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을 하다 보면 수많은 위기들이 끝도 없이 찾아온다. 그 중 또 하나 기억에 남는 것은 2014년 8월 29일 생일에 있었던 일이다. 이날은 내 자존감이 바닥으로 떨어진 날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한 날이었다.

그날은 유난히도 바빴다. 서울과 대전을 오가는 빡빡한 일정 속에 무거운 이슈에 대한 전화 통화도 잦았다. 잠시 숨 돌릴 틈도 없었지만, 그나마 가족, 직원들을 포함한 소중한 사람들이 보내오는 생일 축하 메시지가 나를 버티게 하는 힘이었다. 점심 먹을 시간도 없어 휴게소에서 간단히 빵으로 요기를 하고 있던 찰나, 큰 딸에게서 문자 메시지가 왔다. 일찍 퇴근하면 케이크에 초도 불고, 맛있는 저녁도 같이 먹자는 문자였다. 마음 같아선 어떻게든 일찍 끝내보고 싶었지만, 그날의 살인적인 스케줄을 보니 절대 불가능했다. 애써 아쉬움을 뒤로 하며, 미안하다는 답장을 보냈다.

그렇게 하루 종일 정신없이 보내고, 이스라엘에서 온 손님과 마지막 미팅을 마치고 나니 밤 10시가 훌쩍 넘었다. 서둘러 집 앞에 도착한 시간은 밤 11시 50분.
‘아이들은 벌써 자고 있겠지….’
그래도 생일이 지나기 전에 가족들의 얼굴을 볼 수 있겠다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하던 순간,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왠지 모르게 느낌이 좋지 않았다.
“여보세...”
“씨XXXX!!”

전화를 받기가 무섭게 어떤 중년의 남성이 다짜고짜 소리를 치며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거침없이 뱉어내는 육두문자에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자세히 이야기를 들어보니, 콜센터 직원의 실수로 한 시간 넘게 치킨을 받지 못한 고객이 화가 나서 전화를 건 것이었다. 화를 참지 못했던 그 고객은 담당자를 통해 내 휴대폰 번호를 알아냈고, 급기야 밤 11시 55분에 전화를 건 것이었다. 얼굴도 본 적 없는 누군가에게 오밤중에 욕을 듣고 있으니 화가 났지만, 명백한 우리 회사의 실수였고, 고객을 상대로 화를 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욕설이 난무하는 고객의 전화에 나는 집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차 안에서 수도 없이 ‘죄송합니다.’라는 말만 되풀이해야 했다. 그리고 그 고객과의 통화는 8월 30일 오전 1시 8분에 종료되었다. 전화를 끊고, 나는 1시간 넘게 꾹꾹 참아왔던 짜증과 좌절, 분노의 감정에 압도되어 눈물을 터뜨렸다. 자존심과 자존감이 완전히 지구 끝까지 떨어졌다. 그렇게 차 안에서 혼자 10분을 소리 내어 울었다. 아무리 고객이라도 내가 이런 취급을 받으면서까지 욕을 들어야 하는 것도 화가 났고, 이런 일 하나도 담당자 선에서 처리하지 못하고 내가 처리하게 만드는 상황에도 짜증이 났다. 다음날 아침 출근하자마자 실수를 저지른 직원들을 내 방으로 불러 크게 문책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튿날. 이성의 끈을 되찾고 난 다음에는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어제와 같은 상황이 벌어진 이유가 조직의 시스템에 있었던 것은 아닐까 곰곰이 곱씹어봤다. 그리고 사건이 일어난 경위를 좀 더 자세히 알아보았다.

일단 상담사가 치킨 배달이 늦어지는 이유를 매장과 실시간으로 소통해서, 어떤 상황인지 고객에게 정확히 인지시키고 이해시키지 못한 것이 화근이었다. ‘일단 기다려보라.’는 말로 일관하는 상담사의 자세에 고객은 더욱 화가 날 수밖에 없었고, 도저히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사장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한 것이었다. 결국 문제는 다음과 같았다.

문제 정의 : 사건이 발생하게 된 원인
- 상담사의 조기 대응 미흡
- 매장과 콜센터의 의사소통 문제 (매뉴얼의 문제)

그때 나는 고객 불만이 접수될 경우, 상담사가 매장과 즉시 소통해 상황을 파악하고 고객 불만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새로운 매뉴얼을 만들었고, 그것을 전 직원들과 공유함으로써 유사한 사건이 재발되지 않도록 했다.

또한 이 사건을 통해 나는 콜센터 직원들이 감정 노동으로 인해 겪는 스트레스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다. 이런 전화를 수도 없이 받아 왔을 직원들을 생각하니 너무 미안했고, 또 대단하게 느껴졌다. 그때부터 회사의 복지를 확대하고, 다양한 놀이 시설과 휴식 공간, 낙서판 등을 마련해 직원들이 힘들 때마다 ‘힐링’의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했다. 그런데 만약 내가 분을 참지 못하고, 문제를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면 어땠을까?

문제 정의 : 사건이 발생하게 된 원인
- 상담사와 관리자의 자질의 문제(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지른 상담사, CEO의 전화번호를 가르쳐준 관리자)

아마도 다음날 곧바로 상담사와 관리자를 불러 꾸짖는데 혈안이 되었을 것이고, 이날은 내게 굉장히 화나고 억울한 날로 기억되고 말았을 것이다. 이렇듯 문제를 어떻게 정의하느냐, 상황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해결책은 완전히 달라진다.

또 다른 경우를 가정해보자. 모 대기업에 부품을 납품하는 한 중소기업의 CEO는 부쩍 불량품 생산이 많아지는 것을 발견했다. 사실 문제는 공정 시스템이 허술한 것에 있는데, 직원들이 성실하지 못한 것이 문제라고 생각해 매일 아침마다 직원들을 불러 윽박지르고 질책한다면 과연 어떤 결과가 벌어질까? 점차 조직을 떠나는 직원들이 많아질 것이고, 사람을 새로 뽑아도 오래 버티지 못하고 그만둘 것이다. 그런 직원들을 보면서 CEO는 ‘직원들이 불성실하다.’는 기존의 생각을 더욱 강하게 신뢰할 지도 모른다. 이런 조직엔 절대 발전이 있을 수 없다. 머지않아 그 CEO는 폐업 신고를 하러 세무서로 향하는 자신을 발견할지도 모를 일이다. 문제가 아닌 것을 문제라고 생각하고 덤벼드니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의 현상을 보더라도 그 이면에 무엇이 있는지 볼 줄 알아야 한다. 자신이 인식한 문제가 진짜 문제인지 반복해서 검증하고 확인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많은 기업의 CEO들이 문제가 아닌 것을 문제라고 믿고, 잘못 대처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정말 열심히 하는데 성과도 없고, 상황도 별 다른 진척이 없다면 자신이 정의한 문제가 틀렸다는 것을 가정하고 다시 한 번 문제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물론 굉장히 어려운 작업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문제 정의도 습관이고 기술(Skill)이라 반복해서 훈련하다 보면 더 잘하게 된다는 것이다. 지난 8월 29일. 나는 상담사의 실수가 아닌 회사 전체 업무 프로세스에서 문제를 정의했고, 그것은 결국 회사에 작은 혁신을 가져다 주었다. 만약 표면적으로 드러난 상담사의 실수에만 집중했다면, 기업엔 어떤 발전도 없었을 것이다.

전화성 glory@cntt.co.kr 씨엔티테크의 창업자, CEO이자 현재 KBS 도전 K 스타트업 2016의 심사위원 멘토이며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터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KAIST 학내벤처 1호로 2000년 창업하였고, 전산학의 인공지능을 전공하였다. 14년간 이끌어온 씨엔티테크는 푸드테크 플랫폼 독보적 1위로 연 1조 규모의 외식주문 중개 거래량에 9년 연속 흑자행진중이다. 경제학을 독학하여 매일경제 TV에서 앵커로도 활동했고, 5개의 영화를 연출한 감독이기도 하다. 푸드테크, 인공지능, 컨텐츠 생산, 코딩교육 등 다양한 경험을 통한 엑셀러레이팅을 주도하고 있으며, 청년기업가상 국무총리상, ICT 혁신 대통령 상을 받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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