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속하게 비가 또 온다. 일 년중 200일동안 비가 온단다. 황석채 간 날 비 오지 않은 것이 고마운 일이다. 장가계입장권이 4일동안 유효하지만 오늘은 포기하기로 했다. 오늘까지 구름 속에서 헤매고 싶지않다.

호텔 로비에 여행사가 있다. 들어가니 직원들이 여러 명 있다. 유리잔도티켓을 예약해줄 수 있냐고 물으니 대답을 못한다. 영어를 아무도 할 줄 모른다. 눈치 빠른 여직원이 호텔매니저를 데려온다. 다행히 호텔매니저는 영어를 잘한다. 중국말 잘하는 가이드가 없으면 예약 안하는 것이 낫단다. 대협곡쪽에도 영어할수 있는 사람이 없을테니 예약명단에서 우리 이름을 찾아서 표를 구입하는 것이 어려울거란다. 나의 중국어실력으로는 예약한 티켓을 찾기가 힘들거란다.

비가 어제보다 많이 온다. 오늘은 황룡동굴로 가서 비를 피하기로 했다.

호텔에서 나와 택시를 잡으려는데 순진하게 생긴 총각이 어디가냐고 묻는다. 황룡동굴 갈거라니 60위안 부른다.
차도 괜찮아 보이고 청년 인상도 좋아서 황룡동굴보고 천문산으로 갔다가 호텔로 돌아오는 걸 400위안에 흥정했다.

황룡동굴에 도착해서 들어가는데 한국사람들이 줄줄이 이어서 나온다. 9시30분경인데 몇 시에 입장을 했길래 2시간걸리는 동굴을 다보고 나오는지 신기하다.

나오는 사람들 대부분 한국인들이다. 중국 온지 5일만에 한국사람들 실컷 만났다.

우리나라 만장굴에 온 기분이 든다.

황룡동굴은 중국 최대의 동굴이라는데 실감이 난다.

공개 구간이 11킬로미터정도에 140미터 4층 높이란다.

계단으로 길을 내놓은 것이 감탄스럽다.

특이하고 다양한 석주들도 구경할 만 하다.

워낙 큰 동굴이라 별별 모양을 구경한다.

140미터를 다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가면 선착장이 있다.

배를 타고 나오면 자연스레 출구와 연결이 된다.

반대로 배를 타고 들어가서 역순으로 보고 나올 수도 있다.

우리는 기다림없이 타고 나왔는데 배를 타고 들어갈 사람들 줄이 길다. 거꾸로 하길 잘했다.

동굴에서 나오니 차가 없다. 미리 전화번호를 알아두길 잘했다. 전화해서 오라고 하니 잠시 뒤에 온다. 기사가 천문산가기전에 다른데 들렀다 가자고 한다. 기분이 확 상한다. 그냥 천문산가자고 했다. 천문산에 도착하니 기사가 시간 없다고 그냥 간다며 돈을 달란다. 그냥 300위안만 달란다. 우리도 기사가 기다리는 것이 부담스러워 그냥 돈을 줬다. 천문산입구는 택시잡기가 쉬운 곳이라 돌아갈 걱정은 안해도 될 듯싶다.

케이블카표를 사러가니 문이 닫혔다. 오늘 표는 다 팔렸단다. 버스 타고 올라가는 줄에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복잡한 상황을 해결할 중국어실력은 안되는지라 관광안내소에 가서 영어로 물어보니 아무도 영어를 할 줄 모른다. 할 수없이 나와서 공안에게 중국말로 물어보니 산 위쪽은 눈이 와서 버스운행을 안한단다. 케이블카로만 올라갈 수 있는데 오늘 표는 다 팔린거다. 천문산에 대한 정보를 대충 수집하고 내일 계획을 세웠다.

택시기사한테 무릉원까지 얼마냐니깐 150위안 달란다. 택시를 타고 한참 가는데 기사가 창문을 내리고 옆 택시 기사한테 한국사람 있는데 어쩌고 저쩌고 하더니 그 택시로 타란다. 무릉원 가는 택시에 우리를 합승시킨다. 택시를 갈아타고 보니 이미 두 사람이 타고 있다. 150위안씩 내고 뒷자리에 3명이 껴 타고 무릉원까지 갈수는 없다. 차라리 버스를 타고 가는게 낫다. 안타겠다고 말하고 버스승강장으로 갔다. 버스 타려고 서있는데 기사가 오더니 다시 지차로 가자고 한다. 몸도 마음도 피곤해져서 그냥 탔다. 한참 달리는데 젊은 기사는 졸리는지 몸에 열이 많은지 창문을 연다. 졸려서 창문을 연 것 같아서 닫으라고 할 수가 없다. 엄동설한에 택시 타고 찬바람 맞는 것이 웬일인가 싶다.

내일은 버스로 천문산까지 가는 것에 도전해보려고 버스터미널로 갔다. 대합실같이 생긴 큰 건물이 있길래 들어갔다. 에스컬레이터가 있어서 탔더니 느낌이 이상하다. 패키지여행 관광객들이 반드시 들른다는 쇼핑센터다.

쇼핑센터는 엄청난 규모인데 중간에 빠져나올 통로가 없이 설계되어 있다. 학원 강의실 같은 것이 수십 개 이어져 있는데 그 안에는 패키지여행객팀별로 앉아서 설명을 듣고 있다. 장가계특산품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듯 보인다.

강의실을 지나고 나니 물건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거기서부터 카트에 물건을 담기 시작한다. 우리는 빨리 지나고 싶은데도 인파 때문에 힘들다. 지나다가 비누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길래 하나 샀다. 계산하는데 해당가이드표를 달란다. 없다 하니 그냥 계산해준다. 저가패키지의 현실을 체험했다.

오늘은 더이상 아무것도 하지 말고 호텔서 뒹굴거리며 푹 쉬기로 했다. 방에 들어오니 천국에 온 기분이다. 뜨거운 물 틀고 새로 산 비누로 목욕을 했다. 생각보다 비누가 좋다. 20위안정도인데 더 살걸 그랬다. 향도 좋고 느낌이 좋다.

방에서 푹 쉬다가 호텔레스토랑으로 저녁을 먹으러 갔다. 우리나라 호텔레스토랑하고 다를게 없다. 2인 세트메뉴를 추천한다. 메뉴 설명을 영어로 하길래 메인 메뉴 재료가 뭐냐고 물었더니 세트메뉴라고 답한다. 앵무새가 따로 없다. 샐러드 스프 메인 디저트 커피까지 다 포함된 세트라 그냥 시켰다.

우리나라 레스토랑에 온 것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비슷하게 코스 진행을 한다. 버섯 스프가 맛있고, 시저샐러드도 맛있다. 메인으로 나온 생선스테이크도 맛있고 버섯 구이도 맛있다. 빵도 맛있어서 더 달라고 했다. 디저트도 온갖 재주를 부려서 예쁘게 장식해서 내온다. 오랜만에 귀부인모드로 맛있는 식사를 하니 기분이 업 된다. 창 밖 야경도 은은하니 기분이 좋다.

여행도 인생과 다를 것이 없다.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 싶을 때는 몸을 움츠리고 쉬는 것도 나쁘지 않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한숨 돌리며 쉬는 일이다. 오늘은 한숨 오그리고 내일 기지개를 켜자.
아자아자.

허미경 여행전문기자(mgheo@nextdaily.co.kr)는 대한민국의 아줌마이자 글로벌한 생활여행자다. 어쩌다 맘먹고 떠나는 게 아니라, 밥 먹듯이 짐을 싼다. 여행이 삶이다 보니, 기사나 컬럼은 취미로 가끔만 쓴다. 생활여행자답게 그날그날 일기 쓰는 걸 좋아한다. 그녀는 솔직하게, 꾸밈없이, 자신을 보여준다. 공주병도 숨기지 않는다. 세계 각국을 누비며 툭툭 던지듯 쏟아내는 그녀의 진솔한 여행기는 이미 포털과 SNS에서도 두터운 팬 층을 확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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