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는 다문화 국가다. 아시아 각국을 비롯해 2차 대전 전후로 유럽에서 많은 이민자를 받아들였다. 캔버라 역시 호주의 전반적인 모습과 다르지 않는 다문화 도시다. 그런데 의외로 호주 원주민인 애보리진(Aborigine)을 만나기 힘들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진짜 호주 원주민을 본 적이 없다. 구 국회의사당(Old parliament house)의 애보리진 천막 대사관을 들러, 그들의 이야기를 들은 게 전부다.

애보리진은 과연 어디에 살고 있을까? 친구이자 집주인인 코라에 따르면 그들은 주로 다윈(Darwin)이 주도인 NT(Northern Territory)에 살고 있다 한다. 그들은 왜 어울려 살지 않는 것일까? 원주민으로부터 땅을 빼앗아 시작한 호주의 역사로 짐작할 수 있다 치더라도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이미 수백 년이 흘러버렸고, 호주는 오늘날 거대한 다문화 국가로 성장했다.

나의 이러한 의문을 풀어줄 곳은 의외로 가까운 데 있었다. 바로 옆에 있는 코라다. 네덜란드인 아버지와 영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코라는 9살되던 해, 호주로 이민을 왔다. 대학을 마치고, 일하게 된 곳이 애보리진을 위한 언론사였다. 그곳에서 취재차 만난 애보리진과 결혼을 해서 두 딸을 두었다.

그녀가 애보리진과 결혼을 한 것만 제외하고는 특이한 점이 없다. 그러나 그 애보리진이 누구냐에 따라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는 케빈 길버트(Kevin Gilbert)로 바로 캔버라의 애보리진 천막 대사관을 세운 장본인이다. 또 호주 땅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해온 그 덕분에 애보리진들이 자신들의 땅을 갖게 되었다. 애보리진을 위한 인권 운동가이자 화가, 시인, 작가이기도 했던 그는 이제 이 세상에 없다. 그의 이름은 애보리진 현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애보리진 천막 대사관은 남았고, 새로운 인권 운동가들이 그의 뒤를 이어 애보리진의 권리 찾기에 앞장 서고 있다. 코라는 이혼 전까지 케빈 길버트의 저작 활동을 도와 세 권의 책을 출판했다.

올 1월 케빈 길버트의 세 번째 아내인 엘리 길버트(Eleanore Gilbert)가 다큐멘터리 영화를 발표했다. 사진 작가이면서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이기도 한 그녀의 이번 작품은 고대부터 전해져오는 애보리진의 우주와 세계에 대한 지혜, 옛 이야기에 관한 것이다. 구전으로 전해 내려오는 그들의 이야기를 CSIRO의 천체물리학자와의 대담 형식으로 엮었다. 지금까지 특별 상영회를 여러 차례 열었는데, 우리는 그녀의 집에서 ‘Star stories of the dreaming’을 감상했다.

이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나는 애보리진의 문화와 그들의 역사가 그들의 삶의 방식과 외모 탓에 가볍게 취급받고 있는 현실이 슬펐고, 안타까웠다. 천체물리학자가 동의하고 얘기를 풀어나갈 수 있을 만큼 그들의 고대 지혜와 옛이야기는 놀라웠다. 자연과 하늘과 땅의 섭리에 따른 그들의 삶은 겉보기에는 원시적이지만, 때묻지 않은 순수하고 지혜로 빛나는 ˜ 그 자체였다. 애보리진 국기를 보면, 이 점은 더 분명하다. 검정은 애보리진 사람들, 노랑 원은 삶의 수호자인 태양, 빨강은 붉은 땅을 상징한다.

그런 그들에게는 백인 중심의 사회는 맞지 않는 옷과 같은 것이었을까? 뉴스로 종종 접하는 그들의 얘기는 술과 마약, 범죄, 자살로 얼룩져 있다. 애보리진 청년들의 자살률이 호주 또래 자살률의 6배에 달한다고 하니 그들의 삶이 얼마나 절박한지, 그리고 희망이 없는지 짐작할 수 있다.

지난 주 호주 SBS에서 First Contact이라는 프로그램이 3일에 걸쳐 방송되었다. 유명 백인 6인이 애보리진 사회와 마을로 직접 들어갔다. 그들이 가진 편견과 선입견, 얕은 지식과 가벼운 연민은 회를 거듭할수록 진솔해졌다.

더욱이 애보리진의 잃어버린 세대(Lost Generation) 부분에서 그들은 왜 많은 애보리진이 인간으로서의 가치있는 삶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는지 이해하기 시작했다. 적게는 2, 3살부터 많게는 10대 초반에 이르기까지 부모의 동의 없이 수많은 아이들이 사라졌다. 그들은 부모로부터 완전히 격리된 채, 백인을 위한 노동자, 혹은 가사도우미로 양육되었다. 부모들은 그들의 행방을 알 수가 없었다. 일부는 그들이 죽었다고 했으며, 일부는 좋은 교육을 위해 보내졌다고만 했다.

그렇게 그들은 백인처럼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도록 강요당하는 집단 생활 교육을 통해 유년 시절을 보냈다. 훗날 그들이 백인으로부터 받은 저임금과 노동 착취, 인권 유린 등이 문제가 되어 피해 보상 합의를 했지만, 이마저도 지켜지지 않고 있는 현실이다.

불과 수백 년 전에 백인으로부터 고대부터 살아오던 터전을 빼앗긴 것을 시작으로 대학살을 당했고, 여러 인종과의 결혼으로 애보리진의 모습을 점차 잃어가면서, 그들의 언어와 문화도 멸종 위기에 놓였다. 이 모든 사실이 그들의 삶을 나락으로 빠지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가슴 깊이 찬 분노와 슬픔에서 헤어나기가 그토록 어려운 것이었다.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백인이 법과 제도로 나라를 세웠고 애보리진은 그러한 역사가 없으니 땅을 빼앗긴 게 아니라고. 그런 그들도 호주 원주민과 관련한 부끄러운 역사는 드러내놓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것은 무엇을 말할까?

캔버라의 애보리진 천막 대사관에 들렀을 때, 학생들이 수업차 방문을 했다. 그곳을 지키던 애보리진 여성이 대사관 마당 한 가운데 오래 묶은 신성한 불씨로 불을 지폈다. 우리를 허락한 땅과 방문자를 위한 정화 의식이었다. 그녀는 말했다. 자연을 사랑하고, 어머니와 같은 땅을 아껴라, 우리를 이땅에 태어나게 해준 어머니를 공경하라.

여전히 호주는 백인 주류 사회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틈에 애보리진 후손들이 주류 사회의 일원으로 역시 살아가고 있다. 애보리진의 열성 유전자로 인해 백인과 결혼한 그들의 자녀는 백인의 겉모습과 다를 바 없으며 삶도 백인의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여전히 혼혈 애보리진에 비해 순수 애보리진의 삶이 거칠고 팍팍하며 미래 불투명 지수가 더 높다.

장윤정 eyjangnz@gmail.com 컴퓨터 전문지, 인터넷 신문, 인터넷 방송 분야에서 기자로, 기획자로 10여년 간 일했다. 현재 호주의 수도 캔버라에 아이와 함께 머물면서, 두 번째로 로컬처럼 살아보는 중이다. I AM 수행과 명상하는 삶을 추구한다. 호주 원주민 애보리진의 이야기와 그들의 세계관, 미술작품에 관심이 많다. 그리고 이곳의 하늘과 구름, 별에 푹 빠져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넥스트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