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서재에서 소리 내어 책을 읽었다. 문맹인 어머니를 위해 읽어드리던 오래된 습관에서 비롯된 것이다. 불면증에 시달리는 아내를 위해 침대 맡에서 시를 읽어줄 때도 종종 있다. 어린자녀를 재우기 위해 책을 읽어주는 부모처럼 부부 사이에도 좋은 정서적 교감을 이룬다. 공공장소에서는 눈으로만 읽어야 하는 것이 점잖고 불가피한 선택이겠지만 개인의 공간에서 소리 내어 읽는 것은 상쾌한 일이다. 특히 옛사람의 글을 읽노라면 글쓴이의 기운과 정서가 장단이 되어 몸을 흔들며 즐겁게, 평화롭게, 뜻도 모른 채 저절로 암기되는 기쁨도 있다. 의미는 나중에 헤아려도 괜찮다. 책은 눈으로만 읽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금 생각하며 봄의 낭독을 누린다.

예로부터 봄을 상징하는 세 가지가 볕, 꽃, 제비라 했다. 늦겨울의 심술로 오락가락 꽃샘추위를 견디고 찾아오는 따사로운 볕 아래 꽃들이 화사한 계절을 장식한다. 산천으로 개나리, 진달래, 벚꽃을 찾아가지 않더라도 꽃이 피고 지는 일상의 기쁨이 가득하다. 봄의 밥상이 차려지면 숟가락 하나 들고 찾아오는 제비가 생각난다. 각인된 기억 탓에 당연하게 생각했던 반가운 봄의 전령인데 아뿔싸! 제비가 보이지 않는다. 급속한 도시화와 환경변화로 요새는 제비 찾기가 쉽지 않다. 처가 섬마을 처마 밑에도 제비집의 흔적은 남아 있지만 수년째 묘연하다. 아침을 깨우며 재잘거리던 지지배배 새끼제비들 노래 소리도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삼짇날이면 어김없이 돌아오던 강남 갔던 제비들은 어디로 간 걸까? 오죽하면 ‘숨은제비찾기’라는 스마트폰용 앱이 나왔을까만 별다른 정보도 효과도 없었다. 농담처럼 놀부 탓을 했다. 아무래도 제비 다리를 부러뜨려 재앙을 자초했던 놀부 때문인 것 같다. 목련이 아름답던 그 날 밤, 인사동 시가연에서 막걸리를 마셨다. 건너편 테이블에서 북을 든 한 사람이 구석에 앉자 일행들이 돌아가며 앞으로 나가 부채를 펼쳐 부르는 열녀춘향가와 심청전이 구성졌다. 절로 어깨를 들썩이다 박타령을 한 번 불러보고 싶었다. 판소리 좀 배웠거나 소질이 있었더라면 북소리에 장단 맞췄으련만 음치에 박치인 이유로 침묵했다. 천하에 다시없을 잡놈들이 배꼽 잡게 웃긴다는 놀부가의 가락들로 머릿속이 채워졌다. 놀부의 만행이 선명하게 그려졌다.

"놀부의 심술보가 한번 요동을 치면 썩 야단스러웠으니, 술 잘 먹고 욕 잘하고, 괄괄하니 쌈 잘하고, 초상난 데 춤추기, 불 붙는데 부채질하기, 해산한 데 개 잡기, 장에 가면 억지 흥정, 우는 아이 똥 먹이기, 죄 없는 놈 뺨치기, 빚값에 계집 빼앗기, 늙은 영감 덜미 잡기, 애 밴 계집 배 차기, 우물 밑에 똥 누기, 오려논에 물 터놓기, 잦힌 밥에 흙 퍼붓기, 패는 곡식 이삭 빼기, 논두렁에 구멍뚫기, 애호박에 말뚝박기, 곱사등이 엎어 놓고 밟아 주기, 똥 누는 놈 주저 앉히기, 앉은뱅이 턱살 치기, 옹기 장수 작대 치기, 무덤 옮기는 데 뼈 감추기, 남의 양주 잠자는 데 소리 지르기, 수절 과부 겁탈하기, 통혼하는 데 이간질 놀기, 만경창파에 배 밑 뚫기, 목욕하는 데 흙 뿌리기, 담병 붙은 놈 코침 주기, 눈 앓는 놈 고춧가루 넣기, 이 앓는 놈 뺨치기, 어린아이 꼬집기, 다 된 흥정 깨뜨리기, 중놈 보면 대테 매기, 남의 제사 때 닭 울리기, 행길에 파기, 비 오는 날 장독 열기라. 이놈의 심사 이렇듯 모과나무같이 뒤틀리고 동풍 안개 속 수숫잎 같이 꼬인지라 심보 그악하기 짝이 없지만, 흥부는 그렇지 아니하였더라."

이 소설은 소리 내어 우렁차게 읽어야 제 맛이다. 여럿이 함께 연극하듯 역할에 맞게 읽으면 더욱 즐거울 것이라 상상하지만 밤 깊은 서재에 앉아 홀로 조용히 읽었다. 어쩌면 이토록 정겹게 착착 입에 달라붙는지 내내 신이 났다. 천하의 잡놈 놀부의 만행을 읽다보면 가락이 맞춰지고 글맛에 절로 흥겨웠다. 이어지는 흥부의 이야기는 살짝 다른 느낌이다. ‘부모에게 효도하고, 어른들 공경하고, 이웃 간에 화목하고, 벗들에게 믿음직하고, 굶어죽을 사람 밥 덜어주고, 얼어 병든 사람 옷 벗어주고, 노인 짊어진 짐 져다주고...’ 모범적인 선행이라 칭찬받아 마땅한 이야기의 나열이지만 어쩐지 지루할 뿐만 아니라 심심하고 재미가 없다. 이런 남자는 여성들에게도 큰 인기가 없다.

흥부는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이월 동풍에 남의 논밭 가래질하기, 삼사월에 부침질, 이 집 저 집 이엉 엮기, 날 궂으면 멍석 맺기, 나무장수 따라 나무 배기, 각 읍 주인 삭길 가기, 한술 밥에 말집 싣기, 오 푼 받고 마철 박기, 두 푼 받고 똥재 치기, 한 푼 받고 비 매기, 식전에 마당 쓸기, 이웃집 물 긷기, 진주 감영 돈짐 지기, 대구 감영 짐 지기, 온갖 가지 삯일에 발 벗고 나선다. 흥부 아내는 아내대로 생계를 위해 기를 쓰고 맞벌이를 하는데, 남의 집 방아 찧기, 술집 가서 술 거르기, 초상난 집 제복 짓기, 잔칫집 그릇 닦기, 굿하는 집 떡 만들기, 시궁발치 오줌 치기, 날 풀리면 나물 뜯기, 보리밭에 보리 놓기 등 온갖 품을 팔았다. 놀고먹는 놀부와 가난한 흥부라는 형제 구도로 봉건 사회의 착취와 피착취를 잘 드러내고 있다.

아무리 일을 해도 벌이가 시원찮아 먹는 날보다 굶는 날이 더 많아 이웃들도 몹시 가여워 하지만 가난하기는 그 사람들도 마찬가지라 어찌할 도리가 없다. 가끔은 이 소설의 제목이 ‘놀부전’인지 ‘흥부전’인지 갈피를 못 잡을 때도 있었는데, 주인공은 아무래도 착한 동생이라 규정해야 마음이 편할 것 같다. 인간의 본성에는 선한 것과 악한 것이 공존하지만 어쩌면 우리가 억제하고 있는 심술과 악행을 통해 더 큰 희열을 느끼게 하는지도 모른다. 무게 잡지 않고 위선 떨지 않는 생동감 넘치는 소설 속 악당의 모습에서 통쾌함을 느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악당 놀부가 제비가 물어다 준 박씨를 통해 보복을 당하는 막바지 이야기도 하나의 노래처럼 여운을 남긴다.

“슬근슬근 톱질이야. 당겨 주소 톱질이야. 한 번 실패는 누구에게나 있는 법. 고생 끝에 기쁜 일이 온다고 옛말에도 하였으니 이 박에서야 보물이 나오지 아니 나올 수가 있나. 언청이, 곱사등이 놈이야 복 없는 놈들이라 나중을 보지 않고 달아났으니, 그게 다 제 팔자니 누구를 탓하랴.” 놀부 안해는 놀부가 흥에 겨워 중얼거리는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고 가슴이 두근두근하고 때로 섬뜩하기도 했다. 놀부 안해는 톱질을 멈추고 놀부에게 사정하였다. “여보, 박 타는 것 그만둡시다. 어째 무시무시한 생각만 드는구려. 만일 또 몹쓸 놈들이 쓸어나와 매타작을 안기면 어쩌려오? 집에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으니 무엇을 주고 독한 매를 면하겠소? 제발 그만둡시다.”

어린 시절에 읽었던 흥부전은 남에게 해 끼치지 말고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가르침의 동화였으나 원전을 읽노라면 야릇한 섹시함과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형제는 잡놈이 되어 해학의 한마당을 펼쳐가는 성인소설이다. 덧붙여 춘향전도 그렇고 옹고집전도 그렇고 우리 전통의 고전 문학은 노골적인 에로틱함이 살아 숨 쉬는 참으로 즐거운 이야기들이 주류다. 군부독재시절 우리가 교과서나 방송, 출판물을 통해 접했던 모든 고전은 사필귀정, 권선징악, 인과응보의 미덕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치우쳐 왔고, 그래서 본래의 재미도 반감되었음을 느꼈다.

‘흥부전’ 하나만으로 출간하기에 이 책은 내용이 많지 않아 시대를 앞서간 판타지 소설로 복제인간 혹은 도플갱어의 명작 ‘옹고집전’도 함께 담았다. 두 소설은 정확한 창작연대가 밝혀지지 않았으나 왜란 언급과 지리적 특징, 사또와 좌수라는 사사로운 벼슬과 집안의 머슴들 행동거지를 통해 대략 18세기에 작품임을 알 수 있겠다. 나쁜 남자의 전형인 놀부를 벌하는 제비와 볏짚으로 가짜 옹고집을 만들어 응징하는 도학 대사의 이야기는 일면 황당하지만 인색하고 고집 세며 부도덕한 지방 토호들의 추악한 착취를 고발하는 민초들의 애환이 낳은 민담 예술의 절정이다. 원작자를 알 수 없는 이 이야기를 고쳐 쓴 사람은 북한 고전학자 차영덕과 조명암으로 더 알려진 월북 시인 조령출이다. 조령출은 ‘꿈꾸는 백마강’, ‘알뜰한 당신’의 작사가로도 유명하다.

우리 겨레가 남북으로 갈라진 것도 벌써 70년이 넘었는데 한반도에서 함께 살아온 세월들은 수 천 년 이상의 세월이라 노래와 춤, 그림, 문학은 물론 일상의 의식주 정서까지 쉬이 바꿀 수 없는 것들이다. 갈라선 두 나라가 각자의 방식으로 옛 전통을 살려내려고 노력한 것이 이념적인 장벽과 지도자의 편향된 시선에 의해 왜곡되기도 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해방 이후, 뛰어난 문인들이 북한에서 자리 잡았고 홍명희, 정지용, 이태준 등 월북 작가의 면면에서도 가히 압도적이다. 조선고전문학선집의 주요 편집자 또한 홍기문, 리상호 등 중량감이 넘치는 것은 물론 대중의 언어로 우리 고전을 풀어내고 정리한 성과 면에서도 남쪽보다 훨씬 우월하여 배울 점이 많다.

해방 이듬해, 북쪽에서 문학예술총동맹 산하의 출판이 시작된 이래 15년이 흘러 김일성 주석의 명령으로 문예출판사가 탄생했다. 이전에는 작가동맹출판사, 국립문학예술서적출판사, 조선음악사, 미술사 등이 독자적으로 잡지도 펴내고 독립된 출판을 했지만 독재 국가답게 모든 문예지들이 단 한곳에서 출판되도록 결정된 것이다. 냉전이 끝날 무렵에 그 명칭이 ‘문학예술종합출판사’로 바뀌었지만 약칭 등을 감안하여 여전히 문예출판사로 불린다. 그곳에서 북한의 문예정책이 자연스럽게 김일성 부자 중심의 우상화를 위한 출판사업에 동원되었음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개인의 취향일 수도 있지만, 산업화와 함께 급속도로 변화된 남쪽의 계몽적 민족 문예 변형에 비해 우리 고유의 언어와 민족의 전통은 북쪽이 훨씬 우월하다는 판단을 했다.

남녘의 보리출판사가 북녘의 문예출판사와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을 통해 저작권 계약을 체결한 것은 결코 남는 장사가 아니었으나 민족 문화 부흥을 위해 잘한 결정이었다. 김대중정부의 햇볕정책과 그것을 계승한 참여정부를 거치는 동안 모든 것은 순조로웠다. 북쪽에서는 30여 년 전부터 이미 ‘조선고전문학선집’이라는 100권의 목록을 만든 뒤 순번에 상관없이 들쭉날쭉하게 발간하고 있었다. 2002년 처음 목록을 받아 쥔 남쪽에서는 2년 여 작업 끝에 첫 번째 책으로 연암의 ‘열하일기’를 총 3권으로 나눠서 선보이며 의욕적으로 출발했다. 조선시대 최고의 글쟁이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 완역본 하나 없던 남쪽에 햇살 같은 책이었다. 보리출판사의 뚝심은 ‘홍진에 묻힌 분네 이내 생애 어떠한고’까지 모두 서른아홉 권을 5년 간 거침없이 만들어냈다.

제작 부수 기준 선인세로 지급된 저작권료는 협회의 공증을 통해 북쪽으로 전달되었다. 보리출판사 윤구병은 그 돈이 북녘 어린이들을 위한 영양, 의료, 교육 지원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자부심을 갖고 경제적 고려 없이 출판에 임했다. 한때 일본을 통해 어렵게 수입된 리조실록을 고가에 구입하는 남쪽 지식인들이 넘쳐날 만큼 북한의 고전 번역은 호평을 받았지만 정권이 바뀌면서 모든 것이 어긋나기 시작했다. 불행한 사고가 발생하면서 금강산 관광이 중단되었다. 천안함·연평도 사건에 이은 이른바 5·24 조치를 통해 남북 교역 중단, 대북 신규 투자 금지, 대북 지원 보류가 결정됐다. 이어진 정권은 이유 같지 않은 이유로 개성공단까지 폐쇄시켰다.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노무현 대통령 서거 후, 우리말이 살아 숨 쉬는 정겨운 이 시리즈는 더 이상 권수를 늘려가지 못하고 있다. 남쪽의 맞춤법에 맞게 재번역하고 부록으로 원문을 삽입한 묵직한 시리즈는 디자인도 예뻐서 서가를 아름답게 장식한다. 한 번 시리즈를 접한 독자들은 호평하지만 매출은 극히 부진하다. 전국의 도서관에 필독서가 되어야할 책이지만 워낙 팔리지 않아 손익분기점을 못 넘겼고, 저작권료 지급마저 중단되어 북쪽에도 이롭지 못하다. 문예출판사의 원로 편집자들도 고령이라 한두 사람씩 세상을 떠나고 표류 중이다. 10년 전에 출간된 ‘흥부전’ 또한 1쇄를 넘기지 못하고 있어 아쉽다. 가장 많이 팔린 책은 이규보 작 ‘동명왕의 노래’인데, 시골의사 박경철 선생이 트위터 전성기에 한 번 언급한 것이 발단이 된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 겨울, 신영복 선생님의 일주기를 맞아 밀양 선영에 들렀다가 그곳으로부터 40분 거리에 있는 '노무현대통령의 집'을 찾았다. 회의실을 겸한 서재에는 대통령께서 생전에 아끼시던 모두 919권의 책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는데, 책장 왼쪽 최상단에 17권의 보리출판사 겨레고전문학선집이 있어 아름다웠다. 단일 시리즈로는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던 목록은 ‘강호에 병이 깊어 죽림에 누웠더니’, ‘임진년 난리를 당하매’, ‘동명왕의 노래’, ‘거문고에 귀신이 붙었다고 야단’, ‘사씨남정기’, ‘구운몽’, ‘폭포는 돼지가 다 먹었지요’, ‘우리 겨레의 미학사상’, ‘표해록’, ‘간양록’, ‘내시의 안해’, ‘거북아 거북아 수로를 내놓아라’, ‘해유록’, ‘길에서 띄우는 편지’, ‘이야기 책읽어주는 노인’, ‘금오신화에 쓰노라’, ‘글짓기 조심하소’가 되겠다.

낭독의 즐거움을 뒤로하고 아침부터 몇 차례 전화를 걸어봤지만 그녀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음력 3월 3일, 강남에서 제비가 돌아온다는 삼월 삼짇날에 태어났다하여 할아버지는 이름에 제비 연(燕)을 붙여주었다. 세상이 불편한 그녀는 스스로 외톨이가 되었는데, 할머니 장례식이 끝나고 제비꽃 만발한 정원을 홀로 걸어 조용히 멀어지던 모습이 마지막이던 예쁜 나의 조카다. 예로부터 인심 좋고 화목한 가정을 골라 둥지를 튼다는 제비를 상상했다. 어떤 사람은 급격한 개체 수 감소로 위기에 처한 제비라고 말했지만, 위기에 처한 것은 제비가 아니라 갈수록 각박해져가는 사람들의 세상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 많던 제비는 모두 어디로 갔을까?

안중찬 ahn0312@gmail.com (주)교보피앤비 기획실장 / 장거리 출퇴근의 고단함을 전철과 버스 안에서 책 읽기로 극복하는 낙관적이고 사교적인 생활인이다. 컴퓨터그래픽과 프로그래밍 분야 11권의 저서와 더불어 IT칼럼니스트로 왕성하게 활동했던 엔지니어 출신으로 한 권의 책에서 텍스트, 필자, 독자 자신을 읽어내는 서삼독의 실천가이다.

(*이 칼럼은 Nextdaily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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