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부터 로맨스 영화 한 편 찍었다.
5시에 눈이 저절로 떠졌다. 샤워하고 나갈 준비를 마쳤는데도 6시전이다. 오래전 새벽에 탁발 구경했던 생각이 급 들었다. 사실 내게는 루앙프라방의 탁발보다 태국의 탁발이 더 감동이었다. 루앙프라방은 유네스코문화유산에 지정될 정도로 유명하지만 실제로 가서 느끼는건 외형적인 면이 더 크다. 태국의 탁발의식은 보다 생활적이고 서민들의 깊은 신앙심을 느낄수 있다. 스님들도 진지하고 더 종교적이다.

동트기 전에 나갔더니 탁발중인 스님들이 보인다. 밤새 술마시고 놀았던 자리에 아직도 술자리가 진행중인 여행자들이 보인다. 카오산은 24시간 진행형이다. 스님들이 많이 보이는 사원쪽으로 가려는데 왠 젊은 흑인이 말을 건다. 같이 토킹어바웃하잔다. 나 바뻐 그랬더니 왜 바쁘냐고 따진다. 탁발이 영어로 생각나지 않아서 그냥 비쁘다고 했더니 놓아주질 않는다.

친구하잔다.
자메이카에서 왔고 태국에서 영어선생하고 있단다. 발음이 좋진 않다. 배우는 학생들이 불쌍하다. 나...베리베리 올드해. 지도 올드하단다. 몇살이냐고 물으니 33살이란다. 뒷통수를 쳐주고 싶었다. 나...54살이야.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단다. 이건 성경에 나온 말도 아닌데 길에서 노상 듣는 구절이다. 아무래도 순순히 물러나지 않을것 같아서 전화번호를 줬다. 어차피 태국에서나 쓰일 전화번호고 안받으면 그만이다. 그제서야 놓아준다.

나는 급하게 편의점에 들어가서 초콜렛을 듬뿍 샀다. 그리고 만나는 스님들께 기도드리면서 공양을 바쳤다. 포장마차가 있길래 금방 만든 찹쌀밥도 샀다. 근데 스님들이 더이상 보이질 않는다. 시간이 늦어버렸다.
내일은 더 일찍 제대로 준비하고 나와야겠다. 남은 공양물은 사원에 가서 올렸다.

다시 여행사앞으로 걸어오니 쏨땀수레가 보인다. 아침부터 재수가 좋다. 내가 딱 원하는 스타일이다. 태국만 오면 외치는 소리를 외치며 쏨땀한접시 주문했다.
마이사이팍치(고수사절) 동남아음식을 아무리 먹어도 고수는 좋아지지않는다. 완전 맛있다. 레스토랑에서 먹는 쏨땀은 절대 이맛이 안난다. 7시가 되자 예약한 손님들이 모두 모인다. 나까지 7명인데 두명은 커플이고 4명은 상큼한 아가씨들이다. 모두 타이완에서 왔단다. 차안에 중국말이 마구 날아다닌다. 몇마디 아는 중국말을 했더니 다들 리액션이 장난아니다. 귀여운 아가씨가 한국말로 '반갑습니다'라 한다. 한국에서 1년 살았었단다.

차가 한참 달리자 밤에 뭘 했는지 다들 쓰러져 잔다. 염전도 지나고 또 한참을 달려서 어느 시장 모퉁이에 세우더니 9시까지 구경하란다.

기찻길시장이다. 때마침 기차가 지나간다. 기사 아저씨가 9시에 그 기차가 돌아가니 사진찍고 차로 돌아오란다.

기찻길시장은 서민들이 살아가는 삶의 터전이다. 기찻길 주위로 엄청나게 큰 시장이 있고 선로변에는 노점수준의 장이 열린다. 사람들은 기차를 타고 와서 장을 보고 다시 기차를 타고 돌아가는듯 하다.

미얀마에서도 기찻길시장을 만난적이 있었는데 많이 다르다. 시장에는 없는거빼고 다 있다.

싱싱한 해물과 야채 과일을 보니 근처에 집 얻어서 살고 싶어진다. 다음에 남편하고 같이 와서 시장보고 밥해 먹으면서 살고 싶다.

기차역 종점까지 걸어가니 기차가 서 있다. 사람들이 사진 찍고 있는데 대만커플은 안보이고 아가씨 4명이 사진찍고 있다. 같이 사진 찍어주다보니 시간이 다 되어간다. 내가 돌아가자고 했더니 다들 병아리처럼 날 따라온다.
갑자기 방송이 시작된다. 아마 기차가 지나가니 '정리하고 철로에서 비켜서'라는 방송인듯 싶다. 태국말 모르는 사람들도 다들 눈치로 알아서 옆으로 피한다. 우리는 진행 방향이라 더가서 피하자고 병아리들을 데리고 진행했다. 한참 가서 좋은 자리에 다같이 대피했다. 시장이 신기하게도 정리가 되고 우리도 까치발로 벽에 붙었다.

드디어 기차가 지나가는데 스릴만점이다. 병아리들이 꺅꺅 고함을 지르며 좋아한다. 나도 덩달아 엔돌핀지수가 상승한다. 젊은이들하고 같이 다니니 나까지 젊어지는 기분이다. 기차가 지나가고 다시 시장이 펼쳐지니 혼잡하다. 복잡한 시장을 헤치고 차까지 갈 일이 막막하다. 병아리들에게 나를 따르라고 하고 옆가게를 통과해서 길을 열었다. 동물적인 감각으로 차에 도착하니 병아리들이 감탄을 한다. 엄마닭 된듯 기분이 뿌듯하다.

다음으로 도착한 곳은 담넌사두억수상시장이다. 담넌사두억은 이번이 4번째이다. 투어에 합류하다보니 할수 없이 또 오게 되었다.

땡볕에 보트타고 땀흘리고 싶진 않지만 또 탔다. 내가 맨앞에 앉았다.

담넌사두억은 오전에 열리는 수상시장이다. 처음에 왔을 때하고 달라진게 없다. 여전히 보트끼리 부딪히고 배위에서 쇼핑하고 재미있다. 병아리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즐겁다. 상인들이 기가 막히게 중국인들임을 알고 '야오마이'라 계속 외친다. 나까지 중국사람취급이다. 그러고보니 중국사람들 엄청 많다.
우리나라에서 태국여행 떠나는 사람들이 많다지만 태국 입장에서 보면 관광객의 4%에 불과하단다. 태국이 얼마나 관광대국인지 실감이 난다.

보트를 타고나서 1시간동안 자유시간을 준다. 병아리들 데리고 다닐까하다 그냥 혼자 다녔다. 아무래도 세대차이가 있을듯 싶었다. 혼자서 사진도 찍고 맘에 드는 바지도 하나 사고 커피˜乍【커피도 사서 마셨다. 시간이 되어서 차로 돌아오니 병아리들이 시간이 넘어도 오질 않는다. 기사아저씨한테 내가 가서 찾아올까 했더니 더 기다려보잔다. 10분이 넘어서 나타난다. 이젠 친해져서 반갑다. 커플은 결혼해서 싱가폴에 살고 있단다. 병아리4명은 26살인데 친구란다. 우리 애들데리고 여행하는 기분이다. 차에 타고서도 한참 수다떨고 재미있다.

웃고 떠드는 사이에 암파와수상시장에 도착했다. 기사아저씨가 나만 불러내더니 장소를 지정해주고 5시45분에 다른 남자와 접선하란다. 병아리들은 오전투어만 신청한 친구들이라 방콕으로 돌아간단다. 짧은 시간 정들었는데 급 우울해진다. 잠시나마 딸하고 함께 여행하는듯 즐거웠던걸로 만족했다.

암파와시장은 처음이다. 이번에 방콕에 온 목적이기도 하다. 주말에만 열리는 시장이라 날짜 맞추기도 쉽지않다. 6시간 동안을 시장에서 뭘하나 고민스럽기도 하다. 일단은 시장으로 들어섰다.

평범한 집들이 이어지다가 본격적으로 시장이 시작된다. 담넌사두억하고는 분위기가 완전 다르다. 가게들이 일반 관광지들 가게들하곤 사뭇 다르다. 관광객들보다는 태국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주말에만 열리는 시장이라 가족나들이온 사람들이 많다..
시장안으로 들어가면 갈수록 6시간이 부족할듯 싶다. 태국인들에 대한 선입견이 확 깨진다. 우리가 관광지에서 만나는 태국사람들하곤 많이 다르다. 태국사람들 생활 수준을 우습게 보면 안될듯 싶다. 진열된 상품들도 관광지에서 보는 물건하고는 완전 다르다. 개성있고 창의적인 물건들이 많다. 맘에 드는 삼발이를 발견해서 샀다. 맘에 딱 든다.

홧김에 다이어트에 좋다는 퀀텀커피를 한박스샀다. 살빼고 말테다.
이름외우기 어려운 시커먼 국물국수도 먹고 건강해질것 같은 약초쥬스도 사먹고 이것저것 입맛 땡기는데로 사먹었다. 에그타르트가 먹음직스러워 사먹었다. 옹골차게 크리미하다. 구석구석 보고 먹고 사면서 돌아댕겼는데도 시간이 남는다.

마지막으로 추차이부리로 갔다.
분위기 좋아보이는 식당이 있어서 들어가보니 안쪽은 정원이 아름다운 명품 쇼핑몰이다. 물건들이 예사롭지않다. 정원 산책 겸 돌아보고 식당에 들어가니 분위기가 유럽의 고급레스토랑에 온듯하다. 와인이 보기좋게 전시되어 있어서 와인을 시켰더니 와인은 술이라 5시 넘어야 팔 수 있단다. 맥주는 된단다. 맥주는 술이 아닌가보다. 먼저 Œc양꿍을 시켰다. 새우가 많이 들었고 국물이 제대로다. 온몸이 건강해지는 기분이다.
Œc양꿍을 먹고나니 5시다. 와인한잔을 시켰다. 뭔가 순서가 뒤바낀 느낌인데 상관없다.

시간이 되어 바뀐 기사에게 전화를 하니 2분 후에 도착한단다. 새기사의 이름은 피터란다. 영어로 말하는데 알아듣기가 힘들다. 자메이카에서 온 선생한테 영어를 배웠나보다. 쉬지않고 이야기하는데 알아들을수 있는 내용이 많지않다. 피터는 일행이 4명 더 있다고 6시20분까지 자유시간을 더준다. 덕분에 암파와시장의 야경까지 찍을수 있었다. 해가 지고 조명이 켜지니 사람들이 더 몰려온다. 좁은 길에서 걷기가 힘들 지경이다. 6시20분에 약속 장소로 가니 일행들이 모인다. 또 타이완 아가씨들이다. 아무래도 내가 타이완전문여행사에 투어를 신청한 모양이다. 덕분에 하루종일 귀에서 중국말이 웅얼거린다. 피터말에 의하면 관광객들이 몰리는 반딧불투어에서는 더이상 반딧불을 볼수가 없단다. 소음을 싫어하는 반딧불이 사라져서 그렇단다. 어쩐지 반딧불투어 후기들이 실망스럽더니 그 이유를 알았다. 그래서 피터는 관광객들이 가지않는 새로운 곳으로 간단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고요하고 평화롭다. 피터가 나룻배 노를 직접 잡는다. 배 앞머리에 앉아서 피터가 계속 설명을 한다. 말도 안되는 영어를 쉬지도 않고 떠든다. 국적 잃은 영어가 태국남자와 한국 아줌마 사이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

반딧불은 람푸트리를 좋아한단다. 람푸트리마다 반딧불이 잔뜩 붙어서 마치 크리스마스트리처럼 빛난다.
물 위에 떠다니는 반딧불은 수컷이라 덩치가 크고 나무에 붙어있는 것들은 암컷이라 크기가 작단다. 고요한 수로를 나룻배 타고 가면서 이어지는 반딧불 나무들을 보니 탄성이 절로 나온다. 많아도 정말 많다. 워낙 컴컴한 곳이라 사진은 한 장도 찍히지가 않는다. 서진은 포기했지만 영롱한 반딧불들은 맘에 가득 담았다.

투어를 마치고 호텔로 돌아오니 10시가 넘었다. 호텔까지 오는내내 피터는 쉬지않고 떠든다. 대만아가씨들은 죄다 뻗어서 잠이 들고 난 할 수 없이 쉼없이 맞장구를 쳤다. 우리사이 영어는 여전히 국적을 잃고 방황한다. 그런데도 통하는걸 보면 신기하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긴 하루를 보냈다. 내일은 카오산을 떠나서 또다른 방콕으로 간다. 무궁무진한 방콕이다.

허미경 여행전문기자(mgheo@nextdaily.co.kr)는 대한민국의 아줌마이자 글로벌한 생활여행자다. 어쩌다 맘먹고 떠나는 게 아니라, 밥먹듯이 짐을 싼다. 여행이 삶이다 보니, 기사나 컬럼은 취미로 가끔만 쓴다. 생활여행자답게 그날그날 일기쓰는 걸 좋아한다. 그녀는 솔직하게, 꾸밈없이, 자신을 보여준다. 공주병도 숨기지 않는다. 세계 각국을 누비며 툭툭 던지듯 쏟아내는 그녀의 진솔한 여행기는 이미 포털과 SNS에서도 두터운 팬층을 확보하고 있다.

저작권자 © 넥스트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