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자메이카 청년 때문에 못본 탁발 의식을 오늘은 제대로 봐야겠다. 늦게 잠이 들어서 알람을 맞춰놓고 잤는데 알람이 울리기 전에 눈이 떠진다. 샤워하고 옷 챙겨 입고 나갔다. 편의점에 들러서 오레오를 9개 샀다. 이 동네에서 제일 큰 사원 쪽으로 걸어갔다. 사원에서 스님들이 줄지어 나오신다. 스님들은 시장입구쪽으로 향한다. 사람들이 공양물을 준비하고 대기중이다. 어린 스님들께 비스킷을 주고 싶어서 넣다 보니 금방 다 넣고 없다. 다시 편의점으로 달려가서 15개를 더 샀다. 이번엔 점잖은 노스님께 넣어드렸다. 노스님들은 바리를 열고 받으시면서 축복의 기도를 중얼거리신다.

많은 사람들이 신심을 다해서 시주한다. 스님들은 표정변화없이 묵묵히 탁발을 행하신다. 많거나 적거나 귀하거나 천하거나 가리지않는다. 탁발의 의미가 고귀하게 느껴진다. 수많은 사람들이 차를 몰고 와서 공양물을 바친다. 봉사자들이 수레를 끌고 다니면서 스님들 바리에 담긴 것들을 모으고 바리를 비운다. 그렇지 않으면 바리가 넘쳐날 지경이다.

가족이 와서 어린 아이가 직접 시주하기도 한다. 표정 없던 스님의 입에 웃음이 뜨는 걸 처음 봤다. 순수한 동심은 스님을 미소 짓게 한다. 아이들을 데리고 온 젊은 부부는 정성을 다해 탁발에 참여하고 차에 아이들을 태우고 떠난다.

드디어 탁발 시간이 끝나고 거리가 한산해졌다.나는 사원 앞에서 꽃다발3개와 향 초를 사서 안으로 들어갔다. 본당 안으로 들어가니 사람들이 몇몇 앉아서 묵상 중 이다. 꽃을 어디에 바쳐야 할지 몰라서 앞사람이 하는 모습을 보고 따라했다. 돌아가신 시부모님과 엄마를 위해서 헌화하고 기도 드렸다. 갑자기 울컥하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솟구친다. 예전의 그리움과는 다른 느낌이다. 사원을 나와서 호텔로 와서 대충 아침 먹고 짐을 챙겼다. 오늘은 기대하던 숙소로 이사 간다. 그 동네가 어떻게 변했을지 궁금하다. 오래전 아무것도 없던 황량한 곳이었는데 새 호텔이 섰단다.
롱롱타임어고우
10년도 더 된 시절에 우연히 발견해서 들어간 카페에서 눈이 번쩍 떠졌었다. 새벽 사원이 맞은편에 빛나고 있었었다. 당시 근처는 빈민촌인데다 밤에 무섭기까지 했었는데 지금 지도를 보니 호텔이 꽤 많이 생겼다

택시기사한테 따띠엔으로 가자고 했더니 도로가 차단되어서 못 간단다. 왕궁 일대가 오늘 사람들이 붐벼서 차는 들어가지를 못한단다. 카오산에서 따띠엔을 가려면 왕궁을 지나기는 해야한다. 어째야하냐 했더니 걸어가란다. 할 수없이 짐을 끌고 걷고있는데 툭툭 기사가 어디 가냐고 묻는다. 따띠엔 근처로 가야한다니 200밧 달라고 한다. 맘먹으면 걸어갈 거리인데 200밧은 말도 안된다. 길이 막혀서 빙 돌아가야해서 그렇단다. 150불로 정해서 탔다. 호텔까지 가는데 돌아가는 길이 고작 1킬로도 안 돈다. 택시도 단거리라 승차 거부한거고 툭툭기사한테 바가지 쓴 거다. 그래도 타고 왔으니 기분 좋게 바가지 썼다. 기사도 머쓱한 지 차가 막혀서 어쩌고 핑계를 댄다. 맨날 막히는 길인데 무슨 소리냐 했더니 웃고 만다. 호텔은 오픈 한지 2달된 새 호텔이다. 예약한 방으로 가보니 전망이 별로다. 전망 좋은 옆방으로 바꿔달라고 하니 천밧을 더 내야 한단다.

전망때문에 선택한 호텔이라 더 내고 바꿨다.

침대에서 건너편 새벽 사원이 바로 보인다. 짜오프라야강에는 수많은 배들이 오간다. 호텔 옆에 왕실맛사지학교본부가 있다. 5시로 예약하고 따띠엔으로 갔다.

골목길을 걸어가다 보니 호텔 외에는 변한 것이 없다. 여전히 빈민가에다 지저분하다.

따띠엔에서 배를 타고 강을 건너서 왓아룬으로 갔다.

새벽 사원은 올 때마다 공사중이어서 안 봤는데 이번에는 공사중이지만 보기로 했다. 들어가보니 공사가 언제 끝날지 미지수다.

그래도 들어가보길 잘했다

가까이서 보니 섬세한 조각들이 아름답다.

삼발이를 활용해서 잠시 잘 놀았다.

새벽 사원을 나와서 왕궁으로 갔다. 일요일이라 왕궁은 국왕 서거를 추모하는 행렬이 이어진다.

따띠엔에서 길을 건너자마자 차량을 통제한다. 오래전 국왕 생일 때 방콕에 왔던 생각이 나서 감회가 새롭다. 전국민이 노란색 옷을 입고 왕의 부귀영화와 무병장수를 빌었는데 이번에는 까만 옷으로 바뀌었다.

걸어가는데 사람들이 물과 간식을 준다. 사양하고 가는데 물휴지를 준다. 받았다.

천막을 쳐놓고 식사도 준다. 군인들이 밥도 퍼주고 옆에는 음식을 해서 나눠준다. 장례식이라 기보단 축제에 온 듯 싶다. 울거나 슬퍼하는 사람은 거의 보질 못했다.

학생인 듯 추정되는 젊은이들이 인헤일러와 야몽을 나눠준다. 드디어 궁금한 것을 물었다. 영어를 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어서 속이 답답해죽는 줄 알았다. 드디어 궁금한 것을 알게 되었다. 국왕 서거를 추모하는 마음으로 다들 기부 하는거라 한다.개인적으로 하는 사람도 있고 기업에서 행사로 하기도 하고 모두가 즐겁게 동참한다. 국왕이 가는 길에 국민들의 선행이 바퀴를 달아준다. 사람들 표정이 밝은 이유를 알 듯하다. 윤회와 인과응보는 불교에서 기본이 되는 사상이다. 죽어도 죽는 것이 아니다. 태국처럼 불교가 굳건하게 자리잡은 나라는 드물다. 못사는 사람들은 전생에 죄가 많은 탓이라 생각하고 현생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나은 내생을 꿈꾼다. 70년을 자리 지키며 국민들의 신망을 받은 왕은 국민들에게 전생에 우주를 구한 신같은 존재다. 육신의 명이 다했다고 결코 죽은 것이 아니다. 단지 세상에서 더이상 볼 수 없다는 것이 서운할 뿐이다. 우울한 분위기를 걱정했는데 다행스럽다.

관광객들은 왕궁에 들어갈 수가 없다. 까만 색 상의를 입고 무릎이 드러나지않는 옷을 입어야 한다. 나는 미리 옷을 갖춰 입어서 입장이 가능하다. 덕분에 왕궁을 공짜로 보게 되었다.

예전하고 달라지게 없는 왕궁인데 관광객은 없다. 관광객이 아닌데 다들 기념 촬영하느라 바쁘다. 70년만에 생긴 일이니 대단한 사건이 아닐 수가 없다. 덕분에 나도 사람들에게 사진 찍어달라고 부탁하기가 쉽다.
다들 우울하기보단 다시 오지않을 날을 기념하는 분위기라 나까지 덩달아 자꾸 사진을 찍게 된다.

왕궁에서 나와서 왕궁공원으로 갔다. 사람들이 전부 공원 쪽으로 향해가고 있다.

다들 줄을 서는데 심상치가 않다. 밥 먹는 줄도 아니고 기념품 받는 줄도 아니다. 궁금해 죽겠는데 영어하는 사람이 없다.

똑똑해 보이는 아가씨가 지나가길래 영어하냐고 물어보니 한단다. 줄을 선 이유가 번호표 받아서 왕궁에 들어가 이름을 적고 서명을 하면 사원에 자기 이름이 들어간단다. 자기도 번호표 받아서 줄서러 간단다.
줄은 시작도 끝도 보이지않을 정도로 길다.

시작점을 향해서 걸어가니 군인들이 새치기하지 않도록 철통방어중이다. 왕의 묘지에 이름을 넣기 위한 줄은 부와 명예를 내세워 넣을 수가 없다. 오직 하루 종일 줄 서서 기다려서 순서대로 넣을 수 있다. 백명 정도씩 나누어서 왕궁에 입장시키는 것이 놀라울 정도로 체계적이다. 한 그룹이 입장할 때 지나가는 사람들 통제 시키고 입장하면 줄을 막고 사람들과 차를 지나가게 해준다. 여기가 자유분방한 태국이 맞나 싶을 정도다. 태국에서 철저히 순서를 지키는 모습이 낯설고 신기하다. 백인 커플이 사람들 붙잡고 뭔가를 물어보고 있는데 도통 통하지않아서 답답해한다. 내가 이유를 물어보니 왕궁을 가리키면서 뭐냐고 묻는다. 왕궁이라고 알려주고 사람들 줄을 자르고 통과해서 가는 길을 알려줬다. 고맙다고 인사하고 돌아서는데 깜빡 잊고 설명을 빠뜨렸다. 까만 색 상의를 입어야 하는데 헛걸음 치게 생겼다.

공원내 국왕사진앞에는 꽃다발이 하도 많이 모여 꽃밭이 되었다. 사람들은 꽃동산에 놀러온 듯 사진을 찍는다. 나도 활짝 웃으면서 사진을 찍었다. 사진 찍어 달라니 찍어주는 사람들도 웃으며 찍어준다. 참 착한 국민들이다. 사진을 한 장만 찍는 법이 없다. 똑같은 사진을 기본으로 3장씩 찍어준다. 어제 투어를 할 때나 카오산에 머물 때는 국왕 서거가 남의 일인 듯 싶더니 장례식장에서 함께하니 나까지 감정이입이 된다.
나도 국왕을 사랑하고 존경하게 되었다. 사실 존경받을 만 하다. 태국은 15년전부터 오기 시작했는데 서민 물가가 아직도 그대로다. 한때 대중교통비를 올리자는 의견이 있었는데 국왕이 반대했단다. 따띠엔에서 새벽사원가는 도선비가 아직도 백원 정도이다. 10년전에도 그 정도였다. 다른 건 올려도 서민들 기본 생활은 보장해주려는 국왕이었다

공원을 나와서 길을 건너는데 사람들이 모여있다. 왜 모여 있냐고 물으니 공주님이 음식을 직접 나눠주고 있단다. 공주라는 말에 귀가 솔깃해서 가보니 손수 음식을 나눠주고 있다. 주위도 왕족들인지 분위기가 다르다. 공주님께 사진 찍을 수 있냐 물으니 쾌히 승낙하신다. 너무 좋아서 껴안고 찍었다. 공주님도 손님에 대한 예의로 웃는 얼굴로 같이 찍어 주신다. 오늘 하루 왕궁 근처를 헤맨 보람이 있다. 발걸음도 가볍게 호텔로 돌아오는데 배가 살살 아프다. 팔자가 공짜를 못 먹는 팔자인지 나눠주는 음식들 먹고는 탈이 났 나보다. 호텔로 돌아와서 설사를 했다. 맛사지예약시간이 되어서 갔다. 왕궁 학교라 그런지 카오산로드보다 2배 비싼데 가치가 충분하다. 내가 좋아하는 노련해보이는 아줌마시다. 뭔가를 알고 맥을 집는듯 손놀림이 정확하다. 리듬을 타는 손길에서 내공이 느껴진다. 받고 나니 좋다.

호텔로 돌아와서 샤워하고 사진을 정리하는데 또 배가 아프다. 전망 좋은 루프탑레스토랑으로 갔다. 죽 없냐고 물으니 스프 먹으란다.

짜오프라야강의 야경을 보면서 달랑 스프 한 그릇 먹었다.

직원에게 새벽 사원 조명이 왜 안 켜지냐고 물으니 추모기간이라 한달 후에 켜진 단다.

지난 앨범을 찾아보니 2003년에 같은 위치에서 찍은 야경 사진이 있다. 당시 카메라가 좋지않아서 이번에 제대로 찍으려고 온 건데 아무래도 다음에 다시 와야겠다.

방으로 와서 침대에 누워 창 밖을 보고 있으니 꿩 대신 닭이라고 예쁜 조명으로 장식한 유람선들이 수시로 지나간다. 유람선 아니면 울 뻔했다. 13년전의 야경을 잊지못해서 같은 장소를 찾았는데 아쉽다. 대신 방콕 야경 크루즈 유람선은 종류대로 구경 잘했다. 오늘 하루 얻은 것이 많은 날이다.
얻은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 70년만에 볼 수 있는 사건의 중심에 머문 하루인데 더이상 바랄 것이 없다.

허미경 여행전문기자(mgheo@nextdaily.co.kr)는 대한민국의 아줌마이자 글로벌한 생활여행자다. 어쩌다 맘먹고 떠나는 게 아니라, 밥먹듯이 짐을 싼다. 여행이 삶이다 보니, 기사나 컬럼은 취미로 가끔만 쓴다. 생활여행자답게 그날그날 일기쓰는 걸 좋아한다. 그녀는 솔직하게, 꾸밈없이, 자신을 보여준다. 공주병도 숨기지 않는다. 세계 각국을 누비며 툭툭 던지듯 쏟아내는 그녀의 진솔한 여행기는 이미 포털과 SNS에서도 두터운 팬층을 확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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