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4차 산업혁명을 이야기하는 이 때, 우리나라는 정치적 변혁을 먼저 겪고 있는 것 같다. 지난 몇 달에 걸쳐 온 나라가 정치의 큰 파도를 겪고 넘고 있는 중이다. 혹자는 이러한 정치적 변화를 영국의 명예혁명에 비교하여 촛불혁명이라고 이름 붙이기도 한다. 바야흐로 혁명의 시대, 두 가지 혁명을 동시에 맞고 있다. 행운인가 불운인가를 떠나 역사의 흔치 않은 터닝포인트를 살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사실 ‘혁명’라는 어감은 편안하게 와 닿지는 않는다. 산업혁명도 있긴 하지만 역사 속에서 보았던 혁명의 예는 역성 혁명, 프랑스 혁명, 볼셰비키 혁명 등 정치 권력의 이동에 초점이 맞춰있다. 그래서인지 일반인들에게 혁명은 대립과 투쟁, 폭력과 불안정 등을 먼저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4차산업혁명으로 불리는 IT기반의 대변혁에 들어가고 있는 시점에서 혁명은 권력의 이동이라는 결과지향적 측면 보다 원인과 흐름을 즐기는 일상이 되어야 한다. 미래 자체가 대변혁이다보니 미래를 내다보는 혁명의 수용성이 중요해지는 시점인 것이다.

과학철학자인 토마스 쿤은 '과학혁명의 구조'라는 저서에서 혁명이란 패러다임의 변화라고 말했다. 패러다임이란 말 그대로 대상을 보는 관점이자 좌표이다. 지구가 평평하다고 생각하고 모든 것을 거기에 맞춰 생각을 했는데 알고 보니 지구는 둥글었다. 당연히 모든 이론은 다시 생각해 봐야 하고, 바뀐 관점으로 다시 분석하면 숨어있던 오류가 드러나면서 좀더 진실에 가까워진다. 세상에 대한 시선을 바꾸었을 때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그 곳에 없었던 것은 아닌데 시선을 바꾸었더니 그제서야 보이는 것들이다. 그리고 이제 보이기 시작했던 것을 기반으로 생각지도 못했던 진리와 가치들의 발견이 이어진다. 이것이 패러다임의 변화가 가져다 주는 혁명이다.

이 혁명을 발굴해 내고 또 긍정적으로 수용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진보라 불린다. 다른 패러다임을 통해서 지금까지 발견하지 못했던 가치를 실현하고 우리 사회의 보편적 지향점을 향해 한걸음 앞으로 나아가려 하기 때문에 붙여진 명칭이다. 도전적이고 진취적인 반면 불확실성과 실패의 끊임없는 극복이라는 숙제를 해결해야 한다.

한편 기존의 익숙한 패러다임에 따라 지금 현재를 이룬 사람들이 있다. 이들 중 다수는 성실성을 바탕으로 현재의 성과에 뿌리내린 사람들이다. 개인 성향 자체뿐 아니라 성과를 내기 위한 집중력 또한 사회적 가치로서 학습된다. 따라서 새로운 패러다임과 변화를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간의 성과가 가져다 주는 효율과 안정감에 대한 자부심도 강하다. 통상 현존하는 구조를 보존하고 지킨다는 의미로 보수라 불리는 이 계층은 사회의 안정성을 담당한다.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해 아는지 모르는지에 따라, 또 알고 있다면 이해관계에 따른 의도적인 거부인지 신념에 의한 반대인지에 따라 또 세분되기도 한다.

패러다임이 바뀌고, 보이지 않았던 면이 보이고, 진실 혹은 지향하는 가치에 가까워지면, 세상이 좋아져야 하고 거부할 이유가 없어야 한다. 그런데 그 과정이 불안정해 불안감도 생긴다. 두 개의 다른 입장이 부딪치기 때문이다. 관점의 변화를 추구하고 지지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 변화를 환영하지 않는 사람이 있기도 하고 심지어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라 여기는 사람도 있다. 동일한 대상을 보는 다양한 관점은 필연적으로 다양한 생각과 이해관계 그리고 우선순위 갈등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갈등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건강한 사회일수록 가치와 방향 그리고 그 추구하는 방법끼리 끊임없이 의심되고 부딪치는 역동성 속에서 발전한다. 와중에 필연적일 수 밖에 없는 비용이 사회적 불안정인 것이다. 이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두 가지가 있다. 첫째가 사회가 합의하고 지향하고 있는 보편적 가치이고 두 번째가 이를 실행하기 위한 기본 원칙(ground rule)의 공유이다. 양 측이 속한 사회에서 추구하는 보편적 가치를 서로 다르게 이해하고 있다면 갈등은 더 커진다. 또한 갈등을 해결하는 소통방식에 대한 기본 원칙(ground rule)이 세련되지 못할수록 이 갈등은 불화로 확산된다.

혁명의 이 같은 구조는 우리의 일상 어디서든 일어난다. 사실 혁명은 국가와 민족이라는 무시무시한 거대 담론에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다. 일을 처리하는 내 머릿속에서도, 새로운 서비스를 발표하려는 회사 안에서도, 전통과 가족을 대하는 모습에서도, 시점의 변화와 가치관의 갈등은 일어날 수 있다. 4차산업혁명이라 불리는 IT 기반의 사회 변혁도 마찬가지다. IT는 절대로 단순한 기술과 자본의 투입 산출 구조가 아니다. 사람을 지향하고 사람의 풍요롭고 행복한 경험을 목적으로 하는 보편적 가치를 추구한다. 그러기 위해 그 가치의 정의와 범위를 둘러싼 논의를 거쳐야 한다. 이 논의는 어린 시절부터 교육에 의해 사전에 몸에 완전히 익은 그라운드 룰을 바탕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그러면 가장 적은 갈등 비용으로 지향점을 향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인간의 존엄, 자유, 평등, 박애 라는 가치 지향과 공감 소통의 절차를 강조하는, 민주주의의 패러다임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이다.

흔히 IT와 기술에 대한 오해 중 하나가 다수에 의한 결정을 근간으로 삼고 있는 데모크라시(democracy)가 아니라 소수의 전문가들에 의한 메리토크라시(meritocracy)를 기반으로 발전한다고 하는 인식이다. 현업에서 일하는 사람들 조차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IT전문가는 코딩을, 데이터를, 보안을, 각종 시스템을 위한 프로그래머 혹은 기술전문가라고만 생각한다.

그러나 그 이전에 IT전문가는 사람의 이상과 욕망 그리고 사람이 모여사는 사회의 지향을 아는 전문가가 먼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일반인은 IT 전문가와 소통이 가능한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메리토크라시와 데모크라시의 상호 발산과 수렴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메리토크라시의 기술이 능력이 끊임없이 사람의 행복과 즐거움과 쓰임새를 추구할 때, 데모크라시에 귀를 기울이는 선순환 시스템이 실현된다. 이렇게 사회가 바뀌어 나가는 와중에 실현될 4차산업혁명은, 민주주의의 지향점과 함께 하는 것이다. 사람을 보는 다양한 시선, 행복과 즐거움과 쓰임새에 대한 열린 생각을 서로 나누고 공감하는 과정에는 민주적 그라운드 룰이 적용될 것이다.

혁명은 세상을 보는 시선의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일상이다. 패러다임이 바뀌는 것에 대한 수용성을 높아지는 사회가 진화하는 사회이다. 민주주의 가치, 사람의 존엄과 행복을 실현시켜주는 4차산업혁명은 급변하는 IT환경이라는 호랑이의 등을 탄 것과 같다. 목숨을 담보로 호랑이의 등에서 내려오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호지세’는 활용만 한다면 우리 사회의 지향점을 더 빠르고 힘차게 데려다 줄 것이다. 그 호랑이의 등에서 보는 패러다임. 거기에 적응하는 것. 이것이 바로 4차 산업혁명의 시선이다.

노수린 suerynnroh@gmail.com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 동 대학 언론홍보 석사, MBN 기자, KTF 해외마케팅과 플랫폼 기획팀장을 거쳐, IoT스타트업 운영과 컨설팅 및 교육 강의를 해왔다. 현재 한림대 사회학과 겸임 교수로 재직 중이다. IT는 사람의 행복과 가치추구를 위해 서비스와 콘텐츠로 관계를 연결하는 장치라 생각하며, 민주주의의 가치를 수용한 오픈 IT를 기반으로 사용자UX가 주권처럼 존중받는 사회를 꿈꾸며 많은 이들과 소통을 시도하고 있다.

(*이 칼럼은 Nextdaily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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