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감을 표현하는 악기가 있다. 그 소리가 좋아 3년을 배웠다. 내 안의 아우성은 스스로 풀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그 배움을 내려놓았다. 지금부터 7년 전이다.

해금을 만나고, 그 음색에 취해서 중임남무황태 기본 음계를 배울 때 말도 안되는 깽깽이 소리를 내면서도 인간의 속내가 이다지도 복잡 하겠거니 하면서 버텨냈다. 찰현 악기라고 부르나 관악기에도 속하는 어정쩡한 위치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는 우리네 인생 같아 애잔했다. 명주실을 꼬아 만든 두 줄로만 소리를 내느라 바쁜 이 악기가 두 다리로 이리 저리 뛰어다니는 우리 모습 같아 처연했다.

사랑하는 이 소리를 내 소리로 만들고 싶은 욕심으로 3년 동안 참 열심히 배웠다. 봉사 공연에 종종 참여하면서 배우는 기쁨은 배로 커졌다. 그러다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한 다음 날 열린 봉사 공연 이후로 해금에 대한 열망과 열정을 떠나 보냈다. 공연 시간이 지체되면서 아이의 하교 스쿨버스를 놓쳤다. 정신 없이 부랴부랴 달려왔지만 버스는 떠났고, 아이는 사라졌다. 그 후 한 시간 동안 나는 미쳐갔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도로변에 있다. 단지라는 개념이 없는 곳이다. 지하철역 주변으로 복잡한 데다 사방팔방 뚫린 곳이다. 아이에게 휴대폰이 없던 때라 연락할 길이 없었다. 특히 우는 한 아이를 누군가가 데려갔다는 주변의 제보는 한 가닥 희망을 안겨주기 보다는 더 큰 두려움에 떨게 했다. 나는 언제나 생각했다.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존재는 인간이라고.

전화가 왔다. 떨리는 마음으로 받았다. 아파트 관리사무소의 전화. 아이가 그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사람들은 말했다. 초등학교 1학년이니 엄마 아빠 전화번호 쯤은 외웠을 테고, 집 주변이니 적어도 길을 잃었을 이유는 없을 것이라고. 그러나 나는 철저히 무너졌고, 가장 쓴 맛을 보았다.

아이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극도의 공포와 두려움에 쌓인 엄마와 달리 '일탈’ 의 기쁨을 맛 보았단다. 늘 딱 붙어 다니며 한 치의 틈도 내주지 않은 강력한 접착제 같은 엄마로부터 해방감을 맛본 것이다. 처음에는 엄마를 찾기 위해서 이리저리 돌아다녔지만, 나중에는 집 주변을 혼자 탐험하는 즐거움을 만끽했다. 그러다 집 열쇠가 없으니 집에 들어갈 수 없고, 가장 안전하다 여긴 관리사무소에 가서 연락을 취한 것이다.

해금을 배우면서 10년 후 내 모습을 상상했다. 전공자 만큼은 아니더라도 그 기간쯤 배우면 내가 느낀 해금의 소리, 인간의 희노애락과 궤를 같이 하는 그 소리를 함께 나누며 행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그림을 그렸다. 이 사건을 계기로 내 안의 아우성은 오직 자신만이 연주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내 밖에 있는 무엇을 통해서 나를 표현하는 것이 진정 내가 원하는 길이 아니다라는 사실을 말이다.

아름다운 소리는 일시적으로 우리를 흔들어 놓지만, 아름다운 내 안의 의식은 소리보다 강력하게, 오랫동안 세상을 움직인다. 여운과 파급 효과가 크다는 뜻으로 한번 반응하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는 정도로 퍼진다.

내 몸과 마음은 악기와 같은 도구다. 더없이 감사한 도구. 악기를 다루듯 열심히 갈고 닦지 않으면 거칠게 표현될 수밖에 없다. 하루에도 수백 번 널뛰는 마음보다 해금이 덜 중요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인 아이와 떨어진 극한의 1시간은 그 사실을 확실히 각인시켰다. 여전히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슬픔과 두려움이 강력하게 밀려온다. 그러나 해금하고 함께 했던 시간은 그저 기억에만 있고, 특별한 감정은 남아있지 않다.

해금을 향한 강력한 이끌림, 집착을 멈추었다. 후회는 없다. 해금을 여전히 좋아하긴 하지만, 가장 소중한 것을 지킬 기회를 만났고, 더 큰 행복을 위해 그 길로 나아가고 있다.

장윤정 eyjangnz@gmail.com 컴퓨터 전문지, 인터넷 신문, 인터넷 방송 분야에서 기자로, 기획자로 10여년 간 일했다. 출판 기획 및 교정을 틈틈히 하면서 글을 쓰고 있다.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살면서 본 애보리진과 마오리족의 예술, 건강한 사회와 행복한 개인을 위한 명상과 실수행에 관심이 많다.

(*이 칼럼은 Nextdaily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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