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은 소리를 낳고, 소리는 침묵을 낳는 밤, 우리는 꿈을 낳는다.”

촛불집회 100일째 날에 별 다른 생각 없이 꺼낸 책 속에 단정한 글씨로 그렇게 적혀 있었다. 이미 잠이 달아난 새벽이라 노랑 그 책과 낡고 빨강 메모리 스틱에 PC로부터 전송받은 음악을 담아 지하주차장으로 걸었다. 금방이라도 녹아버릴 것 같은 낡고 투박한 512MB USB메모리에 가득 찬 질서 없는 음질과 음고 마저도 제각각인 노래를 홀로 감상하기에 그 만큼 좋은 장소도 없다. 타고난 음치가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제멋대로 따라 부르는 노래하는 새벽도 행복이다. 모든 노래를 의미까지 헤아리며 들어야 한다면 그 또한 지겹고 피곤한 일이겠으나 역사적인 곡들을 누군가 잘 설명해 놓아 그저 흥얼거릴 수 있다는 것은 낭만이었다. 그렇게 날이 밝았다.

연일 매서운 칼바람과 겨울비에도 눈보라에도 광장은 뜨거웠다. 일상을 포기하고 촛불을 든 시민들이 광장에서 외치는 정권퇴진을 외치는 동안 나라야 어찌되는 자신의 일상을 포기할 수 없는 권력자의 이기심에 양식도 양심도 양보도 찾아볼 수 없는 날이 지속되고 있었다. 차마 입에 담기도 민망한 최고 권력자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시작된 시민들의 성숙한 시위 문화는 세계인들을 놀라게 했다. 국가적 위기를 바로 잡기위한 시금석이 따로 없었다. 아무런 부끄러움도 없이 너무도 뻔뻔스럽게 자신들의 체면과 이권에 눈이 멀어 있는 최고 권력자와 그 주위를 둘러싼 기득권 위정자들의 저항이 낯설다.

도대체 누가 시위를 하는지 모를 지경인 고단하고 지루한 시민 혁명의 뒤안길에서 그래도 가장 큰 위로가 되는 것은 노래가 아닐까 생각했다. 겨울광장에도 노래가 있었다. 무대의 가수가 선창을 하지만 결국은 합창이다. 어느 순간 함께 부르며 가슴 뛰는 경험으로 우리는 하나가 된다. 노래는 언제나 그렇게 세상의 변화와 역사 속에 더불어 호흡하고 있다는 것을 한 시인이 일깨워 줬다. 시인은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렸으나 그의 책 ‘노래, 세상을 바꾸다’는 같은 정부의 ‘2016년 인문교양도서 세종도서’에 선정되는 기쁨을 누렸다.

대통령이 처음으로 범죄 사실을 시인한 나흘 뒤, 바로 그 10월 29일 토요일 저녁 광화문에서 촛불을 든 3만 여 시민이 노래를 불렀다. 그 다음 금요일에 촛불의 확산을 어떻게든 막아보려고 대통령은 위선적인 울먹임으로 두 번째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지만 다음 날인 11월 5일 토요일에 촛불을 든 20만 시민이 더 크고 넓은 목소리로 합창을 했다. 진정성 없는 정권에 맞서 100만 시민이 광장에 나오는 데는 일주일이면 충분했다. 11월 12일 토요일 제 3차 촛불집회에서 정태춘, 조피디, 크라잉넛, 이승환이 무대에 올라 ‘92년 장마, 종로에서’, ‘시대유감2016’, ‘말달리자’, '길가에 버려지다'를 노래하며 평화로운 시위 문화를 확산시켰다. 날씨가 추워지자 한 정치인은 “촛불은 촛불일 뿐 바람이 불면 다 꺼진다.”는 막말로 시민들을 우롱했다.

이틀 뒤 4차 집회에서 하얗고 긴 머리를 질끈 묶은 전인권이 처연한 목소리로 ‘애국가’와 ‘걱정 말아요 그대’를 불러 정치에 무관심했던 안방의 심장에까지 불을 지폈다. 제 5차 촛불집회에서 전국 190만, 제 6차 촛불집회에서 전국 232만 시민이 광장으로 몰려나왔다. 제 7차 촛불집회를 하루 앞두고, 여의도로 입성한 한낮의 촛불은 기회주의적 정치인들을 꼼짝없이 압박하며 대통령 탄핵소추를 이끌어냈다. 산 너머 산이 기다리고 있지만 광장의 노래는 촛불로 산을 넘는다. 촛불은 노래로 산을 넘는다.

목선재의 노랑 책, ‘노래, 세상을 바꾸다’ 책날개를 펼치면 작은 사진 속 저자는 모든 억압에 저항하라며 부드러운 선동의 미소를 짓는다. 미국은 물론 제3세계 국가들의 대표적인 저항노래들에 대한 이야기로 1990년 초반부터 발표한 70여 편의 글 중 절반을 담았다는 이 책은 무심코 따라 부르던 노래 속에 숨겨진 사연과 시대상을 친절하게 설명한다. 미국의 역사를 바꾼 노래에서부터 저항, 자유, 사랑과 평화의 노래가 바로 그것이다. 알고는 있었는데 결국 알지 못했던 노래들의 속사정이 시인의 시선으로 알알이 맺혀 있었다. 그 열매를 따 먹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단연 눈에 띄는 가수는 밥 딜런이다. 마치 노벨평화상이라도 줘야한다는 듯이 전체 서른다섯 편 중 무려 네 곡이나 수록하여 그의 철학과 저항의 역사를 비중 있게 해설했다. 결국 그는 평화상 아닌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여 세계를 놀라게 했다. 국내 출판계의 발 빠른 인쇄물들이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찬양하며 쏟아져 나왔지만 이 책에서 함축적으로 다룬 그의 인생과 노래, 사회성의 뼈대를 넘어서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대표곡 ‘Blowing in the Wind(바람만이 아는 대답)’는 이스라엘 백성의 해방을 예언했던 구약성서 에제키엘서에서 비롯되었음을 차분하게 설명하고, ‘A Hard Rain’s A-Gonna Fall(세찬 비가 오려 하네)’는 핵전쟁에 대한 묵시론적 경고로 알려졌지만 난해하고 복잡한 가사에 대한 분분한 해설도 열어 놓았다.

딜런 특유의 은유성을 벗어나 직접적이고 거친 가사의 ‘Oxford Town(옥스퍼드 타운)’은 인권 운동가 제임스 메레디스가 미시시피대학에 등록 신청을 했다가 흑인이란 이유로 거부당했던 사건과 함께 노골적인 가사를 잘 풀어 놓았다. 반전 운동의 상징인 ‘Knocking on Heaven’s Door(천국의 문을 두드려요)’는 그가 미국 사회를 넘어 인류의 평화를 위해 얼마나 아름답게 노래했는지를 충분히 설명하고 있다.

딜런의 존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우상이었던 우디 거스리와 피트 시거, 한 때 연인으로 알려진 동갑내기 조안 바에즈와의 사연도 빼놓을 수 없다. 순서가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이 책에서 그 세 사람만이 딜런에 앞서 소개된다. ‘This Land is Your Land(이 땅은 너의 땅)’은 우디 거스리가 구전민요를 바탕으로 직접 작사 작곡한 가장 미국적인, 그러나 가장 반미적인 노래다. 2011년 10월의 뉴욕,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 시위에 92세의 나이로 참가한 미국 포크가요의 전설 피트 시거의 노래 ‘We Shall Overcome(우리 승리하리라)’은 19세기 후반 흑인 가스펠 송을 채록하여 세상에 알린 명곡이다.

1963년 8월 28일 워싱턴DC 링컨기념관 앞에서 노예해방 100주년을 기념한 킹 목사의 그 유명한 연설 ‘I have a dream’도 빼놓지 않는다. 포크의 여왕 조안 바에즈는 바로 그곳에서 20만 군중과 ‘We Shall Overcome’을 합창하여 저항가요의 대명사로 더욱 발전시켰다. 그녀의 또 다른 노래 ‘Kumbaya(쿰바야)’는 노예로 팔려온 흑인들이 미국에 정착하면서 만들어진 민요를 잘 소화시킨 곡이다. 선교사들이 들려주던 희망의 언어 “come by here(여기로 와주세요)”를 잘못 알아들은 아프리카인들이 해방을 꿈꾸며 자연스럽게 발전시킨 단조로운 가사가 흑인 인권의 상징적인 곡으로 확산되었음을 잘 설명하고 있다.

문화가 빈약했던 개발독재 시대의 한반도에서는 미국 저항 가수들의 노래들을 바탕으로 청년문화가 성장했다. 마틴 루서 킹 목사가 “언젠가는 노예의 아들과 노예주인의 아들이 조지아 언덕 위의 한 테이블에 마주앉아 모든 인간은 한 형제라는 이야기를 나누리라는 꿈을,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세상을 우리 모두가 함께 이루어야 한다.”며 외쳤던 그 뜨거운 워싱턴 광장의 상징이었던 노래 ‘We Shall Overcome’은 1972년 서울대학교 신입생 환영회에서 김민기가 한글 가사로 바꿔 처음 소개했다.

양병집은 1974년 1집 앨범 ‘넋두리’를 통해 우디 거스리의 ‘This Land is Your Land’를 ‘너와 나의 땅’으로, 밥 딜런의 ‘A Hard Rain’s A-Gonna Fall’를 ‘세찬 비가 오려 하네’로 번안하여 발표했으나 유신정권은 그 앨범을 통째 금지곡으로 지정하였다. 한대수가 있었고, 서유석도 있었다. 광장의 외침들은 늘 불온하다. 불온한 노래들은 탄압 속에서 암암리에 퍼져 나간다. 동서고금의 수많은 금지곡들은 어둠 속에서 더욱 사랑받는 역설의 역사를 남겼다.

미국 히피들, 특히 LA 히피들의 찬가인 ‘California Dreamin’(캘리포니아 드리밍)’은 혼성4인조 그룹 ‘더 마마스 앤 더 파파스’의 존 필립스가 작곡한 1966년의 명곡이다. 은행원이자 아마추어 가수였던 스코트 맥켄지가 부른 ‘San Francisco(샌프란시스코)’ 또한 존 필립스가 작곡했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복잡한 사연이 있는데 그 두 사람은 1980년대에 존의 딸 맥켄지 필립스와 일레인 맥팔레인 등과 옛 그룹을 재결성해서 활동하기도 했으니 결국 미국 서부의 두 지역을 상징하는 히피 문화는 존 필립스와 ‘더 마마스 앤 더 파파스’가 독점했다고 기록해도 무방할 것 같다. 작가는 가사의 은유적인 표현들이 1차원적으로 번역되어 오해를 일으킨 자잘한 사연들을 바로 잡으며 노래가 지닌 시공의 특징들을 친절하게 설명한다.

빈센트 반 고흐의 생애를 애절하게 노래한 것으로도 유명한 돈 맥클린은 병든 미국을 고발하는 8분27초짜리 노래 ‘American Pie(아메리칸 파이)’를 통해 허드슨 강의 음유시인이라 불린다. 인내심 없는 팬들을 위해 마돈나가 길이를 반으로 줄여봤으나 그 서사성의 매력을 따라갈 수는 없었다. 국내에는 유월 항쟁 이후에 수입된 올리버 스톤 감독의 반전영화 ‘7월 4일생’ 삽입곡으로 알려졌지만 정서 탓인지 그렇게 널리 확산되지는 못했다.

랩가수이자 영화배우로 왕성하게 활동했던 투팩은 차별과 불평등을 향한 절규의 곡 ‘Change(변화)’를 노래했는데, 위대한 메시지의 곡과 어울리지 않는 성추행 등 문란한 생활로 감옥을 들락거리다 고작 스물네 살 젊은 나이에 괴한의 총격으로 사망한 안타까운 인물이다. 1984년에 브루스 스프링스틴이 노래한 ‘Born in the U.S.A.(미국에서 태어났네)’가 수록된 앨범이 1천만 장 이상 판매되자 크라이슬러는 광고 사용료로 1,200만 달러를 제안했고, 그해 공화당 대통령 후보 레이건은 선거용 로고송 사용 협상을 요청했는데 모두 거절하는 당당함으로 빛났다.

쿠바 독립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호세 마르티의 시구를 원전으로 한 민요 ‘Guantanamera(관타나메라)’는 그 나라의 아리랑이 되었다. 왜곡된 번역으로 교과서에 실리는 바람에 우리에게는 인기 동요가 된 ‘La Cucaracha(라 쿠카라차)’는 비참하게 살아가는 멕시코 농민들을 삶을 비유적으로 표현함과 아울러 농민혁명군 판초 비야의 자동차 바퀴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혁명의 노래였다. 피노체트에 저항하다 순교한 칠레의 혁명가 빅토르 하라의 신념과 실천적 의지를 노래한 ‘Menifesto(선언)’, 새로운 노래 운동 누에바 칸시온의 대모 비올레타 파라의 ‘Gracias a la Vida(삶에 대한 감사)’, 고난 받는 아르헨티나 민중들을 위한 메르세데스 소사의 ‘Kyrie(자비를 베푸소서)’, 아내 이름으로 시작해서 궁극에는 조국 쿠바에 바치는 연가가 된 파블로 밀라네스의 ‘Yolanda(욜란다)’, 서른여섯에 요절한 레게 황제 밥 말리가 아내이자 동지인 리타에게 바친 연가로 아프리카 정신의 상징이 된 ‘No Woman No Cry(여인이여, 울지 말아요)’,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라티노들의 비애를 생각하면 더욱 애절한 노래로 티시 이노호사의 ‘Donde Voy(어디로 가야 하나)’는 트럼프 시대를 맞아 얼마나 또 불리울까?

김민기의 노래를 보다 대중적으로 승화시킨 양희은의 ‘아침이슬’은 이 책에 가사와 더불어 유일하게 수록된 한국의 가요다. 오랫동안 작자미상으로 알려졌던 광주항쟁을 노래한 ‘오월가’의 원곡이 미셀 폴라네프의 샹송 ‘Qui a Tue Grand’Maman(누가 할머니를 죽였나요)’이었음을 밝혀낸 사람도 이 책의 저자였다. 조선족 어머니를 둔 추이지엔(崔健)이 톈안먼 광장에서 100만 인민과 합창한 ‘一無所有(일무소유)’는 대륙 혁명의 상징곡이다.

북아일랜드의 아픔을 노래한 4인조 평화주의 록밴드 유투의 ‘Sunday, Bloody Sunday(일요일, 피의 일요일)’, 변호사로 남아프리카공화국 혁명의 순교자였던 반투 스티브 비코의 죽음을 전 세계에 고발한 피터 가브리엘의 ‘Biko(비코)’, 그리스 군부 치하의 슬픈 이별가로 드라마의 주제가로 익숙하고 조수미의 목소리로도 친근한 미키스 테오도라키스의 ‘Το τρα?νο φε?γει στι?οχτ?(기차는 8시에 떠나네)’, 미국의 록밴드 캔자스가 부른 1988년 8월 8일 버마 8888민중항쟁의 투쟁가 ‘Dust in the Wind(바람 속에 날리는 먼지)’, 나이지리아 군사독재 정권을 ‘좀비’로 풍자한 펠라 쿠티의 ‘Zombie(좀비)’, 소비에트 음유시인 블라디미르 비소츠키가 부른 분노와 절규의 노래 ‘Кони привередливые(뒷걸음치는 말)’은 어느 순간 가슴을 산산이 찢어 놓는 아픔이 있다.

호주의 에릭 보글이 제1차 세계대전 갈리폴리 전투의 희생자들을 추모한 ‘And the Band Played ‘Waltzing Matilda’(악대는 왈칭 마틸다(떠돌이 노동자)를 연주하고)’는 슬프고 아름다운 평화의 노래다. 핑크 플로이드가 억압의 모든 ‘벽’을 거부하며 부른 ‘Another Brick in the Wall(벽 속의 또 다른 벽)’, 미국의 포크가수이자 시인 수잔 베가가 아동학대를 고발한 ‘Luka(루카)’, 가정폭력을 고발한 미국 흑인 여가수 트레이시 채프먼의 ‘Behind the Wall(벽 너머에서)’, 이제는 해체된 그룹으로 상처 입은 영혼들을 노래했던 R.E.M.의 ‘Everybody Hurts(누구든 상처받아요)’, 프랑스에서 최고의 배우와 가수로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이탈리아 사람 이브 몽탕이 부른 사랑과 이별의 샹송 ‘Les Feuilles Mortes(枯葉, 마른 잎)’는 참으로 아름답다. 존 레논이 비틀즈를 탈퇴한 뒤 자신의 사상을 담아 완전한 평등의 세상을 꿈꾸며 노래했던 ‘Imagine(상상해보세요)’은 더 이상의 에필로그나 관전평도 없이 그렇게 이 책의 마지막 362쪽을 깔끔하게 마무리한다.

다시 촛불의 광장을 생각한다. 안치환은 스스로의 노래를 개사해 ‘하야가 꽃보다 아름다워’를 시민들과 합창했고, 양희은은 ‘아침이슬’, ‘행복의 나라로’, ‘상록수’라는 엄숙한 밤을 노래했다. 한영애는 ‘조율’, ‘내 나라 내 겨레’, ‘홀로 아리랑’으로 시민들과 함께 했다. 서울광장에서는 현시국을 비꼬는 DJ DOC의 ‘수취인분명’이 흥겨웠고, 권진원은 ‘그대와 꽃 피운다’, ‘살다보면’, ‘아리랑’으로 염원을 노래했다. 맨발의 디바 이은미가 ‘가슴이 뛴다’, ‘깨어나’, ‘애국가’로 숙연한 분위기를 연출하던 제7차 촛불집회에서 정치에 무관심했던 두 누나와 조카를 우연히 마주쳤다. 최고은의 ‘애국가’, ‘아리랑’, 임한빈이 ‘아리랑목동’을 개사한 ‘하야가’는 그렇게 흥겨울 수 없었다. 크리스마스이브와 겹친 제 9차 촛불집회에서 마야, 이한철, 에브리싱글데이, 연영석, 성악가 루이스 초이, 서울재즈빅밴드가 있었다. 캐럴 ‘펠리스 나비다(Feliz Navidad)’를 개사해 ‘근혜는 아니다’로 소리 높여 합창할 때 불과 수백 미터 떨어진 곳에 은둔 중이던 비겁한 권력자의 간담은 서늘했으리라.

대통령이 세 번째로 대국민 담화로 거짓된 선언을 한 이틀 뒤 한해의 마지막 날에는 제10차 촛불집회가 있었다. 세밑에 이르러 연인원 1,000만 명이라는 기록을 달성한 촛불 시민들은 제야의 종소리도 함께 했다. 기타리스트 신대철은 한 주 전에 관제데모꾼들이 오염시킨 아버지 신중현의 곡 ‘아름다운 강산’의 명예 회복을 위해 전인권과 협연하여 한해의 마지막 역사를 함께 했다. 해가 바뀌고 세월호 참사 1000일을 보다 숙연하게 기록했던 이상은의 ‘언젠가는’, ‘어기야 디여라’, ‘새’는 희망의 노래였다. 심재경의 ‘너무 억울해요’, ‘큰일 났네’는 웃픈 국정농단의 역사를 풍자했다. 브로콜리너마져는 ‘졸업’으로 새 봄을 예고했다.

“언어는 이미 발생했거나 발생할 예견된 사실과 사건의 본질을 얼마든지 왜곡하거나 조작할 수 있다. 그러나 노래는 이미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는 정서를 근본으로 하므로 부르는 사람에게나 듣는 사람에게 동일한 감흥을 준다. 슬프고, 기쁘고, 울고, 웃고, 분노하고···, 거기에는 왜곡이나 조작의 허위가 자리할 틈이 없다.” - 저자 서문 중에서

새하얀 머리에 맑은 소년의 눈으로 미소 짓던 유종순 시인. 살면서 딱 한 번 만났지만 SNS를 통해 종종 소식을 접할 수 있는 세상이라 그렇게 거리감이 느껴지진 않는다. 술 취해 졸던 버스 안에서 발견한 아내, 병원에서 마주친 딸의 남자친구, 아들을 기다리며 차려놓은 밥상... 겉으로 드러난 시인의 일상은 유쾌하지만 한 번 더 들여다보면 슬프고 고단한 사연들로 눈물겹다. 한동안 건강 문제로 고생 많으셨던 사모님께서 어서 더 건강한 모습으로 봄의 광장에 나와 함께 노래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들린다는 진리의 책 한 권을 덮으며, 봄의 합창에 한 목소리 보탤 생각으로 가슴이 뛴다. 봄날은 온다.

안중찬 ahn0312@gmail.com (주)교보피앤비 기획실장 / 장거리 출퇴근의 고단함을 전철과 버스 안에서 책 읽기로 극복하는 낙관적이고 사교적인 생활인이다. 컴퓨터그래픽과 프로그래밍 분야 11권의 저서와 더불어 IT칼럼니스트로 왕성하게 활동했던 엔지니어 출신으로 한 권의 책에서 텍스트, 필자, 독자 자신을 읽어내는 서삼독의 실천가이다.

(*이 칼럼은 Nextdaily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넥스트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