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토요일에 차 없는 광화문에 갔다. 처음으로 교통 통제된 광화문이 넓게 느껴지고 여유 있고 즐겁게 걷는 시민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걸으면서 ‘걷자, 서울’이라는 표어가 행사용 임시 무대의 배경에 써 있어 서울시가 주최한 행사인줄 알았다.

그 후에 ‘걷자, 서울’이라는 말이 자꾸 떠올랐다. 최근 서울역 고가 도로에 새롭게 탄생한 ‘서울로7017’와 같은 맥락에서 오랫동안 철도와 도로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걷기 어려웠던 서울이 걷기 좋은 지역으로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이 생긴다. 서울로7017은 높게 위치해 있어 전망이 좋아 서울역에 가면 걷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얼마 전에도 서울역에서 약속이 있었는데, 서울로7017을 걷고 싶어 회현역에서 내려 서울역까지 걸었다.

그런데 서울로7017, 광화문의 교통 통제로 서울이 걷기 좋은 도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도시 한복판에 있어 이 길을 걷고 싶다면 시내에 나와야 가능하다. 물론 서울역과 광화문은 유동 인구가 많아 쉽게 모일 수 있는 곳이며 2005년에 복구된 청계천은 유동 인구가 많은 것보다 길어서 중간에 접근하기 쉽다. 그런데 공통점은 인구 밀도가 높은 주택과 멀어서 그 곳으로 일부로 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걷기 좋은 서울을 논하기 전에 서울의 역사와 현실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현재 서울은 워낙 큰 메가도시라 다른 메가 도시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서울은 역사적으로 메가 도시가 아니었다. 조선 시대 한양은 인구가 크지 않은 왕이 사는 수도였으며 베이징과 교토와 비슷한 고도(古都)였다. 베이징의 인구와 규모가 더 컸지만, 한양의 인구는 교토와 비슷했다.

서울을 고도로 생각하면 역사적 도심이 중요한데 그것은 바로 사대문 안에 있는 지역이다. 베이징과 교토도 비슷한 역사적 도심이 있다. 그런데 역사적 도심은 도심인 만큼 20세기 초에 근대화를 상징하는 건물이 들어오고 도시가 상업을 중심으로 발전해오면서 오래된 도시 경관이 점차 사라지고 지금은 한정된 ‘역사 보존 지역’ 외에는 예전의 모습은 사라졌다.

그런데 사대문 안이 역사적 도심이었다면 도성 외의 지역은 무엇일까? 한양과 거래하는 상인과 농민이 주로 살았지만, 한양에 비해서 인구 밀도가 낮아 도시화 지역은 아니었다. 20세기 초부터 점차 도시화되고 1970년대 이후 고도 경제 성장으로 인해서 폭발적으로 도시화 되어 그 후에 경기도에 퍼져 현재 인구가 2천 5백만 명의 수도권이라는 메가 도시가 형성되었다.

그래서 서울과 경기도에 인접한 도시 지역은 크게 보면 세 도시가 있다. 하나는 한양도성 안에 있는 고도, 그 주위에 20세기 전반에 일제 감정기에 개발된 도시, 그리고 20세 후반에 개발된 커다란 메가 도시이다.

이 세 도시는 각각 다른 시기에 개발이 되었지만, 고도만 걷는 도시였다. 일제 감정기에는 주로 도로와 철도 중심으로 개발이 되었고 20세기 후반의 메가도시는 도로 중심으로 개발이 되었다. 그래서 서울에서 원래 걷기 좋은 지역은 사대문 안이고 그 외의 지역은 전반적으로 걷기 좋지 않다.

서울을 걷기 좋은 도시로 만들려면 사대문 안에 원래 걷기 좋은 환경을 복구해야 하며 걷기 좋지 않은 지역을 걷기 좋게 만들어야 하는 막대한 작업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청계천 복구와 서울로7017은 좋은 시도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어려움도 간과할 수 없다.

청계천과 서울로7017은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를 재활용한다는 것에서 출발했다. 토지가 이미 공공 소유였기 때문에 용도만 바꾼 것이다. 이 도로를 이용하는 상인과 주민이 많아서 반대도 많았지만, 서울시 전체의 공익을 생각해서 사업을 시작하게 됐고 마무리가 되었다.

사대문 안에 좁은 길을 걷기 쉬운 길로 만들려면 주말에 인사동에서 하는 것처럼 교통을 통제하는 것이 제일 좋다. 주말뿐 아니라 주중에도 교통을 통제하면 도시가 점차 걷는 도시 위주로 변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하면 고도의 역사성을 살릴 수도 있다.

그런데 상시 교통을 통제하면 청계천과 서울로7017처럼 상인과 주민이 반대할 수 있고 실제로 불편을 느낄 수 있다. 대신 인사동이나 광화문 광장 그리고 옛날 대학로처럼 주말에만 교통을 통제하면 효율적일 것이다. 현재 인사동의 교통 통제를 인접 골목길로 시범으로 확대하는 것도 좋다. 적은 예산으로 보행로를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이다.

사대문 안에 비하면 커다란 메가도시를 걷기 좋은 도시로 만드는 것은 더욱 어렵다. 주택가는 주로 아파트 단지와 다가구 주택 밀집 지역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아파트 단지 내에서 법적으로 필요한 녹지를 확보하고 있다. 이 녹지는 걷는 공간보다 쉬는 또는 노는 공간이다. 아파트 단지가 주변과 단절이 있어서 걷기 좋지 않은 경우가 많다.

다가구 주택이 밀집 지역에는 집을 작은 필지에 지었기 때문에 녹지가 부족하고 걷기가 아주 어렵다. 특히 1990년대에 급히 단독주택에서 다가구 주택으로 변한 지역은 도로가 좁아 걸을 수 있는 공간이 거의 없다.

대부분의 서울 시민은 아파트 단지나 다가구 주택 밀집 지역에 살고 있어 이들 동네들이 걷지 좋은 상황은 아니다. 즉 서울은 ‘걷기 나쁜’ 도시이다. 사대문 안의 지역을 예쁘게 꾸며도 많은 시민들이 사는 지역을 걷기 좋은 동네로 개선하지 않으면 ‘걷자, 서울’은 많은 시민에게는 별 의미가 없다.

고도 서울은 아직 과제가 남아 있지만 2000년대부터 서울시의 노력으로 걷기 좋은 도시화 되어 가고 있다. 반면 많은 시민이 사는 메가도시 서울은 여전히 걷기 나쁜 도시이다. 이 넓은 지역을 점차 걷기 좋은 도시로 만드는 것은 쉽지 않은 장기적인 작업이지만, 서울 시민의 생활의 질을 높이는 데에 도움이 많이 될 것이다. 서울시가 고도에서 얻은 지식과 용기를 사람이 사는 메가도시에 적응할 때이다.

로버트 파우저 robertjfouser@gmail.com 전 서울대 국어교육과 교수. 미시간대에서 일어일문학 학사 및 응용언어학 석사, 아일랜드 트리니티 칼리지 더블린에서 응용언어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고려대와 일본 교토대에서 영어와 영어교육을 가르쳤고, 일본 가고시마대에서 교양 한국어 과정을 개설해 가르쳤다. 한국 사회를 고찰하면서 한국어로 ‘미래 시민의 조건’, ‘서촌 홀릭’을 출간했다. 취미는 한옥과 오래된 동네 답사, 사진촬영으로 2012년 종로구 체부동에 ‘어락당(語樂堂, 말을 즐기는 집)’이라는 한옥을 짓기도 했으며, 2016년 교토에서 열린 ‘KG+’ 국제 사진전시회에 사진을 출품했다. 현재 미국에서 독립 학자로서 활동을 하고 있으며 한국어로 ‘외국어 문화사’를 집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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