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스오버라는 장르는 아마도 태초부터 존재하지 않았을까 싶다. 얼마 전 종편 채널에서 국악의 재해석을 통한 크로스오버를 프로그램화한 적이 있었고 다른 채널에서는 클래식 싱어들을 주축으로 하는 크로스오버 프로그램이 큰 반응을 일으키기도 했다. 정확한 분석 데이터의 결과는 아니지만 생활이 어려워지고 사회가 혼란스러울수록 장르를 섞는 예술들이 많이 나온다고 한다. 기존을 것을 떠나서 새로운 것을 원하는 심리가 반영된다고 하는 데, 사실인 지 시기 적절한 표현이 아닌가.

다른 예술 장르보다는 좀 늦었지만 무용계에서도 한국 무용이나 동양 사상 등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들이 많이 보여지고 있다. 하지만 과도한 해석으로 난해한 작품이 무대에 오르기 일수이다. 사실 동양적인 느낌을 서양의 동작으로 표현하는 것 자체가 무리일 수도 있겠다(동양/서양 이라는 표현이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고도 할 수 있으나 이해해 주길 바란다. 달리 표현하기가 어렵다.)

서양의 무용과 동양의 무용은 표현 대상 자체가 다르다. 각각의 학자마다 의견은 다르지만 서양의 것은 시작은 종교적인 영역에서 같았을 지 모르나 주로 동작과 표현 위주로 발달해 왔고, 동양의 무용은 상대적으로 마음이나 생각 등 추상적인 것 위주로 발달해 왔다. 얼마 전 한국 무용을 전공한 안무가의 현대적 무용 작품이 있다고 해서 빙판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언덕 위에 있는 서강대 메리홀을 찾아갔다.

In the beginning 이 작품은 생명의 근원인 당과 태동의 밭인 어머니를 주제로 삼았으며, 아프리카인들도 유사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공통점에서 시작하여 춤의 생명인 신명과 흥을 배합하여 만든 작품이라고 한다. 절제된 무대와 표현, 무용수들간의 서두르지 않는 연결과 고난도의 테크닉은 보는 내내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안무가가 한국무용을 했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보더라도 왠지 한국적인 정서가 묻어나는 것을 누구나 느끼기에 충분했고 작품의 주제를 표현하고자 무대 전체를 활용하고 조명을 사용하는 것까지 더할 나위 없었다.

하지만 아프리카와의 대화는 느낄 수 없었다. 그리고 후반부에 오브제의 확장 부분에서는 디테일이 부족하여 공감을 얻어내지는 못했고 드라마톡이 부족하여 대중을 설득하기에는 부족함이 보였다. 후에 들은 얘기지만 드라마톡이 너무 강해 모두 들어냈다고 하는 데, 너무 많이 들어냈다는 생각이 든다.

현대 무용 작품에서 요즘은 오브제를 등장시키는 경우가 있는데, 개인적으로 굉장히 조심스러운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일단 무대에 오브제가 보여지면 모든 관객이 그것의 정체를 탐색하는데 집중하기 때문에 지나치다 싶을 만큼 표현하지 못한다면 과감히 포기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음악이나 음향의 삽입만으로 크로스오버를 표현했다는 무용작품을 기대하지는 않는다. 표현에도, 동작에도 그 향기가 묻어나기를 기대한다. 관객의 수준은 날로 진화하기 때문이다.

무용수들이 얼마나 노력해서 이루어낸 동작인지, 그 동안 흘린 땀 한 방울 한 방울이 다 느껴질 정도의 작품이었으나 크지 않은 부분의 판단으로 인해 완성됨이 부족해 보이는 무대였다. 항상 아쉬운 것은 조금만 다른 시선으로 볼 수 있는 의견이 반영됐더라면 완벽한 작품이었다는 점이다.

최대선기자 demian71@nextdaily.co.kr 직장인의 삶, 바쁘기만 했던 19년을 과감히 접고 행복을 찾아 세계 다른 지역의 친구를 찾아 여행을 다니고 있는 울타리 밖으로 나온 영혼을 자처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혼자 지내야 하는 시간이 많아지고 있는 데, 혼자 놀기에 익숙하지 않은 자신을 행복하게 해주는 아이템을 찾아 새로운 친구를 만들어 같이 놀기, 여행가서 현지인처럼 놀기 등 혼자 놀기를 같이 하는 방법을 찾아가고 있다.

(*이 칼럼은 Nextdaily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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