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5살 라니(Rani)와 18살 캡틴(Captain), 두 반려동물이 있는 호주 캔버라의 집에서 사는 동안, 그들의 완벽한 보호자 코라(Cora)로부터 수도 없이 '동물의 행복과 자유’에 관한 말을 들었다. 안전한 집, 충분한 음식, 상호 교감, 특히 개의 경우, 꾸준한 산책 등에 관한 것이었다. 특히 그녀는 나무나 대문에 목줄이 걸린, 움직일 수 없는 개들을 보면, 자유를 뺏은 명백한 학대 행위라며 분개했다. 내 기억 속의 반려동물은 강아지 복실이 뿐이다. 20년 전 친정 엄마가 이웃으로부터 입양했으나 몇 년 살지 못하고 무지개 다리를 건너 버린 아이. 서울에 떨어져 살고 있던 탓에 얼굴만 몇 번 본 것이 전부인,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슴 아픈 기억으로 남은 아이.

캡틴
캡틴

EBS의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 중 ‘시골 개, 1미터의 삶’을 시청하면서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고, 추억 조차 없던 엄마의 '복실이’가 되살아나 가슴을 후빈다. ‘1미터의 삶’은 그 아이의 삶 이기도 했다. 항상 묶여 있는 복실이를 볼 때마다 내 ‘양심’은 ‘잘못’이라고 지적했으나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고백하건대 우리는 무지했고, 어리석었다.

매일 넓고 푸른 숲을 뛰어 다니는 라니에게 ‘1미터의 삶’은 결코 존재하지 않으며 존재할 수도 없는 세계다. 견공으로서 그녀의 삶은 더없이 행복하다. 반면, 1미터에 갇힌 다른 불쌍한 동물들은 그저 무기력하고 그 스트레스로 종종 이상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한 동작을 끊임없이 반복하거나 자학하는 등 자폐 증상을 보이는 것이다. 무릇 생명 있는 모든 것은 자유로운 채로 존재해야 한다. 그래야 행복하고, 오롯이 존재하는 것이 된다.

라니
라니

시골 개들만 1미터의 삶을 살고 있지 않다. 목줄로 채워 놓든 아니든 마음이 자유롭지 않으면, 우리도 1미터의 한정된 공간에서 살고 있는 셈이다. 사회나 시스템이 요구하는 대로 안전하고 안락한 삶을 추구해도 삶에 대한 의문과 존재에 대한 불안감이 점점 커지는 이상한 현실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우리는 매일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생각과 불필요한 감정 소모에 시간을 허비한다. 거추장스러운 외투를 걸친 듯 불편해도 감수하고 인내한다. 그 틀에 갇혀 고통을 느끼지만, 세상이 그렇게 살라고 하니 억누르고 사는 데 익숙해졌다.

어떤 면으로 더 불행한 것은 타인들에 의한 사회적인 구속과 억압 외에도 스스로 목줄을 채워나가는 현실이다. 권력과 부, 인기와 명예가 있어도 이 경우, 행복하기 어렵다. 1미터 목줄에 묶인 불쌍한 시골 개들과 별반 다르지 않는 자유 없는 삶을 살아내느라 결코 녹록하지 않은 세월들을 흘려 보내는 것일 뿐.

루소 역시 "인간은 태어났을 때는 자유다. 그러나 그 후 도처에서 쇠사슬로 묶여 진다" 고 했다.

어느 날 불현듯 의구심이 폭발하거나 부정적인 감정들이 소용돌이 칠 때, 이건 아니라고 마음이 소리칠 때가 찾아오면, 선택을 해야 한다. 계속 억누르고 갈 것인지, 아니면 풀어볼 것인지. 심리상담가를 만나거나 코칭이나 명상 프로그램에 참여해도 좋고, 종교 단체를 방문하거나 관련 서적을 수십 권쯤 읽어보는 것도 좋다. 단, 키(Key)는 '나' 자신이 쥐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면 안된다. 우리 개개인은 모두 다르고, 달라서 특별하고, 특별해서 비교 대상이 없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이기 때문이다.

앵무새 비상
앵무새 비상

내면의 자유를 향한 첫 단계로 '셀프 허그(Self Hug)'가 유용하다. 엄마의 품처럼 따뜻하게, 그와 같은 시선으로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다. 스스로 팔을 감싸는 물리적인 행위도 좋지만, 보다 중요한 부분은 정서적인 행위이다. 위로와 격려를 해주면서 잊고 산 '나’ 라는 존재에게 고마움과 용서의 신호를 계속 보내는 것이다. 봄이 오면 얼음이 녹듯, 단단히 구속한 마음의 빗장이 풀리기 시작하면, 스스로 강제했던 조건들을 내려놓을 수 있는 명분이 선다. 내가 건 목줄들을 하나씩 둘씩 풀 수 있는 의지와 용기가 생기고 그 틈에 찰나라도 지복이 느껴지면, 원래 자유로웠던 나의 영혼이 서서히 깨어날 채비를 한다. 내 안이 자유로워야 내 밖도 자유로운 시선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생텍쥐페리는 이렇게 말했나 보다.

"나는 오직 하나의 자유를 알고 있다. 그것은 정신의 자유다"

파랑새
파랑새

장윤정 eyjangnz@gmail.com 컴퓨터 전문지, 인터넷 신문, 인터넷 방송 분야에서 기자로, 기획자로 10여년 간 일했다. 출판 기획 및 교정을 틈틈히 하면서 글을 쓰고 있다.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살면서 본 애보리진과 마오리족의 예술, 건강한 사회와 행복한 개인을 위한 명상과 실수행에 관심이 많다.

(*이 칼럼은 Nextdaily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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