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4 (올해로 103주년을 맞은 조선호텔 개관 연도)
-140,666 (조선호텔 초기 건립비는 84만4000엔으로 비슷한 연도 쌀 가마니(6엔)로 환산했을 때 양)
-106 (현 조선호텔 주소와 개관 당시 수용 인원 수)
-201 (역사의 격변기를 함께한 특별 귀빈실 '임페리얼 스위트' 객실 번호)
-7000 (1950년대 조선호텔이 최초로 할리우드 영화인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일주일간 무료로 상영했고 이 때 총 관람객 수)
지난 한 세기 우리나라 근현대사에서 역사적 순간을 장식했던 장소 1순위로 꼽히는 곳이 있다.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이하 조선호텔). 현존하는 국내 최초 호텔로 103년 역사를 자랑하는 조선호텔이 신축된 시기는 일제강점기인 1914년이다.
사실 국내 최초 호텔은 따로 있다. 1888년(고종 25년) 일본인 호리 리키타로가 인천시 중구에 지은 '대불호텔'과 1889년 중국인 양기당(梁綺堂)이 역시 인천에 세운 '스튜어드호텔'이 국내 1, 2호 호텔로 알려져 있다.
이 호텔들은 지역 경제상황에 의해 매각이나 음식점 등 다른 용도로 사용돼 오다 헐리면서 역사 속으로 자취를 감췄다. 대불호텔은 지난 2월 인천 중구청이 25억8900만원의 예산을 들여 복원했지만 역사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국내 최초 승객용 수직열차(현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조선호텔은 1900여㎡(580평)에 총 52개 객실과 한·양식당, 커피숍, 바, 댄스홀을 갖춘 볼룸, 두 개의 별실과 도서실, 헬스장 등을 갖춘 초호화 건물이었다.
독일 건축가가 설계를 맡아 지하 1층 지상 4층 벽돌 건물로 세워졌다. 건립비용은 84만4000엔이 투입됐다고 한다. 1927년 쌀 한 가마니 가격이 6엔이었으니 호텔 건립 비용은 쌀 14만666가마니에 해당한다. 최근 쌀 10㎏이 약 3만원, 1가마니는 약 24만원으로, 이를 환산하면 현재가로 약 340억원이 소요됐다고 추정할 수 있다.
조선호텔은 오랜 역사만큼이나 주인도 여러 차례 바뀌었다. △일본 철도청(1914~1945년) △광복 후 미군정청 운수국(1945~1947년) △대한민국 정부 교통부(1948~1963년) △국제 관광공사(現 한국관광공사, 1963~1970년) 등이 거쳐갔다. 1995년 6월 신세계그룹이 호텔 지분 100%를 확보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조선호텔은 개관 후 국빈, 고위관리, 외국 인사가 투숙하는 영빈관 역할을 도맡아 하는 등 국내 정치·경제·사교 중심지 역할을 했다. 마를린 먼로와 맥아더 장군, 포드 미 前 대통령, 레이건 미 前 대통령 등 VIP 고객이 오면 항상 묵었다.
대표적인 VIP 객실은 일제시대 때 '임페리얼 수우트'라 불린 201호다. 1945년 8·15 광복 직후인 9월 미군 사령관 하지 중장(미군 제24사단 고급장교 숙소)이 이 곳을 거처로 정하고 미군정을 이끌었다.
이 객실에 투숙한 최초 한국인은 이승만 박사로 기록돼 있다. 미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돌아 온 이 박사는 1946년 4월 거처를 옮길 때까지 201호실을 정치 활동 중심거점으로 삼았다. 이 대통령에 의해 일본식 명칭인 '조센호테루'가 '조선호텔'로 개칭됐다.
1950년 6월 28일에는 북한 인민군이 호텔을 점령해 호텔에 남아있던 고급 위스키와 포도주 등을 모두 마셔 버렸다. 한 북한군 장교가 호텔 세면 비누를 과자로 착각해 깨물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1963년 당시 박정희 장군은 이 객실에서 제3공화국을 탄생시켰다. 정권을 잡은 박 대통령은 조선호텔을 세계적 수준의 호텔로 만들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1967년 옛 건물을 부수고 현대식 새 건물을 건축토록 했다.
시설과 규모면에서 반도호텔과 쌍벽을 이뤘던 조선호텔은 1964년 서울에서 개최된 PATA(태평양 아시아지역 관광협회) 총회 때 워크숍을 유치했고 험프리 미국 부대통령이 머물기도 했다. 그러나 1967년 7월 6일 신규호텔 건설을 위해 철거돼 53년이라는 긴 역사를 마무리지었다.
1970년 3월 17일 지하 2층, 지상 20층의 현재 조선호텔이 완공됐다. 새로운 조선호텔은 한미 자본이 각각 550만달러씩 출자돼 총 1100만달러라는, 당시로는 엄청난 공사비가 투입됐다.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은 위에서 보면 '人'자 모양을 띄고 있다. 4층 건물이었던 호텔을 헐고 새로 짓기로 했을 당시 정육면체 빌딩이었지만 개·보수 과정에서 옛 조선호텔 상징인 팔각정과 새 호텔 축을 변경해 곡선을 이룬 人자가 됐다.
서울 웨스틴조선호텔 투숙객 80% 이상이 해외 고객이라고 한다. 이중 1년 동안 25박 이상 투숙하는 고객이 약 50% 정도로 단골이 많다고 호텔 관계자는 전했다.
정영일기자 wjddud@next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