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걷다 봄바람 사이로 날아드는 향기에 놀라 두리번거릴 때가 있다. 마치 누군가, 그냥 지나치지 말아달라며 나의 발길을 잡는다. 게다가 나뭇잎 사이로 달려드는 봄바람은 얼굴을 부비며 리듬을 즐기는 꽃잎을 흩뿌린다. 눈이 부시다. 봄날의 산책은 이리도 호사(豪奢)스럽다.

이곳저곳에서 꽃 축제가 한창이다. 봄날의 꽃은 주변에서도 즐길 수 있지만 가까운 식물원이나 수목원을 찾는다면 생물공부가 되어 좋다. 설립자의 철학이나 비전을 투영한 다양한 식물과 자연을 만날 수 있어 아이들과 공부하기 좋고 소풍하기에 안성맞춤인 장소가 바로 수목원(이하 식물원 포함)이다.

국가 간 '푸른 전쟁'이라 불리는 식물유래 신약개발 등 식물자원의 확보경쟁은 더욱 심화되고 있으며 앞으로 국내 식물자원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따라서 수목원은 국가 식물자원의 보고(寶庫)로써 우리의 미래 자원을 가늠할 수 있는 분야별 정책을 다양하게 펴 나가야 한다. 예를 들면, 보존이나 연구 차원의 정책뿐만 아니라 정원문화 활성화의 관점에서 관광문화산업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고 본다. 선진국의 경우, 국가적인 차원의 국가정원계획을 수립하면서 ‘찾아가고’, ‘만드는’ 정원문화를 발달시켰고 그로인해 지역경제 활성화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영국은 정원가꾸기가 삶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원예에 대한 관심이 높다. 따라서 국가적인 차원에서 3,700개의 정원을 지원하고 있고 일일 15만 명의 방문객을 창출하는 ‘첼시 플라워 쇼(Chelsea Flower Show)’에서 매년 1.3억 파운드(약 1.890억 원)의 수익을 창출한다. 1827년에 시작된 첼시 플라워 쇼는 영국왕립원예학회(RHS)에서 주최하고 있는 세계적인 정원, 원예 박람회이다.

영국왕립원예학회(RHS)에 따르면, 2015년 연간회원(연회비 55파운드, 약 8만원)은 전년 대비 3.4% 증가하여 총 41만4천 여 명이 되었으며 해마다 그 수는 늘어나는 추세라고 전한다. 성공적인 운영의 비결은 상품판매의 마케팅은 물론이며 세계 최고라고 할 수 있는 ‘가든 쇼’에 있다. 단 5일간의 행사이지만 참가자들은 성공적인 결과를 위하여 각자 최선을 다해 자신의 색깔과 이야기를 담는다. 인위적이지 않게 조성된 가든 쇼는 현장에서 판매되거나 RHS의 지역프로그램과 연계되어 재구성되기도 한다.

미국은 공동체 정원 활동에 약 85만 가구가 참여하고 있고 가구당 연 450달러를 지출하고 있으며 일본은 1990년 오사카 ‘정원박람회’ 이후 3,700만 명이 정원활동을 하고 있다. 이러한 참여와 관심은 관련 산업의 지속적인 경제성장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아침고요수목원
아침고요수목원

우리나라의 경우, 식물원과 수목원은 전국에 85곳이며 등록된 정원은 7곳이다(산림청 통계). 그들의 설립목적과 운영철학에는 대부분 자원의 보존과 연구, 휴양지로서의 역할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다. 반면, 공동체 문화나 지역사회와의 관계성에 대한 비전의 언급은 미흡해 보인다. 지역 수목원인 경우, 고유한 정체성과 역사를 다른 기관과의 차별화된 스토리로 여기고 있거나 이색 콘텐츠와 스마트 관광, 홍보를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경기도 가평의 축령산 돌밭을 일궈 터를 잡은 ‘아침고요수목원’의 역사가 벌써 20년도 더 되었다. 1994년 설립자 부부(한상경, 이영자)의 신념과 열정이 오늘의 아침고요수목원을 만들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현재 우리나라 주요 관광지로 손꼽히는 이곳은 주말이면 초입부터 관광객 차량으로 붐빈다. 크고 작은 다양한 테마정원과 편의시설만 보더라도 성공한 테마정원 경영의 좋은 모델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놀이동산을 방불케 하는 방문객들의 수는 꽃들의 그것과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이다. 외국인 관광객들도 많아 그 유명세를 실감할 수 있다.

10년 전 이곳을 처음 찾았을 때가 기억난다. 지금보다 한적한 도로를 따라 입장할 수 있었고 수목원에 대한 감흥으로 주변의 화훼농가에 들려 레몬밤(lemon balm) 몇 개를 구입했다. 나의 창가에서 수목원을 추억하게 해 주었던 레몬밤은 잘 자라서 지인들에게 선물로 분양되기도 하였다. 그런데 현재의 수목원 주변에는 대단한 규모의 식당과 펜션이 들어섰고 화훼농가가 보이지 않아 아쉬웠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수목원의 관광객이 늘고 그 관심이 문화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관련 산업의 안정화가 우선 되어야 한다. 교육적인 측면에서는, 지역민이 참여할 수 있는 개인적인 취미나 동호회 등의 단체 활동(텃밭 가꾸기, 옥상정원, 주말농장 등)이 활성화될 수 있는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이 체계적으로 운영되어 전문가를 양성해야만 지속적인 발전이 가능하다. 이러한 일들은 수목원이 독자적으로 이행하기 어려운 일들이다. 지역의 관련 문화산업과 공동체가 수목원과 함께 참여해야 한다. 수목원의 지역 소통은 지역민의 문화적 전문성을 높이고 관람객은 이에 대한 서비스에 감동을 받게 될 것이며 덩달아 지역의 숙박과 식당에 수익이 생길 것이다.

아침고요수목원-하경정원
아침고요수목원-하경정원

따라서 식물원과 수목원은 지역사회의 참여와 공동체의 도움을 받아야 하며 그들과의 소통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혹시 지역공동체와 분리, 차별화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폐쇄적인 관계운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기반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거나 세계화를 향한 도약 이전에, 기관이 속한 지역의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객관적 성찰이 바로 장기적이며 지속 가능한 차별화의 발전방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자연 그대로의 오브제(objet)를 선호한다. 그런데 시간이나 공간으로부터 자유롭고 자연의 가치를 담아 재창조하는 방법도 가끔은 좋다. DIZI RIU(유대영)의 작품, ‘시간의 흐름’은 사계절의 흐름을 명상할 수 있는 영상이다. 창과 같은 원형구조물은 벽에 투영하면 창(窓)이 되고 바닥에 투영하며 연못이 된다. 이러한 작품을 스토리텔링 기술로 구현하기 위해 작가는 많은 시간을 고민한다. 꽃을 피우듯이 말이다.

이제, 4월을 보내고 나면 꽃가루 묻힌 나비를 그리워할 시간이 다가온다.

시간의 흐름, DIZI RIU 사진제공
시간의 흐름, DIZI RIU 사진제공

서정화 fine0419@nextdaily.co.kr | 칼럼니스트 KBS방송국, 국립민속박물관, 국립생물자원관,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에서 근무하면서 미디어와 박물관·미술관, 환경, 공예·디자인 관련 경험을 하였다. 현재는 한양대학교 문화재연구소 전문위원이며 동화작가이다. 민속학, 박물관교육학을 전공하였고 다양한 기획과 글쓰기, 강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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