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4대고성 중 하나인 봉황고성의 야경을 처음 보면 바로 반하게 된다. 시간을 넉넉히 가지고 골목골목 다니다 보면 매력에 푹 빠지게 된다. 마치 화장한 여인의 요염한 첫인상에 반했다가 속내를 알수록 더 사랑하게 되는것과 같다. 오늘은 아침 8시에 대항으로 가는 투어에 합류하는 날이다. 원래 계획은 기사가 있는 차를 렌트해서 다녀오려고 아들사장에게 물어봤었다. 여행사를 겸하는 아들 사장이 대항 투어가 있다고 해서 합류하게 된 거다. 강변 숙소는 1층 가게가 문을 닫으면 그야말로 감옥살이 구조다. 주인이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나갈 수가 없다. 우리는 7시50분경에 겨우 뒷문을 찾아서 탈출할 수 있었다. 예약한 여행사앞으로 가니 우리를 데리러 온 젊은 총각이 기다리고 있다. 차가 들어올 수 없는 고성 안이라 걸어서 버스 있는 곳까지 갔다.

가는 길에 장례 행렬을 만났다. 마치 축제행렬처럼 북치고 나팔 불며 행진을 한다. 총각은 우리를 예쁜 가이드에게 인수하고 사라진다. 가이드는 우리 이름을 확인하고 10번이란 번호를 수여한다. 인원 점검 때 우리는 10번이다. 차에서 각자 번호를 불러주는데 한국 친구라 하니 사람들이 모두 돌아보며 신기하게 본다. 차가 달리는 동안 가이드가 이런저런 설명을 한 후에 노래를 하나 가르친다. 우리도 잘아는 노래인데 쉬운 중국말이라 귀에 금방 들어온다. 복잡한 설명은 알아듣지 못하겠는데 노래는 따라 부르기도 했다.

대항풍경구
대항풍경구

차는 2시간을 달려 대항풍경구에 도착했다.

골짜기 안 묘족전통마을은 그림같은 풍경에 둘러져 있다. 우리 가이드는 우리를 묘족총각에게 넘겼다. 총각을 따라 계곡 길로 한참 가니 공연장에 도착한다.

공연장입구에 4명의 묘족처녀들이 뭐라뭐라 설명을 하더니 우리보고 노래를 해야 문을 열어준단다. 차안에서 가이드가 가르친 노래를 다같이 떼창으로 불렀다. 처녀들이 플랭카드를 걷으며 입장을 허락한다. 입구에는 묘족전통주가 준비되어 있어 마시며 들어간다.

공연은 내공이 있어 보이는 대인이 나와서 붓글씨를 쓰고 시작한다. 붓글씨 쓴 것을 경매에 부치는데 아무도 안 샀다.

스마일 춤
스마일 춤

총각들이 나와서 북을 치고 처녀들이 나와서 스마일 춤도 추고

짝짓기 춤
짝짓기 춤

짝을 맞춰 나와서 짝짓기 춤도 춘다. 몇몇 사람들이 지루한지 나간다. 남편도 지루해서 온몸을 뒤튼다. 남편이 나가자고 한다. 공연 소리가 끝나면 돌아오자고 한다. 할수없이 끌려 나왔다.

계곡안쪽까지 갔다 오니 공연이 끝나고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 남편이 주차장에 다녀오더니 버스만 있고 기사와 가이드는 보이지 않는단다. 어쩔줄 모르고 방황하고 있는데 묘족총각이 오더니 사람들이 식당에 있다고 안내를 해준다. 구세주를 만난 듯 반갑다. 단체행동에 적응 못하는 남편때문에 수시로 겪는 일이라 이젠 놀랍지도 않다. 처음부터 기사가 있는 차를 렌트할 걸 숙소 총각사장한테 의논했다가 투어에 껴서 마음고생을 했다. 식당에 가니 다들 앉아서 식사를 시작하려는 참이다. 묘족음식은 향이 강하지않아 먹기가 좋다. 심지어 콩나물무침도 나온다. 아침을 시원치 않게 먹은 참이라 맛있게 먹었다. 점심을 먹고 차를 타고 계곡을 따라 가다가 절벽 길을 따라 지그재그로 한참 올라간다.

올라가는 도중에 현수교 고속도로를 보는 전망대에 선다.

절벽 위 산을 뚫고 그 절벽 위에 기둥없이 고속도로를 낸 중국인들이 놀랍다. 다시 버스를 타고 10분정도 가더니 내렸다. 천문대라는 전망대에서 2시간 자유시간을 준다. 초나라시인 굴원이 하늘에 수백가지 질문을 속 시원하게 쏟아낸 곳이라고 한글로 설명이 적혀있다. 중국인들조차 몇 사람 찾지않는 관광지인데 개인적으로는 찾아오기조차 힘든 곳인데 한글 설명이 있다니 신기하다.

천문대
천문대

천문대에 오르니 우리가 갔던 공연장이 있는 마을로 이어지는 계곡이 보인다.

폭포 아래 내려갔다 다시 올라가서 또다른 묘족마을로 갔다.

농사지으며 살아가는 모습들이 평화롭다. 장가계나 봉황고성과 달리 한적해서 좋다. 좋은 풍경구인데도 근처 장가계나 봉황고성의 유명세에 밀려 한적한 듯하다.

덕분에 오랜만에 한가롭게 '힐링' 산책했다.

대항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건주고성에 들렀다. 청나라시대의 모습을 간직한 고성이다.

하루 종일 같이 다녀서 친해진 이쁜이들이 나한테 한국말연습을 한다. 오빠 가지마 등등 연속극 대사들인 듯싶다.
한 아가씨는 날 위해서 곰 세 마리 노래를 불러준다. 단체 투어에 낀 즐거움이 있다.

건주고성에서는 고성 안내를 따라 한바퀴 돈다. 애국지사의 집에도 들르고 저항시인의 집에도 들른다. 우리하고는 상관없는 애국지사이고 저항시인인지라 아무 흥미도 없는데 그냥 질질 끌려다녔다.

청조의 고성이라 중국의 다른 도시에서 흔하게 보는 고성들 분위기다.

드디어 오늘 하루의 투어를 마치고 봉황으로 돌아왔다. 며칠 동안 묘족음식만 먹어서 KFC가 그리워졌다. 버스에서 내리니 함께 다녔던 젊은이들이 안녕하며 인사를 한다. 함께한 중국의 젊은이들이 밝고 명랑해서 투어의 보너스를 받은 기분이다. KFC에서 저녁을 먹는데 옆자리에 앉은 가족이 재미있다. 잘생긴 젊은 부부가 어린 아들 둘을 데리고 앉아있다. 가족이 온몸에 명품을 두르고 부티 귀티가 좔좔 흐른다. 중국의 1자녀법이 2자녀법으로 바뀐 덕분에 식당 안에는 2자녀를 데리고 있는 젊은 부부가 몇몇 보인다.

어스름 불 밝혀지기 시작하는 고성을 한바퀴 돌아보고 숙소로 돌아왔다. 아들 사장이 와서 한 가족이 모여 다정하게 놀고 있다. 투어 좋았다고 고맙다고 했다. 오늘아침 쥐구멍 찾느라 고생한 생각이 나서 내일 아침 일찍 나가려면 어째야하냐고 물었더니 3층에 부모님이 사니깐 문을 두드리라고 한다. 한국말로 ‘짜이찌엔’이 뭐냐고 묻는다. ‘다시 만나요’ 라고 가르쳐주니 바로 따라한다. 내일은 계림으로 가는 날이다. 봉황에서 계림까지 가는 차가 12일 13일밖에 없어서 할수없이 다음 대도시로 이동해서 버스표를 알아봐야한다. 기차표를 알아보니 시간이 맞지않는다. 내일은 어떤 스펙타클사건들이 펼쳐질지 궁금하다. 아무것도 보장되어 있지 않으니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 하긴 보장된 날이라고 내 맘대로 된다는 보장은 있는가?

허미경 여행전문기자(mgheo@nextdaily.co.kr)는 대한민국의 아줌마이자 글로벌한 생활여행자다. 어쩌다 맘먹고 떠나는 게 아니라, 밥 먹듯이 짐을 싼다. 여행이 삶이다 보니, 기사나 컬럼은 취미로 가끔만 쓴다. 생활여행자답게 그날그날 일기 쓰는 걸 좋아한다. 그녀는 솔직하게, 꾸밈없이, 자신을 보여준다. 공주병도 숨기지 않는다. 세계 각국을 누비며 툭툭 던지듯 쏟아내는 그녀의 진솔한 여행기는 이미 포털과 SNS에서도 두터운 팬 층을 확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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