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명했던 봄날의 그 푸른 하늘을 잊을 수가 없다. 화장터는 붐비지 않았다. 저승길 노잣돈을 쥐어주고 나니 단 몇 십 분만에 아버지의 육신은 사라지고, 하얀 유골만이 남았다. 한참 먼저 간 어머니의 분묘를 열어 그녀의 잿빛 유골까지 곱게 화장을 끝내니 해가 중천에 이르렀다.

햇볕이 잘 드는, 바다 가까운 향기로운 소나무 밭에서 마지막 인사를 했다. 시원한 바람이 분다. 바람이 들어오는 길목을 바라보다 하늘과 시선이 맞닿았다. 푸르다. 천천히 해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니 무지개빛이 뚜렷하고, 반듯한 원형의 해무리가 걸려있었다.

한 점 구름 없던 그 하늘에 있을 법한 그런 해무리가 아니었다. 불현듯 가슴을 짓누르던 커다란 돌덩어리로부터 해방이 된 듯 이상하리라 만큼 마음이 평화로워지기 시작했다. 그 해무리는 그후 한 시간쯤 허공에 머물다 사라졌다.

결혼한 다음 해 봄, 나의 전부였던 어머니가 내 곁을 영원히 떠났다. 그후 몇 년 동안 잘 살지 못했다. 슬픔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할 만큼 노력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지친 마음을 치료할 해법이 도통 보이질 않았다. 나는 남편과 함께 뉴질랜드로 떠났다.

대학 졸업 후 10여년 간 직장인으로 살았다. 뉴질랜드에서의 18개월은 나에게 주는 선물 같은 것이었다. 영어 학원을 다녀 오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바닷가에 가서 우두커니 앉았다가 시티로 걸어와 브라우니를 먹고, 항구로 가서 정박된 요트들을 구경했다. 한국으로 돌아가서 지낼 앞날에 관한 것은 일절 생각하지 않았다. 오로지 오늘만, 자연만 바라봤다. 오클랜드는 도시의 삶과 자연의 삶이 가능한 곳이다. '치유’와 '회복’의 장소로 최적이었다.

이렇게 무위도식 하면서 지내는 동안, 곰곰히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들이 생겼다. 이는 곧 긴 슬픔에서 벗어나 슬픔으로 고통받았던 주체인 '나’를 인식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누구이며, 나의 마음은 무엇이며, 나의 마음 넘어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오고 가는 우리 인생, 그러나 단 한 번도 같은 인생이 없다는 것을, 밀물 썰물을 지켜보면서 아주 천천히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어느 해질 무렵, 타카푸나 바닷가에서 산책을 하는 한 가족을 보았다. 저들의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같은 공간에 있지만, 나는 어두웠고, 그들은 밝았다. 한 끗 차이로 전혀 다른 두 삶이 보였다. 에고가 가둔 고립된 세계에서 그저 일어나 한 발자국만 걸어나가면 그 뿐인 것을. 어차피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After all, tomorrow is another day: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중).

이러한 작은 알아차림이 원동력이 되어 셀프 치유를 위한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지금 슬퍼하고 있다’를 알아차리게 되면 곧바로 방향을 틀어 행복한 추억들을 끄집어 내었다. 지금은 작고했지만 일본의 유명한 세계 최고령 시인인 시바타 도요의 <저금>이라는 시에서 보듯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는 한 방법이 분명 되는 것이다.

<저금> 시바타 도요 작
난 말이지, 사람들이
친절을 베풀면
마음에 저금을 해둬

쓸쓸할 때면
그걸 꺼내
기운을 차리지

너도 지금부터
모아두렴
연금보다
좋단다

이러한 단순한 대치법은 마치 암막 커튼을 조금만 젖혔는 데도 환한 빛이 채워지는 것처럼 꽤 효과가 있다. 내 마음 속에 그러한 빛이 한 점이라도 들어오고 나면, 더 이상 거기에 머무를 수가 없어서다. 셀프 치유의 한계는 분명히 있었다. 그러나 시작하는 순간에는 자연을 통한 알아차림, 감정의 변화를 느끼는 알아차림만으로도 많은 변화가 일어난다.

장윤정 eyjangnz@gmail.com 컴퓨터 전문지, 인터넷 신문, 인터넷 방송 분야에서 기자로, 기획자로 10여년 간 일했다. 현재 호주의 수도 캔버라에 아이와 함께 머물면서, 두 번째로 로컬처럼 살아보는 중이다. I AM 수행과 명상하는 삶을 추구한다. 호주 원주민 애보리진의 이야기와 그들의 세계관, 미술작품에 관심이 많다. 그리고 이곳의 하늘과 구름, 별에 푹 빠져있다.

(*이 칼럼은 Nextdaily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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