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1952년생 독신여성이었다. 사정상 대학 입학이 여의치 않았으나 총장의 배려로 서강대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사람들의 존경을 받아온 아버지가 충격적인 사고로 돌아가신 것은 두고두고 아픔이 되었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할 것이라는 사회적 편견에 맞선 그는 불굴의 의지로 모든 것을 극복하고 아버지와 같은 반열에 오른 자랑스러운 딸이 되었다. 평생 존경하고 의지했던 아버지의 빈자리가 커서 고통도 따랐지만 당당하게 이겨내고 정상에 우뚝 선 것이다.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그 명예를 지켜내기 위한 각고의 노력 끝에 교과서를 완성시켰으나 여러 가지 반대에 부딪쳐 아버지의 이름을 올리지 못한 아쉬움도 있었다. 얼핏 다른 누군가를 상상할 수도 있지만 그는 원로 영문학자인 우보 장왕록의 차녀 장영희 교수다.

“신은 다시 일어서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넘어뜨린다고 저는 믿습니다. 저는 넘어질 때마다 번번이 죽을힘을 다해 일어났고, 넘어지는 순간에도 다시 일어설 힘을 모으고 있었습니다.” 한 살 때 소아마비로 걸을 수 없게 된 것은 불행한 육체의 첫 번째 시련일 뿐이었다. 49세에 유방암, 52세에 척추암이 연거푸 찾아왔을 때도 끝내 맞서 싸우고 이겨냈다. 결국 56세에 간암이라는 가혹한 형벌이 찾아왔을 때는 1년의 투병 끝에 그리운 아버지 곁으로 떠났다. 선생이 타계한 날은 공교롭게도 화가 김점선 사십구재의 날이었다. 화가는 선생이 한 일간지에 연재한 글이 ‘생일’과 ‘축복’이란 제목의 책으로 출간될 때 아름다운 삽화를 그려준 분이다. 따뜻하면서도 아기자기한 그림들로 사랑스런 색감과 희망의 농도를 조화롭게 잘 표현한 공동의 저자였다.

이 봄에 두 권의 스테디셀러를 합본한 ‘생일 그리고 축복’이 나왔다. 투병 중이던 선생이 일 년 동안 연재한 ‘장영희의 영미시 산책’을 부제로 사랑을 주제로 한 49편을 묶어 ‘생일’, 희망을 주제로 한 50편을 묶어 ‘축복’이라 했으니 그 두 권을 통합해서 ‘사랑 그리고 축복’이라 제목 붙인 것은 당연한 선택일까? 선생이 살아계셨더라면 아마도 이렇게 단순한 덧셈의 제목은 용납하지 않았을 것 같다. 시를 다룬 책의 제목으로는 상상력이 너무 빈약한 것 아니냐며 더 고민해 보자고 말했을 것 같다. 하지만 특별한 가감 없이 서문도 10년 전 두 책에 실린 것을 나란히 옮겼고, 최대한 고인의 의견을 존중한 채로 업그레이드 시킨 것에 호평을 해야겠다. 판형과 함께 그림과 글씨도 대체적으로 더 작아졌지만 실용적인 마닐라 양장으로 더 고급스럽고 아름다운 책으로 다시 태어났다.

[ Birthday ]
My heart is like a singing bird
Whose nest is in a watered shoot;

My heart is like an apple-tree
Whose boughs are bent with thickset fruit;

My heart is like a rainbow shell
That paddles in a halcyon sea;

My heart is gladder than all these
Because the birthday of my life
Is come, my love is come to me....

[생일]
내 마음은 물가의 가지에 둥지를 튼
한 마리 노래하는 새입니다

내 마음은 탐스런 열매로 가지가 휘어진
한 그루 사과나무입니다.

내 마음은 무지갯빛 조가비,
고요한 바다에서 춤추는 조가비입니다.

내 마음은 이 모든 것들보다 행복합니다.
이제야 내 삶이 시작되었으니까요.
내게 사랑이 찾아왔으니까요.

시인은 바람에 색깔을 칠하는 사람이라고 했지만, 세상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언어는 없으므로 각 시대와 문화에 적절한 번역을 통해서만 그 절묘한 사랑과 희망이 공유된다. 선생의 맛깔스러운 번역과 지혜로운 해설이 중요하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더욱 혼자가 된 선생이 하얀 벽으로 둘러싸인 병실에서 사랑과 희망을 이야기했다. 생사를 넘나드는 날들을 견디며 스스로가 마음을 바로 잡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끌어내던 참으로 혼신을 다한 글쓰기였을 것이다. 19세기 영국 시인 크리스티나 로제티의 시 제목이기도 하지만 여러 의미를 담고 싶었다고 한다. 사전적 의미의 생일이 아니라 사랑에 눈을 뜬 순간 영혼이 다시 태어난다는 만남의 기쁨을 노래했기 때문이다.

사랑을 노래한 첫 시가 ‘Birthday(생일)’였다면 희망을 노래한 ‘축복’의 첫 시는 ‘Hope Is the Thing with Feathers(희망은 한 마리 새)’다. 이 시를 쓴 19세기 미국 시인 에밀리 디킨슨은 머리가 폭발할 것 같은 느낌이 들 때 글을 썼다고 한다. 그녀는 사후에 발견된 2,000여 편의 시 때문에 더 유명해졌다. 우리의 영혼 속에 살짝 걸터앉아 있는 한 마리 새처럼 조용히 지내던 희망은 평소에 알 수 없다가 절망과 고통으로 마음 아플 때 살며시 다가와 손을 잡아 준다는 아름답고 절절한 내용이다. 상처에 새 살이 나오듯, 죽은 가지에 새순이 돋아나듯, 한 마리 작은 새가 찾아온다는 것이다. 오랜 세월 검증되어 온 시를 읽으면서도 특별한 감흥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시인의 마음으로 노래하듯이 낭송해 볼 것을 권한다.

[Song of Myself]
Agonies are one of my changes of garments,
I do not ask the wounded person how he feels,

I myself become the wounded person.
My hurts turn livid upon me
as I lean on a cane and observe.

[나의 노래]
고뇌는 내가 갈아입는 옷 중 하나이니
나는 상처받은 사람에게 어떤 기분인가 묻지 않는다,

내 스스로 그 상처받은 사람이 된다.
내 지팡이에 기대 바라볼 때
내 상처들은 검푸르게 변한다.

나무를 이해하려면 나무가 되어야 하고, 꽃을 이해하려면 꽃이 되어야 하고, 새를 이해하려면 새가 되어야 한다. 하방연대(下方連帶)를 강조하셨던 쇠귀 선생님은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19세기 미국 시인 월트 휘트먼의 ‘Song of Myself(나의 노래)’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이야기이다. 원래 이 시는 책으로 엮어도 200쪽은 족히 넘는 모두 1,760행에 달하는 어마어마하게 긴 시다. 중간에 불과 3행을 끌어다가 다시 5줄로 나눠 시인의 마음을 일부 인용한 글인데,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다가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곱씹어 볼 수 있는 공감의 명문이다. 상처받은 어떤 사람을 보면서 ‘아, 저 사람은 참 마음 아프겠다.’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관찰보다는 애정이, 애정보다는 실천적 연대가, 실천적 연대보다는 입장의 동일함이 필요하며 그것이 관계의 최고 형태라던 이야기와 일맥상통하는 글이다. 그 이상의 위로가 있을까? 남을 이해해야 자신을 알고, 자신을 제대로 알아야 당당하고 아름다운 ‘나의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것이다.

선생을 생각할 때마다 고독한 병실이 그려진다. 죽음 앞에서도 문학과 함께 긍정적으로 맞섰던 선생은 사랑과 축복을 이야기하면서도 종종 이별과 죽음을 드러냈다. 자기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서 형이상학파 시인 존 던의 ‘Death, Be Not Proud(죽음이여 뽐내지 마라)’를 통해 죽음을 앞둔 독자와 가족들을 위로하기도 했다. 늘 의연하게 죽음을 대하는 선생의 글에서 여러 가지 복잡한 마음이 읽혀져 숙연해지곤 한다. 특히 새러 티즈데일의 ‘A Prayer(기도)’는 죽음을 대비하는 상징처럼 보인다. 우리의 삶을 외줄타기에 비유하며 도로시 파커의 'Resume(다시 시작하라)'를 통해 아름다운 죽음이 없음을 상기시킨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삶을 향한 강한 의지를 불태우는 선생의 모습은 희망 그 이상의 기운으로 넘친다.

[Love's Philosophy]
The fountains mingle with the river
And the rivers with the Ocean...

Nothing in the world is single;
All things by a law divine,
In one spirit meet and mingle.
Why not I with thine?

[사랑의 철학]
샘물은 강물과 하나 되고
강물은 다시 바다와 섞인다

이 세상에 혼자인 것은 없다.
만물이 원래 신성하고
하나의 영혼 속에서 섞이는데
내가 왜 당신과 하나 되지 못할까

셸리는 요트 항해를 하던 중 익사해서 시신을 화장했는데 심장은 끝까지 타지 않았다는 시인이다. 서로 떨어져 마음만 교류하는 반쪽사랑에 우호적이지 않았고 자신을 온전히 바쳐야 한다는 그의 이야기에 외떨어진 반쪽이 만나 하나 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란 해석을 덧붙인 선생도 평생 독신이었다. 본인이 노자 철학과 관계론적인 관점으로 바라보며 해석하고 애송하던 시였던 것을 생각하면 시는 자신의 입맛에 맞게 여러 가지 상상력을 동원하는 것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다.

물론 사랑에 관한 시는 차고 넘친다. 생소했던 만남으로는 모더니즘 계통의 실험적 시인 e.e.커밍스가 특히 눈에 들어왔다. 구두점이 생략된 소문자에 집착한 그는 이름은 물론 ‘I’도 대문자를 쓰지 않는 것에 대해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더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였다고 하니 시의 형식을 통한 인류애를 실천한 것일까. ‘i carry your heart with me(나는 당신의 마음을 지니고 다닙니다)’를 통해 ‘나와 당신’이 아니라 ‘나의 당신’이라는 겸손하고 진정한 사랑으로 각인 되었다.

때때로 시가 밥 먹여 주느냐는 매우 원론적인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있다. 조금만 관심 있게 세상을 바라보면 외교나 사업, 사교에서 최고의 도우미가 되는 문학의 힘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 두툼한 한 권의 책에서 마음에 와 닿는 짧은 영미시 한 구절이라도 외워둘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선생은 생전의 몇몇 강의 자리에서도 바이어와의 어색한 첫 만남을 친근감 있는 관계로 이끌어 내는 이른바 ‘breaking the ice’로 그만한 것이 없다고 했다. 오래 전, 은퇴를 앞둔 한 정치인에게 기자가 다가가 앞으로 무슨 일을 할 것이냐고 묻자 “miles to go before I sleep.”라고 답했을 때의 충격은 참으로 신선했다. 그때까지 매우 불편한 시선으로 바라보던 그에 대한 호감이 상승하고, 그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 되었다. 여전히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살아가는 그 노신사가 일상에 인용한 그 공감의 시는 다음과 같다.

[Stopping By Woods on a Snowy Evening]
Whose woods these are I think I know
His house is in the village though;

He will not see me stopping here
To watch his woods fill up with snow...

The only other sound‘s the sweep
Of easy wind and downy flake.

The woods are lovely, dark and deep,
But I have promise to keep,
And miles to go before I sleep,
And miles to go before I sleep.

[눈오는 저녁 숲가에 서서]
이 숲이 누구의 숲인지 알 것도 같다.
허나 그의 집은 마을에 있으니

내가 자기 숲에 눈 쌓이는 걸 보려고
여기 서 있음을 알지 못하리.

다른 소리라고는 스치고 지나는
바람 소리와 솜털 같은 눈송이뿐.

숲은 아름답고, 어둡고, 깊다.
하지만 난 지켜야 할 약속이 있고,
잠들기 전에 갈 길이 멀다.
잠들기 전에 갈 길이 멀다.

무엇인가 뭉클하고 목구멍에 뜨거운 것이 치밀 때 시를 쓴다던 로버트 프로스트의 작품이다. 이 시의 묘미는 맨 마지막 구절의 운율에도 있다. 원문의 첫 번째 연에서는 know, though, snow, 이 책에서 생략된 두 번째 연에서는 queer, near, year 이렇게 각운을 맞춰 쓴 것이 인상적이다. 마지막에 반복되는 잠들기 전에 가야할 곳은 생의 마지막 순간에 해야 할 일이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우리에게 ‘The Road Not Taken(가지 못한 길)’로 더 유명한 시인을 한 없이 애정했던 선생은 다른 여러 책들을 통해 그를 이야기했다. 똑같은 시를 번역하더라도 시절에 따라 다른 단어와 늬앙스로 표현하던 선생의 유연성과 끝없는 변화가 그립다.

매들린 브리지스의 ‘Life's Mirror(인생 거울)’를 이야기할 때 러디어드 키플링이 아들에게 보낸 편지를 함께 소개한 것도 적절했다. ‘인생의 비밀은 단 한 가지, 네가 세상을 대하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세상도 너를 대하는 것이다. 네가 세상을 향해 웃으면 세상은 더욱 활짝 웃을 것이요, 네가 찡그리면 세상은 더욱 찌푸릴 것이다.’, 여러 시들을 통해 선생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읽어진다. 원문과 나란한 선생의 번역은 일관성 있는 문체로 정서적 교감을 극대화시켰고 언어의 장벽도 큰 문제가 될 수 없는 편안한 책이다. 선생이 타계한 뒤 유족들은 고인의 삶 절반이 녹아 있는 모교에 책의 인세와 퇴직금 등 전액을 기부했다고 전한다. 생전에도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몰라라 하지 않았던 고인의 뜻을 실천에 옮긴 것이다.

그러나 사랑은 남는 것. 이 한 권의 책은 8주기를 나란히 앞 둔 선생과 점선 화백이 선물한 사랑과 희망의 시화전이다. 제자 승은이와 빈센트 밀레이의 시를 소재로 주고받던 대화를 되새긴다. 제자의 결혼 선물이었던 헨리 엘포드의 시를 필사하고 읊어 봤다. 명나라의 사상가 이탁오가 남긴 ‘친구가 될 수 없다면 진정한 스승이 아니고, 스승이 될 수 없다면 진정한 친구가 아니다.’를 연상하며 강단의 미소를 추억한다. 선생이 이 세상에 존재했다는 것만으로도 독자의 삶은 축복이다.

안중찬 ahn0312@gmail.com (주)교보피앤비 기획실장 / 장거리 출퇴근의 고단함을 전철과 버스 안에서 책 읽기로 극복하는 낙관적이고 사교적인 생활인이다. 컴퓨터그래픽과 프로그래밍 분야 11권의 저서와 더불어 IT칼럼니스트로 왕성하게 활동했던 엔지니어 출신으로 한 권의 책에서 텍스트, 필자, 독자 자신을 읽어내는 서삼독의 실천가이다.

(*이 칼럼은 Nextdaily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넥스트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