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이사한 로드아일랜드 주에 있는 프로비던스 시의 필자의 집 근처에는 오래된 벽돌 창고 건물이 있다. 이 건물에서는 매년 ‘겨울 농부 시장’이 열린다. 이 시장에서는 그 지역의 농부들이 모여 다양한 식품을 판매하고 있는데, 그 중에 눈에 띄는 가게가 하나 있다. 그 가게에서는 농부가 직접 가꾼 야채와 그 야채로 만든 파스타 소스, 독일식 발효 양배추, 그리고 배추김치를 판다. 오래간만에 김치가 먹고 싶어 김치 병을 덥석 집어들었다.

농부 시장에서는 직접 재배하고 만든 식품을 만날 수 있다.
농부 시장에서는 직접 재배하고 만든 식품을 만날 수 있다.

김치가 맛있게 생겨 농부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지다 흥미로운 대화로 이어졌다. 그 농부는 한국인을 아는 것도 아니고 아는 사람 중에 한국과 인연이 있는 사람도 없었다. 그는 대학에서 식품영양학과를 전공해서 이모저모 조리법을 참고하면서 스스로 김치 조리법을 개발했다. 그가 김치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독특한 외국 식품이어서가 아니라 건강에 좋은 발효 식품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필자가 한국에 살았다고 이야기했더니 식품에 대한 평을 부탁했다.

김치를 들고 집에 돌아와서 저녁에 먹어봤다. 싱싱하고 맵지도 싱겁지도 않은 맛이 좋았다. 병에 담기 위해서 한국에서 먹었던 김치보다 배추가 잘게 썰린 것 외에는 한국에서 먹었던 것과 다름없이 맛이 좋았다. 한국에서 먹었던 김치와 약간 차이가 있다면 생강 맛이 조금 더 강하고 국물 맛이 배추김치와 깍두기의 중간 맛이 난다는 점 정도였다.

그 다음 주에 농부 시장에서 김치를 팔았던 농부를 만나 김치 평을 해줬더니 반가워했다. 그 농부는 필자보다 10살 이상 젊어서 노력하는 젊은이들을 격려하는 보람도 느꼈다. 앞으로 김치를 계속 이 가게에서 살 생각이다.

필자는 시장에서 또 다른 김치를 발견했다. 부인은 베트남인이고 남편은 미국인인 한 부부가 만든 김치였다. 이 김치는 배추김치에 새우젓 혹은 다른 해물이 없는 비건(vegan) 배추김치이다. 비건은 동물성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음식을 말한다. 이 비건 김치는 새우젓 대신 된장을 사용하고 있었다. 시식 샘플을 먹어 봤더니 고소하고 맛있었다. 매년 가을에 김장을 담그는 행사를 하고 있다고 알려 주기도 했다. 인기가 있는 김치여서 그런지 손님이 많아서 길게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그러나 앞으로 김치 이야기를 더 많이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지역산 김치 홈피 사례
지역산 김치 홈피 사례

미국에서 지역산 김치를 먹어본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예전에 미시간 주에 살 때 지역산 배추김치를 먹어봤다. 김치는 슈퍼에서만 판매하고 있어 실제 김치를 담근 사람과 대화할 수 없어 웹사이트를 살펴봤다. 웹사이트에서는 한국 또는 한국인과 인연이 있다는 설명은 없었다. 맛은 최근에 먹어본 김치보다 조금 맵고 생강 맛이 덜 강했지만, 충분히 먹을 만한 김치였다.

그렇다면 한국과 인연이 없는 미국의 농부나 업체가 왜 김치에 관심을 갖게 된 걸까? 미국에서 일어나는 ‘김치 붐’은 어떤 의미일까?

정확한 시기를 알 수 없지만 2010년대에 들어오면서 미국에서는 발효 음식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미국에는 오래 전에 독일에서 이주해온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오래전부터 독일식 발효 양배추를 먹었다. 이것은 주로 샌드위치나 핫도그와 같이 먹었지만 특별히 인기 있는 식품은 아니었다.

2010년대부터 발효 식품이 소화와 혈압에 도움이 되고 비타민이 풍부하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비만이 심한 미국인들에게 관심을 받게 되었다. 그 중에 특히 인기를 끌었던 것은 일본에서 건너온 홍차버섯차인데 미국에서는 ‘검부차’란 이름으로 판매되고 있다. 일본에서 건너온 두부처럼 건강식품을 취급하고 만드는 작은 업체들이 여기저기 생겨 지금은 전국적으로 거의 모든 슈퍼와 가게뿐만 아니라 인터넷에서의 판매도 활발하다.

지역산 김치 판매 사례
지역산 김치 판매 사례

이 ‘김치 붐’은 한국 김치가 유명해서 한국 쪽에서 한국 음식을 ‘세계화’하려고 하는 노력 때문에 일어난 것은 아니다. 로드아일랜드 주에는 한국인이 많이 살지도 않고 한국에 대한 인지도도 낮다. 이곳처럼 한국인이 적고 인지도 낮은 지역에서 김치는 한국 음식보다 건강에 좋은 발효 음식으로 알려져 있는 것이다. 때문에 건강식의 유행에 힘입어 로드아일랜드까지 보급이 된 것이다.

미국의 김치 붐은 일종의 문화적 전파라고 볼 수 있다. 역사상 다양한 방법으로 문화가 전파되었다. 김치의 경우 건강식품으로 전파가 되어 현대 미국 소비문화 속에 자리 잡은 수많은 상품 중 하나이다. 건강을 위한 발효 식품으로 마케팅이 되어 있지만, 소비자는 건강 이외 다양한 이유 때문에 김치를 즐기는 것이다. 한국계 미국인은 물론, 필자처럼 한국에 살거나 한국인을 아는 사람도 있을 테고 주변 사람에게 새로운 음식을 먹어봤다고 자랑하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김치 붐은 발효 음식의 유행 이외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김치는 한글과 나란히 한국의 대표적 문화 산물이다. 때문에 한국인들은 김치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다. 물론 자기 문화에 대한 자부심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지나친 자부심은 자기 문화에 대한 심리적 소유감으로 흐를 수 있다. 즉, 한국인이 만든 김치와 김치 요리법만이 최고이고 그 외의 방식은 받아들이지 못할 수 있다. 이러한 자문화에 대한 소유감은 ‘세계화’하는 데에 장애가 될 수 있다. 자신들의 문화를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것은 자랑스럽게 생각하면서도 다른 사람들이 자신들의 문화에 관심을 갖고 자신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문화를 수용하고 변화시켜 가면 무언가 자신들의 문화가 변질되고 때로는 훼손당하는 듯한 모욕감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폐쇄적인 심리적 소유감은 실제로 ‘세계화’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한국은 최근 한글이나 한국 음식과 문화 등의 세계화를 목표로 많은 분야에서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소유감을 기반으로 한 세계화는 ‘우리’ 주도하에 ‘남’과 나누는 본심 때문에 ‘남’이 그것을 받아드릴 의향이 있는 것인지, 있다면 ‘남’의 어떤 점이 좋을지를 고려하지 않는다. 강한 소유감 때문에 한국의 대표적 문화 산물들의 수많은 ‘세계화’ 프로젝트가 실패로 끝났다. 반면 K-Pop과 한류의 경우 개인적인 스타가 중심이기 때문에 문화 산물만큼 소유감을 느끼지 못했다.

21세기에는 문화를 세계화하고 싶다면 심리적 소유감을 극복해야 한다. 인적 교류와 IT의 활용, 그리고 한국의 국제 위상 때문에 세계인들의 한국에 대한 관심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그 상황에서 많은 ‘남’들이 그들의 방식대로 한국의 문화 산물을 ‘발견’하고 새로 해석할 것이다. 이것은 문화에 대한 훼손이나 도난이 아니라 한국의 문화적 인지도를 높이는 고마운 가교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활발한 소통을 통해 한국 문화가 그들 속으로 스며들게 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한국이 문화와 자부심을 함께 지켜가는 길이다.

로버트 파우저 robertjfouser@gmail.com 전 서울대 국어교육과 교수. 미시간대에서 일어일문학 학사 및 응용언어학 석사, 아일랜드 트리니티 칼리지 더블린에서 응용언어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고려대와 일본 교토대에서 영어와 영어교육을 가르쳤고, 일본 가고시마대에서 교양 한국어 과정을 개설해 가르쳤다. 한국 사회를 고찰하면서 한국어로 ‘미래 시민의 조건’, ‘서촌 홀릭’을 출간했다. 취미는 한옥과 오래된 동네 답사, 사진촬영으로 2012년 종로구 체부동에 ‘어락당(語樂堂, 말을 즐기는 집)’이라는 한옥을 짓기도 했으며, 2016년 교토에서 열린 ‘KG+’ 국제 사진전시회에 사진을 출품했다. 현재 미국에서 독립 학자로서 활동을 하고 있으며 한국어로 ‘외국어 문화사’를 집필 중이다.

(이 칼럼은 Nextdaily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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