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라는 글자를 칠판 한 가운데에 커다랗게 쓰신 선생님은 ‘사람’으로도 읽어도 무방하다 말씀하셨다. ‘삶’이란 ‘사람’의 준말이고 우리의 삶은 사람과의 만남이며, 일생 동안 경영하는 대부분이 사람과의 일이기 때문에 좋은 사람을 만나고 스스로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자신의 삶과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만들어가는 일이라 강조하셨다. 그렇게 배운 마음가짐의 고백으로 상대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면 금상첨화가 아니겠는가. “당신과 함께라면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나와 결혼해줄래?”와 같은...

만남은 현실만으로 제한을 둘 필요가 없다. 좋은 만남은 만남의 진실성을 바탕으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할 수 있다. 옛 사람의 흔적이나 문학을 통해서 채워갈 수 있는 만남은 현실을 예습할 수도 있으며, 사색을 통해 자기 객관화의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대하소설을 통해 한 인물의 생로병사를 짚어가는 과정으로 인생을 배울 때도 많다. 우리의 옛 전래동화처럼 인과응보나 권선징악의 짜 맞춰진 틀이 아니라 때로는 허무하게, 때로는 비참하게, 때때로 기쁨을 맛볼 수도 있는 이야기와 관계를 통해 사실 그 이상의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들이 수없이 되풀이된다.

카자흐, 코사크, 카자크 등으로 불리는 농민집단은 터키어로 ‘자유인’을 의미한다. 유목민이었던 그들의 조상은 500년 전 러시아 중앙부에서 남방 변경지대에 뿌리를 내리고 자치적인 군사공동체를 형성하고 살았다. 근대화의 첫발로 러시아는 농노해방을 단행하지만, 수십 년 간 지속된 극심한 경제공항은 그들 해방된 농노들의 자유에 아무런 희망을 주지 못한다. 자유는 있으되 생활이 나아지지 않는 민초들의 애환이 곪아터진다. 제1차 세계대전이 종반으로 치닫던 시절에서 러시아의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바로 그 핵심을 관통하는 사건인 것이다.

가래로도 일구지 않았네, 그 이름도 드높은 우리의 땅은······
이름 높은 이 땅은 말발굽으로 일구어지고
이름 높은 이 땅에 뿌려진 것은 카자흐 머리
고요한 돈강을 수놓는 것이 과부라면 아버지인 돈강을 메우고 피는 건 고아들
아, 돈강 물결은 아버지 어머니의 눈물로 넘치네

오, 우리들 아버지 고요한 돈강
오, 고요한 돈강 어이하여 흐린 물결 흐려서 흐르는가?
아, 고요한 돈강 어이하여 물결 흐림 없이 흐를 수 없는가!

우리 돈강 물결 밑바닥에서 차가운 맑은 물이 솟아 나는데
우리 돈강 강물에 사는 은빛 물고기가 물 흐려 놓네.
(9쪽, 카자흐 노래)

이 소설의 공간적인 배경은 남러시아 돈강 유역의 카자흐 마을 타타르스키로 작가의 고향이다. 시간적인 배경은 러시아 혁명기라고 할 수 있겠다. 러시아의 근대화는 19세기 중반 크림전쟁에서 패전국이 되면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프로코피 멜레호프는 크림전쟁이 끝나고, 귀향 하면서 터키 여자를 아내로 맞아 데리고 왔다. 그렇게 카자흐와 터키인의 피가 섞여 판테레이가 탄생했다. 판테레이는 일리니치나와 결혼하여 페트로, 그리고리, 두냐시카를 낳았다. 다리야는 그의 첫 번째 며느리가 되었고, 억척스럽게 살아가는 그 가족의 이야기는 흥미진진하다.

차남 그리고리는 키 크고 잘 생긴데다 겁이 없는 청년으로 이웃집 스테판의 아내 아크시냐와 불타는 사랑에 빠진다.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아버지 판테레이는 친구인 미론 그리고리에비치의 맏딸 나탈리야를 며느리로 맞아 둘째 아들을 강제로 결혼시킨다. 다혈질의 그리고리는 마누라에게 별다른 감정을 느끼지 못하다가 그새를 못 참고 아크시냐를 부추겨 함께 달아난다. 그들의 애정 도피는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의 대지주인 리스트니키 집안의 하인이 되는 것으로 정착하는 듯싶었으나 오래지 않아 제1차 세계대전에 그리고리가 강제 징집되며 위기를 맞는다.

“가축에 짓밟힌 밀은 다시 일어난다. 짓밟혀 땅바닥에 쓰러졌던 줄기는 이슬을 맞고 햇볕을 받아 다시 일어난다. 처음에는 힘겨운 짐을 진 사람처럼 구부정하지만, 이윽고 똑바로 서서 머리를 치켜든다. 태양은 다시 전처럼 그것을 비추고, 바람 또한 옛날처럼 흔들어 준다······ 밤마다 정신 없이 남편을 애무하는 아크시냐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녀의 마음 속에서는 증오가 커다란 사랑과 서로 뒤얽혀 있었다. 그녀는 그 파렴치한 짓을 한 번 더 해주리라, 전의 그 부정한 짓을 다시 해 주리라 생각했다. 사랑의 기쁨도 슬픔도 모르는 천진한 나탈리야 코르슈노프의 손에서 그리고리를 도로 빼앗아 오리라고 결심했다.” (117쪽)

그리고리가 산전수전 다 겪으며 진정한 사나이로 거듭나는 동안, 어린 딸을 성홍열로 잃고 외로움을 견디지 못한 아크시냐가 주인집 아들 에브게니의 유혹에 굴복한다. 전쟁에서 돌아온 그리고리는 그 상황에 열 받아 두 사람에게 거친 폭력으로 응징을 가한 뒤, 관계에 짜증이 나서 본처인 나탈리야를 다시 찾게 되고 새롭고 평온한 사랑으로 가정을 이룬다. 불행하게도 러시아혁명은 내전을 불러일으켰고 그 짧은 평화가 끝난다. 카자흐들은 혁명군을 맞아 전투부대를 편성하게 되며, 이미 전쟁에서 인정받은 용맹스런 그리고리를 반혁명군 부대장으로 추대한다.

칼미코프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이 칼자루 끝에 달린 끈을 만지작거리다가 말했다. “우리는 사실 장기의 말에 불과해, 말은 사람의 손이 자기를 어디에 놓아줄지 모르는 거야······ 예를 들면 나 같은 건 본부에서 무얼 하고 있는지 짐작조차 안가네. 다만 내가 알고 있는 것은 군 상층부 사이에, 즉 코르니로프, 루콤스키, 로마노프시키, 크리모프, 데니킨, 칼레딘, 에르델리, 그 밖의 많은 사람들 사이에 묵계와 뭔가 이야기가 진전되고 있는 듯 하다는 것 뿐이네······” (611쪽)

체질이 평화주의에 가까워 누구 편도 들고 싶지 않은 마음에 부대장 자리를 고사하는 그리고리를 대신하여 그의 형 페트로가 부대장이 되지만 반혁명군은 거듭된 전쟁에 환멸을 느껴 별다른 저항도 해보지 않은 채 도망만 다니고, 그리고리 또한 본의 아니게 혁명군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 타타르스키 마을에서 당 세포조직을 만들다 체포되었던 전력이 있는 독일인 볼셰비키 슈토크만은 제8적군 정치부원으로 돌아와 마을 사람들을 공포에 몰아넣는다. 슈토크만은 예전에 자신이 키웠던 미시카 코셰보이, 이반 알렉세에비치 등을 조정하여 반혁명분자를 색출하게 하고, 이러한 와중에 그리고리의 장인 미론 코르슈노프와 형 페트로가 처참한 죽음을 맞는다.

“부엌에는 죽음의 정적이 가라앉아 있었다. 이상하게 작은데다 너무나 마른 페트로가 침상 위에 누워 있었다. 코는 구부려졌고 갈색 입수염이 거무죽죽하게 되어버렸지만 얼굴 전체에 슬픈 빛이 어려 무척 아름답게 보였다. 아랫부분을 잡아맨 바지 밑으로 털북숭이 맨발이 비죽이 나와 있었다. 몸의 얼음이 차츰 녹기 시작하자, 몸뚱이 밑에 장밋빛 물 웅덩이가 생겼다.” (1146쪽)

죽은 형의 뒤를 이어 반혁명군을 이끌게 된 그리고리의 분노는 하늘을 찌른다. 적군을 향한 그의 분노는 불타지만 무고한 민간인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노력하며 전쟁에 임한다. 하지만, 현실은 자꾸 그의 의지를 꺽고 꼬여 가기만 한다. 동족상잔의 아픔이란 바로 그런 것이었다. 볼셰비키, 왕당파, 중도파 그 누구에게서도 믿음을 기대할 수 없을 만큼 비참한 현실에 절망하고 고통스러워하는 그리고리는 결국 삶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게 되며, 그 해답으로 사랑을 생각하기에 이른다. 동족상잔의 고통 속에서 믿을 건 사랑뿐인가?

그리고리는 추억한다. 실패한 옛사랑을 추억한다. 그 무렵 아크시냐는 에브게니에게서 버림받고 전 남편 스테판과 그럭저럭 살아가려고 노력 중이었다. 스테판은 제1차 대전의 전쟁포로로 독일군에 잡혀갔다 어느 정도 재산을 갖고 돌아와 그녀를 다시 찾은 순애보로 이 소설을 대표하는 성실하고 불쌍한 캐릭터 중에 한 사람이다. 스테판에게 만큼은 잔인하디 잔인한 인물 그리고리는 꺼져가는 아크시냐를 부추겨 그녀의 마음에 다시 불을 지피고 말았다.

임신한 상태에서 이러한 사실을 알고 다시 충격에 빠진 나탈리야는 낙태를 시도하다가 죽음에 이르고, 아내의 죽음에 충격을 받아 괴로운 그리고리는 더욱 방황을 하게 되며 그리고리가 속한 반혁명군의 패색은 더욱 더 짙어만 간다. 이제 모든 현실이 짜증나고 싫어진 그리고리는 오로지 사랑을 위해 아크시냐와 떠나지만 아크시냐가 티푸스로 생사를 오가게 되자 불가피한 상황에서 그녀를 남에게 의탁하고 혼자서 떠난다. 누가 옳은지도 알 수 없는 민족의 고통스런 전쟁통...

“돈의 수면은 바람을 받아 거품을 일으키고, 암록색의 물결이 서쪽을 향해 달려 갔다. 그 물결은 물이 고인 곳이나 물가에 덮인 투명한 살얼음이 가장자리를 두들겨 부수고, 비단실 같은 물풀의 녹색 송이를 흔들어댔다. 물가에서는 얼음 덩어리가 서로 부딪쳐서 일으키는 맑은 소리가 울려 퍼지고 물가의 자갈이 물에 씻기며 자르르자르르 부드러운 소리를 냈으나, 물결이 빠르고 단조로운 강의 중심부에서는 그리고리의 귀에 거룻배의 좌현에 떼지어 몰려드는 물결이 일으키는 물방울의 공허한 소리와 단속적인 물결의 수면을 때리는 소리와 돈강을 따라 숲속을 지나가는 그칠 줄 모르는 낮고 굵고 둔한 바람 소리만이 들려 왔다.” (1813쪽)

자신이 어느 편인지 그 소속도 혼란스러운 전쟁 중에 이편저편을 오가던 그리고리는 그의 전력을 문제 삼은 혁명군에서 강제 전역을 하게 되고, 오로지 평범하게 살려는 일념으로 귀향을 단행한다. 방황이 끝나는 시절이 찾아왔으니 이제 행복해질 만도 한데... 현실은 결코 평범하게 살도록 놓아두지는 않았다. 형 페트로를 죽인 원수이자 옛 친구인 미시카가 자신의 귀여운 여동생 두냐시카를 아내로 맞아 매제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념적인 문제로 매제에게 쫓기는 그리고리는 차오르는 흥분으로 창백해지면서 오랫동안 고향 마을을 바라보다 떠난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반혁명 게릴라부대에 잡혀 다시 한 번 전투에 참여하게 되는 그리고리는 전쟁을 초월하여 오로지 아크시냐와의 재회만을 꿈꾼다. 그렇게 두 사람은 극적으로 재회하지만 총알 하나가 사랑하는 아크시냐의 숨을 끊어 버린다. 누구 편의 총알인지 그런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저 절망의 사나이가 삶의 모든 것을 잃어버린 듯 절규하고 있었다. 산송장이 되어 살아가는 그에게 남겨진 단 하나의 꿈은 어찌할 것인가.

숄로호프의 할아버지는 카자흐 이주 1세대로 농축업에 종사했는데, 집안의 하녀였던 여자와 사랑에 빠진 아들을 강제로 결혼 시켰다. 첫사랑을 잊지 못한 아들은 자신의 가정부로 데려와 곁에 두었고, 그녀의 남편이 죽자 정식으로 청혼하며 잃어버린 사랑을 되찾았다. 그렇게 태어난 숄로호프는 열다섯에 참전하여 경험을 쌓았고, 모스크바로 진출해서 하역, 석공, 교사로 일하는 동안에도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약관의 나이에 귀향한 그가 무려 15년 동안 집필한 대작 ‘고요한 돈강’은 자신의 부모를 연상 시키는 주인공을 내세웠다.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로 대변되는 19세기 러시아 문학들과 달리 숄로호프의 이야기는 경쾌하다. 뛰어난 재능과 강인함에도 불구하고, 전쟁과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적군(赤軍)과 백군(白軍) 사이를 전전하며 정체성에 혼란을 가진 주인공의 기구한 삶을 뚜벅뚜벅 이끌어 간다. 광활한 남부 러시아에서 다양한 신분의 사람들이 얽히고설킨 관계를 통해, 카자흐 인들의 생활상을 장엄한 서사로 풀어냈다. 돈 강 유역의 사투리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는 자신의 장점을 적극 활용하여 1940년 스탈린상, 1960년 레닌 문학상, 1965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러시아가 지금의 달력을 쓰게 된 볼셰비키 혁명 100주년에 읽는 그 시절의 이야기는 감동이 넘친다. 마치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연상시키는 이야기는 동족상잔이라는 민족적인 비극이 혁명과 이념으로 버물려 지고 잘 포장되어 역사를 타고 흐른다. 그 내면에 감춰진 왜곡된 우정, 가족애와 거친 사랑에 울고 웃으며 가끔씩 소개되는 시처럼 노래하는 장면들에서 리듬을 타며 읽었다. 30년 전 번역이라 시대를 쫓아오지 못한 일부 문맥들이 거슬렸으나 부드러운 문체에 편집자들을 향한 고마움이 들었다.

폭우가 쏟아지던 밤 꿈을 꿨다. 평소에 미워하던 사람과 싸우다 실수로 그를 죽이고 도망 다니는 악몽을 꾸었다. 후회 가득한 절규와 함께 식은땀을 흘리며 깨어난 새벽은 깊은 안도의 시간이었다. 가슴 쓸어내리며 꿈을 통해 삶과 사람에 대해 더 많은 고민을 했다. 숄로호프를 읽는다는 것도 꿈을 꾸는 과정과 같은 몰입을 선물했다. 그리고리를 읽고, 숄로호프를 읽고, 갈등하는 현실 속의 나를 읽었다. 돌이킬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지기 전에 아찔한 상상력으로 버틸 수 있는 힘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어렴풋이 나는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읽었다.

안중찬 ahn0312@gmail.com (주)교보피앤비 기획실장 / 장거리 출퇴근의 고단함을 전철과 버스 안에서 책 읽기로 극복하는 낙관적이고 사교적인 생활인이다. 컴퓨터그래픽과 프로그래밍 분야 11권의 저서와 더불어 IT칼럼니스트로 왕성하게 활동했던 엔지니어 출신으로 한 권의 책에서 텍스트, 필자, 독자 자신을 읽어내는 서삼독의 실천가이다.

(*이 칼럼은 Nextdaily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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