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오면 지하철을 많이 타게 된다. 서울처럼 지하철이 도시 생태에 깊이 들어간 도시가 그다지 많지 않다. 20세기에 런던, 뉴욕, 파리, 도쿄, 그리고 모스크바가 지하철 망이 많았지만, 21세기에 들어오면서 서울, 베이징, 그리고 상하이에 넓은 지하철 망이 생겼다. 새로운 지하철 노선이 개통되면 도시가 점차 변해 시간이 지나면 ‘지하철 도시’가 된다.

지하철 도시는 긴 도로보다 지하철 역이 거점이 되며 역 근처에 주변 사는 사람을 위한 상업 시설이 들어온다. 도시의 지리를 지하철 역과 여러 노선 중심으로 생각하게 된다. 예를 들면 서울은 지하철 전에 ‘동’ 중심으로 생각했지만, 지하철 노선이 확대되면서 역을 중심으로 도시가 발달된다.

지하철 도시가 발달되면서 지하철을 이용하는 승객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지하철 문화가 형성된다. 예를 들면 도쿄 지하철 에스컬레이터에서 걷는 사람과 서는 사람들이 뚜렷하게 구별되고 걷는 쪽에 서면 시선이 엄격하다. 서울도 점차 그렇게 되고 있지만, 도쿄보다 아직은 느슨하다. 그리고 어떤 지하철에서는 간식을 먹어도 괜찮지만, 엄격하게 금지한 곳도 있다. 옛날 미국 수도인 워싱턴 지하철을 출근 시간에 탈 때 여성 화장하는 모습도 신기했다.

서울의 지하철을 이용하다보면 다양한 면을 볼 수 있다. 어떤 면에서는 불편함을 느끼게 하기도 한다. 얼마 전 필자는 지하철에서 80대 할머니에게 자리를 양보한 적이 있었다. 필자의 양 옆에는 20대로 보이는 젊은 여성들은 휴대폰을 보고 앉아있었다. 할머니가 걷기 힘들 정도이어서 필자는 바로 자리를 양보했다. 그런데 몇 분 후에 근처에 있던 70대 중반의 할아버지가 젊은 여자 한 명에게 일어나라고 했다. 그 여자는 불쾌한 표정으로 일어났고 다른 차량으로 이동했다. 할아버지는 필자에게 앉으라고 했지만, 필자는 거절하고 할아버지가 앉았다.

이런 불편한 상황을 만드는 것은 ‘간섭’이다. 남에게 뭘 보여 주기 위해서 자리를 양보한 것이 아니라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었고 필자와 할머니 사이의 일이었다. 주위 사람과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개입하면서 일이 커지고 앉아 있었던 젊은 여자가 불쾌감을 가졌고 필자도 편안한 마음은 아니었다.

이 일에 대해서 한국 지인에게 설명했더니 비슷한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또 다른 이야기로는 세월호를 애도하는 노란 리본 때문에 지하철에서 노인에게 폭언을 당한 지인이 있었고 노약자 석에는 아무도 없어서 노인은 그 자리에 앉을 수 있었는데도 앉지 않고 일반석에 앉아 있는 지인이 호통을 받았다고 한다. 이러한 문제들의 공통점은 간섭이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간섭이 심한 것인가? 한국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농촌 사회의 특성인 공동체 중심의 사회가 개인 중심의 도시화로 빠르게 변한 것이 큰 원인이다.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농촌 사회의 공동체 의식은 도시보다 몇 배 강하다. 같은 지역에서는 서로 많은 관심을 갖고 서로 돕는다. 농촌 사회는 독립된 개인이 모여서 필요에 따라 협력하는 구조가 아니라 서로 의존하고 돕는 것이 생활화돼 있어 개인의식이 약하지만 공동체 의식이 강하다. 그래서 농촌에서 다른 가족의 아이가 잘못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 야단을 치는 것은 간섭이 아니라 책임감과 애정의 표시이다.

현재 노인 중에 대부분은 농촌에서 태어나고 자랐기 때문에 공동체 의식이 강하다. 지하철에서 젊은 사람에게 야단을 치는 것은 장유유서와 같은 옛 공동체의 윤리를 지켜야 된다는 생각에서다. 반면 젊은 세대는 도시에 태어나고 자랐기 때문에 개인의식이 강하고 간섭을 싫어한다. 좁은 도시에서 많은 사람이 모여서 살기 때문에 간섭을 피하기 위해 스스로 행동을 관리하게 된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간섭이 공격으로 생각될 수 있어 종종 갈등의 원인이 된다. 그리고 도시는 농촌과 달리 행동에 대한 제약이 많다. ‘금연’ 표시가 대표적 사례이다.

이처럼 서울 지하철에서 자주 일어나는 세대 간의 갈등은 한국이 농촌 중심 생활에서 도시 중심 생활로 변한 것을 반영한다. 다른 선진국에서 그 과정은 100년이 걸렸지만, 한국은 30년 정도의 짧은 시간이었으니 충돌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하철은 좁고 사람끼리 접촉이 많아서 바로 느낄 수 있고 식당과 같은 다른 공공장소에서도 비슷한 충돌을 종종 볼 수 있다.

지하철에서 표출이 되는 세대 간의 갈등에는 또 다른 원인이 있다. 지금의 노인들은 20세기 중반에 사회적 혼란기에 태어나고 자랐다. 지금의 젊은 세대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물질적으로 어려운 생활 속에서 자랐다. 그들은 젊었던 시절 1960년대부터 경제 성장에 참여하면서 현재의 부유한 대한민국을 만들었다고 자부심을 느낀다.

반면에 젊은 세대는 물질적으로 풍요한 생활 속에서 자랐고 빈곤보다는 고용 불안과 같은 문제를 걱정하고 있다. ‘헬조선’이라는 표현이 등장할 만큼 한국을 비관적으로 보고 있다. 윗세대들은 젊은 세대가 고마운 줄을 모르는 이기주의적으로 보이는 반면 젊은 세대는 윗세대의 사고는 화석화됐다고 보고 소통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옛날 세대와 젊은 세대는 생각이 다르고 생활 방식도 다르다. 농촌 사회는 ‘은퇴’의 개념이 약하다. 노인은 아이들과 같이 살면서 건강이 약해져 일할 수 없을 때까지 농사를 짓고 집안일에 참여한다. 그런데 도시는 집이 작고 생활이 바빠 부모를 모시는 것이 부담스럽다. 그래서 각자 살면서 노인들은 할 일이 없어서 경제적 어려움이 있고, 고독을 느끼는 등 점차 소외되고 있다.

급격한 도시화는 어쩔 수 없지만, 사회가 노인의 경제적 어려움과 소외감을 해결할 수 있다면 상황이 좋아질 수 있다. 언론에서 종종 오르내리는 한국의 노인 빈곤은 OECD 국가 중 최고이고 거의 50%에 이르는 놀라운 기록이다. 그 원인은 늦게 시작되고 빈약한 연금 제도에 있다. 연금은 노인 복지 정책 중 기본에 해당되는 것으로 연금을 강화하는 정책이 실시된다면 좀 더 사회가 나아질 것이다. 노인의 경제적 어려움이 완화되면 취미 생활 중심으로 새로운 할 일이 생길 것이고 그렇게 되면 소외의 문제는 점차 해소될 것이다.

크게 보면 서울 지하철 문화 속에 종종 발생하는 세대 간의 갈등과 노인들에 대한 문제는 한국 사회의 태생적 불안을 반영하는 것이다. 공공이 약하기 때문에 복지가 약하다. 복지가 약하기 때문에 개인들은 자신들을 위해 스스로 돈을 벌어야 하는데 경제 성장이 둔화한 지금은 그렇게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이미 나이가 들어버린 노인들은 그마저 쉽지 않다. 이렇게 보면 지하철에서 서로 불쾌하게 생각하는 노인과 젊은이는 오히려 비슷한 처지이다. 서로 이해하고 더 안정된 미래를 위해서 개선을 요구하고 그 요구를 현실화시키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지하철에서의 불편함과 불쾌감이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암울한 지하철 문화가 아닌 서로 이해하는 밝고 건강한 문화를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로버트 파우저 robertjfouser@gmail.com 전 서울대 국어교육과 교수. 미시간대에서 일어일문학 학사 및 응용언어학 석사, 아일랜드 트리니티 칼리지 더블린에서 응용언어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고려대와 일본 교토대에서 영어와 영어교육을 가르쳤고, 일본 가고시마대에서 교양 한국어 과정을 개설해 가르쳤다. 한국 사회를 고찰하면서 한국어로 ‘미래 시민의 조건’, ‘서촌 홀릭’을 출간했다. 취미는 한옥과 오래된 동네 답사, 사진촬영으로 2012년 종로구 체부동에 ‘어락당(語樂堂, 말을 즐기는 집)’이라는 한옥을 짓기도 했으며, 2016년 교토에서 열린 ‘KG+’ 국제 사진전시회에 사진을 출품했다. 현재 미국에서 독립 학자로서 활동을 하고 있으며 한국어로 ‘외국어 문화사’를 집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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