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감상의 글
윤동주 시인을 떠올릴 때마다 엉뚱한 생각이 든다. 어찌 보면 불경스러울 수도 있다. 요즘처럼 복잡하고 물질만능주의 시대에 시인이 살았다면 어떤 삶을 살았을까? 그래도 윤동주는 그의 시처럼 순결한 삶을 유지했을 것 같다. 그는 ‘하늘’과 ‘우물’을 바라보며 늘 양심에 호소하며 살아가던 사람이었으니까. 경중은 다르지만 어느 시대나 다 아픔을 안고 있다. 시인은 그 아픔을 안고 늘 자신을 돌아봤을 것이다.

이 시를 읽으면 어떤 의지를 가지지만 한계에 봉착한 사람이 보인다. 어려움에 빠진 사람들을 구하고자 하는데 막상 힘에 부쳐서 눈물을 흘리며 바라보는 그런 사람이. 얼마나 안타까울까. 시인은 딱 일제강점기 속에서 살았다. 만주 간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며, 평양 숭실중을 다니며, 연희전문을 다니며, 쿄토의 도시샤대학을 다니며 무엇을 보았을까? 일제가 우리에게 행한 것들을 보았을 것이다. 일제의 강함을, 조선의 약함을 보았을 것이다. 뭔가는 하고 싶은데 혼자 힘으로는 안 돼 수많은 날들을 고민하며 보냈을 것이다. 그런 고민들을 시로 표현한 것이다.

이 시는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하다. 모두가 이 시를 신조처럼 여기고 살아가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그렇지 않다. 하늘을 우러러 부끄럼이 없다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시대다. 특히 지도자들이 더욱 그렇다. 그런 지도자의 격도 갖추지 않은 사람들이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지 못할 거면, 차라리 이 시를 인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윤동주 시인이 중학교 시절 문학뿐만 아니라 다른 활동들도 왕성하게 했다는 것은 흥미 있게 볼 내용이다. 시인은 용정에 있는 은진중학교에 다닐 때 교내 잡지를 발간하는 일 외에도 농구, 축구를 즐겼고, 웅변도 곧잘 했다고 한다. 또 시인은 연희전문 시절에는 산책과 독서를 자주 했다고 한다. 걷기를 좋아했는데 그가 걸었던 길이와 시간들을 상상하면 놀랍다. 요즘 같으면 전철로 이동해야만 하는 거리를 주로 걸어 다녔다. 귀공자처럼 잘 생기고 순결하고 활동적인 시인은 ‘시대처럼 올 아침’을 맞지 못하고 결국에는 이국의 형무소에서 삶을 마감한다. 그것도 딱 여섯 달을 남기고 말이다. 6개월만 더 견뎠더라면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이름 모를 주사를 맞으며 쇠약해진 건강도 회복하고 우리에게 더 많은 시를 선사했을 텐데 아쉬움이 정말 크다.

최성원 기자 ipsi1004@nextdaily.co.kr 시인이자 칼럼니스트. 시집으로 「천국에도 기지국이 있다면」이 있다. 현재 서울 동부이촌동에서 국어와 논술을 가르치고 있으며, 저서로는 「7일 만에 끝내는 중학국어」 등이 있다. 또 ‘하얀국어’라는 인기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시와와(詩와와)’는 ‘시 시(詩)’에 ‘와와(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웃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떠들어 대는 소리나 모양)’를 결합하였다. 시 읽기의 부흥이 오기를 희망한다. 100편의 시를 올릴 계획이다. 걷기와 운동, 독서와 집필, 사람 만나는 것, 그리고 야구를 좋아한다.

(*이 칼럼은 Nextdaily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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