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도 뜨기 전 깜깜한데 닭들이 계속 울어댄다. 몇 시인가 보니 새벽 2시다. 이 동네에는 닭이 많아서 길가다 보면 길에서 놀고있는 닭들을 수시로 만난다. 하도 많다 보니 미친 닭도 많은 모양이다. 잠이 깬 김에 발코니로 나가 하늘을 봤다. 구름이 잔뜩 껴서 별이 보이지 않는다. 불빛 하나 없는 산골짜기라 하늘이 맑으면 별이 쏟아질 곳인데 아쉽다. 해 뜨려면 5시간을 더 있어야하니 다시 잠들었다. 닭은 계속 울어댄다.

일출 시간 전에 칠성반월쪽으로 갔다. 석양은 구룡오호쪽이 좋고 일출은 칠성반월쪽에서 보는 것이 좋다.

일출을 보고 싶은데 하늘을 보니 별로일 듯 하다. 그래도 혹시 하는 마음으로 갔다가 역시나 하며 돌아왔다. 맑은 공기 아침 산책은 제대로 했다. 호텔로 와서 아침을 먹고 길을 나섰다.

오늘은 평안에서 대채마을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용승 마을이 용의 빼어난 자태를 의미하는 뜻이고 다락논은 용의 비늘이라 한다. 우리가 오늘 걷는 길은 용의 척추에 해당한단다. 다락논을 지나 산길로 접어들자 호수가 나온다. 평안의 다락논에 물을 대는 수원지다. 이 호수 덕분에 아름다운 평안 용의 비늘이 반짝거릴 수 있는 것이다.

호수를 지나서 산길로 접어들자 맞은편에서 요족여인이 걸어온다. 반가워서 인사를 하니 어디로 가냐고 묻는다.

대채로 간다하니 가이드해주겠단다. 우리는 GPS가 있어서 괜찮다고 했다. 이후에도 요족여인을 많이 만났는데 하는 이야기가 똑같다. 어디로 가냐? 가이드 해주겠다. 물건 사라. 밥 먹고 가라. 다행히 귀찮게 하지는 않는다. GPS가 없으면 상당히 힘들 길이다. 용의 척추라지만 사람들이 군데군데 샛길을 만들어 놓아서 수시로 길을 잃기 쉽다.
호텔 주인도 요족여인가이드를 추천했었는데 이유가 타당하다. 잘못하면 상당히 헤맬 수 있는 길이다. 우리가 장비를 보여주니 안심하며 잘 다녀오라했다.

평안과 대채 사이 산길은 마치 히말라야 헬람부의 한적한 산길을 연상시킨다. 평화롭고 한적하다.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정겹다. 용의 척추라는 말이 실감난다.

오랜만에 맘에 드는 산길 트래킹을 온몸으로 느끼며 즐겼다. 고도는 800과 900사이를 오가는 능선 트래킹이다. 가끔 구름 속을 지날 때는 우비를 꺼내 입기도 했다. 억새 우거진 길을 지날 때는 서정적이기까지 하다.

힐링산길 트래킹으로 제격인 길이다. 이번 여행에 정점을 찍는 기분이다. 평안과 대채 사이에 마을이 하나 있다. 지도에 나오지 않는 마을인데 큰 도로를 공사 중이다. 용승풍경구에는 여러 소수민족들이 살고 있다. 곳곳에 여러 마을이 있을 텐데, 차로 접근할 수 있는 마을은 평안과 대채가 있고 중간에 있는 마을은 걸어서 갈수 있다. 도로공사가 끝나면 차로 쉽게 갈수 있을 듯 하다. 마을에서 간식하고 물을 사서 먹었다. 점심을 먹기에는 적당한 식당이 보이지않는다.

길에서 만나는 소수민족 여인들이 밥 먹고 가라는데 제대로 된 식당같이 보이지 않는데다 점심시간이 이르다.

마을을 떠나 다시 산길로 들어섰다.

용의 척추 길에는 유난히 무덤이 많다. 걸어서 몇시간을 가야하는 길이다. 명당에 모시고 싶은 마음에 길고 긴 산길도 마다하지 않았나보다. 새로 단장하고 있는 묘지도 보인다. 드디어 대채에 도착했다.

대채의 다락논은 평안보다 스케일이 더 크다. 하늘로 가는 천개의 계단이란 말이 실감이 난다.

전망대가 있는 곳을 다 찾아서 보고 케이블카로 갔다. 케이블카를 타기 전에 대나무통밥을 사먹었다. 너무 맛있다.

이 동네 대나무통밥은 쪄서 만드는게 아니라 구워서 만드는거다. 눌은 부분이 고소해서 자꾸 땡긴다.

왕복으로 케이블카표를 구입했다. 대채까지 걸어오느라 더이상 걸을 힘이 없다. 12km정도 걸었는데 비가 오기도 해서 길이 미끄러워 다리의 피로도가 심하다. 미끄러질까 다리에 힘주고 걸었더니 피곤하다. 케이블카가 길어서 지루하다. 올라갈 때는 그래도 참을 만 했는데 내려올 때는 바람이 심하게 불어서 케이블카가 흔들려 무섭기까지 했다. 끝없이 펼쳐진 다락논은 환상인데 바람이 심하니 즐겁지가 않다.

케이블카에서 내려 택시를 찾다가 개인승합차로 영업하는 차를 발견했다. 평안가자니깐 좋다고 타란다. 평안으로 가는 도중에 내일 계림 가는 약속까지 했다. 젊은 기사가 눈치 빠르게 잘 챙긴다. 호텔로 돌아오니 여주인이 반겨준다. 저녁을 주문하고 방으로 와서 샤워하고 쉬었다.

저녁은 대나무 통밥 2개를 또 주문했다. 아무래도 대나무통밥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다. 용승에서 가장 그리울 것은 다락논이 아니라 대나무 통밥일 듯 싶다.

허미경 여행전문기자(mgheo@nextdaily.co.kr)는 대한민국의 아줌마이자 글로벌한 생활여행자다. 어쩌다 맘먹고 떠나는 게 아니라, 밥 먹듯이 짐을 싼다. 여행이 삶이다 보니, 기사나 컬럼은 취미로 가끔만 쓴다. 생활여행자답게 그날그날 일기 쓰는 걸 좋아한다. 그녀는 솔직하게, 꾸밈없이, 자신을 보여준다. 공주병도 숨기지 않는다. 세계 각국을 누비며 툭툭 던지듯 쏟아내는 그녀의 진솔한 여행기는 이미 포털과 SNS에서도 두터운 팬 층을 확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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