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률 26.7%의 SBS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가 최종회를 앞두고 있다. 어설픈 몇 마디로 누군가를 위로하려 하지 않고, 불편부당 없이 매사 최선을 다하는 최고의 의사로 정의롭지 못한 권력 앞에서 소신껏 행동하는 김사부(한석규)는 멋졌다. 그를 따르는 아름다운 열혈의사 윤서정(서현진)과 근성과 오기로 성장한 청년 강동주(유연석)가 돌담병원에서 펼치는 사랑 또한 무척 낭만적이다. 이렇듯 거실에 앉아 드라마를 보는 것은 서재에 앉아 책을 읽는 것보다 편하고 즐겁다, 하얀거탑, 종합병원, 그레이 아나토미, 닥터X 등 다양한 국내외 의학드라마를 통해 병원과 의사들의 이야기를 접했고, 어설픈 의학상식도 쌓아왔다. 드라마는 다소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그럴싸한 현실감각으로 포장하기에 일상에서 벌어지기 힘든 일에 대해 드라마와 같다는 표현을 한다. 정말 그럴까? 황당함과 폭력이 난무하는 정치와 경제, 사회 현실을 살아가다보니 드라마를 능가하는 사실이 차고 넘친다. 물론 의학드라마를 압도하는 의사의 이야기도 있다.

1977년생 폴 칼라니티는 인도계 이민 2세로 뉴욕에서 태어났다. 심장전문의였던 아버지를 따라 라스베가스와 피닉스의 중간에 위치한 애리조나의 소도시 킹맨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교육열이 넘치는 어머니의 보살핌 속에서 비교적 원만하게 성장했다. 문학과 철학, 과학과 생물학에 심취하여 스탠퍼드 대학 영문과에 진학했고, 영국 케임브리지에 유학하여 과학과 의학의 역사를 공부했다. 더 깊은 공부를 하느라 예일대 의과대학원에 진학하였으며, 모교인 스탠퍼드 대학 신경과 레지던트 생활을 하며 박사 후 연구원이 되었다. 미국 신경외과 학회에서 수여하는 최우수 연구상을 수상하는 등 촉망받는 의사로 여러 일류 대학에서 교수 자리를 제안 받고, 장밋빛 미래만을 상상하고 있었다. 인생의 꿈을 이루기 위해 10년이 넘는 세월을 매일 열네 시간씩 힘겹게 일하고 공부하며 살아왔으니 이제 일 년만 더 버티면 지겨운 레지던트 생활을 끝내고 정상에 우뚝 서는 것은 따 놓은 당상이었다. 격무에 시달리느라 체중은 급격하게 줄고 가슴에 심한 통증이 밀려왔지만 설마 그 정도일 줄은 몰랐다. 고작 서른여섯 살인 최고의 엘리트 의사에게 상상할 수 없는 위기가 찾아왔다. 어떻게 할 것인가?

그에게는 루시가 있었다. 의과대학원에서 만난 그녀는 능력에 한계가 없어 보였고 인생의 반려로 그에게 많은 감동을 줬지만 고난의 여정을 함께하는 동안 부부로서 전형적인 위기를 겪고 있었다. 앞만 보고 달려온 그들에게 쌓이고 쌓인 감정의 골이 곪아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불길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던 신경외과의 젊은 의사는 내과 의사인 아내와 나란히 앉아 한 장의 CT 정밀 검사 결과를 살펴보았다. 무수한 종양이 폐를 덮고 있었다. 척추는 변형되었고 간엽 전체가 없어졌으며 암은 이미 곳곳으로 전이되어 있었다. 지난 6년 동안 이런 정밀 검사 결과를 수없이 검토했지만 이렇게 절망적인 결과도 드물었다. 가능성이 별로 없어 보이는 병원 모니터 속 그 사진은 다른 환자도 아닌 바로 자신의 것이었다. 루시는 흰 가운 대신 환자복을 입고 암담한 결과 앞에서 고민하는 남편을 꼭 끌어안았다. 남편은 자신이 죽으면 재혼하라고 말했고, 조용히 흐느꼈으나 그 순간 두 사람의 사랑은 재정립되었다. 죽음을 기피하는 문화 속에서 죽음에 정면으로 맞서는 결정을 내렸고 관계는 한 없이 깊어졌다.

“아무도 내게 앞으로의 계획을 묻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아무런 계획도 없었으니 말이다. 나는 이제 지팡이 없이도 걸을 수 있었지만, 불확실한 앞날을 생각하면 온몸이 마비되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될까, 그리고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을까? 환자? 과학자? 교사? 생명 윤리학자? 아니면 에마의 말대로 신경외과 의사 복귀? 집에만 있는 아빠? 작가? 대체 나는 무엇이 될 수 있고, 또 되어야 하는가? 의사 시절 나는 중병에 걸린 환자들이 마주친 문제들을 어느 정도 이해했었고, 바로 이런 순간들을 그들과 함께 깊이 파고들기를 원했었다. 그렇다면, 죽음을 이해하고 싶었던 청년에게 불치병은 완벽한 선물이 아닌가?” - 178쪽

그는 수많은 환자와 가족들에게 나쁜 예후를 알려주는 일을 해왔다. 늙은 환자의 치매나 뇌출혈 등은 비교적 쉬운 편이나, 젊은 불치병 환자를 상대하는 것은 괴로운 일이었다. 도저히 불가능한 기대를 갖고 있는 환자에게 소금물로 갈증을 해결시켜 주듯이 거짓말을 해줄 수도 없고, 죽음에 정면으로 맞서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여하간 난감할 때가 많았다. 병원에서 연결시켜 준 주치의 에마 헤이워드 과연 훌륭한 의사였다. 카리스마 넘치는 그녀는 냉정하나 따뜻한 메시지로 용기를 심어주고, 환자의 인생 계획을 경청하고 조언하며 함께 고민해 주는 배울 점이 많은 선배였다. 자신의 가치를 찾는 것이 자기 자신에게 달린 문제라는 것을 알면서도 공허했던 그에게 나아갈 길을 잘 안내해주었다. 환자이기에 앞서 의사로서 자신의 언행들을 복기하며 원래의 인생 계획에 한 발짝 더 나아갔다. 환자로서 어떻게 해야 할지도 늘 생각하던 대로 행동하게 되었다. 그렇게 되살아난 의지는 수술실로 복귀함과 동시에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쓰기 시작했다. 의사가 되기 전에 영문학을 전공한 문학청년이 아니었던가. 그는 의사로, 작가로, 환자로 1인 3역을 수행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기로 결심했다.

"나는 계속 나아갈 수 없어. 그래도 계속 나아갈 거야(I can't go on. I'll go on)."라는 사뮈엘 베케트의 소설 ‘이름 붙일 수 없는 자’의 한 구절을 반복적으로 되새기며 그는 멈추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에게 활기를 불어넣어준 것은 문학이었다. 불확실한 미래 앞에 무기력했고 죽음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졌던 순간에 용기를 준 그 멋진 말.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기 시작한다. 주변의 만류에도 신경외과로 복귀한다. 행정적인 업무는 배제하고 동료 레지던트의 지원을 받아 하루에 한 건의 수술만 맡기로 결정했다. 18주 만에 푸른색 가운으로 갈아입고 다시 수술에 임했을 때는 체력적으로 힘들었고 행동은 느렸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익숙해져서 후배들에 자신만의 노하우를 전수하는 여유도 찾았다. 한 달 뒤에는 본연의 모습을 찾아 거의 모든 과정을 혼자서 해낼 수 있게 되었다. 수술은 즐겁지 않았고, 체력적으로 무척 힘들었고 근육은 불타는 것처럼 아팠지만 집중력으로 버텼다.

젊은 의사는 자신의 삶을 회고하고 성찰하며 죽음을 준비한다. 시체를 하나의 사물로 대상화하던 해부실에서의 부끄러운 기억으로부터 기계적으로 진료하고 처방하고 치료하던 일들은 없었는지 냉정하게 추체험한다. 그것은 경외심을 동반한 일종의 두려움이자 보다 가치 있는 생을 완성시키고 싶은 스스로에게도 의미 있는 행동이었다. 의사는 기술자가 아니라 환자와 그 가족이 죽음이나 질병을 잘 이해하도록 돕는 존재이며, 자신이 쌓은 소중한 경험들을 후배들에게 아낌없이 전수해주고 싶은 아량 넘치는 따뜻한 욕심도 생겼다. 신경외과의 특성상 수술 후에 환자의 정체성에 끼칠 영향을 신중하게 고려해야했고, 환자의 삶을 관계론적으로 해석하고 파악하여 그것이 파괴되지 않도록 지켜내야 하는 숭고한 태도에까지 미치게 된다. 그는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슴에서 발로 이어지는 먼 여행을 실천하는 의사로 변해갔다.

그는 세상을 바라보는 두 가지 관점을 갖기 시작했다. 의사로서 암이라는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하겠다는 선언과 함께 왜 하필 자신인가에 대한 원망 같은 것은 갖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과거를 회상한다. 뇌종양이 언어 회로를 차단하는 바람에 말을 못하고 숫자들만 나열하던 예순두 살의 남자 마이클스나 종양 제거 수술 도중에 시상하부가 약간 손상을 입는 바람에 사랑스러웠던 여덟 살짜리 꼬마에서 열두 살에 140kg짜리 괴물이 되어버린 매슈의 이야기 등을 회고한다. 아들의 생명 유지 장치를 떼어내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한 적이 있었던 부부가 2년 뒤에 찾아와 그 아들이 피아노를 연주하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을 보여주면서, 아들의 목숨을 구해줘서 고맙다며 컵케이크까지 선물로 준 오묘한 기억도 있다. 수술에 실패한 뒤 죄책감에 시달리던 동료 의사 제프의 자살과 같은 가슴 아픈 이야기는 끊임없이 밀려온다. 예전에 자신이 맡았던 환자들처럼 죽음과 마주하고 선 그의 삶을 재정비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하려면 주치의인 에마의 도움이 필요했다.

다윈과 니체의 기로에서 생물을 규정짓는 특징은 생존을 향한 분투라는 공통점을 찾은 그는 편안한 죽음이 반드시 최고의 죽음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죽음을 앞에 두고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것들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아빠가 될 것인가에 대한 고민에 빠져들었다. 레지던트 생활 막바지에 잠시 위기에 빠졌던 적은 있지만 사랑은 또다시 깊어지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부모가 되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서로를 배려하느라 망설였는데 결국 아기를 갖기로 결심했다. 그 결정을 양가에 알린 후 가족들의 축복을 받았다. 죽어가는 대신 계속 살아가기로 다짐했다. 기쁜 맘으로 자신의 삶을 이전의 궤도로 돌려놓고 말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부부는 팰로앨토에 있는 어떤 생식내분비과의 전문의를 찾아가 상담을 했다. 그녀는 능력을 인정받은 전문가였으나 불임 환자가 아닌 불치병 환자를 상대해본 경험은 없어 당황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몇 번의 시도 끝에 결국 루시는 임신에 성공했다.

환자이자 의사로서 결과가 점점 나빠졌을 때, 마지막 수술을 성공적으로 집도한 것은 불행 중 다행이었다. 수술실에서 나온 그는 후배들에게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자신의 물건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격무에 시달리는 동안 갈아입을 옷 몇 벌과 세면도구, 휴대전화 충전기, 과자, 자신의 두개골을 본뜬 견본, 의학전문서적 등을 챙긴다. 그러다 문득 책은 남겨두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더 쓸모 있는 곳에 두기로 한다. 주차장에서 마지막으로 만난 동료의 몸짓도 너무나 일상적이었으니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인지한 환자로서 천천히 도로로 빠져나가며 뜨거운 눈시울을 느낀다. 귀가 후 긴 샤워 끝에 다시는 복귀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소식을 또 다른 동료에게 알린다.

“결국 우리 각자는 커다란 그림의 일부만 볼 수 있을 뿐이다. 의사가 한 조각, 환자가 다른 조각, 기술자가 세 번째, 경제학자가 네 번째, 진주를 캐는 잠수부가 다섯 번째, 알코올 중독자가 여섯 번째, 유선방송 기사가 일곱 번째, 목양업자가 여덟 번째, 인도의 거지가 아홉 번째, 목사가 열 번째 조각을 보는 것이다. 인류의 지식은 한 사람 안에 담을 수 없다. 그것은 우리가 서로 맺는 관계와 세상과 맺는 관계에서 생성되며, 결코 완성되지 않는다. 그리고 궁극적인 진리는 이 모든 지식 위 어딘가에 있다.” - 205쪽

비쩍 마른 몸을 보온팩과 담요로 감싸고 아버지가 밀어주는 휠체어를 타고 분만실에 들어가 간이침대에 누워 부풀어 오른 아내의 배를 바라다 봤다. 그렇게 오랫동안 쳐다보다 잠들었는데 간호사가 흔들어 깨우며 말했다. “먼저 한 가지 말씀드리자면, 따님은 선생님과 머리 색깔이 같네요. 숱도 많고요.” 그는 기쁨에 겨워 고개를 끄덕이며 아내의 손을 잡았다. 서른일곱 살 7월의 새벽에 그렇게 희망이 찾아왔다. 아기의 이름은 몇 달 전에 미리 지었는데 엘리자베스 아카디아, 줄여서 케이디였다. 간호사가 한 번 안아보겠느냐고 물었을 때 자신의 몸이 너무 차갑다며 걱정을 했더니 친절하게 이불로 감싼 케이디를 건네주었다. 한쪽 팔로 딸의 무게를 느끼며 다른 팔로 아내의 손을 붙잡은 그는 삶의 무한한 가능성에 기뻐한다. 아이는 자라고, 자신의 병세는 악화되어 몸이 심하게 축나고 있었다. 죽음은 예상보다 느리게 올지도 모르지만, 원하는 것보다는 분명 빠르게 닥쳐올 것이기에 그는 남은 시간들에 최선을 다한다. 딸이 자신의 얼굴을 기억할 정도까지는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소망하지만 부질없다. 케이디에게 편지를 남길까 생각을 했다가도 책으로 남기고자 글을 쓴다.

케이디가 태어난 8개월 뒤, 폴의 거친 숨결은 바람이 되었다. 루시는 남편의 임종과 그 뒷이야기를 담담하게 전하는 에필로그를 썼다. ‘죽음의 부정’을 집필한 문화인류학자 어니스트 베커(1924~1974)는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할 때 그 행동의 원인이 무엇인가’라는 아주 오래된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인류학, 사회학, 심리학, 철학, 종교학, 문학, 그리고 대중문화에서 얻은 통찰을 종합하여 책으로 소통하는 데 길지 않은 일생을 바쳤다. 마흔아홉 생의 마지막 순간에 집필한 그의 글이 사후 두 달 뒤에 퓰리처상을 받은 것처럼 서른일곱에 떠난 폴의 에세이는 그의 사후에 오랫동안 아마존 베스트셀러 1위 자리를 지켰다. 이 책의 서시가 참 아름답다.

“죽음 속에서 삶이 무엇인지 찾으려 하는 자는
그것이 한때 숨결이었던 바람이란 걸 알게 된다.
새로운 이름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고,
오래된 이름은 이미 사라졌다.
세월은 육신을 쓰러뜨리지만, 영혼은 죽지 않는다.
독자여! 생전에 서둘러
영원으로 발길을 들여놓으라.“
- 서시; 그레빌 남작(1554~1628)의 ‘카엘리카 소네트 83번’

죽음과 상관없이 살아가는 사람과 죽음을 각오하고 살아가는 사람의 태도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남의 죽음과 인생의 철학에 대해 함부로 이야기할 수는 없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죽음의 의미가 달랐고, 친구의 죽음 앞에서 삶의 의미가 변했다. 지난겨울, 숨결이 바람 되신 스승님이 그립다. 누군가를 그리워할 때 바람이 불어오면 생각도 많아진다. 바람 속에서 참으로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오늘이 고맙고, 책을 읽을 수 있는 날들이 행복하다. Carpe Diem!

안중찬 ahn0312@gmail.com (주)교보피앤비 기획실장 / 장거리 출퇴근의 고단함을 전철과 버스 안에서 책 읽기로 극복하는 낙관적이고 사교적인 생활인이다. 컴퓨터그래픽과 프로그래밍 분야 11권의 저서와 더불어 IT칼럼니스트로 왕성하게 활동했던 엔지니어 출신으로 한 권의 책에서 텍스트, 필자, 독자 자신을 읽어내는 서삼독의 실천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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