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농성(籠城) 끝에 나와 보는 다부원(多富院)은
얇은 가을 구름이 산마루에 뿌려져 있다.

피아(彼我) 공방(攻防)의 포화(砲火)가
한 달을 내리 울부짖던 곳

아아 다부원(多富院)은 이렇게도
대구(大邱)에서 가까운 자리에 있었구나.

조그만 마을 하나를
자유(自由)의 국토(國土) 안에 살리기 위해서는
한해살이 푸나무도 온전히
제 목숨을 다 마치지 못했거니

사람들아 묻지를 말아라.
이 황폐(荒廢)한 풍경(風景)이
무엇 때문의 희생(犧牲)인가를…….

고개 들어 하늘에 외치던 그 자세(姿勢)대로
머리만 남아 있는 군마(軍馬)의 시체(屍體)

스스로 뉘우침에 흐느껴 우는 듯
길 옆에 쓰러진 괴뢰군 전사(戰士)

일찍이 한 하늘 아래 목숨 받아
움직이던 생령(生靈)들이 이제

싸늘한 가을 바람에 오히려
간 고등어 냄새로 썩고 있는 다부원(多富院)

진실로 운명(運命)의 말미암음이 없고
그것을 또한 믿을 수가 없다면
이 가련한 주검에 무슨 안식(安息)이 있느냐.

살아서 다시 보는 다부원(多富院)은
죽은 자(者)도 산 자(者)도 다 함께
안주(安住)의 집이 없고 바람만 분다.

감상의 글
다부원은 조선 시대 때는 출장 관원들을 위한 국영 숙박 시설인 원을 이르는 말이었다. 다부동으로도 불리는 이곳은 한국전쟁 때 대구시를 지키기 위해 수많은 국군과 미군이 희생된 곳이다.

한국전쟁 초기에 준비가 부족했던 국군은 속절없이 밀렸다. 단 3일 만에 수도 서울을 내주었다. 인민군은 7월 5일에는 오산에 있는 미군을 격파하였다. 파죽지세의 힘으로 7월 말에 목포와 진주, 그리고 8월 초에는 김천과 포항까지 함락시켰다. 8월 15일까지 부산을 점령하라는 김일성의 명령을 지킬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전열을 재정비하고 낙동강을 중심으로 방어선을 구축한 국군과 미군의 치열한 방어로 돌파가 쉽지 않았다.

대구 북방 22킬로 정도에 있는 다부동은 지형적으로 아주 중요한 곳이다. 마을의 서북쪽에 유학산(839m)이 있고 동쪽에는 가산(902m)이 있다. 두 개의 고지가 있는 다부동은 국군으로서는 방어에 유리한 지점이었고, 인민군 입장에서는 반드시 이곳을 접수해야 하는 곳이었다. 만약 국군 입장에서 이 지역이 돌파될 경우에는 10㎞ 남쪽의 도덕산(660m) 일대까지 철수해야 하고, 그렇게 된다면 대구시가 위험에 빠지게 되므로 다부동은 대구 방어뿐만 아니라 전쟁 전체적으로도 중요한 전술적 요충지였다. 그렇기 때문에 인민군은 3개 사단을 이 다부동에 집결시켜 전력을 다했다. 이에 맞서 국군 제1사단과 미군은 8월 초부터 한 달이 되도록 많은 희생을 치르면서 지켜냈던 것이다.

조지훈의 시 ‘다부원에서’는 한국전쟁 당시 공군 종군(從軍) 문인이었던 시인이 다부동 전투의 참상을 직접 보고 쓴 시이다. 시에는 한 달 가까이 계속됐던 전투의 참상이 그대로 전해지고 있다. 다부원은 양측의 화력이 집중된 탓에 풀과 나무도 없는 황폐한 땅이 되어 버렸다. 머리만 남아 있는 군마, 길옆에 쓰러져 있는 인민군들의 모습, 생선 썩는 냄새로 비유한 고약한 현장의 냄새 등으로 전쟁의 비극성을 고발하고 있다. 그러면서 전쟁으로 인한 희생은 무의미한 것이라고 말한다. 마지막 연에서는 산 자와 죽은 자 모두 안주할 집이 없다고 한다. 전쟁은 우리의 안식을 앗아가는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한반도는 그 지정학적 특성 때문에 역사적으로 끊임없는 갈등과 전쟁이 있어 왔던 곳이다. 최근 들어 북핵의 위험이 더 심각해진 상황에서 북한과 미국과 주변 강대국들의 갈등이 심상치 않다. 각 나라들이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는 상황에서 외교와 국방이 아주 중요하게 느껴진다. 최근 시리아 정부군의 화학 무기로 쌍둥이와 아내 등을 잃은 시리아 아빠 알유세프가 쌍둥이를 묻기 전에 울먹이며 한 말이 자꾸 생각난다. “아가야, 안녕이라고 말해봐.”

최성원 기자 ipsi1004@nextdaily.co.kr 시인이자 칼럼니스트. 시집으로 「천국에도 기지국이 있다면」이 있다. 현재 서울 동부이촌동에서 국어와 논술을 가르치고 있으며, 저서로는 「7일 만에 끝내는 중학국어」 등이 있다. 또 ‘하얀국어’라는 인기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시와와(詩와와)’는 ‘시 시(詩)’에 ‘와와(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웃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떠들어 대는 소리나 모양)’를 결합하였다. 시 읽기의 부흥이 오기를 희망한다. 100편의 시를 올릴 계획이다. 걷기와 운동, 독서와 집필, 사람 만나는 것, 그리고 야구를 좋아한다.

(*이 칼럼은 Nextdaily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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