봉우리에 올라서면, 어어이 어어이 소리 높여 부르는 나의 음성도 너는 못 듣는다.

어서 너는 오너라. 별들 서로 구슬피 헤여지고, 별들 서로 정답게 모이는 날, 흩어졌던 너이 형 아우 총총히 돌아오고, 흩어졌던 네 순이도 누이도 돌아오고, 너와 나와 자라난, 막쇠도 돌이도 복술이도 왔다.

눈물과 피와 푸른 빛 깃발을 날리며 오너라……. 비둘기와 꽃다발과 푸른 빛 깃발을 날리며 너는 오너라…….

복사꽃 피고, 살구꽃 피는 곳, 너와 나와 뛰놀며 자라난 푸른 보리밭에 남풍은 불고, 젖빛 구름, 보오얀 구름 속에 종달새는 운다. 기름진 냉이꽃 향기로운 언덕, 여기 푸른 잔디밭에 누어서, 철이야, 너는 늴늴늴 가락 맞춰 풀피리나 불고, 나는, 나는, 두둥싯 두둥실 붕새춤 추며, 막쇠와, 돌이와, 복술이랑 함께, 우리, 우리, 옛날을 옛날을, 딩굴어 보자.

감상의 글

79년. 이 숫자는 일본제국의 존속 기간인데, 1868년 메이지 유신부터 1947년 일본국 헌법이 발효되기까지의 기간을 말한다. 일본제국은 메이지 유신 이후 서구 문명을 잘 받아들여 국회를 개설하고 공업을 발흥시켜 경제적으로 큰 발전을 이룩하였다. 그렇게 해서 자기들만 잘 먹고 잘 살면 좋은데, 엄청 더 잘 살려다 보니 주변 국가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끼쳤다. 서구 문명을 받아들이면서 ‘제국주의’도 함께 들여온 것이다. 이 제국주의에 대한 야망은 인접한 우리나라에 큰 피해를 주었다. 일본은 우리나라를 주권국가로 보지 않고 하나의 ‘마켓’으로 본 것이다.

일본은 동학농민운동에서 비롯된 청일전쟁에서 승리하여 청나라 세력을 한반도에서 몰아낸다. 이후 명성황후 시해 이후 국제적 비난과 러시아 세력 등에 밀려 입지를 상실하게 된다. 하지만 한반도에 대한 권익과 관련한 러시아와의 협상이 잘 되지 않자 러시아에 선전 포고를 하고 러일전쟁에서 승리한다. 승전 이후 한반도의 주도권은 자연스럽게 일본이 쥐게 된다. 청나라도 물러가고 러시아도 입막음을 하고 미국과 영국의 지지까지 등에 업었으니 한반도는 무주공산이 된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약소국이나 패전 국가는 케이크의 한 조각처럼 여기저기서 나눠 갖는 상품이 되고 만다.

일본은 이후에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는 을사조약을 맺고, 급기야 1910년에 양국을 병합하고 조선을 통치하게 된다. 일제강점기에 한국은 그야말로 일본의 철저한 ‘식민지’였다. 병합 이후에 강력한 헌병과 경찰력을 앞세워 한국인을 탄압하였다. 독립운동을 꾀하려는 한국인들을 잡아다가 무자비한 고문을 가하고, 토지조사사업을 명분으로 전국토지의 약 40%를 약탈하였다. 일본은 토지만 약탈한 게 아니라 한국산 쌀도 약탈하여 일본으로 보냈다. 당시 일본측 기록에도 한국인의 50%는 춘궁기에 초근목피한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사정이 이러하니 살 길을 찾아 간도나 연해주 등 해외로 떠나게 된 것이다.

이렇게 힘든 시기를 보낸 한국인들은 일본의 침략전쟁으로 인해 또다시 많은 희생을 당한다. 1931년 만주사변, 1937년 중일전쟁, 1941년 태평양전쟁 등 침략전쟁을 수행하는 과정에 물자와 인력이 부족하자 한국에 있는 물자와 인력을 강제로 동원하여 전쟁에 투입한다. 이때 당시 수많은 한국인들이 일본이나 점령지의 탄광, 공장, 비행장 등의 공사 현장으로 강제로 징용당했다. 하근찬의 소설 ‘수난이대’의 인물인 ‘만도’의 한쪽 팔도 이 공사 현장에서 잃게 된 것이다. 또한 수많은 남성들이 징병으로 끌려가서 전사하거나 다치거나 행방불명이 되고 만다. 그리고 많은 여성들이 ‘종군위안부’로 끌려가서 말 못할 고생을 하게 된다. 일제강점기 전 기간에 걸쳐 상당수의 한국인들이 정든 삶의 터전을 떠나 각지로 떠나게 된다. 오죽 살기 힘들면 정든 고향을 떠났겠는가.

박두진의 ‘어서 너는 오너라’는 해방 직전에 창작된 후 해방 이후에 발표하였다고 한다. 이 시를 읽으면 감정이 점차 고조되는 느낌이 든다. 잦은 쉼표, 반복법, 의성어와 의태어를 사용한 까닭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우리 민족이 공유하는 아픔 때문일 것이다. ‘오래 정든 집’을 떠나 오대양 육대주로 흩어진 우리 민족들에게 어서 와서 옛날처럼 공동체의 정을 나누며 살자고 말한다. 복숭아꽃, 살구꽃, 앵두꽃, 배꽃이 옛날처럼 피었고, 순이, 누이, 막쇠, 돌이, 복술이도 왔으니 ‘철이’ 너도 어서 와서 옛날처럼 푸른 잔디밭에서 춤도 추고 뒹굴어 보자고 한다. 너와 내가 뛰놀며 자라난 곳에서 말이다.

최성원 기자 ipsi1004@nextdaily.co.kr 시인이자 칼럼니스트. 시집으로 「천국에도 기지국이 있다면」이 있다. 현재 서울 동부이촌동에서 국어와 논술을 가르치고 있으며, 저서로는 「7일 만에 끝내는 중학국어」 등이 있다. 또 ‘하얀국어’라는 인기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시와와(詩와와)’는 ‘시 시(詩)’에 ‘와와(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웃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떠들어 대는 소리나 모양)’를 결합하였다. 시 읽기의 부흥이 오기를 희망한다. 100편의 시를 올릴 계획이다. 걷기와 운동, 독서와 집필, 사람 만나는 것, 그리고 야구를 좋아한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넥스트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